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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현대편 -절애(대한민국, 199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0
최근연재일 :
2022.07.07 12:01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527
추천수 :
108
글자수 :
164,208

작성
22.05.18 21:21
조회
68
추천
2
글자
9쪽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DUMMY

그날 이후,


셋은

저녁만 되면 거리를 쏘다니며

친형제처럼 같이 다녔다.




재성은

셋이서 몰려다니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매일매일

종미누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고등부로 출전할 수 있는

마지막 체전을 앞두고


하루 연습이 끝나면

너무 힘들어서 토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권투연습을 하던

재성이었지만,


종규의 집에 들를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주는

종미누나를 보면


그날 하루의 피로가

순식간에 풀리는 것 같았다.




셋 중에서

가장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충식도


이번 체전에

학교대표선수로 뽑혀

기술과 체력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었다.


할머니도

크게 편찮으신 곳이 없고,


충호는

학교에서 성적이

전체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아주 잘해서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멀리 떨어진 곳에 갇혀있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었다.


이젠 국민 학교 6학년이 된

영희는

종미누나를 친언니처럼 따르며

거의 매일을 함께 어울렸다.


충식은

이런 무탈한 날들이

계속 이어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셋 중에서

가장 행복해했던 것은

종규였다.


어릴 때부터 가족 외에는

아무하고도

마음을 터놓지 않았던 종규는


자신의 콤플렉스이기도 한

‘특이한 외모’를


재성과 충식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자신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누나를


엄마가

장사를 끝내고 돌아올 때까지

영희가 같이 있어주며

이것저것 챙겨준다는 것에서

큰 안식을 얻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형들과

저녁 내내 거리를 쏘다니며

재밌게 놀러 다니는 것도


종규의 열일곱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 지역의 고등학생들에게

‘또래의 전설’이나 다름없는

두 형들의 존재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상처받았던

종규의 자존심에

엄청난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당구장이던 분식집이던 간에

또래 애들이 모인

어느 곳엘 가도


두 형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최상의 예우’를 받았고


‘막내 종규’도

덩달아 같은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낮에는 집에서 누나를 돌보며

고등학교 입시공부를 하면서

수시로 시계를 확인할 정도로,


종규는

형들이 오후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리고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던

종규의 ‘잘생긴’ 얼굴이,


이름도 모르는

또래의 여학생에게

고백편지를 받을 정도로,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의

‘잘생긴’ 얼굴로 변했고,


인상을 쓰고 다니는 일보다

웃을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많아졌다는 것이


종규는

그 무엇보다도 참 좋았다.




전국체전을 한 달 앞둔

9월의 어느 날,


재성에게 슬픈 일이 생겼다.


그날도 체전에 대비해

재성은 장선생님과

무지막지한 땀을 쏟던 중이었다.


누군가가 급히

권투부 연습실로 뛰어 들어왔다.


담임 선생님이었다.


재성이 막 미트치기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던 중이었다.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재성아...


오늘 연습 그만 하고,

얼른 아버지 계신 요양원으로 가.


외삼촌한테 연락 왔는데...

오늘 갑자기

심한 발작을 일으키셔서

지금 많이 위독하시대.


외삼촌 목소리로 봐서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아.


얼른 가.


삼촌이 택시 보내셨어.”


담임선생님의 말은 재성에게,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았다.


하늘이 하얗게 변했다.


장선생님이

재성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뭐하고 있어! 얼른 뛰어!

선생님도 곧 뒤따라 가께.”


그제야 정신을 차린 재성은

손에 감은 붕대도 풀지 않고

바람처럼 교문 앞으로 뛰었다.




요양원 중환자실로

헉헉 거리며 뛰어 들어간

재성의 눈에


외삼촌의 떨리는 등과

울고 있는 이모,

그런 이모의 어깨를 잡고

달래주는 이모부,


그리고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아.....


무언가 소리내어

입밖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재성은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학교 미술실 벽에 걸려있는

쓸쓸한 정물화처럼,

아버지는 항상

편안하게 잠이 든 모습으로

그곳에 누워계셔야 했다.


그것이 비록,

독한 약의 부작용 때문에

하루의 대부분을

잠에 빠져 지내는

무기력한 모습이라 해도,


병실 창가 한 구석에 놓인

이름도 모르는 예쁜 꽃처럼,

편안한 식물 같은

아버지의 잠든 모습을 보면서


재성은

한없는 위안과 따뜻한 포근함을

언제나 받아왔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형의 이름에도 반응하지 않는

아버지의

암흑 같은 침묵을 보면서도


재성은

더 이상 아파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곤 했었다.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로서


그 자리에 변함없이 그대로,

그저 살아만 계셔주신다면,


그 존재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든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서

언제나 마음을 다잡아온

재성에게는,


어떻게든 숨을 쉬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아버지의 존재가


자신이 지금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이자


어디 가도 기죽지 않는

용기의 원동력이었다.




재성은

천천히 한 발짝씩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아버지의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재성이 비춰졌다.


실로 오랜만에 잠에서 깨어있는

아버지의 손을

재성은 힘주어 꽉 잡았다.


재성의 두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버지가

재성의 손을 힘주어 맞잡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재민아...미안혀...”


아버지는 여전히

재성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재성은 너무도 서러워

크게 소리쳤다.


“아버지! 저 재성이여유!

재민이형이 아니라 재성이!”


재성이

고함에 가까울 정도의

큰 소리를 지르자


흐릿했던 눈동자가

갑자기 반짝이더니,

힘이 돌아온 눈빛으로

아버지가 말했다.


“...어...재성이네...


재민이가 아니고 재성이...

우리 씩씩한 둘째아들...”




도대체 몇 년 만이던가...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것이...


재성의 눈에서

엄청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성이

다시 한 번 힘주어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간절하게 입을 열었다.


“아부지,

쫌만, 조금만 더 힘내유...


제가 다음 달에

금메달 따서 가져 올게유.”


“...금메달?...먼 금메달?”


“저 학교대표선수루 뽑혀서

권투루 전국체전 나가유...


코치님두

이번 대회 우승후보 중에서

지가 젤 잘헌대유...


그러니께...그러니께...

쫌만 더 힘내유....”




재성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며

아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최후의 힘을 짜내듯

남은 한 손을 들어

재성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재성아...

노력두 허지 말구...

욕심두 내지 말어...


이 땅에선

니 작은아버지 땜에,

암만 용써봐야 암것두 못혀...


그러다가 너두

니 형이랑 똑같어져...


괜히 애쓰구 그러다가

상처입지말구...


차라리 미국 같은디루 이민을 가.


그게

조금이라두 덜 아픈 길여....”




마치 기적처럼,

정말 오랜만에 제정신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말은,


그야말로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아팠다.


이젠 기억조차 희미해진

그 옛날부터

가슴 속에 계속 삭여왔을

아버지의 회한을 듣자,


재성은

너무 가슴이 아파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아버지가 안간힘을 내어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혀...미안혀...재성아...


니 엄마한티두...

니 형한티두...


아부지 잘못 만나서...

증말 미안허다...


아무 잘못두 읍시...

아부지 잘못 만나서....”


기운이 너무 달렸는지,

아버지는

제대로 말을 끝맺지 못했다.


점점 숨이 가빠져서

숨소리에 거친 쇳소리가

마구 섞여 나왔다.


“건강해야혀. 재성아...


아부지가 고생만 시키구...

증말...미안혀....


아프지 말어....”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의 시간은 끝이 났다.




재성은

어린 아이처럼

아버지의 손을 꽉 잡고

크게, 엉엉 울었다.


담담한 표정의 외삼촌은

의사와 차후 절차를 상의했고,


이모와 이모부가

재성을 감싸 안으며

같이 울어주었다.


재성이 열아홉이 되던 가을,

그는 고아가 되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초라하고 한적했다.


요양원 영안실 옆 작은 빈소에서


재성이

낮부터 혼자 빈소를 지켰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충식이네 가족과 종규네 가족,

이모와 이모부,

외삼촌네 식구들이

문상을 온 것이 다였다.


발인하기 전날 저녁엔

장선생님과 권투부 친구들,

담임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 몇몇이 다녀갔다.


장례식장에서 준비해준 방명록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아버지의 장례식은 쓸쓸했다.


그나마

충식과 종규가

사흘 동안 그의 곁에서

같이 밤을 지새워준 것이,

재성에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아버지는

도시 외곽의

공동묘지 한구석에 묻혔다.


과수원이 빚으로 넘어갈 적에,

외삼촌이 수를 내어


과수원 뒷동산에 묻혀있던

어머니와 형의 묘를

공동묘지로 이장해 놓은 것이

그나마 아버지에겐 다행이었다.


비록 초라한 공동묘지지만,


아버지 곁에

엄마와 형이 같이 묻혀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재성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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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 2 장 악연 (15) 22.06.30 45 0 10쪽
31 제 2 장 악연 (14) 22.06.28 43 1 10쪽
30 제 2 장 악연 (13) +1 22.06.16 63 2 13쪽
29 제 2 장 악연 (12) +1 22.06.16 48 2 10쪽
28 제 2 장 악연 (11) +1 22.06.15 47 2 10쪽
27 제 2 장 악연 (10) +1 22.06.10 65 2 14쪽
26 제 2 장 악연 (9) +1 22.06.07 56 3 12쪽
25 제 2 장 악연 (8) +1 22.06.05 65 1 17쪽
24 제 2 장 악연 (7) 22.06.04 48 1 11쪽
23 제 2 장 악연 (6) 22.06.02 53 2 9쪽
22 제 2 장 악연 (5) 22.06.01 54 2 11쪽
21 제 2 장 악연 (4) 22.05.31 52 3 10쪽
20 제 2 장 악연 (3) 22.05.28 62 3 14쪽
19 제 2 장 악연 (2) 22.05.26 58 3 11쪽
18 제 2 장 악연 (1) 22.05.25 68 3 10쪽
1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7) +1 22.05.24 87 4 9쪽
1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22.05.23 69 4 11쪽
15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1 22.05.20 72 4 10쪽
14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4) 22.05.19 66 2 9쪽
»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22.05.18 69 2 9쪽
12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22.05.18 65 2 12쪽
11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22.05.17 70 3 11쪽
10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0) 22.05.17 70 4 9쪽
9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22.05.16 78 3 10쪽
8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8) 22.05.16 75 2 9쪽
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22.05.13 81 2 10쪽
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22.05.13 8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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