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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현대편 -절애(대한민국, 199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0
최근연재일 :
2022.07.07 12:01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520
추천수 :
108
글자수 :
164,208

작성
22.05.20 16:05
조회
71
추천
4
글자
10쪽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DUMMY

충식은

무려 세 달을 입원해야했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충식에게

육체적인 고통은 없었지만,

정신적인 고통이 워낙 심했다.


충식이

그런 고통을 겪게된 것에는

몇 가지 사정이 있었다.


일단 돈 문제가 첫 번째였다.


수술비와 병원비는

고등학생인 충식이

감당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맡긴 통장이

그대로 있긴 했지만,


충식의 성격상

이런 일에

그 돈을 쓸 생각을 할리가 없었다.


그래서 입원해있는 동안,

충식의 얼굴엔 매일 그늘이 졌다.


하루하루 걱정이 쌓여

밥조차 넘어가지 않았다.


그때,

충식의 어려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변의 어른들이 뜻을 모아

십시일반 병원비를 충당했다.


충식의 수술비와 병원비는

재성의 이모네 부부와

종규의 어머니가

거의 대부분을 대주었고,


모자란 부분은

장선생님이 메꿔주었다.


병원의 간호사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충식은,

그날 저녁 병문안을 온

재성과 종규를 붙잡고

한참동안 엉엉 울었다.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병원비보다 더 큰 문제는

충식의 학교문제였다.


애당초 유도부 특기생으로

장학금을 받아

고등학교에 들어간 것이므로,


충식이

유도선수로서의 생명이

이제 끝난 마당에,


학교 측에서는

충식을

더 이상 지원해 줄 이유가 없었다.


충식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유도부 고문 선생님과

장선생님이 나서서


재활훈련을 핑계삼아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두었으나,


퇴원할 무렵의 마지막 검사에서

담당의사는 냉정하게 선고하였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으나,


유도나 레슬링 같은

격렬한 운동을

전문적으로 꾸준히 해서는 안 됨,


영구적인 손상이 와

장애인이 될 수 있음’


결국 그렇게

충식의 유도특기생 자격 및

장학금지원은 박탈되었고,


고3으로 올라갈 무렵,

충식은 자퇴를 선택하였다.


자신보다는

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투는

동생 충호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충식은

돈을 벌고 싶었다.


퇴원 후,

오랜만에 면회를 가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침울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충식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걱정마세요. 아버지.


이젠 아프지도 않고,

일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어요.


저랑 친한

종규라는 동생이 있는데,

그 친구도

검정고시 봐서 합격했어요.


일하는 틈틈이 공부해서

꼭 고등학교 졸업장 딸게요.”


그러나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퇴를 한 충식은,

주말에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장의 가게에

정식으로 취직을 했다.


충식의 그런 모습에

재성의 죄책감은 더더욱 깊어졌다.


사실 그 당시 재성의 사정도

충식보다 그리 나을 것은 없었다.


오른손의 부상은

권투부에서 퇴출될 정도의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재성은 이미 3학년이었다.


마지막 전국체전에도

결국 출전하지 못하면서,


재성의 존재는

학교에서 장선생님의 입지만

더더욱 약화시켰고,


교장선생님께

‘관리감독 소홀’로

시말서까지 제출하게 만든

죄인이 되었다.


하지만 장선생님은

재성을 탓하지 않으셨다.


재성의 주먹이 원래대로 돌아온

고등학교의 마지막 겨울방학이

시작되던 종업식 날,


장선생님은 재성을 따로 불러

진지하게 말했다.


“재성아,


선생님이

가까운 곳에 직장 몇 군데를

알아본 게 있어.


너도 졸업하면

니 밥벌이는 해야 할 테니...


일단

선생님이 취직시켜주는 곳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어려워도 권투 다시 하자.


선생님은

니 재능이 너무 아까워.


가능하면 내 손으로,

내 그늘 아래서


니가 이렇게

생계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

학생 신분일 때

금메달 따게 해서


체육대학에 특기장학생으로

꼭 넣어주고 싶었는데...


그랬으면

올림픽 메달도

노려볼 수 있었을 텐데...


뭐, 이미 다 지난 일이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젠 프로라도 노려봤음 좋겠어.


넌,

내가 만난 원석 중에 최고야.


그래서

너무 속상하고 너무 아까워.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자기 뜻대로 되는 건 별로 없지만,


자기가 타고난 재능을

꾸준히 갈고닦으면서

한길만 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늘에서 보답을 내려준다고

난 믿거든.”


재성은

선생님의 자상한 배려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져서

눈물을 흘릴 뻔 했으나, 꾹 참고


대신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인사를 드렸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졸업해서도

저, 권투 열심히 해볼 게요.”


그렇게

재성의 고등학교 생활은 끝났다.




종규는 이듬해 봄,

동갑내기들보다 1년 늦게

옆 도시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1시간가까이 타야 하는

고된 통학 길이었지만,


입학식 날,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자신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모습 때문에라도,

힘들어도 열심히 다녀야했다.


그래도 저녁이면,

일이 끝난 형들을 만나는

크나큰 즐거움이 있었기에


종규는 힘들어도 군소리 없이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시간씩 버스를 탔다.




재성이

장선생님의 소개로 취직한 곳은

우시장(牛市場)이었다.


재성의 고향엔

충남에서 가장 큰 규모의

우시장이 있었고,


조선시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있는 시장이라고 했다.


도시 외곽의 대부분의 땅들에서

소나 돼지를 키우는

농장주들이 많았고,


시장 주변으로

사료가게, 가축병원,

관련설비업자들의 가게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재성이가 맡은 업무는

우시장의 경비 일이었는데,


평상시 장이 서지 않는 날은

건물을 보수한다거나

청소 같은 잡일을 하다가


소시장이 서는 날에는

선배들과 함께 짝을 지어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뤄

순찰을 돌았다.


소시장의 특성상,

거래를 하러 온 사람들끼리

서로 주먹질까지 오가는

과격한 트러블도 많았고,


워낙 큰돈이

거래대금으로

빈번하게 오가는지라


강도나 좀도둑,

때로는 건달패들도 끼어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재성의 업무는 바로

순찰 중에

이런 트러블을 해결하거나


어떤 때는 힘을 써서라도

거래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시장 밖으로 몰아내는 일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장소다 보니

정말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많았고,

그래서 급여가 꽤 높았다.




재성은

월급을 받으면

정확히 3등분하여


3분의 1은 이모에게,

3분의 1은 자기의 생활비로,

3분의 1은 충식에게 주었다.


충식은

자신도 쏠쏠하게 돈을 번다고,

이러지 말라고 극구 사양하며

매번 난색을 표했지만,


재성은 딱 한 마디로

충식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니가 안 받으믄,

불붙여서 다 태워버릴 거여.


이래야 형 맘이 편혀...


니가 쓰든,

할머니 약값을 허든,

아버지 영치금을 넣든,

충호 등록금을 허든,

영희 옷을 사주든...


니 맘대로 써.”


충식은

자신이 재성에게 받은 것이

이미 너무 많다고,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평안은

다 형님을 만난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충식은 결국 꺼내지 못했다.


자신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는

재성을 보는 것이

너무 속상했지만,


자신이 그런 얘기를 꺼내면

더더욱 속상해하고 미안해할

재성의 마음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충식이

그간 옆에서 지켜본 재성은


그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자신 때문에

아끼는 동생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견디질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삼형제의 새로운 길은 시작되었다.




재성이 스무 살이 되던 여름,


여섯 번째 월급을 받아

은행에 간 재성은

통장잔고를 확인하고

갑자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바쁘게 살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

저녁에 다시 권투를 시작한 덕에

돈 쓸 일이 확 줄어서

여윳돈이 제법 생겼기 때문이었다.


재성의 머릿속에

장선생님의 낡은 구두와

종미누나의 망가진 슬리퍼가

문득 떠올랐다.


재성은

은행 앞 구둣방에 가서

장선생님의 구두를 하나 샀고,


종미의 선물로

예쁜 샌들 하나를 샀다.


난생처음

자신이 번 돈으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는 사실이

매우 뿌듯해진 재성은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띠우며

거리로 나섰다.




평일 오후라서 그런지

거리는 무척 한적했다.


재성은

일주일에 네 번은 가는 단골집인

시장의 소머리 국밥집에서

점심을 혼자 해결하고


학교 근처에 있는

장선생님 하숙방으로 향했다.


그날은 비번이라

재성에겐 휴일이었지만


선생님은 출근하여

학교에 계실 시간이었기에


‘항상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자 재성 올림’

이라고,

짧게 적은 메모를 끼워서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께

자신이 산 구두를 맡기고

공손히 전달을 부탁하며

밖으로 나왔다.




다시 거리로 나온 재성은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며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서

종규의 집 앞에 도착했다.


종규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이라

종미누나는 영희와 함께 있었다.


자신을 똘망똘망 쳐다보는

영희 때문에

재성은 많이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선물상자에 담긴 샌들을

종미에게 내밀었다.


꽃장식이 달린

파란색의 예쁜 신발을 본 종미는

환하게 웃음 지었고,


재성은 종미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선물이야. 누나.

내가 번 돈으로 샀어.”


종미는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재성이 준 샌들을

자신의 품에 소중히 꼬옥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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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 2 장 악연 (17) 22.07.07 63 0 14쪽
33 제 2 장 악연 (16) 22.07.05 42 0 11쪽
32 제 2 장 악연 (15) 22.06.30 45 0 10쪽
31 제 2 장 악연 (14) 22.06.28 42 1 10쪽
30 제 2 장 악연 (13) +1 22.06.16 63 2 13쪽
29 제 2 장 악연 (12) +1 22.06.16 48 2 10쪽
28 제 2 장 악연 (11) +1 22.06.15 46 2 10쪽
27 제 2 장 악연 (10) +1 22.06.10 65 2 14쪽
26 제 2 장 악연 (9) +1 22.06.07 56 3 12쪽
25 제 2 장 악연 (8) +1 22.06.05 65 1 17쪽
24 제 2 장 악연 (7) 22.06.04 48 1 11쪽
23 제 2 장 악연 (6) 22.06.02 53 2 9쪽
22 제 2 장 악연 (5) 22.06.01 54 2 11쪽
21 제 2 장 악연 (4) 22.05.31 52 3 10쪽
20 제 2 장 악연 (3) 22.05.28 61 3 14쪽
19 제 2 장 악연 (2) 22.05.26 58 3 11쪽
18 제 2 장 악연 (1) 22.05.25 68 3 10쪽
1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7) +1 22.05.24 87 4 9쪽
1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22.05.23 69 4 11쪽
»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1 22.05.20 72 4 10쪽
14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4) 22.05.19 66 2 9쪽
13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22.05.18 68 2 9쪽
12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22.05.18 65 2 12쪽
11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22.05.17 69 3 11쪽
10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0) 22.05.17 69 4 9쪽
9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22.05.16 78 3 10쪽
8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8) 22.05.16 75 2 9쪽
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22.05.13 81 2 10쪽
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22.05.13 8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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