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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현대편 -절애(대한민국, 199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0
최근연재일 :
2022.07.07 12:01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528
추천수 :
108
글자수 :
164,208

작성
22.05.13 06:11
조회
81
추천
2
글자
10쪽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DUMMY

그날 이후로,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재성과 충식은 무척 친해졌다.


재성은

권투부 식사가 나오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간식으로 나온 빵들을

자신이 먹지 않고

매일매일 충식에게 전해주었고,


주말이 되면 충식을 데리고

이모네 식당으로 가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어떤 때는 가끔씩

충호와 영희까지 데리고 가서

돼지갈비를 먹기도 했다.


사람 좋은 이모와 이모부는

매일 혼자만 다니던 재성에게

같이 어울리는 아이들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아서

정성이 담긴 맛있는 밥을 차려주었다.


재성의 이모부가 소개시켜준

주말에만 하는 아르바이트도

충식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시장에서 수레를 끌고 다니며

가게에서 가게로

물건을 옮겨주는 일이었는데,


크게 힘들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던 충식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충식이가

시장에서 채소행상을 하시는

할머니의 손자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이모는

식당에서 쓰는 채소를

할머니에게 샀다.


전부터 안면은 있던 사이라

할머니도 이모도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서로 만족하는 관계가 되었다.


읍사무소나 군청 직원들에게

이모가 하는 식당은

소문난 맛집이라서

장사도 잘 되는 편이었기 때문에,


충식은 재성을 만난 뒤부터

실로 오랜만의 안정감과

거기서 비롯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받은 온기가

충식의 차갑고 우울했던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주었던 것이다.




겨울방학이 되고,

고등학교 진학 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충식에게

재성이 큰 도움을 주었다.


원래 충식은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취직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대전교도소로 아버지를 접견 가서

그 생각을 말씀드렸을 때,


그토록 자신에게 화를 내는 아버지를

난생처음 본 후로

충식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할머니마저도

그동안 모아온 쌈짓돈을

월사금에 보태라고 내놓으시자

충식의 고민은 더더욱 깊어졌고,


그런 충식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재성은

날을 잡아 자신의 자취방에서

둘만의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충식의 고민을 들은 재성은

다음 날 장호연 선생님께

충식을 데려갔다.


재성은 장선생님께

충식의 사정을 설명 드리고


충식이 전학 오기 전까지

서울에서 유도부 활동을 했고,

시 대회에서 입상까지 했었으니


학교 유도부에

특기생으로 입학이 가능한지

테스트라도 받게 해주실 수 없냐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사람 좋고 자상한 스승인

장호연 선생은

그 자리에서 바로 흔쾌히 허락하고

학교 유도장으로

재성과 충식을 데려갔다.


유도부 고문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자,


마침 새로 입학할 특기생 중에

한 명이 무릎을 심하게 다쳐서

자리 하나가 비었던 관계로


유도부 고문 김중만 선생은

선수들을 몇 명 불러 모아

바로 충식의 테스트를 준비했다.




충식의 유도실력은


그를 추천했던 재성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장선생이나 김선생도

깜짝 놀랄 만큼

아주 훌륭한 실력이었다.


1학년인데도

도대표로 선발된 선수를

충식이 세 번이나 연달아

한판승으로 이기자,


더 이상의 테스트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김중만 선생은

바로 교장 선생님을 만나러 갔고,


충식과 붙어본 1년 선배는

경외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나

다른 지역 동갑내기들한테

져본 적은 있어도


자기보다 어린 후배한테는

져본 적이 없었던 그에게


충식의 실력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던 것이다.




추운 겨울이 물러가고

3월이 되어 봄이 다가오던 무렵,


충식은

재성의 학교에

유도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그날 처음으로,

충식은 재성에게

‘형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같이 등교하던 첫날

‘고맙습니다. 형님’이라는

정중한 인사를 받은 재성은

뿌듯한 얼굴로

충식의 어깨를 다독이며

정말 기분 좋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1년간 열심히 다진 기본기와

장호연 선생의 탁월한 지도 덕분에,


2학년이 된 재성은

드디어 전국체전 멤버로 선발되었다.


자신의 라이벌이자 1년 위인,

같은 미들급의 3학년 박민수 선배를

스파링에서 넉다운 시킨 재성은


그야말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되어

그 달에 있던 면회일에

기쁜 소식을 들고

요양원으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입원한지 2년이 넘어가자,

아버지는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재성이 자기가 왔다고,


‘저 재성이라고’

아무리 크게 몇 번을 말해도


아버지는 그저

겁먹은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채

땅바닥만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반응하는 단어는

형의 이름,

‘재민’이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재성이 자신의 이름이 아닌

‘저 재민이어유’라는 말을 할 때만

아버지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재성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항상 똑같았다.


‘미안혀...미안혀...재민아....

아버지가 잘못했어....미안혀’,


그래서 재성은

아버지의 면회를 다녀오는 날이면

항상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날만은 달랐다.


재성은

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아도

계속 몇 번이고,

마치 소리를 지르듯이

큰 목소리로 얘기를 했다.


“아버지,

저 학교대표선수로 뽑혔어유.


저 체전 나가믄 꼭 금메달 따서

아버지한티 드릴께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똑같은 말을 했지만,

아버지는 재성을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재성은 그날만큼은,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저 각오를 다졌을 뿐이다.




재성이 요양원에 가서

아버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던 날,


충식도 동생들과 함께

대전교도소에 가서

접견신청을 했다.


오랜만의 아버지는

여전히 건강해보여서

충식을 기쁘게 했고,


아버지도 오랜만에

충호와 영희까지 보자

너무 행복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충식이

명문고에 유도특기 장학생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에


아버지는

정말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동생들이 잠들자


충식은

재성에게 줄 선물을 가방에서 꺼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재성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주고 싶던 충식이

아까 대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산

양말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터미널을 서성거리던 참에

진열대에 걸려있는

양말의 목 부분에

“champion”이라고

자수가 박혀있는 것이

충식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헤어진 후로,

충식에겐 정말 꿈만 같은,

평온한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의 후견인이나 마찬가지인

1년 선배 재성의 영향력은

충식의 또래들 사이에서

정말 어마어마했다.


중학교 때부터

‘최강의 주먹’으로 이름을 날린

재성은


동기들에게는 두려움을,

선배들에게는 불편함을,

후배들에게는 경외심을 주는,


그야말로

‘학교의 별’같은 존재였다.


그런 재성이

가끔씩 쉬는 시간에

충식의 교실로 와서 안부를 묻고,


재성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90도 인사를 하는

1학년 일진들에게


충식을

‘내 동생’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으니,


충식의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였다.


충식은 유도부에서

재성은 권투부에서

오후훈련이 끝나면,


둘은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재성의 자전거를 타고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전국체전을 한 달 정도 앞둔

토요일 저녁이었다.


그날도 재성과 충식은

충호와 영희까지 데리고

이모네 식당서

맛있는 밥을 배불리 먹은 후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충호가 영희를 데리고

테니스공으로 공놀이를 하고


재성과 충식은

기분 좋은 얼굴로

둘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희가

오빠 받아~하면서 던진 공이

충호의 키를 훌쩍 넘어 날아가다

길 건너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여학생의 얼굴에 맞았다.


공을 맞은 여학생이

심하게 짜증을 내자

충호는 놀랐고,

영희는 무서워서 울기 시작했다.


재성과 충식이 얼른 뛰어가서

여학생에게 사과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야! 뭐여? 무슨 일인데?”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학생 여럿이 서있었고,


소리를 지른 사람은

재성의 권투부 선배이자

선발전에서 재성에게 져서 탈락한

3학년 박민수 선배였다.


재성의 얼굴에

일순 긴장감이 드러났다.


민수선배는

재성에게 선발전에서 진 뒤로

권투부 내에서의 입지도,

후배들과 동기들 사이에서의 권위도

많이 깎여나간 상태였고,


그렇게 된 원인을

자신의 실력이

모자란 것에서 찾지 않고

‘재성의 운’에서 찾았기에


요즘 은근히

‘선배로서의 괴롭힘’을

재성에게 행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재성이

얼른 허리를 깊이 숙여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 동생들인데 공놀이를 하다가...”


재성의 사과가 끝나기도 전에

민수선배의 옆에 서있던,

불량스러운 얼굴의 남학생이

다짜고짜 재성의 얼굴을 걷어찼다.


불시에 얼굴을 걷어차인 재성은

뒤로 넘어졌고

터진 콧잔등에서

코피가 터져 흘러내렸다.


재성을 걷어찬 남학생은

박민수의 친구이자

그 도시의 학생들 사이에서

소위 “짱”을 먹고 있는,

옆 동네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깡패 김도철이었다.


“민수야, 이 새끼가 그 새끼 맞지?


중학교 때부터 역 앞에서

아무하고나 시비 붙고 다녔다던

그 건방진 후배새끼...


이름이 재성이라고 그랬나?”


도철의 말을 들은 민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엉, 맞어, 그 건방진 새끼.”


민수의 대답을 들은 도철은

쓰러진 재성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 후배님...


얼마나 잘 치시는지는 몰라도

선배도 모자라서

선배 여자 친구까지

때리시면 되겠어요?


이 씨발 새끼야!”


도철의 발길질이

한 번 더 재성의 얼굴로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충식이

번개같이 달려들어

재성을 향해 날아가는 발길질을

자신의 손으로 쳐냈다.


깜짝 놀란 도철이

얼른 자세를 바로 잡으며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이 새낀 또 머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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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 2 장 악연 (17) 22.07.07 63 0 14쪽
33 제 2 장 악연 (16) 22.07.05 42 0 11쪽
32 제 2 장 악연 (15) 22.06.30 45 0 10쪽
31 제 2 장 악연 (14) 22.06.28 43 1 10쪽
30 제 2 장 악연 (13) +1 22.06.16 63 2 13쪽
29 제 2 장 악연 (12) +1 22.06.16 48 2 10쪽
28 제 2 장 악연 (11) +1 22.06.15 47 2 10쪽
27 제 2 장 악연 (10) +1 22.06.10 65 2 14쪽
26 제 2 장 악연 (9) +1 22.06.07 56 3 12쪽
25 제 2 장 악연 (8) +1 22.06.05 65 1 17쪽
24 제 2 장 악연 (7) 22.06.04 48 1 11쪽
23 제 2 장 악연 (6) 22.06.02 53 2 9쪽
22 제 2 장 악연 (5) 22.06.01 54 2 11쪽
21 제 2 장 악연 (4) 22.05.31 52 3 10쪽
20 제 2 장 악연 (3) 22.05.28 62 3 14쪽
19 제 2 장 악연 (2) 22.05.26 58 3 11쪽
18 제 2 장 악연 (1) 22.05.25 68 3 10쪽
1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7) +1 22.05.24 87 4 9쪽
1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22.05.23 69 4 11쪽
15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1 22.05.20 72 4 10쪽
14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4) 22.05.19 66 2 9쪽
13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22.05.18 69 2 9쪽
12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22.05.18 65 2 12쪽
11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22.05.17 70 3 11쪽
10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0) 22.05.17 70 4 9쪽
9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22.05.16 78 3 10쪽
8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8) 22.05.16 75 2 9쪽
»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22.05.13 82 2 10쪽
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22.05.13 8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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