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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현대편 -절애(대한민국, 199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0
최근연재일 :
2022.07.07 12:01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526
추천수 :
108
글자수 :
164,208

작성
22.05.17 20:02
조회
69
추천
3
글자
11쪽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DUMMY

그렇게

사나운 태풍같았던

소년의 가을이 지나고,


엄마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힘겹게 지켜냈다.


다행히 입지가 좋아

집은 금방 팔렸지만,


소년의 집이

급히 매물로 나온 사정을

그 도시의 부동산업자들은

모두 다 알고 있었기에,


시세만큼의 값을

받아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세상의 인심이란

언제나 차갑고 매정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아프게 느꼈지만


소년의 엄마는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해


최대한 빨리,

최고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부동산 업자에게

흥정없이 바로 팔겠다며


속칭 '깜깜이'를,

그 바닥에서 날고 긴다는

부동산업자들에게 시전했다.


그렇게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

양쪽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거래는 되지 못했지만,

어쨌든 집은 처분되었고


집까지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합의금을 다 채우지 못한 엄마는,


여기저기 빚을 얻어

에누리 하나 없이

민국엄마에게

500만원을 채워주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닥치던

그해 겨울날,


식당 이모의 주선으로

단칸방 하나를

시세보다 싼 가격에 전세로 얻은

엄마와 누나는

최소한의 살림만을 꾸려

단출하게 이사를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


비록 좁고 낡았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겨우 자리를 잡았으나


이번엔

먹고 살아야 할

생존의 문제가

또 다시

엄마의 앞에 다가왔다.




엄마는 일단

낮에는 공사장 함바집에 나가

찬모 노릇을 하며 돈을 벌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양품점들의 의뢰를 받아

동대문 새벽시장에 올라가

'물건'을 골라 매입해오는

힘들고 피곤한 부업을 겸했다.


버는 돈의 대부분은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빚을 갚는데 가장 먼저 썼다.


합의금의 모자란 부분을 채울 때,

고리로 얻은 월돈부터

매일매일 갚아야하는 일수돈까지


엄마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는

정말 크고도 고되었다.


그래도

타고난 강인함과

탁월한 생활력 덕분에


엄마는

그해 겨울이 다 가기 전까지

빚의 절반을 갚을 수 있었다.




종규가 돌아오기 전까진,

모든 빚을 청산하고

다시 가게를 내겠다는

엄마의 말에


그렇게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내가 너에게

예전에 받은 은혜가 있으니


이번엔

내가 한 번 도와주겠다며


이모부가 나서서

엄마의 새로운 가게자리를

얻을 수 있을만한 보증금을

목돈으로 전해주면서


그나마

엄마의 숨통이 좀 트였다.


이모부의 호의에 감격한 엄마가

엉엉 울면서


꼭 갚을게요. 형부.

정말 고마워요 라고 말하자,


이모는 아무 말없이

엄마를 안아주었고


이모부는 씩 웃으며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삼십년 무이자여. 천천히 갚어."


그렇게

엄마의 가혹한 겨울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종규가

대전소년원에서 지낸지

7개월쯤 지났을 때


누나와 함께

엄마가 접견을 왔다.


누나는

종규를 보고 너무 기뻐서

한참을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날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종규가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엄마가

가만히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집이랑 가게는 다 정리했다고

저번에 편지로 알려줬고...


이사는

이모네 식당 옆에

조그만 전셋집 하나 얻었다고

저번 접견 때 얘기했고...


새 가게자리는

이모부가

목 좋은 곳으로

지금 알아봐주고 계시고...


그렇게 나쁜 일은 없어...”


“근데 왜 그래?

되게 안 좋아 보이네?”


“아니야...


이것저것 정리하고

신경 쓰느라고

피곤해서 그런가봐.


니가 고생이지 뭐,


너는 어때?


별일 없지?

어디 아픈 덴 없구?”


“응...지낼만해.


너무 걱정하지 마...

이제 곧 나갈 텐데 뭐...”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시울을 붉혔고,


누나는

여전히 종규를 보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종규는

이렇게 찝찝하게

헤어지기는 싫어서

갑자기 뜬금없이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엄마,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뭔데? 말해봐?

뭐 먹고 싶은 거라두 있어?”


“노래 한번만 불러줘....


엄마 노래....”


종규의 부탁을 받은 엄마는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노래를 시작했다.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the Rising Sun.......”




그동안 엄마가 부른

수많은 팝송 중에서도

난생처음 들어본 노래였으나,


엄마의 무겁고 쓸쓸한 목소리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애잔한 느낌의 노래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노래를 부르는 엄마도,


해맑게 웃고 있던 누나도,


부탁을 했던 종규도

두 눈을 감았다.


접견실 가득

엄마의 노래가

꽉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보름 후,


면회를 온 식당이모부한테서

종규는 그제야

엄마의 속사정을 듣게 되었다.


“니 엄마...


저번 달에 너 보러오기 전에,

안 좋은 소식을 받아서 그랬을껴...”


“무슨 소식인데요?”


“니 아빠...

그러니까 로버트 대위가...


월남서 전사했댜..."


이모부의 말에

종규의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네!? 뭐라구요? 아빠?

아빠라니? 제 아빠요? 진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년이 흥분하여 묻자

이모부가 한숨을 크게 내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넌,

니 엄마 뱃속에 있을 때라

아예 기억조차 없것지만...


니 아빠는

니 엄마를 진짜루 사랑했어...


전쟁 끝난 뒤에도

미국으루 안돌아가구

한국에 남아서

근무를 했을 정도니께....


근데 안타까운 게,


너 태어날 무렵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구서


5년만 본국서 근무허구

다시 돌아온다구,

그렇게 미국으루 들어갔는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는지

먼가가 꼬여서 그랬는지

계속 돌아오지 못허다가...


월남에 파병된 모양여...


근디...거기서 죽었다는구먼...”


“............”


“니 엄마가 숨겨서

넌 모르구 있었겠지만...


니 엄마랑 니 아빠는

편지루든 전화루든

작년까지두 쭉 연락허구 지냈어...


니 엄마가

언젠가는 너랑 니 누나,

미국 니 아빠한티

꼭 데리구 갈거라구

돈두 열심히 모으구...


니 아빠두

니네 미국으루 부를라구

이것저것 준비 많이 했었는디,

행정적으루다가 뭔가가 꼬였는지

번번이 다 잘 안됐어...


그리 많지는 않았어두

생활비두 매달

니네 엄마한티

꼬박꼬박 송금했었구.


월남서 전쟁만 없었어두,


어쩌믄 니 아빠가

니네 세 식구

델러 왔었을지두 몰러...”




그랬구나....그랬었구나....


자신이 한참을 잊고 살았던,

자신의 아버지가


그동안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가족의 곁에

마음으로나마

머물러주고 있었다는 사실은


소년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엄마의 그날 표정과

그날의 눈빛,

그날의 목소리가


겨우 이해가 된 종규의 눈에서

두 줄기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모부가 말을 이었다.


“니네 엄마가

미군부대 앞에서 일할 때,


니네 아빠가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허구

별 생각읍시 만났다가,


니네 엄마가

워낙 사람이 괜찮으니께...


그때부터 진심으루 반해서...


빚까지 내서

포주한테 몸 빼내주구

둘이서 바루 살림 차린겨...


이번에 판 니네 집두

니 누나 태어났을 때

니 아빠가 장만해준 거구...


그때

니네 아빠가 니 엄마 통해서

이모부한티

이것저것 미군부대 물건을 대줘서,

그덕에 우리 부부가

탄탄허게 돈을 벌 수 있었던 거여.


그래서 이렇게 식당도 차렸구,

우리 딸래미 학교졸업장두 따서

서울루 취직두 시킬 수 있었으니...


니네 부모님한티,

특히 니네 엄마한티

우리가 을마나 고맙것냐..."


"..........."


"종규 니가

아직 철모르는 거 같아서

말 나온 김에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만서두...


니네 엄마 아니었으믄,

어쩌믄 우리 식구 다

길거리서 굶어죽었을겨...


젊었을 적에 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구

멍청허게 보증을 섰다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그래서 완전히 그지가 됐는디,


니네 엄마가 주선해준 덕에

부대 앞 나이트클럽서

기타치구 오부리 뛰어서

우리 마누라랑 딸이랑

셋이서 겨우 먹구 살기 시작했거든...


니 엄마는

그때두 노래를 잘해서

참 인기가 좋았어.


거기 나이트클럽 사장두

니네 엄마

엄청 쫓아다녔으니께...


암튼 그때, 그렇게 막막허니...

맨날 대낮부터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날 보구서


내 사정이 딱해진걸

몰래 뒤루 알아보구

자기 일마냥 나서서

그렇게 도와준겨..."


"..............."


"니 엄마...참 좋은 사람여...


그러니께

니 엄마 과거 땜에

속상해 허지두 말구...

미워허지두 말어...


넌,

멋진 아버지랑

좋은 엄마 뒀으니께

부끄러워 허지두 말구....”




이모부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엄마와 아빠의 사연에


소년의 가슴엔

그전까진 없었던

뜨겁고 단단한 기운이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두 분이 사랑한 결과로서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멋진 사실이


소년의 마음을

한없이 뿌듯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그날

엄마의 슬픈 얼굴이 떠오른

소년의 마음엔

슬픔이 가득 밀려왔다.


자신은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만,


머나먼 남쪽 나라의 전쟁에서

저번 달에 전사했다는

아버지의 소식과


그 때문에 슬퍼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소년은

갑자기 터진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그런 종규의 모습을

안쓰러운 눈길로 쳐다보던

이모부가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께...


몸 다치지 말구

건강허게 돌아와...


어쨌든 새 집으루 이사두 했구,

가게두 곧 새루 열거니께

이제 괜찮을겨.


다시 나와서

니 누나두

예전처럼 니가 잘 챙기구...


니 엄마 아주 요새 죽어나...

일허랴, 니 누나 챙기랴...”


“...예, 이모부....”


“그려...이제 이모부두 가께...


건강혀...밥 잘 챙겨먹구...”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는 이모부에게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종규가

급하게 물었다.


“아, 이모부...


그...그 엄마가 부른 팝송,

제목이 뭐예요?”


“어떤 팝송?


니네 엄마가 부른 노래가

어디 한두 개야지...”


소년은 기억과 감정을 더듬어서

멜로디와 가사를 떠올렸다.


다는 아니지만

인상적이었던 첫 소절을

이모부에게 불러주었다.


그 노래가 무언지

알아차린 이모부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썬

(house of the rising sun)이라는

미국 노래여...”


“가사가 무슨 뜻이에요?

궁금해서....”


“나두 무식해서 뜻은 잘 몰러...


해 뜨는 집으로 난 돌아 갈래...

뭐 그런 뜻일겨...


니 엄마랑 니 아버지가

이 노래를 참 좋아했어....


존 바에즈라는

여자가수가 부른 것두 있구,

남자들 여럿이 부른 것두 있구...


원래 미국 민요래나...


내가 기타를 쳐주면

니네 엄마랑 아빠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주 불렀지...


니네 아빠가

고향생각 난다구 그러믄서...”




그날 이후,

종규는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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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 2 장 악연 (17) 22.07.07 63 0 14쪽
33 제 2 장 악연 (16) 22.07.05 42 0 11쪽
32 제 2 장 악연 (15) 22.06.30 45 0 10쪽
31 제 2 장 악연 (14) 22.06.28 43 1 10쪽
30 제 2 장 악연 (13) +1 22.06.16 63 2 13쪽
29 제 2 장 악연 (12) +1 22.06.16 48 2 10쪽
28 제 2 장 악연 (11) +1 22.06.15 47 2 10쪽
27 제 2 장 악연 (10) +1 22.06.10 65 2 14쪽
26 제 2 장 악연 (9) +1 22.06.07 56 3 12쪽
25 제 2 장 악연 (8) +1 22.06.05 65 1 17쪽
24 제 2 장 악연 (7) 22.06.04 48 1 11쪽
23 제 2 장 악연 (6) 22.06.02 53 2 9쪽
22 제 2 장 악연 (5) 22.06.01 54 2 11쪽
21 제 2 장 악연 (4) 22.05.31 52 3 10쪽
20 제 2 장 악연 (3) 22.05.28 62 3 14쪽
19 제 2 장 악연 (2) 22.05.26 58 3 11쪽
18 제 2 장 악연 (1) 22.05.25 68 3 10쪽
1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7) +1 22.05.24 87 4 9쪽
1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22.05.23 69 4 11쪽
15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1 22.05.20 72 4 10쪽
14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4) 22.05.19 66 2 9쪽
13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22.05.18 68 2 9쪽
12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22.05.18 65 2 12쪽
»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22.05.17 70 3 11쪽
10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0) 22.05.17 70 4 9쪽
9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22.05.16 78 3 10쪽
8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8) 22.05.16 75 2 9쪽
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22.05.13 81 2 10쪽
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22.05.13 8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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