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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현대편 -절애(대한민국, 199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0
최근연재일 :
2022.07.07 12:01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506
추천수 :
108
글자수 :
164,208

작성
22.05.23 12:44
조회
68
추천
4
글자
11쪽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DUMMY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었다.


하지만 그해 가을은

삼형제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잔혹한 계절이 되었다.




파국은

종규네 옆집에

누군가가

이사 오면서 시작되었다.


종규네 옆집에

이사를 온 남자는

그 도시에서

아주 유명한 사내였다.


이름은 박무석,


나이는 스물아홉,


가족은 없고

‘징역’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고 했다.


거리의 소문에 의하면

열네 살 때부터 돈을 받고

사람을 칼로 찌르고 다녔다는,


그 도시에서

최고의 악명을 떨치던

백수건달이었다.




박무석은

눈빛이나 분위기부터가

음습하고 사나운 느낌을 풍기는,

위험한 짐승 같은 사내였다.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사는지는 모르나,

어렵게 살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자다가


밤이 되면

어딘가로 나가서

아침에 돌아오는 일이

빈번했는데


항상 두툼한 지갑을

남에게 자랑하듯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녔다.


술만 먹으면

주변에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걸었고


경찰들이 출동해도

우습다는 듯이

행패를 부렸다.


들리는 말로는


도시 최고의 부자인

김영민 사장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해주기 때문에


경찰도

함부로 어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박무석의 눈에

종미가 들어오고 말았다.


박무석은

어쩌다 종미와 마주칠 때면

대놓고 더러운 눈빛을 날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훑어보곤 했다.


그나마

박무석이 움직이는

밤 시간에는


종미가

엄마나 종규와

항상 같이 있었기 때문에

다행인 경우도 많았으리라.


종규나 엄마는 물론이고

당사자인 종미 역시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박무석은

종미를 확실하게 건드릴 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결국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그날은 엄마도

서울 동대문 새벽시장으로

물건을 하러 가는 바람에

집에 없었고,


종규도 오랜만에

재성이와 충식이를 만나러

당구장에 간 저녁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종규네 집에 와주기로 한 영희가

배탈이 나서

집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영희가 오지 않자


종미는 대문을 열고

영희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어가는

종미의 뒤에

박무석이 따라붙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종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빗속을 걷고 있었고


충식이네 집이 있는 골목길로

막 방향을 꺾는 중이었다.




박무석의 손이

종미의 입을 막고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깜짝 놀란 종미가

우산을 놓치고 버둥거리자

박무석의 주먹이

종미의 배를 가격했다.


배를 맞은 종미는

순간적으로 몸이 꺾어지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박무석은

축 늘어진 종미를 끌고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 시간 정도 후에

집으로 돌아온 종규가

종미가 없어진 것을 알고

깜짝 놀라

충식이네로 뛰었다.


그때까지도 배가 아파

누워서 앓고 있던 영희가

뭘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다급해진 종규는

다시 빗속으로 뛰었다.


정신없이 한 시간쯤 헤맸을까...


공원 옆의 개울가 근처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종미가

종규의 눈에 띠었다.


저 빗속에서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생각하면서,


그래도

찾아서 다행이라고 안심하며

종규는 누나를 향해 뛰었다.




누나를 만난 종규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누나의 얼굴은

누군가에게 심하게 얻어맞아

퉁퉁 부어있었고


옷은 거의 다 찢어져

너덜너덜 해졌으며,


찢어진 치마 사이로

드러난 허벅지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


종규의 머릿속을

엄청난 분노와 자책감이

단숨에 지배했다.


종미는 퉁퉁 부은 얼굴로

종규에게 말했다.


“종규야...내 신발...


재성이가 선물해준

내 신발 한 짝이...없어졌어...


어떡해..물에 떠내려 갔나봐...


종규야...좀 찾아줘...


정말 소중한 건데....”


종규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종규가 한발 다가가자

무언가 안심이 된 듯

살짝 웃음을 지어보이던 종미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종규는

누나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종규의 등에 업혀가는

종미의 손엔

재성이 선물한 샌들 한 짝이

꽉 쥐어져있었다.




종미는 다행히도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큰일을 당하진 않았다.


폭행에 의한 상처는

코뼈가 골절된 것을 빼면

대부분 찰과상과 열상으로,


그녀가 당한 일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강간을 당한 음부 안쪽과

사타구니 주변의 상처가

매우 심한 상태라,


의사는

한 달 정도 입원을 해서

잘 치료해야 할 것 같다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재성과 충식이

병원으로 달려왔다.


종미는

코뼈접합수술과

강간으로 인한 상처의 치료를

어렵게 마치고

막 전신마취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머리 전체에 붕대를 감고

퉁퉁 부은 얼굴에

눈과 입만 드러나 있는

종미의 상태를 보고


재성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고,


항상 웃는 얼굴의 충식은

정말 오랜만에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종규가 누나의 손을 꼭 잡자

종미는 천천히 눈을 떠

주변을 바라보았다.


종미의 흐릿한 시야에

재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종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재성아...미안...


니가 선물해 준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어...그 아저씨 땜에....”


재성은 결국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고 말았다.




다음날,

엄마가 서울에서 돌아온 후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종미는

병실로 찾아온 형사들에게

옆집아저씨가 그랬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기존에 동종전과가 있는 터라

긴급 체포된 박무석은


‘머리도 떨어지는

병신 같은 년이

멀쩡한 사람을 모함한다.


장애인년 말만 듣고

사람을 강간범 취급할거냐.


증거를 대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종규를 비롯한 재성과 충식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박무석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구치소에서 풀려난 박무석은

종규네 식구를 비웃듯 쳐다보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박무석이 이사하는 날,


분노에 찬 종규가

사납게 달려들었으나

오히려 박무석의 발길질에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엄마는

다시금 달려드는 종규를

막아서며 말했다.


“참어.


이렇게라도 사라져주니

얼마나 다행이냐...


종미는 미친개한테 물린 거야...

사람이 아니고...


다행히 더 큰일 겪지 않고,


종미가 우리 곁에 살아있어서

엄만 그것만으로도 고마워...”


박무석이 탄 트럭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는,

꽉 깨문 종규의 입술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엄마도

종규를 뒤에서 꽉 잡은 채로

피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까지 미친개한테 물리면,

진짜....엄마 죽어버릴지도 몰라...”




한 달 만에 퇴원한 종미는

다시 가족의 곁으로 돌아왔으나,

무언가 많이 망가져있었다.


자다가 악몽을 꾸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건 예사고,


비만 내리면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야한다고

집밖으로 나갔다.


종규와 엄마는

미칠 지경이었지만,

어떻게든

종미를 챙기려 노력했다.


종미의 상태가 점점 나빠질수록

엄마는 잠을 자지 못했고,


종규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학교에 나가질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종규는 박무석을 발견했다.


종규의 눈에서

순간 불꽃이 튀었으나,


자신이 덤벼들어도

힘으로 이기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종규는 미행을 택했다.


박무석이 버스에서 내리자

조용히 따라 내린 종규는


박무석을 미행하여

그가 이사 간 집을 찾아내었다.


종규는 이를 꽉 깨물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그날 저녁,

새파랗게 날이 선 칼 하나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종미가 퇴원하고

두 달이 지날 무렵,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엄마는

두 달동안의 피로가 쌓여

죽은 듯이 잠이 들었고,


종규는 비가 내리자

학교엘 가지 않았다.


그러나

종규가 화장실에 다녀 온 사이,

종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종규는 또다시 빗속을 뛰었다.


그간 누나가 사라질 때마다

몇 군데 발견했던 곳을 돌며

정신없이 찾아다녔지만,

종미는 보이질 않았다.


비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종미가 사라진지

한 시간이 지나도

찾질 못하자


결국 종규는

집으로 돌아가 엄마를 깨웠고,


엄마는 울면서 뛰어가

실종신고를 냈다.




그날 오후


오십여 명의

경찰과 소방관들이 투입되어

수색이 시작되었고,


소식을 들은 재성과 충식도

직장을 조퇴하고

종규와 함께

종미를 찾아다녔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어져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다.


저녁 여섯시 정도가 되어

완전히 해가 지자


책임자가

오늘은 더 이상

수색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엄마가 울며불며 사정하여

결국 한 시간만 더 찾아보기로

책임자가 결정한 직후였다.


도시외곽 쪽으로 나갔던

수색원들이

‘실종자 발견’이라고

무전을 보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급히 움직였다.


모두가 달려간 그곳,


폭우가 내려

엄청난 기세로 불어난

하천 하류에서

종미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종미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급류에 휩쓸려

익사한 것으로 보이는

종미의 품엔,


재성이가 선물했던 샌들이

소중하게 안겨있었다.


강간을 당했던 그날,

그녀가 잃어버렸다던

샌들 한 짝이었다.




종미의 주검을 본 엄마는

미친 사람처럼

한참을 울부짖다가


어느 순간

실 끊어진 연처럼

힘없이 무너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엄마는 뇌의

어딘가가 손상되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의사의 말로는

‘그저 기적적으로 깨어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종미가 입원했던 병원의

중환자실에,

산소 호흡기를 댄 엄마가

식물처럼 조용히 누웠다.




종규는 엄마 대신

누나의 유해를 수습하고


이모부의 도움을 받아

간소하게 장례를 치렀다.


재성과 충식은

직장에 사정을 설명하고

결근까지 하면서


종미가 땅에 묻히는 순간까지

종규의 곁에 꼭 붙어있었다.




종규는 그렇게 단 하루 만에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엄마의 병원생활이

장기전이 될 거라 감지한

재성의 이모와 이모부가


종규네 재산을

요령 있게 처분하여

향후의 대책을 마련했고,


재성은 자신의 방에서

종규와 함께 지냈다.




그러나 이미

종규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종규는 잠들기 전 매일매일

가방 속에서 칼을 꺼내

복수의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누나의 49제가 끝난 다음날,


종규는 가슴에 칼을 품고

재성의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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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 2 장 악연 (17) 22.07.07 63 0 14쪽
33 제 2 장 악연 (16) 22.07.05 41 0 11쪽
32 제 2 장 악연 (15) 22.06.30 45 0 10쪽
31 제 2 장 악연 (14) 22.06.28 42 1 10쪽
30 제 2 장 악연 (13) +1 22.06.16 63 2 13쪽
29 제 2 장 악연 (12) +1 22.06.16 47 2 10쪽
28 제 2 장 악연 (11) +1 22.06.15 45 2 10쪽
27 제 2 장 악연 (10) +1 22.06.10 65 2 14쪽
26 제 2 장 악연 (9) +1 22.06.07 56 3 12쪽
25 제 2 장 악연 (8) +1 22.06.05 64 1 17쪽
24 제 2 장 악연 (7) 22.06.04 48 1 11쪽
23 제 2 장 악연 (6) 22.06.02 52 2 9쪽
22 제 2 장 악연 (5) 22.06.01 54 2 11쪽
21 제 2 장 악연 (4) 22.05.31 51 3 10쪽
20 제 2 장 악연 (3) 22.05.28 61 3 14쪽
19 제 2 장 악연 (2) 22.05.26 57 3 11쪽
18 제 2 장 악연 (1) 22.05.25 67 3 10쪽
1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7) +1 22.05.24 86 4 9쪽
»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22.05.23 69 4 11쪽
15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1 22.05.20 71 4 10쪽
14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4) 22.05.19 65 2 9쪽
13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22.05.18 68 2 9쪽
12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22.05.18 65 2 12쪽
11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22.05.17 69 3 11쪽
10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0) 22.05.17 69 4 9쪽
9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22.05.16 77 3 10쪽
8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8) 22.05.16 75 2 9쪽
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22.05.13 80 2 10쪽
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22.05.13 86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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