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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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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22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2.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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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2)

DUMMY

“선배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라고 했었다. 그런데 ...


“아침 일찍 나가는 거 봤어요.”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났는데 그런 나보다 먼저 일어난 고서우가 어딘가로 갔다고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래 씨의 얼굴은 ‘무슨 일이 있냐’고 묻고 있었다.


“아니....아니 별건 아니고... 혹시 어디로 갔는지 봤어요? 아니면 어디로 간다고 말하던가요.”

“아뇨... 딱히 묻지는 않았어요. 제가 보호자는 아니니까요.”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거리감이 느껴졌다.


하긴. 나래 씨도 고서우를 그닥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젯밤 고서우가 그런 소리를 할 만 했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주변에서 이렇게까지 표현한다면 모를 수가 없으리.


다만 녀석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을 뿐.


“감사합니다. 제가 찾아보고 올게요.”

“네?”

“그... 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


왜 이렇게 녀석이 마음에 걸리는 건지.

예전 같으면 돌아오겠거니 생각했을 텐데.


고서우가 어디로 갔을 건지는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지금 혼자 탑으로 갔다.


+++


“아니 들여보내줘요! 괜찮다니까요!”

“안됩니다.”


완전히 해가 뜬 이후라서 탑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 인영이 멀리서도 보였다.


소리는 그보다도 더 일찍 들리기 시작해서 무슨 일이 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제가 60층도 다녀왔다니까요!”

“그래도 안 된다고요. 위험해요!”

“그런 법이 어딨어!”

“다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 하는 소리잖아요.”


얼마나 실랑이를 하고 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교대를 코앞에 두고 있을 관리자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고서우!”

“어라? 선배.”


이름을 부르자 고서우가 정말 의외라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그런 녀석의 반응에 당황스러운 건 나 뿐이다.


“후... 뭐하는 거예요.”

“탑에 올라가려고요!”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고서우와 달리 관리자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혼자서 61층에 들어가겠다고 하시잖아요.”

“...”


관리자의 설명에 조용히 고서우를 바라봤지만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얼굴이다.


“60층도 우리가 모여서 겨우 깼는데... 혼자서 61층에 가겠다고?”

“설마 스모어가 저를 죽이기라도 하겠어요?”


확실히 녀석이 탑에 들어가서 위험한 상황이 된다면 스모어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추측일 뿐이고, 지금처럼 확답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뭘 믿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음... 감?”


얇고 하얀 검지를 하늘을 향해 치켜세우며 말하는 모습이 정말 얄밉다.


“안 돼. 다음에 우리랑 같이 가.”

“어제 제가 한 얘기 잊어버렸어요?”

“...”

“제가 함께 있으면 다른 분들께 폐만 될 뿐이에요.”


이해를 못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이 생 떼를 들어줄 생각도 없었다.


“안 보내주면. 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고서우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모습이 사라졌다.

말릴 틈도 없이 나와 관리자를 지나쳐가 탑의 입구를 조작하는 기계 앞에 섰다.


단 한 번도, 관리자가 아닌 자가 저걸 조작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항상 관리자가 지키고 있었고, 조작하는 방법이 복잡했기에 그럴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걸 녀석이 해냈다.


녀석의 손길을 따라 마력이 흘러나와 기계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곧 스르르 움직이는 레버를 나와 관리자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그럼... 안녕히.”


마지막 인사라도 되는 지 쓸쓸한 표정으로 말한 고서우가 그대로 열린 문 사이로 나타난 포탈에 몸을 실었다.


“고서우!!!”


무언가를 따지고 계산할 틈이 없었다.

오롯이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웠고.


내 몸은 나도 모르는 사이 고서우를 따라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문 닫히는 작은 소리와 짜증에 찬 누군가의 고함소리만이 들려왔다.


+++


어지러움이 밀려왔지만 이제 익숙해진 탓에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물론 내 옆에 있는 녀석은 그렇지 않은 듯 허리를 숙이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냐.”

“어...? 선배가 왜 여기... 우욱...”


내 목소리에 놀란 듯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헛구역질을 하는 녀석.


“그나저나...”


나는 시선을 돌려 앞에 있는 길을 바라봤다.


유리를 깬 것 같은 투명한 얇은 조각들이 벽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 끝을 만져보니 조금만 힘을 줘도 베일 것 같이 날카로웠다.


“흐음...”


자세히 바라보니 물체 주변으로 글자들이 떠올랐다.


[이름 : 정직한 고슴도치의 가시

나이 : 415년 8개월

특성 : 유리]


400년이 넘는 유리라니...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탑의 층은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400년 동안 아무도 ... 그래 들어오진 않았겠지.

하지만 매번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새롭게 생기는 것이라면 400년이라는 시간은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여길 들어온 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았으니까.


이상함을 느끼고 있으니 또 다른 글자들이 천천히 유리 조각으로부터 피어났다.


“... 과거 이곳에서 살던 종족은 정직한 고슴도치의 가시를 갈아 무기로 사용했다. ”


이런 문구가 포함되어 있는 아이템은 처음 봤다.


“우으... 이건 뭐에요?”


조금 진정이 됐는지 고서우가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치며 다가왔다.


“유리... 라네요.”

“흐음...”


유리 조각에서 시선을 돌려 다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또 하나의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어두워서 못 걷진 않겠어요.”


분명 겉보기에는 투명한 유리 조각일 뿐이었는데, 멀리서 보니 유리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창!


갑자기 날카롭고 가벼운 것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보니 고서우가 자신의 앞에 있는 유리를 내리 쳐 깨트렸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는 여전히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거... 떨어져도 빛나는 데 쓸 만한 데가 있지 않을까요?”

“...”


나는 녀석의 말에 소매를 조금 찢어 유리를 감싸 쥐었다.


“확실히...”


물론 이미 충분한 밝은 상태라서 이게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가 아니라도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았다.


[이름 : 정직한 고슴도치의 가시 조각

나이 : 30초

특성 : 유리 ]


“그래도 손 조심해. 꽤나 날카로워.”

“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 옆으로 삐죽삐죽 솟아 있는 유리 조각을 피해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분명 통로의 길이는 비슷했을 텐데 조심하며 걷는 탓에 평소보다 유난히 더 길게 느껴졌다.


“이거 다 부수면 안 돼요?”

“이 많은 걸 다 부수면... 위험하지 않겠어요?”

“으음...”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항상... 그랬어요?”


나는 무언가 묻고 싶었지만 생각이 채 말로 정리되기 전에 나와 나 스스로도 저게 무슨 질문인가 싶은 말이 튀어나왔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반응이 돌아왔다.


“선배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랬을 거예요.”


체념한 사람 같은 말이면서도 그 말에는 억양이랄 게 느껴지지 않아서 녀석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아 미안해요. 말을 정리를 못해서 그러니까...”


뭐라고 묻는 것이 좋을까.


“어릴 때부터 그렇게 무뎠어요?”

“...”


이번에는 곧장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정리한 말이 좀 더 무례하게 들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거라면 처음부터 질문하지 않는 게 나았을 텐데.


말실수를 했다며 후회하고 있으려니 고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르겠어요. 그냥 좀... 어릴 때부터 세상이 재미가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라면...”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 항상 지겨웠어요.”


나는 고서우를 돌아봤다.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걷고 있던 고서우의 머리가 멈춰 있던 내 어깨에 부딪쳤다.


“아. 미안해요. 마저 이야기해요.”


몸을 돌려 걷던 길을 마저 걸었다.

그러자 고서우의 뒷말이 이어졌다.


“이런 걸 누구한테 말한 적이 없어서 뭐라고 설명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항상 지겨웠어요. 애들하고 노는 것도, 게임을 하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

“그 또래 애들이 재미있게 하는 모든 것들이 지겨웠어요. 이제 막 시작된 인생인데 이렇게 지루한 인생이 아직도 몇 십 년이나 더 남았다고 생각하면 지쳤어요.”

“그런 생각을 어릴 때 했다고요?”


고서우는 잠시 생각하는 듯 말을 끊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처음은 유치원 정글짐에 앉아서 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뛰어 놀고 있는 친구들이 다 부질없어 보였거든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남의 이해를 받기 힘든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을 녀석을 생각하니 마음 한 쪽이 쓰렸다.


“그러다가 검을 들었어요. 검도를 배웠거든요. 이게...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어요.”


녀석의 목소리가 조금 상기됨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감정을 잘 표현하는 녀석인데 느껴지는 게 없어서 그러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서우 씨. 사회 복지와 관련된 학과 아니었어요?”

“음... 뭔가 그 당시에 지금 하고 있는 것들과 정반대의 것을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 후회가 된다는 듯이 얕은 한숨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덕분에 선배를 만났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지만요.”


“요즘... 정말 재미있어요. 탑이 생기고 제 인생은 다시 시작됐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듯이 밝았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끝을 의미했던 이변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선배.”

“네?”

“저는 선배가 좋아요.”

“...”

“재밌는 사람이에요.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발 밑 조심해요.”

“아. 네!”


조용히 따라오는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항상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고, 발언을 하는 녀석이 이번에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오른 발과 왼 발이 번갈아 가며 소리를 내는 사이를 메우고 있는 이 소리.


빠르게 뛰는 맥박 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다른 사람보다 감각이 뛰어나다면.

그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면 때때로 알지 않았어도 되는 진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아... 다 왔네요.”


그저 통로를 걷기만 했을 뿐인데 긴장하며 움직인 탓에 벌써 진이 빠졌다.


첫 번째 구간은 통로보다 더 밝았다.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화려한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빛은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첫 번째 구간의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프리즘으로 들어간 빛이 다른 면으로 나와 빛이 닿지 않는 곳을 비췄다.


“우와... 아름다워요.”

“그러게요.”


하지만 우리는 확실히 기억해야 했다.

이곳은 61층, 프리즘 주변에 햇볕을 받으며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유리로 된 아기 사슴의 모습을 한 몬스터들이 보기와 달리 만만한 상대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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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오류의탑(3) 24.02.07 16 0 11쪽
153 오류의 탑(2) 24.02.05 14 0 12쪽
152 오류의 탑 (1) 24.02.02 15 0 14쪽
151 검은 나비(4) 24.01.31 13 0 11쪽
150 검은 나비(3) 24.01.29 18 0 12쪽
149 검은 나비(2) 24.01.26 18 0 11쪽
148 검은 나비(1) 24.01.24 21 0 12쪽
147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3) 24.01.22 19 0 12쪽
146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2) 24.01.19 15 0 11쪽
145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1) 24.01.17 17 0 12쪽
144 차갑지만 뜨거운(2) 24.01.15 18 0 11쪽
143 차갑지만 뜨거운(1) 24.01.12 18 0 11쪽
142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3) 24.01.10 1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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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1) 24.01.05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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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잠들지 못한(5) 24.01.01 19 0 11쪽
137 잠들지 못한(4) 23.12.29 15 0 11쪽
136 잠들지 못한(3) 23.12.27 14 0 12쪽
135 잠들지 못한(2) 23.12.25 18 0 12쪽
134 잠들지 못한(1) 23.12.22 22 0 11쪽
133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4) 23.12.20 33 0 11쪽
132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3) 23.12.18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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