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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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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07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1.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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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검은 나비(4)

DUMMY

시야 속에서 미혜의 인형이 사라지고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뚜드려... 패고 있는 거니... 미혜야?


말리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대표님!”


빨라진 발걸음 소리와 함께 승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의 넘어지다시피 앉은 아이의 주변이 따뜻하다.


[마비 증상이 완화됩니다.]

[환청 증상이 완화됩니다.]

[환각 증상이 완화됩니다.]


눈에 무언가 끼기라도 한 듯 뿌연 시야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몇 개의 안내창이 연달아 뜨는 소리가 들렸다.


치유를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모양이었다.

승우와 가까이 있던 부분부터 먼 곳까지 천천히 따뜻한 온기가 이어졌다.


온기가 얼굴에 닿을 무렵, 뿌옇게 변했던 시야가 천천히 되돌아왔다.


천장엔 여전히 나비가 가득했고, 아래에는 가루로는 부족했는지 독을 뱉어내고 있는 기괴한 꽃들이 있었다.


미혜... 미혜는?


미혜는 소원과 깍지를 끼고 힘싸움을 하고 있었다.


“언니! 언니 살아있다며! 대답 좀 해봐!”


힘에서는 어디 가서 밀리지 않을 아이인데... 소원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었으리라.


얼핏 보기에는 대등해 보이는 힘이었지만 땅을 디디고 있는 미혜의 발이 조금씩 밀리는 것이 보였다.


“정신 차려 봐!”


자신의 부름에도 반응이 없자 미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언니...”


눈가가 붉어지고, 물이 차올랐지만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대충 고개를 털어 떨궈낸 미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고서우!!”


미혜의 시선 끝에는 높게 날아오른 고서우가 있었다.


“제가...”


양손에 하나씩 불타오르고 있는 칼을 쥐고 있었다.

팔을 교차하며 떨어지는 고서우의 주변으로 황금빛 기운이 모여들었다.


“제가 그쪽보다 연상이거든요!”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칼이 움직였고, 미혜가 소원의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났다.


칼의 궤도를 따라 만들어진 불길이 고서우의 바람과 합쳐져 휘몰아치며 소원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한 번, 두 번.


고서우의 손을 떠난 공격이 소원에게 부딪칠 때마다 소원의 모습을 한 몬스터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정작 소원에게서는 어떤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통을 참는 것 같은 신음만 간간히 들렸다.


마지막 불길이 소원의 옆으로 떨어지면서 주변으로 옮겨 붙었다.


소름끼치게 생겼지만 어쨌든 꽃밭이었던 곳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피해요!”


나래 씨의 외침과 함께 몸이 떠올라 통로 근처까지 날아갔다.


나와 승우, 미혜와 고서우까지 통로로 돌아오자 바닥에서 바위가 솟아나더니 그 안쪽으로 얼음기둥이 솟았다.


불길이 얼마나 뜨거우면 바위 너머의 온기에 로운의 얼음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하아... ”


고서우가 지친다는 듯이 팔로 뒤를 받치고 천장을 바라보며 앉았다.


“저 사람... ”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다.

들려오는 것은 몬스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 뿐이었다.


“죽나요?”


본인이 공격했음에도 고서우는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 중 누구도 답을 하지 못했다.


비명소리가 멈추자 우리를 두르고 있던 암벽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줄어든 벽 너머로 까맣게 그을린 내부가 보였다.

천장에는 더 이상 나비가 날지 않았고. 바닥에는 무언가 있었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깔끔한 죽음이라는 듯이 시체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먹을 게 없어도 몬스터는 못 잡아먹겠네요.”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는 고서우를 한 번 보고는 시선으로 소원을 찾았다.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검게 그을린 땅에서 유일하게 가루가 되어 날아가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


생각이 들기도 전에 이미 몸이 소원을 향해 뛰고 있었다.


아직 열기를 띠고 있는 바닥 때문에 신발 바닥이 녹아내린 듯 쩍- 하고 녹은 고무가 늘어났다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따라 다른 사람들도 뛰어왔다.

뛰는 와중에 가방에서 회복의 코코넛 라떼를 몇 개 꺼내 들었다.


소원에게 도착했을 때 이미 육체의 대부분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거... 이거 마셔.”


살면서 몬스터에게 인간을 위해 만든 음료를 먹일 날이 올 줄은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나를 따라 속속들이 도착한 이들도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음료를 마시자 가루가 되어 사라졌던 부분이 다시금 생겨났지만 이내 다시 가루가 되었다.


“안돼... 안돼... ”


떨리는 손으로 다음 음료를 까서 나비 인간이 된 소원의 입에 넣었다.


차마 다 들어가지 못한 음료가 흘러내렸다.

코코넛의 달콤한 향기가 퍼졌다.


“아저씨. 누워서 먹이면 어떡해요!”


미혜가 소리치며 다가와 한 손으로는 소원의 목을 바치고는 다른 한 손으로 음료의 뚜껑을 땄다.


그러나 사라지는 걸 막을 수 없다는 듯이, 속도는 줄어들었지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소원의 몸이 줄어들었다.


“스...승우야.”


나는 승우를 바라봤다. 이 방법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이건 정말 나중을 위해 남겨둔 방법이었지만 지금 쓰지 않는다면 후회하고 말 것이다.


음료는... 다시 만들면 된다. 내 능력을 더 이상 못 써도 상관없었다.


어떤 결과가 찾아오고, 다시 이 순간에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다시 한 번 부탁할 것이다.


“승우야. 네 능력을 빌려줘.”


승우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작은 입이 달싹 달싹 거렸지만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입은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다.


“네 능력을... 배우게 해줘.”

“그게... 무슨 소리에요?”


혼란스러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렇겠지 힘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능력을 배우게 해달라니.


“소원을 살리고 싶어.”


몸에 무리가 오겠지만, 특히 이정도로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쓴 다면 그 뒤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지금 머릿속에서 떠오른 방법을 쓴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내용물을 볼 수 없게 만든 흰색의 병을 승우에게 건넸다.


그리고 내 몫으로 똑같이 속을 알 수 없게 만든 검은색 병을 꺼냈다.


“제 능력으로... 뭘 하시려고요?”


승우는 자신의 말이 제대로 된 말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그 말이 이 아이의 가장 근원적인 의문이리라.


“소원을 살릴 거야.”


“살릴... 방법이 있으시군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가방 속에 넣어둔 음료에 손가락이 닿았다.


이걸 마신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으리라.


“저... 제가 하게 해주세요.”


승우의 떨리는 목소리가 힘없이 허공을 맴돌다 떨어졌다.


“안돼. 위험해.”

“저도 능력자에요!”


진한 쌍꺼풀이 진 예쁜 눈이 조금씩 촉촉해졌다.


“위험은... 지금 대표님 상태가 제일 위험해요.”


승우의 말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방금 전의 회복으로 조금 괜찮아지기는 했지만 온몸에는 차마 회복되지 못한 상처들이 남아 욱신거렸고.


의식하진 못했지만 혀에서는 위액의 비린 맛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더 무리했다가는 그대로 무너져 버릴 것 같다.

내 몸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그렇게 티 나지 않았을 텐데.


사람들을 치유하는 승우에게는 모두 보인 듯싶었다.


그 순간 승우의 눈짓이 내 뒤를 향했고, 손에 닿았던 병의 감촉이 멀어졌다.


정확히는 허리에 메고 있던 가방이 헐거워졌다.


“승우야 여기!”


내 뒤에 있던 승주가 승우의 신호에 맞춰 가방의 끈을 끊어 가져갔다.


그리고 용케도 내가 잡으려던 병을 정확히 찾아 승우에게 던졌다.


병은 다른 용기의 절반도 되지 않는 크기였다.


겨우 100ml짜리의 통에 반 정도만 채워져 있어 음료가 흔들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건 이 정도가 한계치야. 이 이상은 마시면 안 돼.’


에스프레소는 그렇게 말했다.

그만큼 인간에게 치명적이라는 소리였다.


말릴 새도 없이 승우는 병을 따서 음료를 마셨다.


맛이 쓴지 승우의 미간이 좁혀지며 자잘한 주름을 만들어 냈다.


“하아... 이런... 거였네요.”


승우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안내창을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안도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허탈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아니. 승주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승주 또한 승우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어 그 의미를 알 순 없었다.


물어도 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절반 이상 사라진 소원의 머리를 무릎에 바치고 있는 미혜가 승우를 올려다봤다.


승우는 말없이 그 곁에 앉아 눈을 감았다.


평소보다 더 맑은 황금빛의 빛이 승우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 사이에 한 가닥 섞여드는 검은 실선.


승우의 마력이 소원을 향하자 흩어지던 가루가 멈췄다.


“멈...췄어.”


미혜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멸을 멈춘 육체는 점차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력이 빛이 되었고, 빛은 소원의 일부가 되어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무릎까지 다시 생겨난 소원의 위로 고서우가 자신의 외투를 덮었다.


날개는 없어졌지만 검은 피부나 돋아난 더듬이는 그대로였다.


긴 수술 시간을 기다리는 가족들처럼 우리는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승우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하얗게 질려가는 안색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새끼발가락의 발톱을 마지막으로 마침내 치유가 끝났다.


치유가 끝났다고 생각함에도 눈을 뜨지 않는 소원에 우리의 시선이 미혜를 향했다.

미혜가 소원의 뺨에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따뜻해요... 숨도 쉬고 있어요. 이게 소원 언니일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는 있어요.”


잠긴 목소리가 한 땀, 한 땀 전할 말을 지었다.


“잠자던 여왕의 자아는 떠났습니다.”


어쩐지 무미건조한 목소리의 승우가 답했다.


“완전한... 소원 님이에요. 눈을... 뜬다면...”


승우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승우야!”


승주가 뛰어나가 쓰러지려는 승우의 몸을 지탱했다.


놀란 기색도 없이 그저 자신이 할 일을 한다는 그 표정이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던 것 같다.


“고마워.”


나는 축 늘어져 있는 승우의 손을 잡았다.

원래는 내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 이런 작은 손을 가진 아이에게 맡기고 말았다.


“승우도 만족할 거예요. 다른 것도 아니고 대표님을 도운 거니까요.”


승주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승우가 대표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것도 고맙네.”


나는 하얗게 질린 승우의 이마에서 땀에 젖은 앞머리를 넘겨주었다.


“후...일단 나갈까요? 여기서 이러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치유를 받는 게 좋아 보이는데.”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고서우가 말했다.


그의 너머로 밖으로 나가는 포탈이 보였다.


“그래서 보상은 어떻게 나눈다고요?”


나가기 전 탑을 클리어했다는 안내창을 확인한 듯 고서우가 매우 관심이 많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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