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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24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2.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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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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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2)

DUMMY

21층은 상당히 덥다.

특히 다른 층들이 엄청 춥거나 서늘한 것에 비하면 진짜 덥다고 할 수 있겠다.


“커피는 이렇게 더운데서 안 자란다고오!”


아니면 내가 그냥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느끼는 걸 지도...

바닥에 대 자로 누우며 칼을 놓자 팅팅 튕기며 떨어졌다.


“하아... 힘들어.”


다음 구간으로 가는 통로 앞에 내려둔 주머니가 커피콩으로 가득했다.

방금 얻은 콩들도 주워 담아야 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21층의 낮은 밖과는 다른 시간의 주기로 돌아오기 때문에 밖의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곧 16번째 밤이 찾아온다.


“이쯤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쯤이면 머릿속에서 소년의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로 원하는 커피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니 더 주워오라는 소리겠지.


“알았다고...”


빛이 사라지면 아이템을 주울 수 없기 때문에 주섬주섬 일어나서 몬스터가 있던 자리에 떨어져 있는 콩들을 주웠다.

그 모습을 턱을 괴고 있는 맹수를 닮은 몬스터가 흥미롭게 바라봤다.


아이템을 주우고 있자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싶은 회의감이 들었다.


“... 이렇게 해서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걸까...”


한 번 허리를 숙일 때마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따뜻한 우유를 한 잔 마신 뒤 푹신한 침대에 누워 기한 없이, 눈이 떠질 때까지 자고 싶었다.


“그게 언제 적 일인지도 모르겠네...”


분명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 정도는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 같은 기분.



“으윽...”


커피콩을 다 주울 때쯤이 되자 천장에서 나오던 빛이 옅은 주홍빛으로 바뀌어있었다.

곧 밤이 찾아온다는 의미였다.


이런 모습조차도 평화롭다고 느끼게 되다니...

나에게 힘이 있었다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아니. 있었어도 인간으로서 안 되는 일이라는 게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이를 악물고 괴롭히겠다고 하는데 인간으로서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21층의 밤이 찾아오면 두 번째 구간으로 향하는 통로 끝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에스프레소가 자신을 탑의 신이라고 소개했던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듯 에스프레소의 가호를 받으며 탑에 있는 동안에는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잠들지 않아도 졸리지 않았다.


다만 그 모든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은 오롯이 정신의 몫이었고, 움직이면서 피로도가 쌓이는 것은 별개의 것이었다.


“이왕이면 힘들지도 않게 해주면 얼마나 좋아...”


이제는 들리지 않아도 잔소리하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마 ‘그 정도 노력도 안하고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21층에 커피콩을 구하러 온 뒤로 종종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리고는 했지만 소년이 직접 나타난 적은 없었다.


“매정하다니까...”


그래도 덕분에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 컨셉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덕분에 21층의 밤에는 천장에 별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천장에 나타난 마력을 보고는 새로운 패턴인가 싶기도 했지만 몇 번인가 반복해서 보니 그것이 별을 표현한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낭만... 이네.”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이상한 소리도 많이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딴죽을 거는 사람이 없어서 더 그런 듯 했다.


“밖이었으면 로운이든 미혜든. 아니면 나래 씨라도 한 마디 했을 텐데.”


눈을 감고 있자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왔어?”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아?]


에스프레소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종종 이렇게 보이지 않는 인기척을 내며 나타나기는 했다.


“그럼?”


[너의 본래 목적을 잊지 말도록 해.]


“그렇게 말해도...”


[흠... 어렵다면 너의 영웅을 생각해봐.]


“영웅?”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건 세상을 구하는 거 아냐?]


“음... 그렇게 거창한 일은 아닌데...”


[그 뜻이 어떠하든 너의 길이 그곳으로 향한다면 너는 세상을 구하고 싶은 거야.]


왜 남의 뜻을 그렇게 거창하게 바꾸는 건데...


아니. 여기서 며칠 동안 몬스터만 때려잡는 통에 잠시 잊었을지 몰라도 녀석의 말이 옳았다.


나는 녀석이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세상을 구한다거나 뭔가를 하겠다는 거창한 뜻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그저 평화롭게 다시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거니까.”


[네가 하려는 일은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모습이 되고자 하는 거야.]


그랬다. 나는 에스프레소 에게 그가 나에게 보여준 적 있던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 커피의 레시피를 요구했다.

다만 이전에 녀석이 보여주었던 부작용이 엄청난 커피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무리 없이 쓸 수 있는 커피가 필요했다.


그에 녀석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지.]


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잃는 것’이란 게 뭔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아무튼 녀석이 말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모습’이 되고자 한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영웅이라...”


나에게 영웅은 뭐였을까.

평생을 도망치기 위해서 살아남았고, 살아남기 위해 움직였기 때문에 영웅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로운은 조호완이 자신의 영웅이라고 했었는데.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네.”


[...]


말은 없었지만 소년이 나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영웅은...”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그렇게 많이 보지는 못했다.

하루 종일 공부를 해야 했던 과거에 그런 걸 볼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듯이 부모님...

나를 키워주신 분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학교나 등하교 시간에 다른 친구들의 핸드폰을 빌려 보기도 했지만 그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음... 내가 본 소설의 주인공들은 다들 비슷했어.”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다.

내가 봤던 때에 유행하던 것은 주인공들이 시원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패턴의 것들이었다.


“뭔가 영웅은 시련을 겪고, 잃고 그렇게 성장해서 세상을 구한다는 이미지가 있잖아?”


[그런가...]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조금 기운이 빠졌다.


“뭐... 영웅이란 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한테는 그런 주인공들이 영웅이라고 할 수 있었겠네. 그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힘이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여유가 있었어.


나는... 그런 모습들을 좋아했어. 아마도 내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아니었을까.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그런 삶 말고.”


뭔가 새벽에 편지를 쓰고 있는 기분인걸...


마음 속 어딘가의 틈에 끼어있는 종이를 꺼내 읽어낼 수 있었다.


쓰여 있는 내용들을 내 입을 통해 말하고 있었지만 그게 나의 뜻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뜻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것도 영웅이라고 할 수 있나?”


[네가 그랬잖아. 영웅이란 건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네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거야.]


“그렇지?”


어느새 천장은 짙은 어둠에서 서서히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곧 다시 해가 뜨겠네.”


말을 입으로 내뱉고 나니 그새 소년의 기척은 사라진 뒤였다.


아마도 또 열심히 커피콩이나 주우라는 뜻이겠지.


[해당 층의 몬스터가 재생됩니다.]


몇 번이나 봤던 안내 문구가 눈앞에 나타나면서 빛의 가루가 모여들었다.

가루가 몬스터의 발톱이 되고, 발이 되고 다리가 되고 머리까지 되면 몬스터는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크아아아!”


그리고 생명력을 얻은 몬스터는 눈을 뜨자마자 포효했다.

이 모든 행동들은 일정한 패턴을 따랐다.


우드득...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에서 개운치 못한 소리가 났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래 이것까지만 하자.”


이 생각도 벌써 몇 번을 하고 있다.


“한 번만 더 힘내보자고.”


우드득 소리를 내는 몸을 끌고 떨어져 있는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 안에서 익숙한 사용감이 느껴졌다.


칼을 쥐자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사자들이 나를 향해 뛰어왔다.

일반적으로 아는 사자도 한 덩치 하지만 이 녀석들은 탑에서 살아가는 몬스터들이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덮었다.

코앞까지 온 몬스터를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처음보다 힘은 부족했지만 칼을 다루는 것은 한층 능숙해졌다.


처치한 몬스터가 사라지기도 전에 덮쳐오는 다른 몬스터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흐름에 맞춰서 몸을 움직였다.

생각이 아니라 직감으로 칼을 휘둘렀다.

이제는 이 녀석들의 약점도 공략법도 알지만 여전히 수와 힘에서 밀리기에 조금이라도 방심할 수 없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젠을 반복할수록 옅어졌지만 피부에 짐승의 콧김이 닿을 때마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질 때마다 공포심이 밀려왔다.

이를 참아낼 때마다 서늘한 소름이 등줄기를 훑었다.


“으아아아악!”


오롯이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


툭툭.


“으응.... 좀만 더 잘래요. 아버지...”

“무슨 잠꼬대를 하고 있는 거야?”

“응...? 아버지... 목소리가 회춘하셨네요...”

“정신 차려!”

“으악!”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낮은 천장과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아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이었다.


“아... 에스...프레소?”

분명 마지막 몬스터를 잡은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이 없다...


“기절이라도 한 거야?”

“그렇지.”

“몸이 가벼운걸 봐서는 꽤 오래 잤나봐?”

“그렇지.”

“...”

“뭐.”

“자면 좀 깨우지...”

“그래서 지금 깨웠잖아.”

“...”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왜 이렇게 늦게 깨웠냐고 해야 할지...


‘일어나는 건 스스로 할 줄 알아야지!’


아.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이면 투정을 부리고는 했다.

그런 나를 깨우면서도 어머니는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어린 나를 나무라고는 하셨다.


어린 마음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어머니는 언제라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지 알고 계셨던 걸까.


눈을 감자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더 오래전 나를 두고 앞장서던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그 모습이 매정하게 느껴졌는데...


두 분이 떠나고 나서야 그 시간들이 추억으로 남았다.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반쪽이나마 효도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


“회상 끝났어?”

“그래...”


제법 분위기를 읽을 줄 모르는 에스프레소가 팔짱을 끼고는 지루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양피지를 구하러 갈 거니까. 어서 일어나.”


아아... 이 탑에서 구하지 못하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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