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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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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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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2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2.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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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오류의탑(3)

DUMMY

“그런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가.”


고블린 헤일런은 소원이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따라 가더니 이내 아늑해 보이는 동굴의 끝에 도착했다.


벽을 깎아 만든 의자와 거칠어 보이지만 높낮이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테이블이 그곳의 거의 유일한 가구였다.


“아...어...”


질문은 했지만 딱히 답은 원하지 않았다는 듯이 헤일런은 편하게 자리에 앉았다.


“가끔씩 있다. 이곳으로 오는 인간들이.”

“다른 사람들도 있었나요? 다들 어디 계신가요?”

“처음에는 ...”


헤일런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싶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인간들을 싫어한다. 아니 우리라고 보다는 고블린들은 보통 그렇다는 거지.”

“사람들이 몬스터를 죽이기 때문인가요?”

“그렇지. 싫어한다고도 할 수 있고, 무서워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


헤일런이 소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노란색 바탕에 작은 검은색 동공이 선명했다.


“그래도 가끔씩 말이 통하는 인간들에게는 식사도 대접하고 그랬다. 보통은 오자마자 우리를 공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았다.”

“그랬군요...”


“뭐. 아까 거기서 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내 이야기를 듣고 우리 마을로 간다면 그대로 제물이 된다.”

“제물이요?”

“그래... 어느 날부턴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인간이 왔더군. 그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이곳과 지상을 오갈 수 있는 거 같았다.”

“이곳과 지상을 오간다고요?”


헤일런이 말하는 지상과 탑을 오갈 수 있는 인간은 블랙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당시의 소원은 그런 것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그러더군. 우리 고블린들이... 아니. 인간들이 몬스터라고 부르는 종족들이 지상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헤일런은 허탈한 눈빛으로 바닥을 바라봤다.

고블린 입장에서는 솔깃한 이야기였음에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 뒤로... 인간이 나타나면 어떤 사람이든 그대로 잡아 그들에게 데려다 줬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지 몰라.


...


나는 그게 제물이 되었다고 생각해.”


“제물...”


“항상 녀석들은 그 뒤로 말했거든. 이로써 우리가 지상으로 올라갈 계단이 하나 완성되었다고 말이야. 이게 제물이 아니고는 뭐겠나.”


고블린의 얼굴에서 시니컬한 미소를 느낄 수 있다는 건 꽤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헤일런 씨는... 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나요?”


기억 속 소원도 비슷한 의문을 가졌는지 입을 열었다.


“믿고 안 믿고를 넘어서 말이지...”

“...”


“몬스터는 처음. 태초에 신이 정해줬던 이 탑 안에 있으면 된다네. 이게 우리의 세계야. 굳이 다른 세계를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렇죠...”

“뭐... 인간들이 탑에 들어온다고, 우리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마는... 들어보니 그들도 어쩔 수 없더군. 그렇지 않나?”


헤일런의 눈빛에 기억 속 소원의 고개가 작게 위아래로 흔들리며, 시야가 움직였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신... 아니 신들의 계획이겠지. 하여튼 그러니 섣불리 저곳으로 가지 않는 게 좋다네.”

“하지만... 저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는데요... 여기도. 사실...”


그렇게 말하는 소원의 시야가 사방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제가 거기까지 가는 길은 하나뿐이었어요.”

“아아... 뭐가 궁금한 건지 알겠네.”


헤일런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소원에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네. 이곳에서 죽은 인간들도 꽤 봤거든. 그 뒤로 하루에 한 번씩 이곳에 와보고는 하는 거야.”

“헤일런 씨는 친절하시네요.”


소원의 말에 고블린의 묘한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소원을 바라봤다.


“그런 이야기는 또 처음이구만. 인간이든 고블린이든 서로 해치지만 않으면 똑같은 생명이지 않나. 살릴 수 있는 생명이 죽게 둘 수 없었을 뿐이야.”

“...”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꾹 눌러 참는 것 같은 소원의 기분이 피부로 느껴졌다.

점차 이 기억 속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하여튼... 탑은 마력의 근원지야. 마력을 가진 자라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지.”

“...”

“물론 소원. 너도 갈 수 있다. 다만 갈 곳을 모르는 거지. 이곳이 처음이니까 말이야.”

“...”

“하여튼. 그럼 이것도 인연인데 이런 어려운 길 말고 쉬운 길들이 이어져있는 곳에 데려다 주지.”


그렇게 말한 헤일런은 잠시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물더니 뒷말을 이었다.


“다들... 원래 세계로 데려다 주고 싶지만 그 방법도 모르고, 그 방법을 찾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머물게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 이해해주게.”

“물론이죠.”


-헤일런 씨는 무척 친절한 분이었어요. 하지만 자신의 일방적인 친절이 상대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아는 분이었죠.


이후 또 다시 화면이 멈추는가 싶더니 처음 왔던 곳보다 조금 더 밝은 통로가 나타났다.


“이곳은 길 자체가 어떻게든 이어져있어. 걷다보면 사냥이 아니라도 음식과 물도 얻을 수 있지. 굶어죽진 않을 거야.”

“아. 감사합니다.”


-헤일런 씨는 그 말만 남기고 그대로 사라졌고, 다시는 살아있는 모습으로 보지 못했어요.


소원의 설명과 함께 어디선가 낮은 탄식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너무나 작고, 희미해서 누구의 소리인지 몇 명의 목소리 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사람이 느꼈던 감정이 나와 비슷할 것이란 건 알 수 있었다.


다시는. 살아있는. 모습으로 보지 못했다.


-헤일런 씨의 말대로 걷다보니 탑에서 나는 과일이나 샘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들 또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것이었으니까요.


다시 한 번 화면이 멈추더니 이내 다른 풍경을 보였다.


“인간... 인간이다.”


헤일런과는 또 다른 느낌의 고블린 세 마리가 소원을 바라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저...저는 여러분들을 해치지 않을 거예요!”


소원에게 대답하듯 답이 돌아왔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몬스터의 언어였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고블린의 눈은 헤일런과 다르게 어딘가 흐린 느낌을 주었다.


“아니... 잠시만.”


고블린은 날카로운 금속이 달린 나무 막대기를 꺼내 휘둘렀다.


소원은 최선을 다해 피했지만 평소 전투에 직접 참여한 경험도 적었던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치명타만을 피하며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제가... 그때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겠구나 싶었죠. 제 능력을 남을 위해서가 아닌 저를 위해서 써야만 했어요.


나는 소원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능력을 떠올렸다.

사제님의 말에 의하면 신이나 인간의 영역 밖에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특화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해도 소원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기억 속 소원의 감정이 피부를 타고 느껴졌다.

긴장감, 죄책감 그리고 가능성에 대한 희망.


아마도 소원은 당시에 어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그걸 실행할 모양이었던 것 같다.


기억 속 소원은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고블린을 피한 뒤 그의 등에 손을 댔다.


그리고 노란색의 빛이 퍼져나가 고블린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보통 그런 풍경은 마력을 흡수하는 경우에 나타나지만 이어서 나타난 고블린의 모습이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소원의 손에 닿았던 고블린은 몇 발짝 더 걸어가더니 이내 경련을 하며 그대로 쓰러졌고, 곧 황금색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아...아...”


소원의 시야에 떨리는 그녀의 손이 보였다.


아마도...


-제가 처음으로 몬스터를 죽였어요.


물론 소원에게 충격을 만끽할 시간은 없었다.

이어서 뛰어오는 고블린들도 차례대로 보내고 난 뒤에야 소원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하...”


-처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였어요. 그 전에도 파리나 모기 같은 벌레들을 죽인 적이 있었지만... 말을 하는 무언가를 죽인 것에 대한 충격은 좀 다르더라고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세계에서 저 말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저 질문 있어요.”


그때 승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도 손을 들고 질문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소원... 님은 치유 능력잔데 어떻게 공격을 했어요?”


승주의 질문에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건...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고르듯 소원의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제 능력은 사람의 신체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것보다 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치유하는 데 특화되어... 있거든요.


나는 새삼 놀랐다.

소원은 우리와 함께 탑을 오르면서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큰 의문을 가지고 있지도 그렇다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니까 함께한다는 정도였다.


그랬는데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본인의 능력이니까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

소원은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음... 조금 어려워요.”


고민하는 것 같더니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승주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쉽게 말하자면 마력을 증폭시켰어요. 인간도 몬스터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양보다 많은 마력을 지니게 되면 부작용이 생기게 되고, 심하면 죽을 수 있거든요.


소원의 대답에 승주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한 말은 아주 최근에 내가 한 말과 닮아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


왜인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승주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마요. 지혁이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하지 않으니까요.


소원은 이해한다는 듯이 따뜻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스킬과 나의 에스프레소가 비슷한 원리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 달랐다.


그것까지 소원은 꿰뚫어 보고 있다.

못 본 사이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녀에게 일어났던 건지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뭐... 덕분에 저는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물론 그게 길지 않았지만요. 아. 물론 그렇다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다는 건 아니에요.


어딘가 웃음기를 띠고 있는 소원의 목소리와 함께 잠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멈춰있던 기억에 다시금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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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2) 24.01.19 1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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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차갑지만 뜨거운(1) 24.01.12 17 0 11쪽
142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3) 24.01.10 1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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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1) 24.01.05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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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잠들지 못한(3) 23.12.27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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