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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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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2.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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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오류의탑(4)

DUMMY

-어떻게든 시간이 흐르기는 했어요. 고블린들에게 들키면 싸웠고, 자리를 옮겼고, 먹을 것을 찾았고 몸을 숨겼어요. 그렇게 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었어요.


소원의 말을 증명하듯 소원이 겪었던 시간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정말... 다시 여러분들을... 만날 거라는 희망 하나로...


이전에 소원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괴로운 시간들을 겪으면서도 우리를 생각하며 버텨왔으니까.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끝이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억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아마도 당시의 소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밖의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배가 고프면 배를 채우고, 졸리면 쪽잠을 자며 보낸 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대한민국 탑에서는 실종된 사람들이 많죠.


내게 능력이 생기고, 오랫동안 자던 중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다.


-저는 거기서 그 사람들 중 일부를 만났어요.


소원의 말과 함께 빠른 속도로 흐르던 시간이 멈추고, 낯선 얼굴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으로 구성된 무리는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고블린이나 블랙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어요. 다만 탑에 오르기 위해 들어왔다가 길을 잃었다고 말했어요.


“이쪽은 소희와 지연이고요. 이쪽은 준영이에요. 아 그리고 저는.”


소원의 시선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손끝을 따라가다가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을 향했다.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에는 말이 되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제천의 목소리도 있었다.


“저는 예찬이라고 합니다.”


홍 예찬.

성을 듣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은 제천의 얼굴에 단정함과 반듯함을 추가한 것 같았다.


“저는 탑은 아니고... 마법진을 통해서 이곳으로 왔지만 말이에요.”


이어서 말하는 예찬의 말에 확신할 수 있었다.

탑에 갇힌 이후로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조금은 지저분함과 피곤함이 묻어 있었지만 그 안에 있는 예찬의 천성은 가려지지 않았다.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같이 여기서 빠져나갑시다.”


-다른 분들은 ... 다들 어쩔 수 없었겠지만. 예찬 씨만은 정말 좋은 분이었어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안 하는 소원이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단 소리다.


아니나 다를까, 소원의 기억이 다시금 빠른 속도로 흘렀다.

그 안에서 소원은 그간 혼자 했던 일들을 다른 사람과 나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반 고블린보다 큰 덩치를 가진 킹 고블린과 만난 그들의 모습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앞세우고 도망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고블린의 편에 선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공격하는 고블린과 소원의 사이를 가로 막고 소원의 등을 미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예찬이었다.


-...


소원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잠시 들리는가 싶더니 기억은 더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이전에 넘긴 기억들은 어느 정도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마저도 할 수 없을 정도 뛰어넘었다.


그만큼 소원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는 소리이리라.


속도가 줄어 정상 흐름으로 돌아왔을 때 소원을 비롯한 4명은 묶인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만이 고블린의 곁에 서 있었다.


아까 예찬이 소개했던 또 다른 남자였다.

남자는 안도감과 승리의 미소가 담긴 묘한 표정으로 소원을 포함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려 4명이나 데려오다니. 여러분들이 지상으로 나아갈 날이 더 앞당겨졌습니다.”


이전에 봤던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여자가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여자의 시선이 배신한 남자를 향했다.


“덕분이에요. 그분의 영광이 그대에게 있기를.”


여자가 미소 지으며 말하자 남자가 얼굴까지 붉히며 쑥스러워 했다.


“이 자들을 실험실로...”


상을 다 줬다는 듯이 남자에게서 등을 돌린 여자가 네 사람을 바라보며 차가운 시선으로 말했다.


이후 소원은 검은 연구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끌려갔다.


끌려간 방은 정사각형의 새하얀 방이었다.


“오늘부로 당신도 그분의 뜻을 담을 자가 될 것입니다.”


소원을 방에 집어넣던 연구복을 입은 남자가 흐릿한 시선으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방에 들어오자 소원의 팔을 묶고 있던 줄이 스르르 풀렸다.

그러나 자유로워진 손도 입구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방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여기... 마력이 통하지 않아...”


벽을 만져본 기억 속의 소원이 말했다.


“어. 저기. 거기랑 닮지 않았어요?”


그때 고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라고 했지만 어디를 말하는 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블랙을 찾으러갔다가 들어갔던 빌딩의 내부와 느낌이 비슷했다.


-저 공간은 특별했어요. 배가 고프지도 잠이 오지도 않았어요.


무언가 먹을 필요도 없고, 잘 필요도 없는 몸이라고 한다면 편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렇게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을 미치게 만든다.


이번에도 시간을 넘기고 있는 것 같지만 변화가 없는 소원과 방의 풍경 탓에 큰 변화는 없었다.


아주 잠깐씩 흔들리는 시선과 가끔씩 움직이는 손가락 등을 통해 시간이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며칠 혹은 몇 달이 지났을 지도 몰라요.


시간이 흐르기를 멈췄을 때는 검은 연구복을 입은 여자가 소원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당신은 큰 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당신만이 그분의 시련을 통과하셨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소원이 여자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옷깃을 잡혔음에도 여자는 기분이 나쁘지 않는다는 듯, 아니 오히려 이해를 한다는 듯이 차분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소리입니다.”


여자의 말에 숨을 삼키는 소리는 소원의 것이었으며, 손으로 입을 막고 울음을 삼키는 것은 또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분노에 차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것이었다.


“낙심하지 말아요. 결국은 그 사람들도 그분의 곁으로 간 것일 뿐입니다. 그저 당신에게는 조금 더 그분의 뜻을 위해 헌신할 기회가 남았을 뿐입니다.”


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원의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어딘가에 갇혀있었다.


안에서 얼핏 보기로는 고치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사방이 검은 물결이었다.


그 풍경이 소원의 이야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원이 거기서 눈을 뜬 것은 우연인 듯 했으나 그 또한 누군가 짜둔 계획의 일부였으리라고 확신한다.


“이 자군요... 그분의 뜻에 반하던 자가.”

“죄송합니다. 여제님. 생포하진 못했습니다.”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을 풀어 늘어트리고 있는 탓에 분위기가 달랐지만 여자는 이전에 봤던 여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이 자의 생각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뭐... 궁금은 했지만 결국은 그 끝은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헤일런의 축 늘어진 몸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됐습니다. 또 다시 이런 자가 생긴다면 그때 물어보죠. 없다면 더 좋겠지만요.”

“네.”


여자의 허락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일런의 몸이 황금색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나저나... 실험은 잘 되어가나요?”

“네. 운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연구에 적합한 인간은 흔치 않은데 말이죠.”


여자는 금방 화제를 돌려 소원을 올려다봤다.

소원은 자신이 방금 전 상황을 봤다는 것을 모른 척 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덕분에 시야가 어두워지고 소리만이 전해졌다.


“그분께서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온 일입니다.”

“네.”

“우리는 모든 인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


“인간들이 앞으로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이죠.”


그 말을 끝으로 들려오던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곧 기억이 끝났다는 듯이 주변이 밝아지며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흡...”


입을 막고 있지만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나래 씨도.


말없이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는 석 씨도.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아랫입술을 피가 나게 깨물고 있는 로운도.


생각이 많은지 복잡한 표정을 짓고 팔짱을 끼고 있는 고서우도.


승우의 옆에 앉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승주도.


소원의 곁에 앉아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어 있는 미혜도.


그리고...


“으아아아악!”


거의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며 주저앉아 피가 나도록 바닥을 내리치고 있는 제천도.


그 모든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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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1) 24.02.12 19 0 12쪽
» 오류의탑(4) 24.02.09 1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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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검은 나비(2) 24.01.26 18 0 11쪽
148 검은 나비(1) 24.01.24 20 0 12쪽
147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3) 24.01.22 19 0 12쪽
146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2) 24.01.19 15 0 11쪽
145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1) 24.01.17 17 0 12쪽
144 차갑지만 뜨거운(2) 24.01.15 18 0 11쪽
143 차갑지만 뜨거운(1) 24.01.12 17 0 11쪽
142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3) 24.01.10 14 0 11쪽
141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2) 24.01.08 15 0 11쪽
140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1) 24.01.05 19 0 12쪽
139 잠들지 못한(6) 24.01.03 15 0 11쪽
138 잠들지 못한(5) 24.01.01 18 0 11쪽
137 잠들지 못한(4) 23.12.29 14 0 11쪽
136 잠들지 못한(3) 23.12.27 14 0 12쪽
135 잠들지 못한(2) 23.12.25 18 0 12쪽
134 잠들지 못한(1) 23.12.22 21 0 11쪽
133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4) 23.12.20 33 0 11쪽
132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3) 23.12.18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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