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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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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95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2.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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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잠들지 못한(3)

DUMMY

앞만 보며 달려가던 제천의 발이 멈추자 조금 거리를 두고 서있던 서우의 달리기도 멈췄다.


다음 구간으로 통하는 통로가 보였다.

그 앞에는 제천의 키를 웃도는 식물들이 줄기를 길게 내밀고 있었다.

줄기의 끝이 다른 일행들을 향하고 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깊은 잠에 잠들어라.”


그런 두 사람을 막겠다는 듯이 또 다른 팅커벨 한 마리가 날아왔다.

하지만 팅커벨은 제천에게 닿기도 전에 멈춰 섰다.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허공에 멈췄다.

평소 공기의 입자가 그 자리에 있어 자신이 그것을 스쳐지나갔다고 한다면 지금은 공기 하나하나가 자신의 육신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듯 했다.


“허억...”


탑은 각 층은 그곳에 살아가는 몬스터들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분명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이어야 하는 곳에서 팅커벨은 난생 처음으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감각을 경험했다.


“...”


팅커벨의 시선이 뒤를 돌아 자신을 바라보려는 인간에게 향했다.


팅커벨이 직접 인간을 만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여왕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야기에 의하면 인간들은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지금 이 층에 침입한 인간들만 봐도 벌써 수많은 표정을 짓고 있었거늘 자신을 돌아보는 존재에게서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건지 그 너머를 바라보는 건지 알 수 없는 눈빛에 굳게 다문 입.

단시간에 가로질러 반대편까지 왔음에도 땀 한 방울 없는 이마까지.

마치 다른 층에 살고 있는 몬스터를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팅커벨은 자신이 곧 탑으로 돌아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뒤를 돈 서우의 칼끝이 팅커벨의 등 뒤로 솟아났다.

자신들에게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자신들은 모두 탑으로부터 왔고, 탑으로 돌아갔으며 또 다시 하나의 저주처럼 다시금 탑에서 살아갔다.


그렇기에 그런 건 팅커벨에게 공포가 아니었다.

다만 몬스터보다도 더 비인간적인 이 인간의 태도는 그에게 공포심이란 것을 알게 해 주었다.


‘탑의 신이시여. 어찌 우리에게. 다른 이종족의 침입을 허락하셨습니까.’


고통은 길지 않았다.

가루가 되어 사라져 가는 자신을 몸을 보며 팅커벨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죽지 않았기에 죽음의 고통을 반복해야 하는 자신들의 운명을 생각하며...


“후. 빨리 끝냈으면 좋겠네. 윙윙 시끄러워.”


서우는 칼을 거두고 다시 앞을 바라봤다.

5초 정도 지났지만 제천은 칼을 들지 않았다.


“뭐해요?”

“집중.”


잠시 헛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꾹 참은 서우가 칼을 바르게 쥐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만약의 사태가 일어난다면 그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한다.


‘그럼 선배도 좋아하시겠지.’


서운했던 적도 많고, 잠시 밉기도 했던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가 자신에게 잘 했다면 머리를 쓰다듬어줬으면 좋겠다고.

서우는 생각했다.


떨어졌던 전단지를 잡아 올리던 상처는 많지만 곱고 정겹던 그 손이 자신을 친근하게 대해주었으면 했다.


그렇기에 이번이 그에게 점수를 딸 기회라고 생각했다.


“후웁...”


심호흡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천이 들고 있는 칼의 표면에서 열기와 함께 눈에 보일 정도로 큰 불꽃이 일렁였다.


집중한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듯 제천은 몸을 낮추고 칼을 바르게 쥐었다.

칼에서부터 타오르던 불꽃은 어느새 칼 손잡이를 지나 제천의 양손으로 번졌다.


그러나 정작 손에 불이 붙은 제천은 뜨겁지 않은지 눈썹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앞만을 바라봤다.


‘뭐를 하길래 저렇게 까지 집중을 하는 거지?’


처음 칼을 잡았을 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벌써 몇 년이나 흐른 일이었다.

칼을 배우는 과정이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검을 휘두른 서우였다.

그렇기에 숨 쉬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기 위해 제천이 애쓰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제천의 감각은 온전히 손끝을 향해 있었다.

손을 넘어 자신의 칼끝이 손이라는 듯이 칼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단 1분 내에 자신이 휘두를 칼은 단순한 칼이 아니었다.

자신의 심장에서부터 타오르는 불길이 칼을 타고 몬스터를 태울 것이며 이곳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었다.


이 불이 일행들에게 향하기 전에 꺼지게 하기 위해서는 화력을 조절해야 했다.


“지금이다!”


감고 있던 눈을 뜬 제천은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둘렀다.


벴지만 베이지 않은 식물의 줄기에 불이 붙었다.

마치 폭탄의 도화선이 타들어가듯 식물의 줄기를 타고 제천의 불꽃이 번져나갔다.


불꽃은 줄기와 줄기가 교차하며 다른 식물에게 번졌고, 또다시 줄기를 따라 타들어가다가 다른 줄기에 옮겼다.


“오...”


그 모습이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던 서우는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안 타네요?”

“내 불꽃은 상대를 모두 집어 삼켜야만 탄다고.”

“...?”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제천을 올려다봤지만 그는 빙긋 웃으며 답하지 않았다.


“지켜봐.”


자신감에 찬 목소리가 단순히 허세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행동은 더없이 가벼운 남자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서우의 시선이 제천의 손을 향했다.

불꽃을 옮기자마자 칼에서는 불이 사그라졌고, 뜨겁지 않나하고 생각했던 제천의 손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저것 봐!”


제천의 외침에 조용히 그를 관찰하고 있던 서우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일행들 주변까지 뻗어있는 모든 줄기로 불이 옮겨 붙었다.

마침내 불꽃이 모든 식물에게 번졌고, 제천의 말대로 모든 것을 집어 삼킨 불꽃은 찰나의 순간에 검은 재만을 남긴 채 허공으로 사라졌다.


“후... 성공했다. 성공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


서우의 시선이 옆의 남자로 향했다.

역시는 역시구나 라는 표정이었지만 제천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한 편, 어느 때보다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태우지 않았어.’


항상 자신만만해 보이는 제천이었지만 자신이 능력이 제어가 되지 않아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던 기억은 그의 가슴 깊숙한 곳에 죄책감을 남겨 두었다.


-너의 힘은 네 생각보다 강력해. 하지만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재앙이 될 뿐이야. 말 그대로 불의 능력인 거지.


벙커에서 지상 순찰을 돌기 위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천의 곁으로 한 여자가 다가와 말했다.


관심은 없었지만 관리자들이 ‘사제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름이 캐롤라인 세일리 인가 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려는 찰나 캐롤라인의 어깨가 천천히 위로 향했다.


-그건 네 스스로 찾아야 할 문제지.


마치 무엇을 물을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한 캐롤라인은 그대로 뒤를 돌아 계단을 내려갔다.


-참나. 내가 알아서 할 건데.


제천은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관리자들의 몸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벙커를 나왔다.


그 뒤로 몬스터를 보게 되면 검술이 아닌 능력으로 싸웠다.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는 제천이었다지만 불길이 번져 함께 순찰을 돌던 동료와 자신까지 덮치는 불꽃을 보며 그저 안일하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일부러 능력을 쓰고 다녔다.

자신의 감각으로 능력을 제어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능력에 지배당해서는 안됐다.

능력을 지배해야했다.

분명 본인의 힘은 강력하다.

그 힘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다면 자신이 아는 그 어떤 능력자보다 강해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만큼만 태운 불꽃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처음이었다.


지혁에게는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스스로도 반신반의한 상태였기에 이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제천이었다.


식물의 방해가 사라지자 일행들을 둘러싸고 있던 팅커벨들이 서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리곤 터져 나오는 스파크에 황금색의 빛을 흩뿌리며 사라졌다.


혹은 서릿발처럼 번지는 차가운 냉기에 얼어붙어 사라졌다.


정 반대편에 선 두 사람이 봐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의 위력이었다.


“화가 많이 났네요.”


식물들의 방해가 없어진 덕도 있었지만 제천을 따라오며 몇 팅커벨이 무리를 이탈하여 수가 꽤 줄어든 덕도 있었다.


[모든 꿈에 잔해들이 사라졌습니다.]

[깊은 잠을 자는 여왕이 첫 번째 꿈에서 해방됩니다.]


눈앞에 안내창이 나타나자 제천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이름 참 거창하네.”


몇 번인가 탑을 클리어 했지만 이런 안내문구가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다.


확실히 60층은 이전에 봤던 층들과는 달랐다.

첫 번째 구간에서부터 이렇게 힘을 뺐다면 이후에 간다면 어떨까.


과연 자신들이 이곳을 클리어 할 수 있을까?


제천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의문들이 지나갔다.

마치 그런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이 서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하셨습니다.”


+++


“수고했어요. 이거 마셔요.”


무사히 첫 번째 구간을 클리어하고 아이템을 수거한 후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챙겨온 회복 효과가 있는 커피를 일행들에게 나눠주고 자리에 앉았다.


60층에서 처음 얻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가지고 온 음료는 한정되었으니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난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양피지와 원두도 챙겨왔다.


[이름 : 꿈의 조각



효과 : 일정 시간 사용자의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마약이냐.


[이름 : 깊은 잠을 자기 위한 수면제



효과 : 사용자를 꿈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이것도... 탑에서 잘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아니라 몬스터한테 쓴다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이름 : 파리지옥의 액



효과 : 귀찮은 벌레들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살충제네...


60층이라고 기대했던 탓이었을까 쓸모가 없어 보이는 아이템에 나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이템을 종류별로 나누며 새로워 보이는 아이템들을 확인하고 있자니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어 보이는 투명한 타원형의 돌이 빛을 발산했다.


[이름 : 길 잃은 자의 발자국


효과 : 어둠 속에서 빛을 밝혀줍니다. ]


애매한데... 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층보다 어두운 이 층에서 빛이 나는 물건이라면 분명 어디선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다만... 이 많은 아이템들 중에서 이것 딱 하나만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희귀 아이템이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더 자세한 설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혁 씨. 이제 갈까 하는데 다 하셨을까요?”


아이템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로운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아. 네. 가요.”

“뭔가 쓸 만한 게 있었나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이게... 도움이 될까.”


머릿속으로 방금 본 아이템들을 정렬해 보았지만 딱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나중에 숙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뭔가를 만들어 줄 순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구간은 어떻게 잘 넘겼지만... 저는 솔직히 걱정됩니다.”

“이해해요.”

“이상하지 않아요? 무려 60층이에요. 우리가 여기를 이렇게 쉽게 클리어 했다는게...”


로운의 걱정도 이해가 됐다.

많이 긴장하고 있던 탓에 조금 허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이상했다.


확실히 다른 층에 비해서 어려운 난이도였지만 그간 탑의 난이도 상승률을 생각했을 때 첫 번째 구간은 무척 쉽게 나온 것이었다.


“더... 가보면 알겠죠.”


아이템을 쓸어 담은 가방을 어깨에 들쳐 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은 많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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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오류의 탑(2) 24.02.05 14 0 12쪽
152 오류의 탑 (1) 24.02.02 1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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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잠들지 못한(1) 23.12.22 21 0 11쪽
133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4) 23.12.20 33 0 11쪽
132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3) 23.12.18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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