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11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1.03 09:00
조회
15
추천
0
글자
11쪽

잠들지 못한(6)

DUMMY

“수면 상태와 불면 상태의 차이에 분명한 규칙이 있을 거예요. 아무나... 자각몽을 꾸는 건 아닐 테니까요.”


고서우의 말이 맞다. 그리고 하나 더...


“이렇게 셋이서 만난 거 보면 다른 사람들도 여기 있겠네요.”

“제 생각도 그래요.”


다만 문제가 있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혹시나 싶어서 백화점 1층까지 내려왔지만 확신은 없었다.


“정 안되면 다시 벽이라도 부숴보죠.”


옆에서 고서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혼자도 아니고 셋이나 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떻게든 될 것이다.

우리보다는 지금 혼자 있을 사람들이 더 걱정이었다.


“문 엽니다.”

“네.”


문 여는 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이 될까.

몸에 힘을 실어서 꽤 묵직한 문을 밀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세계네요.”


이번에는 고서우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백화점 문이 열리자 새하얀 모래사장이 보였다.

정면에서 불어오는 짠 내가 섞인 바람과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꿈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다.


“꿈이란 걸 자각하지 못했다면 저라도 속았을 것 같네요.”


나래 씨가 바람과 함께 조금씩 날아오는 모래에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공감의 의미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건 누구 꿈일까요.”


우리 세 명의 경우만 봐서는 분명 이곳에서 꾸는 “꿈”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이 바다 또한 누군가의 기억과 관련이 있다는 소린데...


“바다와 관련된 사람이 누가 있죠?”

“글쎄요... 저도 딱히 들어본 적은 없는데...”


나래 씨의 시선이 고서우를 향했다.

눈이 마주친 고서우가 양손바닥을 위를 향해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두 분 보다도 여기 사람들을 잘 모르는 걸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궁금해보이지도 않았다.


“하긴 자기 얘기를 모두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일단 이동해 볼까요? 걷다보면 나오겠죠.”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모래사장을 걸었다.

걸을 때마다 발이 빠지는 느낌에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혹여 넘어질까 집중해서 걷다보니 어디선가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가... 들려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하염없이 이어진 모래사장의 끝에는 한 아이가 있었다.


너무 멀리 있는 탓에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혼자 쭈그리고 앉아 모래성을 만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두 사람도 아이를 발견한 듯 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걷기도 힘든 모래사장을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아이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하...”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갑자기 달려오는 어른들에 아이가 놀랄 까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달리기를 멈췄다.


고작해야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있었다.

오동통한 뺨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고 시선은 모래성에 고정되어 있었다.


“누군지... 아시겠어요?”


나래 씨가 물어봤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중에 저렇게 생긴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 애초에 너무 어렸다.

이중에 없는 아이 중에서 여자아이라면 미혜나 승주 둘 중 하나겠다.


그 중에서 승주라면 분명 승우랑 함께 있을 테니.

이성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여기 있는 아이는 미혜의 어린 시절이었다.


미혜에게서 들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고는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놀라서 가만히 서 있자니 아이를 향해 두 어른이 다가왔다.

성인 남녀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아니... 미소를 짓는 입만 보였다.

두 남녀의 얼굴은 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혜야.”


여자 쪽에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역시 미혜였구나...


여자의 부름에 아이가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눈에는 얼굴이 없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엄마! 아빠!”


짓고 있던 모래성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가 대충 모래를 털고는 두 사람을 향해 뛰어갔다.


“잘 놀고 있었어?”

“네!”


어디 드라마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아무것도 없는 얼굴만 제외한다면.


“마치... 짜놓은 그림 같네요.”


고서우도 그렇게 느낀 것인지 미묘하게 얼굴을 구겼다.


“뭐... 그만큼 흔한 모습이기도 하고요.”


나래 씨는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마다 관점은 다르겠지만 저 아이가 미혜라는 점을 미루어 생각해본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 정도로 좁힐 수 있다.


“미혜의 꿈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거예요. 지금 보는 모습이 아주 오래 전 미혜가 겪었던 일이거나. 아니면 한 번이라도 겪어 보고 싶은 일이거나.”


아마도. 미혜가 지금까지 말해주었던 일을 생각한다면 후자가 아닐까 싶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고아원에 지냈다는 이야기는 못들은 것 같다.


3살 정도에 부모님과 헤어진 것이라면 기억이 안 날만도 하니 부모님의 얼굴에 아무것도 없어도 이해가 간다.


“후자면... 너무 슬픈데요.”


나래 씨의 눈썹이 힘없이 휘었다.


“일단 가서 데려오면 깨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뇨... 갑자기 깨우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요?”


고서우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모습에 몇 번이나 봐왔던 표정을 짓는걸 봐서 이 녀석은 확실히 고서우가 맞다.


“앞서 말한 가능성 중 하나가 맞다면 지금 미혜는... 아마...”

“아마?”

“정말 행복할 겁니다.”


저 행복을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깰 수 있을까?


“그렇다고 평생 잘 순 없는 거예요.”

“...”


고서우의 말도 맞았다.

과거에 얽매여 평생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라면 혹은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일이라면.


조금만 더 만끽하게 둬도 되는 게 아닐까?


“정신 차려요. 선배. 지금 저 사람이 원래 알고 있던 사람으로 보여요?”


망설이고 있는 나와 나래 씨를 보며 답답했는지 고서우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저 말투! 저 모습! 완전 어린애라고요. 이 꿈에 맞춰서 모습이 변하는 거면요? 그래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는 거라면요?”


까치발을 세우고 내 턱 밑까지 고개를 치켜든 탓에 말하고 있는 고서우의 입김이 턱 끝에 닿았다.


“...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어떻게 깨워야 할지.”

“가서 불러 올게요.”

“그건 안돼요.”

“왜요?”

“그냥...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나래 씨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흐렸지만 그 말에는 깊게 공감했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거든요.”

“음...”


고서우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기분이 드는 거라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말하자면...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놀라게 해서 깨우는 것 같달까요.”

“그게 왜요?”


내 설명에도 녀석은 그게 무엇이 문제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황이 그러면 깨워야죠.”

“...”


맞다. 나는 이 녀석을 이해하기를 포기했었다.

그동안 조금 친하게 지내면서 잊고 있었지만 내 생각을 이해시키기도, 녀석의 생각을 이해하기도 포기한지 오래였다.


“그럼 그냥 불러 봐요. 애기들도 엄마 목소리에는 반응한다잖아요. 어차피 나랑은 안 친하니까 불러도 그렇게 큰 반응은 없을 것 같으니까.”


담담하게 말하는 녀석의 말에 마음이 걸렸다.

그동안 티내지 않고 있었기에 몰랐지만 녀석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섞여 들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던 게 아닐까?


“불러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이정도 거리니까.”

“알겠어요.”


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공기포라도 쏘겠다는 의지로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미혜야!!! 애플파이 먹자!!!”


옆에서 함께 미혜의 이름을 부르던 나래 씨가 크고 동그란 눈을 하고는 나를 돌아봤다.


“애플파이요?”

“갑자기 웬 애플파이에요? 아니 애초에 너무 큰 소리 아니에요?”


고서우도 같은 의문을 가졌는지 거의 둘이 동시에 물었다.


“미혜가 애플파이를 좋아하거든.”

“싫어하는 음식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


조용히 고서우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꽤나 예리한 구석이 있다.


“사실 순간 생각난 게 애플파이였어요. 예전에 맛있게 먹던 모습이 생각났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어려진 미혜의 뒤통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의 외침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던 꼬마가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미혜의 시선이 멈추자 아이의 양손을 잡고 있던 어른들의 시선도 동시에 우리를 향했다.


아니 향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이 없으니 그들이 어디를 보고 있는 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으니까...


“미혜야!!! 오므라이스도 해줄게! 같이 가자!!!”


다시 한 번 외치니 꼬마가 남자의 손을 놓고 완전히 뒤를 돌아봤다.


“뭔가... 그래도 효과가 있는 것 같네요.”

“한 번만 더 해봐요. 지혁 씨.”


나는 다시 한 번 외치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미혜야!!!”




“먹고 싶은 거 다 해줄게! 일어나!!”


마지막 외침과 함께 꼬마가 잡고 있던 손을 모두 놓았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뛰어오며 외쳤다.


작은 몸짓과 어울리지 않는 다 큰 어른의 목소리로.


“아저씨! 그 말 책임지셔야 할 거예요!”


아이가 우리와 가까워질수록 아이의 키가 자랐다.

키뿐만이 아니었다. 통통했던 뺨은 점점 작아졌고, 짧았던 팔다리는 길어졌다.


무엇보다 우리가 모르던 얼굴이 점차 아는 얼굴로 바뀌어 갔다.


꼬마가 우리 앞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가 아는 미혜의 모습이 되었다.


“이번에 탑 나가면 아저씨가 회식 시켜주는 거예요?”

“그래. 얼마든지.”


빙그레 웃으며 나를 향해 웃어주던 미혜는 그제야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고개를 돌렸다.


나래 씨를 보며 올라갔던 입꼬리가 고서우를 보자 천천히 내려갔다.


“다들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그쪽도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는데요.”

“흠...”


고서우의 말에 미혜가 팔짱을 끼고는 생각하는 듯 고개를 들었다.


“아니. 조금 위험했을지도...”


말을 하다 만 미혜는 우리를 한 번 훑어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저씨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전 여기에 여러분들이 있는 줄도 몰랐거든요. 어느 정도 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깨고 싶지 않았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7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2) 24.02.14 14 0 12쪽
156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1) 24.02.12 19 0 12쪽
155 오류의탑(4) 24.02.09 16 0 9쪽
154 오류의탑(3) 24.02.07 16 0 11쪽
153 오류의 탑(2) 24.02.05 14 0 12쪽
152 오류의 탑 (1) 24.02.02 15 0 14쪽
151 검은 나비(4) 24.01.31 13 0 11쪽
150 검은 나비(3) 24.01.29 18 0 12쪽
149 검은 나비(2) 24.01.26 18 0 11쪽
148 검은 나비(1) 24.01.24 20 0 12쪽
147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3) 24.01.22 19 0 12쪽
146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2) 24.01.19 15 0 11쪽
145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1) 24.01.17 17 0 12쪽
144 차갑지만 뜨거운(2) 24.01.15 18 0 11쪽
143 차갑지만 뜨거운(1) 24.01.12 17 0 11쪽
142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3) 24.01.10 14 0 11쪽
141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2) 24.01.08 15 0 11쪽
140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1) 24.01.05 19 0 12쪽
» 잠들지 못한(6) 24.01.03 16 0 11쪽
138 잠들지 못한(5) 24.01.01 18 0 11쪽
137 잠들지 못한(4) 23.12.29 15 0 11쪽
136 잠들지 못한(3) 23.12.27 14 0 12쪽
135 잠들지 못한(2) 23.12.25 18 0 12쪽
134 잠들지 못한(1) 23.12.22 21 0 11쪽
133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4) 23.12.20 33 0 11쪽
132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3) 23.12.18 21 0 12쪽
131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2) 23.12.14 23 0 11쪽
130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1) 23.12.13 26 0 12쪽
129 의심(4) 23.12.11 20 0 11쪽
128 의심(3) 23.12.08 20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