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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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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25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2.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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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3)

DUMMY

“탑에 이런 곳도 있어?”

“그럼...”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대답하는 녀석의 표정이 왠지 뿌듯해 보인다.


“내가 여길... ”

“여길...?”


내 생각을 읽은 듯 앞장 서 걸어가는 에스프레소의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이내 뒷모습만 보여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관리했는데...”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목소리에서 많은 것이 느껴졌다.

그건 뿌듯함이기도 했지만 분노이기도 했으며, 허탈감 같기도 했다.


“여기는 인간들 기준으로는 살 곳이 못 되겠지만. 인간 세계보다 훨씬 나아.”

“확실히. 인간인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는 이야기는 아니네.”

“여기는 배고파 죽는 이도 없고, 춥거나 더운 이도 없어. 각자가 서로를 인정하며 각자가 가장 잘 살아갈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간 지켜보니 녀석은 자신의 이야기나 생각을 잘 얘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 말을 할 때는 그저 조용히 듣고 있다 보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필요한 것은 그저 자연의 흐름인 마력뿐이야. 그것만 있다면 모두가 평생... 자신의 삶을 다하다 갈 수 있지.”

“그 발언 조금 위험할 수 있어.”

“알아.”


순순히 대답하는 녀석의 목소리에는 깊은 씁쓸함이 배어 있다.


“우리들에게는 감정은 없어. 저기에 계신 더 높은 사람들은 특히 이성적인 손익만이 중요할 뿐이거든. 그렇기에 더욱 본인들의 가치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겠지만.”


에스프레소는 빠르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녀석이 그런 선택을 했겠지.”

“녀석이라니?”

“너도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있잖아?”


스모어...


“그래. 녀석은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고자 했어. 그게 세상에서 손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보통 이상향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상적이라고 하지.”


내 대답에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신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어.”

“...”


그렇게 대답하는 목소리에서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냉기가 느껴진 것도 아니었다.

보통 온기라는 것은 자신의 체온에 따라 상대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건 초월한 무미건조함이었다.


“다만... 인간처럼 불필요한 짓은 하지 않을 뿐이야.”


듣는 인간 불편하구만.


“나쁘다는 게 아니야. 인간은 우리의 입장에서 불필요한 짓을 매일같이 반복해. 유한한 삶에 그런 짓으로 시간을 낭비하는데 미련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런 시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발전했잖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괴로움. 그런 건가?


“그러니까 유한한 시간을 가진 형은 한 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어.”


에스프레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통로가 끝나고 새로운 구간이 나왔다.


몇 층인지도 모른 채 따라온 구간의 정중앙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나무는 다른 층의 몬스터들과 달리 나를 알아보고도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면 내 옆에 서 있는 소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저 위드르가 양피지의 주재료야.”

“그런데 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너는 신이라며. 이런 양피지가 왜 필요해? 이런 거 없어도 레시피를 만들 수 있는 거 아냐?”


내 질문에 녀석은 정말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동안 봤던 표정 중에서 가장 현실감 있는 표정이 저런 얼굴이라는 점이 심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양피지를 쓸 사람은 형이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냐는 거지.”


녀석이 입을 다물었다.

한심하다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의미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줄곧. 형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나를...?”

“아니. 형이 아니었어도 돼. 그냥 우연히 형이었을 뿐이야.”

“으응...”


그간 관찰해본 결과 녀석의 몇 가지의 행동 패턴이 있었는데 저런 식으로 말을 돌리는 것은 진심을 말하기 싫을 때 하는 행동인 것 같았다.


“뭐 됐어. 일단 저걸 뜯으면 된다는 거지?”

“어. 위드르의 줄기를 제대로 맞춘다면 껍질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말보다는 역시 실전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위드르라는 몬스터 쪽으로 밀어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몸이 떠오르는 느낌도, 불어오는 바람의 강도도.

처음 이 녀석을 만났을 때 마주했던 강풍이었다.


그 모든 것이. 에스프레소의 계획이었던 거였나.


던져지듯 날아갔던 몸은 생각보다 조심스럽게 떨어졌다.


“으억!”


가까이에서 보는 몬스터는 굉장히 컸고, 따뜻했으며 포근했다.

공격하기 미안해질 정도로 안정감이 있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날에 잘 마른 푹신한 이불 같은 느낌에 온 몸이 녹아 지면에 흡수될 것 같았지만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하지만 칼을 빼든 순간 쉽게 뿌리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유혹이 가시밭길처럼 나를 내몰았다.


따뜻했던 기운은 어디가고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푹신하게 자라있던 주변의 풀들은 모두 하얗게 시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내 앞에 있는 이 거대한 몬스터가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곱지 않은 시선으로.


“하하...”


그르르...


어디선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발을 디디고 있던 땅이 갈라지며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으악!”


급하게 아무데로나 피했지만 옮긴 자리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방금까지 있었던 자리 위로 날카로운 뿌리가 땅을 가르고 튀어나왔다.


곧이어 다시 느껴지는 진동에 방금 전보다는 좀 더 진동소리가 덜 들리는 곳으로 뛰었다.

그러자 곧 방금 전과 같이 내가 서있던 자리에서 다른 뿌리가 튀어나왔다.


이번 것은 드릴마냥 회전하는 뿌리였다.

땅을 뚫고 나온 뿌리는 나사처럼 나선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날의 끝이 무엇이라도 벨 수 있을 것 같이 날카로웠다는 거지.


“저거에 맞으면 그대로 죽겠는데.”


크기만 압도적인 게 아니었다.

위드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녀석에게서 이전에 드래곤을 만났을 때의 공포가 떠올랐다.


“자... 어떻게 해야 한담...이번엔 뒤인가?”


녀석은 내가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빠르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번에는 뒤에서 공기를 가르며 나는 바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윽.”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피하지 못했다.

나무줄기 중 하나가 채찍질을 하듯이 내 몸을 쳐 멀리 날려 보냈다.


몸이 바닥에 부딪쳐 튕겨 나왔다.

몸뿐만 아니라 쥐고 있던 칼과 가지고 다니던 병들까지 쏟아져 나왔다.


“하윽... 아파라...”


등에서부터 숨이 막히는 통증이 번졌다.

누군가가 거대한 손바닥으로 숨구멍을 막고 쥐어짜는 고통이었다.


“어...”


스탯으로 강화된 육체덕분에 고통은 그대로였지만 다시 일어날 수는 있었다.

일어나서 주변에 떨어진 칼을 찾고 있자니 왠지 조용한 기분에 위드르를 다시 보자 처음처럼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가. 칼을 들지 않으면 본인도 공격하지 않겠다는 거지.”


하지만 에스프레소의 말에 의하면 줄기를 공격해야만 양피지의 재료를 구할 수 있다.


공격하면서 공격하지 않아야 한다.


“껍질을 채집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과거에 처음 양피지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우리의 조상들은 어떻게 했던가.


“흐음...”


애초에 양피지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종이로 알고 있지만 그 시작은 양의 가죽이었다.

이름부터 양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가 아니던가.


그런데 왜 에스프레소는 나에게 위드르를 공격해서 양피지의 재료를 얻으라고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 언제 그렇게 지능적으로 살았다고. 나한텐 이게 더 어울려.”


처음부터 생각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일단 행동으로 나서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최대한 가까이에서 칼을 들기 위해서 천천히 다가갔다.


한 발짝, 두 발짝.


점차 가까워졌지만 위드르는 반응하지 않았다.


줄기까지 한 걸음을 남긴 곳에서 멈췄다.

당장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 같은 따스한 기운이 칼을 꺼내는 과정에 따라 서서히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칼이 완전히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아까와 같이 땅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뿌리가 솟아나기 전에 칼을 들고 줄기를 베자 위드르가 비명을 지르는 듯 가지가 흔들리면서 나뭇잎이 흔들리며 떨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칼이 지나갔던 줄기의 표면으로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얗고 부드러운...


“양털...?”


흘러나온 양털들은 이내 굳더니 황금색 빛에 둘러싸여 형태가 변해갔다.


[ ‘탑의 역사를 기억하는 나무의 잔해’를 획득하였습니다. ]


“이게... 에스프레소가 말한 양피지의 재료인가...?”


이름은 거창하게 생겼지만 색이 바란 종이 한 장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발밑으로 떨어졌다.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또다시 나를 향해 뻗어오는 뿌리들 때문에 잽싸게 줍고 자리를 떴다.


방금 공격으로 화가 났는지 움직임이 처음보다 더 거칠었다.

이렇게 해서는 재료만 캐다가 죽겠는데?


하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이렇게 이중적인 몬스터가 또 있는가!


“이중적...?”


생각해보면 녀석은 나에게 위드르를 공격하라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혹시 이 나무는 꽤나 오랫동안 자고 있던 게 아닐까?


금방이라도 잘 것 같이 평화로운 분위기와 따뜻했던 공기.

그러나 누군가 살기를 드러내면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모습이 마치 야생 동물 같기도 했고...


잠을 제대로 못자 예민해진 상태 같기도 했다.


“아까 전에 같이 잠이라도 자는 게 맞았던 걸까?”


몬스터가 잠을 못자서 예민해진 것 같다니.

생각하면서도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


그러나 내가 구하려는 물건이 양피지라면... 가능성도 있다.


나는 들고 있던 칼을 최대한 멀리 내던졌다.

던져진 칼이 바닥을 튕기며 가볍게 챙 소리를 내며 잔디 사이로 떨어졌다.


“자. 형이 재워줄게.”


영화 속에서 총을 든 범인에게 다가가는 형사마냥 양손을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온 몸으로 나는 더 이상 너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어.

라는 뜻을 표현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일순간 굳는 것 같은 분위기가 이내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평온하게 녹아내렸다.


또 다시 줄기까지 한 걸음 남긴 상태에서 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줄기를 훑었다.

흔히 아는 나무 표면의 느낌이었지만 다른 나무들과 같이 그 안은 따뜻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 같네.”


눈을 감고 어렸을 때 어렴풋하게 들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음을 떠올렸다.


“자장... 악... 자창...!”


사실 어렸을 적부터 음악의 소질이 없던 나였기 때문에 이 노래를 듣고 잘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지는 의문이기는 하다.


삑사리가 이어지는 자장가에 줄기의 표면으로부터 떨림이 손을 통해 전해져왔지만 방금처럼 공격을 해오지는 않았다.

최소한 내 노래가 소음 공격까지는 아니라는 소리겠지.


“잘도 찬다. 차장! 자장...! 우리 위드르...”


공기가 점점 포근해졌고, 모든 소리가 잠들기라도 한 듯이 조용했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어렸을 적 들었던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추억도 기억도 없는. 아마도 나의 친어머니라는 분의 목소리일 텐데.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에 나무에서 손을 떼고 눈물을 닦았다.

나의 지옥에서 온 자장가 소리에도 나무는 곤히 잠든 것 같았다.


어떻게 아냐고?


재우기 전까지는 없었던 하얀 양털이 위드르의 주변으로 수없이 많이 피어나 황금색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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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1) 24.01.05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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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잠들지 못한(3) 23.12.27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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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3) 23.12.18 2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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