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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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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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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32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1.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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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검은 나비(3)

DUMMY

요란한 동작과 이해할 수 없는 기술명이 합쳐져서 얼핏 보기에는 웃기기만 한 행동이었지만 제천의 불길은 확실하게 액체마력을 따라 퍼져나갔다.


“후아!”


예상대로 뜨거워진 공기를 따라 비늘가루도 위로 떠올랐다.

가루를 따라 퍼지던 검은 마력들도 천장으로 떠올랐다.


모든 마력과 가루가 떠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활동하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너무 더운데.”

“조금만 참아.”


말은 조금만 참으라고 했지만 사실 그렇게 오랫동안 참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왕이면 소원이 키워낸 저 요상하게 생긴 식물들도 타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요상하게 생긴 식물들이 액체 마력을 포함해 불길을 만들어낸 제천의 마력까지 흡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잠시의 시간은 벌었지만 지체하고 있다가는 더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생각보다 시간이 별로 없을 수도 있어.”


나는 칼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미혜의 시선이 내 손을 향했다.


“아저씨...”

“어쩔 수 없잖아.”


원망에 찬 시선에 손등이 따가웠지만 미혜 또한 공격을 안 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완전히 말리지는 않았다.


쉽사리 칼을 잡지 못하는 손에 힘을 줬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금방이라도 놓쳐버릴 것 같았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손을 노려보듯 내려다보고 있자니 석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이번에는 빛나는 검은색 마법진에서 4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거대한 검은색 고치가 소원의 손길에 따라 솟아나고 있었다.


“고치...?”

“일단 우리에게 좋은 일은 아니란 건 확실하게 알겠는데.”


고치가 모습을 드러내고 바닥의 마법진이 사라지자, 고치의 표면을 따라 금이 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금이 간 고치의 표면이 바닥으로 떨어져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조각난 표면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나오더니 이내 무리를 지으며 쏟아져 나왔다.


검은 연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나비들이 천장을 가득 메웠고, 아래로는 점박이 무늬의 주황색 꽃이 만발했다.


“이거 무척 낭만적인 상황일 텐데 우리에게는 안 그렇다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는지 고서우가 반쯤 웃는, 반쯤은 체념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로운 씨!”

“네!”


로운은 소원의 영향인지 조금은 몽롱한 목소리였지만 의식을 놓지 않기 위해서인지 눈에 힘을 주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승주랑 고서우와 함께 나비들을 맡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석 씨.”

“...”


대답은 없었지만 그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미혜와 제천과 함께 꽃들을 맡아주세요.”

“지혁 씨. 저는요?”

“나래 씨는. 승우와 함께 지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천장을 향해 눈을 찌푸렸다.


나비들의 주변으로 풍겨오던 검은 연기들이 가루가 되어 이전에 제천이 올렸던 비늘가루와 함께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뭘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수상한 것들이 떨어지고 있어요.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저기 형. 나 질문.”

“...”

“그럼 형은 뭐해?”



“글쎄. 대학 친구랑 이야기라도 나눠볼까 하는데.”



나는 칼을 똑바로 쥐고 처음으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친구를 바라봤다.


머리 위로는 구름 같은 나비 떼를 거닐고, 발아래론 기괴한 꽃을 피어내 어디로 보나 몬스터의 모습이었지만.


‘나랑 스터디 할래?’


그렇게 말하던 소원의 얼굴이 아직 그곳에 남아 있었다.

그때의 너를 나는 아직도 이렇게 또렷이 기억하는데.

어째서.


‘지혁아!’


앞치마를 입고 처음 요리를 하는 친구의 자존심이 상할까 싶어 말을 아끼면서도.

혹여 다칠까 남모르게 지켜보던 시선이.

따뜻함을 담았던 시선이.


이제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흔들림 없이 바라보는 시선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땅을 박차고 소원을 향해 뛰었다.


자신들의 여왕을 향해 뛰어가는 나를 제지하기 위해 꽃들이 고개를 숙였다.


[독을 품은 하수인의 가루에 노출되었습니다.]

[노출 지속 시 이상 효과가 중첩됩니다.]


꽃의 줄기를 쳐내자 천천히 퍼지고 있던 가루들이 한 번에 쏟아졌다.


한 마리, 두 마리.

쏟아지는 가루를 피하지도 않고 오로지 소원만을 바라봤다.


소원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을 따라 뛰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앞에 나타나는 안내창의 수와 수위가 올라갔다.


[경미한 마비 증상이 나타납니다.]

[심각한 환청 증상이 나타납니다.]

[미미한 출혈이 발생합니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환각 증상이 나타납니다.]



[꿈 안내인의 가루에 노출되었습니다.]

[노출 지속 시 꿈꾸는 세계의 영향을 받습니다.]



일행들과 멀어진 거리만큼 소원과 가까워졌다.

자잘한 상처는 무시했고, 사소한 공격은 뒤에 오던 사람들에게 맡겼다.


내 몸을 버리는 것으로 잃었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이렇게 가까이서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야.


물론 다른 사람들도 보였다.


대학 때 함께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

고등학생 때 잠시나마 어울리던 아이들.

함께 알바를 했던 사람들.


그중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고, 알고 지내던 얼굴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제 모두 이 지상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


인간의 형상들이 우리를 두르듯 서서 무감정한 눈길로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소원의 앞에 섰을 때.


나의 오른쪽에는 아버지가.

나의 왼쪽에는 어머니가.


처참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아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말을 작고 빠른 소리로 읊었다.



‘나는 죽었는데, 너는 어째서 살아있어?’



소리는 하나가 되고, 둘이 되어.

사방이 울리도록 커졌다.


그나마 슬프지만 다행스럽게도 평소 좁은 인간관계 덕분에 더 많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환각도, 환청도 결국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소원아.”


소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가까워진 만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검은 눈동자를 품고 있는 눈매를 따라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원아.”


불러도 답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저 눈물의 주인이 소원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아직은 내 부름에 답할 사람이 남아 있다는 게 아닐까.


그 순간 굳게 다물어져있던 소원의 입술이 파르르 거리며 움직였다.

마치 입을 열려고 하는 자와 닫으려고 하는 자의 힘싸움처럼.


입술을 열리려는 듯 닫히려는 듯 파르르 떨렸다.

작게 열려 떨리는 와중에도 입술은 천천히 움직였다.


입을 크게 벌릴 필요도 없는 발음을 소원은 최대한 크게 말하려고 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칼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 않고는 칼을 놓칠 것만 같았으니까.


소원은 말하고 있었다.


‘죽여줘.’


작은 움직임이 반복해서 그 말을 뱉어냈다.


아직 몬스터의 모습 안에는 원래의 자아가 남아 있다.



“그렇게 말해도... 들리지 않는단 말이야.”


나는 꽉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을 뺐다.

바닥을 뒹구는 칼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허리춤에 달아둔 주머니에 손을 댔다.


“웬만하면 이건 기분 나빠서 마시고 싶지 않은데. 오늘은 마셔야 겠어.”


병 안에서 붉은 크림이 커피에 녹아들지 못해 떠다녔다.


꿀꺽.


처음 이걸 만들었을 때 에스프레소에게 맞았던 등짝의 고통이 떠올랐다.


설마 이런 레시피가 통하겠어?

누가 이런 걸 먹어. 하고 만들었던 음료가.


[통찰의 로즈 슈페너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커피에 통달한 어느 바리스타가 신의 관심 속에서 만든 통찰의 로즈 슈페너입니다. 수준 높은 완성도로 효과가 증폭됩니다.]


[통찰의 로즈 슈페너 효과로 5분간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욱...


이 음료를 만들고 깨달았다.

나는 장미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꽤 싫어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음료 효과 때문인지 극심한 부작용을 몰고 왔다.


환청과 환각이 난무하는 이 상황에 어지러움과 구토감까지 겸비하게 되었다.


“그래도...”


소원과 다시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시고 소원을 바라봤다.


까만 눈동자에 일그러진 내 모습이 보였다.



‘날 죽여줘.’


“죽여 달라고만 하지 말고,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줘. 우리가 방법을 찾을 수 있게.”


생각에 답을 하듯 말하자 흔들림 없이 나를 보던 눈이 살짝 일그러졌다.


‘내... 목소리가 들려?’


“듣고 있어. 하지만 시간은 별로 없어.”


‘이제 나에겐 이 몸의 통제권이 남아있지 않아. 내가 , 너희를 해치지 않게. 여기서 끝내줘.’


생각일 뿐인데도 소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얼굴이 손짓이 보이는 듯 했다.


“그럴 수 없는 거 알잖아.”


‘방법이 없어. 이 탑에 대해... 해줄 말이 많은데...’


“그러면 더더욱 안 되지.”


‘오류의 탑에 있는 시간 동안 외롭고... 고통스러웠지만... 너희들을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렸어. 한 번도 원망한 적 없어.’


“...”


소원은 자신의 말이 마지막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끊어질 듯 말 듯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고마웠어. 이렇게 다시 만나러 와줘서. 살아남아 줘서.’


“...”


‘미혜에게도 전해줘. 원망하지 않는다고. 죄책감 갖지 말라고. 오히려... 고마웠다고.’



그 뒤로 소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건 커피의 효과가 끝나서도 아니었고, 내가 귀가 멀어서도 아니었다.


소원이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게 자의이든, 타의이든.


내 몸도 더 이상 대화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까지 한계에 다다랐다.


하수인의 질긴 줄기가 가슴부터 허벅지까지 조르고 있었고, 주변으로는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나비들이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날개가 움직이는 소리와 날아다니는 소리가 머릿속에 직접 닿았다.


“쿠흡...”


폐와 복부를 압박하는 줄기에 숨이 터져 나왔다.


각종 상태 이상에 산소 부족까지 겪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죽을까? 아니면 정신이 이상해져서 떠돌게 될까.

어쨌든... 모두 죽는 길 뿐이겠네.


몽롱했던 정신에 바깥부터 뿌옇게 변해가는 시야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끝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소원의 말은 전해줬어야 하는데...


뿌옇게 변한 시야에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냥 눈을 감았다.


그 순간 폐에 산소가 밀려들어왔다.

온몸을 압박하던 무언가가 한 번에 사라졌다.


“아저씨! 아저씨!! 야 우지혁!”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쓰러지는 내 머리를 받쳐주는 손이 있었고, 목소리가 있었다.


“나 없을 때... 나를 그렇게 불렀구나.”

“휴... 뭐 어때요. 우리 사이에.”


미혜가 왜 여기에 있지. 분명 위에 있는 것들을 맡겼던 것 같은데.


다 처리하고 온 건가... 아니면 그냥 진영을 이탈한 건가.

뭐... 덕분에 살았네.


여전히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미혜의 손길이 내 머리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것이 느껴졌다.


“미혜야.”


마른 목에서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소원이... 고마웠대. 자기는 한 순간도... 원망한 적 없대.”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떴지만 가루의 효과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뿌연 시야에서 미혜가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음... 소원 언니가 그랬단 말이죠...?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

“죽이지 않고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때려두면 되지 않을까.”



그게... 몬스터가 죽는 길이 아닌가 싶었지만 딴죽을 걸지는 않았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럴 기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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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오류의 탑(2) 24.02.05 15 0 12쪽
152 오류의 탑 (1) 24.02.02 16 0 14쪽
151 검은 나비(4) 24.01.31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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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검은 나비(1) 24.01.24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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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2) 24.01.19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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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잠들지 못한(3) 23.12.27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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