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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13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1.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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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차갑지만 뜨거운(1)

DUMMY

“아니... 이 인간은 왜 또 저런 데 들어가 있는 거야.”


미혜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저으며 내 등에 업혀 있는 승우를 내려서 승주의 옆에 누였다.

그리곤 그 위에 자신의 외투를 꺼내 덮어주었다.


“뭔가... 알고 계신 게 있으실까요?”

“...”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는지 이곳에 온 이후로 표정이 좋지 않은 나래 씨였다.


“제천 씨가... 제천이 저런 모습을 보인 적이 딱 한 번 있어요.”


나래 씨는 낮게 깔린 시선을 천천히 들어서 우리를 돌아보지 않는 제천의 얼굴을 바라봤다.

가느다란 눈썹 사이가 좁히며 아랫입술을 하얘지도록 물었다.

하지만 눈은 묵묵히 제천만을 바라봤다.


“제천이 저런 모습을 보인 건 지혁 씨를 만난 이후로 처음이겠네요.”


+++


마법진이 생겨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능력자들이 나타났다.

이에 한국도 제외는 아니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나래는 자신에게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알자 이 능력을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생판 모르는 남도, 자신의 지인들도, 본인 스스로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이었다.


평범했지만 누구보다 성실한 삶을 살았던 나래는 마법진에서 관리자들을 도와 비능력자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했으며, 개인적으로는 능력을 돈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며 돈을 벌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 한 일이었다.


능력이 생기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더더욱 이 보상을 남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러던 중 그 글을 보았다.


“함께 일할 사람 구합니다?”


보통은 함께 봉사활동을 할 사람, 사람들을 도울 사람 등을 구했지만 그 글의 글쓴이는 일할 사람을 구했다.


조회수는 높았지만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글의 내용은 별 거 없었다.


다른 글들처럼 파티를 모아 관리소를 돕자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그 문구 하나 때문에 나래는 글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 다음날 한 번 보기로 약속을 하고는 나간 나래는 처음으로 두 남자를 보았다.


근육질의 덩치가 크고 과묵한 남자와 체구는 작지만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


“안녕하세요. 어제 연락주신 나래 씨 맞죠? 저는 홍예찬입니다. 이쪽은 채석이에요. 둘 다 올해 27살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송 나래라고 하고요. 23살입니다.”


채 석이라고 소개된 남자는 그저 가벼운 목례만 했고, 홍 예찬이라는 사람은 나래가 앉을 수 있게 의자를 꺼내주었다.


“뭐. 이미 다 아시겠지만 저희는 마법진이 생기면 사람들을 도와줄 거예요. 다른 팀하고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어떤 점이 궁금하신가요?”

“왜 ‘일 할’ 사람을 구하신 건가요.”


나래의 질문에 예찬은 예상도 못했다는 듯이 잠시 멈추더니 이내 빙그레 웃었다.


“봉사활동도 좋지만,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함으로써 우리는 많은 걸 얻게 될 테니까요. 그게 돈이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아...”


그게 봉사활동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나래는 굳이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래가 무엇보다 먼저 깨달은 것이 생각을 경솔하게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었다.


예찬의 첫 인상은 성실하지만 조금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한 사람.

그리고 그 곁에서 그저 묵묵히 듣고 있는 사람.


그런 점들이 마음에 든 나래는 이 팀에 남기로 했던 것이었다.


이후에 다른 사람들도 왔다가 떠나기를 반복했지만 세 사람은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나래가 제천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예찬은 종종 자신의 동생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빛은 늘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가 동생을 무척 아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천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

“지금은 어떤데?”

“...”


나래의 질문에 예찬은 방금 전과는 달리 흐릿한 눈빛으로 먼 산을 바라봤다.


“나를... 따라하려고 해.”

“...?”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그 말에 나래는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먼 훗날 제천이 자신들을 찾아왔을 때 그것이 단순히 예찬의 기분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의 제천은 예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처음 석과 나래를 찾아왔던 제천은 예찬과 많은 점이 닮아 있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얌전한 옷차림과 정중한 말투, 그리고 따라하듯이 닮아있는 예찬의 미소까지.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건 제천이 예찬의 모습을 따라하던 거의 마지막 순간이었으니까.


예찬은 평소와 같이 마법진 내부로 가서 사람들을 도왔다.

미처 탈출하지 못했던 생존자들과 함께 마법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버텼다.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의 마법진이 사라지면서 예찬도 함께 사라졌다.


생존자들은 다른 사람을 챙길 여력이 없었던 탓에 언제부터 예찬이 사라진지도 모르고 있었고, 마법진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당연히 몰랐다.


예찬이 사라졌다는 소식에도 나래와 석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슬픈 마음도 예찬이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가 자신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바라진 않았을 테니까.


제천의 형이자 석과 나래의 친구였던 예찬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후 변함없이 관리소와 함께 사람들을 돕던 나래와 석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아니. 우리 형이 사라졌다니까요! 한 번만 조사해 달라고요.”

“그건 저희 관할이 아닙니다.”


관리자 하나를 붙잡고 거의 울듯이 이야기하고 있는 남자는 묘하게 예찬을 닮아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나래와 석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그가 예찬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때 제천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면 제천이 지금처럼 까지 엇나가지는 않았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시절의 두 사람은 예찬이 사라진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예찬에게 하나뿐이라고 들었던 동생에게 자신들을 그의 동료라고 소개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한 달을 내리 보이던 남자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마도 다른 관리자나 관리소에 가서 따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천이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예찬 형의 동생 홍제천이라고 합니다. 두 분이 형과 함께 저 망할 관리소를 도와주셨다는 형과 누나시죠?”


이를 악물고 나긋나긋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분노는 전혀 절제되지 않고 드러났다.


갈 곳을 잃고, 기댈 곳을 잃은 20대 초반의 청년은 쓸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제천에게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나래는 그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제천을 안아 주었다.


처음으로 마주보고, 처음으로 대화를 한 이 남자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그 잠깐의 시간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나래의 포옹에도 제천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남들이 보는 세상과 같지 않았다.

자신의 중심축이었던 형이 사라진 이후로 그는 빠른 속도로 망가져갔던 것이었다.


누구도 브레이크를 잡아줄 사람이 없이 망가져 가던 제천에게 어느 날 능력이 생겼다.

그것도 예찬과 같은 불 능력이었다.


능력을 확인하자마자 제천은 예찬이 사라지기 전까지도 간간히 이야기 해주었던 두 사람이 떠올랐다.

만나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무엇을 할지 정하지도 못한 채 무작정 찾아 나섰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법진이 생길 때 주변에 있으면 됐다.


한 개, 두 개, 그래도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수를 지났을 때.

두 사람이 나타났고, 제천은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둘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문제는 둘을 만났을 때 이미 제천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쓴 뒤였다.

예찬처럼 남을 위한 삶도, 자신을 위한 삶도 영위할 수 없었다.


그저 살아만 있을 뿐이었고, 그런 모습에 석과 나래는 자신들의 막내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살뜰히 챙겨주었다.


그게 그를 더 망가트리는 일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제천은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관리소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고, 과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봐도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그건 그의 성향이었다.


회전하던 중심축을 잃은 공은 멀리 튕겨져 나가기 마련이다.


“훈련이라도 하는 게 어때?”

“굳이?”


임시 거처 카페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핸드폰 게임을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제천은 자신이 능력자가 되어 관리소에 민폐를 끼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잠시 이야기 좀 하지.”


결국 석이 나서 제천과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대화가 오가며, 제천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몰라도 이후 석은 두 사람과 함께 예찬이 시작했던 일을 이어갔다.


그게 적극적이지도 않고,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도 나래는 만족했다.


그리고 소원의 소개로 지혁을 알게 되었고, 로운을 알게 되었다.


특히 지혁과 로운은 본인들도 모르게 제천의 새로운 중심축이 되었었다.


짧게 말하자면. 그런 이야기다.


+++


“흠... 그건 몰랐네요.”

“제천이 예찬 오빠와 닮은 몇 안 되는 점 중 하나에요. 주변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내비치지 않아요. 다만 예찬 오빠는 배려였고, 제천은 방어였을 뿐.”


씁쓸하게 말하는 나래의 옆으로 미혜가 보였다.

언제부터 와서 듣고 있었던 것인지 미혜는 울음을 참는 것으로 보였다.


이럴 때 보면 참 여린 아이다.


“그런 건 말을 해야 알지!”


소원이 사라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미혜는 제천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물론 여기 있는 누구도 제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거랑 지금 저러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아니. 한 사람 있구나.

내가 볼 때 이 녀석은 공감 능력에 크나 큰 문제가 있는 것에 틀림이 없다.


“뭐. 몰라도 돼요.”

“왜요! 저도 알려줘요!”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요.”


뒤에서 시끄럽게 구는 녀석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 제천을 바라봤다.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녀석의 무례함이라든가, 경솔한 행위들이 당연한 권한이 되지는 않겠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저렇게 텅 비어버린 모습을 하고 있으면 지나칠 수 없다.


“제가... 얘기해 볼게요.”

“어떻ㄱ...?”


나래 씨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보이지 않는 벽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녀석과 대화 하겠다고 간절하게 바라자 손끝에서 느껴지는 벽이 말랑해지는 것을 느꼈다.


벽 안으로 들어오자 밖에서 입을 움직이고 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나마 깨어있는 상태인 나한테 보이기라도 하는 것이지 이 녀석에게는 완전히 혼자인 상태였으리라.


동굴 특유의 서늘한 느낌과 모닥불에서 전해져 오는 따스한 기운이 번갈아가며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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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2) 24.01.19 1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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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갑지만 뜨거운(1) 24.01.12 1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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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2) 24.01.08 15 0 11쪽
140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1) 24.01.05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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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잠들지 못한(2) 23.12.25 18 0 12쪽
134 잠들지 못한(1) 23.12.22 21 0 11쪽
133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4) 23.12.20 33 0 11쪽
132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3) 23.12.18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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