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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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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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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14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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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잠들지 못한(5)

DUMMY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에요?”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고서우가 입을 열었다.

이 녀석과 만난 이후로 쭉 이어지기만 한 담벼락을 따라서 걸었다.


“저도 모르겠는데요.”

“흐음...”


고서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더 어려보이는 외모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내가 모르는 고서우였지만 이 녀석의 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기운이 앞에 있는 여학생을 낯설지 않게 만들었다.


이런 걸 광기라고 하던가.


“오히려 제가 묻고 싶네요. 일단 제가 살던 동네는 아니거든요. 서우 씨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음. 확실히.”


고서우는 하얀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그래도 중성적인 얼굴에 동안이었던 녀석이 교복을 입고 있으니 더 어려 보였다.


“확실히...이런 길을 봤던 것 같아요... 어릴 땐...”


나는 최대한 녀석의 말을 끊지 않기 위해서 입을 다물었다.


“한 두 번...? 아니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걸었어요.”

“등하굣길이었어요?”

“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참자...

지금 이 공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녀석뿐이니까.


평소에도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던 고서우였다.

여기서 말을 끊는다면 뒷이야기는 들을 수 없겠지.


“아마 사실은 그렇게 길지 않은 길일 거예요.”

“우리 여기만 30분 넘게 걷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해봐야 10분 정도? 주택가가 길게 이어진 길이니까요.”


녀석은 주변을 둘러보며 오랜만이네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그 눈에는 그리움이라고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항상 걸으면서... 참 지루하다고 생각했어요.”

“...”

“이 길이 언제 끝날까. 끝나봤자 아무것도 없겠지... 여기서 꽤 오래 살았으니까...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늘 이 길이었거든요.”

“지루했겠네.”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아마 녀석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고서우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그런 일상의 지루함이 아니었다.


좀 더 다른 의미의 지루함이었다.


“어쩌면 이 공간은 제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한참 혼자 생각하는 것 같더니 문득 고개를 들어 말하는 모습이 세상 해맑았다.


“그런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곳은 이곳에 들어온 사람의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혹은...”


바라던 모습이거나.

아침에 봤던 부모님의 모습처럼.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녀석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는 단순히 어렸을 때의 내가 놓친 부분들을 다시 본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 기억에 기반을 두었을 것이고...

그 모습 또한 내가 한 번쯤은 보고 싶었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공간은 변화가 없으면 벗어날 수 없어요.”

“변화요?”

“네. 우리는 계속 앞만 보며 걷고 있었잖아요. 정해진 길을 따라서 정해진 방법으로만 말이에요.”

“그...렇죠.?”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정해지지 않은 방법으로 가볼까요?”


뭔가 혼자 열심히 생각하던 고서우는 혼자 답을 내고는 검을 꺼내들었다.


평소가 그가... 아니... 그녀...아아... 모르겠다.


고서우가 사용하는 칼이 아닌 목검이었음에도 쥐고 있는 자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담벼락을 향해 선 고서우가 칼을 쥐고 휘두르자 노란색 빛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나무로 된 칼은 진짜 철로 만들어진 칼이 되었다.


바람 같은 움직임의 칼이 지나간 자리에는 실선이 생기더니 이내 담벼락이 무너졌다.


“칼로 돌을...베는 게...”

“여긴 꿈이잖아요.”


고서우가 나를 돌아보며 싱긋 웃으며 답했다.


“정말 꿈이라고 생각해요?”

“뭐... 정확힌 꿈은 아니겠지만. 지금 이 상황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는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흐음...”

“뭣보다 자각몽 상태라고 하니까요. 그럼 꿈이겠죠.”


녀석은 조금 뜸을 들이더니 그렇게 말하고는 들고 있던 칼로 방금 베어버린 벽을 가리켰다.


“일단 이 상황도... 현실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아마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상상하냐... 인 것 같아요.”


칼끝이 검은 공간을 향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모르는 집의 정원이나 벽이 있어야 했던 공간에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검은 공간을 가르는 굵은 노란색 선이 있었다.


“잘 안 보이는데... 죽진 않겠죠?”

“저 선을 따라 가면 될 것 같은데요?”

“선이요?”


그렇구나. 이것 또한 마력으로 만들어진 건가. ‘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다.


“자요.”


나는 고서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저한테는 선이 보이지만 그쪽은 안 보이잖아요. 길이라도 잃으면 또 찾으러 가야하니까요.”

“아... 네.”


내 말에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고서우가 손을 잡았다.

차가운 기운이 손끝에서 전해졌다.


“평소... 혈액 순환이 잘 안 되나 봐요.”

“...”


손을 바라보던 시선이 나를 올려다봤다.

속을 읽을 수 없는 표정.

처음에는 속을 참 잘 숨기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무슨 생각해요?”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요.”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겠구나 싶은 사람이었다.


“아무튼 조심해요. 천천히 갈 테니까.”

“네.”


나는 앞장 서서 검은 공간에 발을 내디뎠다.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은 어둠은 의외로 단단했고 우리는 서서히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노란색 실선이 끝난 곳에는 나무로 된 문이 하나 있었다.

가벼운 재질의 나무는 살짝 힘을 주자 저항 없이 열렸다.


“눈 조심해요. 갑자기 밝은 곳이니까.”

“네.”


눈을 질끈 감은 고서우가 조심스럽게 문 밖으로 나오며 슬그머니 눈을 떴다.


“여...기는.”

“아무래도 이 공간이 누구의 꿈인지 알 것 같네요.”


우리가 열었던 문은 옷장이었다.

무슨 영화 속 세상도 아니고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네.


“누군데요?”

“나래...씨 같아요.”


우리 중에서 백화점과 관련된 사람이라면 아마 나래 씨일 것이다.


그러나 백화점이라니...

평소 쇼핑을 즐긴다고는 들었지만 이게 꿈으로 까지 나올 일인가?


아니면 백화점도 다 무너져서 다시 와보고 싶던 걸까?


“일단 사람을 좀 찾아볼까요?”


알고 있던 백화점의 내부와 똑같이 생겼지만 이곳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흠... 저는 그 분을 잘 모르는데. 혹시 어디 먼저 가볼 것 같은 곳 있나요?”

“여성 의류나... 가방...? 구두 쪽이 아닐까 싶은데.”

“그럼 거기부터 가볼까요.”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서 걸어갔다.


“길은 알고 가는 거예요?”

“뭐. 백화점들 구조는 다 거기서 거기니까요. 에스컬레이터도 이쪽으로 가면 있을 거예요.”


반신반의한 기분으로 고서우의 뒤를 따라 걸으니 정말 에스컬레이터가 나타났다.


“진짜네.”

“다 거기서 거기에요.”


조용히 읊조리듯 말하는 녀석의 목소리에서는 이전의 대화에서 들었던 짙은 지루함이 배어 있다.


이 녀석은 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작동은 되나 보네요.”


녀석의 말처럼 우리가 다가가자 에스컬레이터가 천천히 움직였다.


우리는 몇 칸 떨어져 서서 말없이 올라갔다.


1층이 사라지고 2층의 모습이 보였다.

2층에 도착해서 고서우를 따라 3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3층이 여성의류와 잡화였지만 여기서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쇼핑과 관련된 꿈은 아닌가 보네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래 씨가 쇼핑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나나 고서우가 겪었던 꿈을 생각한다면 그런 계열의 것은 아닐 테니까.


“좀 더 알고 있는 것 없어요? 뭔가 평소 원하거나 그리워하는 것들이요.”

“서우 씨는 그리워서 거기 있던 건가요?”

“뭐... 악몽일수도 있는 거죠.”


그렇게 말하는 표정에 정말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아서 오히려 조금은 녀석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자각몽 일수도 있는 거겠네요.”

“네?”

“이게 현실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저에게 그 세계는 이미 죽었어요.”


언제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 적이 있던가.


물론 그 내용이 다른 사람의 반감을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것이겠지.


“지겹고 지겨워요. 지루해서 숨이 막혔어요. 그래서 이변이 일어났을 때 너무 좋았어요. 내 인생이 재미있어지겠구나.”


꿈이라는 이 세계의 영향일까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걸까 녀석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무서운 이야기를 내뱉었다.


“그래서 알았어요. 이런 평화로운 세계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이게 현실일리 없어. 꿈일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니까 확실해졌어요. 저는 분명 탑에 들어왔었거든요.”

“그랬군요.”


아마도 녀석에게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떠한 무언가가 있으리라.

앞으로도 이해하는 일은 별로 없겠지만 덕분에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나래 씨의 공간이라면 아마 나래 씨도 깨어있을 겁니다. 저희와 같은 자각몽 상태로.”

“뭐. 그래도 어렵진 않겠네요. 이 백화점 내에는 있을 거 아니에요? 샅샅이 뒤져보면 나오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서우에게 오른쪽을 살펴보라고 한 뒤 왼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한 끝에 나래 씨를 찾을 수 있었다.


“나래 씨! 일어나 봐요!”


나래 씨는 9층 생활 가구 코너에 있었다.

퀸 사이즈 침대에 누워 세상 무해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꿈속에서 꿈을 꾼다는 이야기가 있다지만 진짜로 자는 사람을 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아웅... 좀만 더 잘래요.”

“그만 자요. 그러다 영원히 자요.”

“으응...”


나래 씨는 몇 번을 더 뒤척이더니 슬그머니 눈을 떴다.


“아. 지혁 씨. 좋은 아침이에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우리 지금 어떤 공간 안에 갇힌 것 같아요.”

“아...”


아직 잠이 덜 깬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나래 씨의 눈빛에 서서히 당황한 기운이 섞여 들었다.


“아... 다른 애들. 다른 사람들은요?”

“아직 못 찾았어요.”


“근데 왜 여기서 자고 있어요?”


우리의 대화에 궁금해서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서우가 끼어들며 물었다.


“아. 뭐... 마침 피곤했는데 침대가 있더라고요.”

“평소 피곤하셨나요?”

“음... 아니었어요.”


고서우의 질문에 나래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하긴 우리 중에서 자신의 컨디션 관리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나래 씨였다.


“근데 그건 왜요?”

“혹시나 해서요. 우리 상태창에 불면 상태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렇다면 수면 상태라는 것도 있을 텐데.”


미처 생각도 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수면 상태와 불면 상태의 차이에 분명한 규칙이 있을 거예요. 아무나... 자각몽을 꾸는 건 아닐 테니까요.”


작가의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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