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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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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99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1.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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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차갑지만 뜨거운(2)

DUMMY

“홍제천”


이름을 불렀지만 모닥불에 장작을 넣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제천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흠...”


벽 안에 들어오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여기서도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 듣고 싶을 때 들어라.”


나는 녀석의 사선에 앉았다.

모닥불은 따뜻했지만 뜨겁지 않았다.

이게 그 꿈의 영향이라는 건가.


나에게 이 정도의 온기라면 지금 제천이 느끼는 불꽃은 그저 일렁이는 무언가 정도겠네.


조용히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꿈의 영향을 받고 있어 표정만큼은 달랐다.


아마도 이것이 이 녀석이 혼자 있을 때 짓는 표정이리라.


“나도 그렇고 다른 애들도 그렇고... 혼자 있을 때는 혼자만의 표정을 짓곤 하더라.


승우가 정색하는 표정 본 적 있어? 승주가 화내는 표정이라든가. 그래도 미혜는 평소에도 표현이 풍부한 편이라서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는데.


고서우는 감정이 절제되니까 더 이상해졌어. 나래 씨는 의외로 평소랑 다를 게 없는 것 같아.


하긴 현실이 행복해서 이곳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한가.”


무릎을 굽혀 안고는 생각이 나는 대로 중얼거렸다.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 대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안 것이 나름의 충격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너희한테 나도 그런 모습이었겠지.”


이전에 로운이 정보를 공유하자며 불렀던 일이 떠올랐다.

이제 와서야 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모닥불을 향해 있던 시선을 살짝 들자 팔짱을 끼고 나와 제천을 바라보고 있는 미혜와 나래 씨가 보였다.

그 뒤로는 쌍둥이의 곁에 앉아서 졸고 있는 고서우의 모습도 보였다.


“오히려 기대하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모습을 못 보여준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미혜에게 원하는 모습은 밝은 모습이었다.


우리가 나래 씨에게 원하는 모습은 여유로움과 다정함이었다.


우리가 쌍둥이에게 원하는 모습은 아이다움이었다.


우리가 고서우에게 원하는 모습은 사고뭉치였...나? 그건 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가 이 녀석에게 원했던 것은...



모닥불만을 바라보고 있는 제천의 눈빛에는 온기가 없었다.


쉽게 꺼지지 않는 불을 다루지만 그 안에는 때로는 작게, 때로는 크게 찬바람이 불고 있었나 보다.


“네가 언제나 세상 걱정 없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나봐.”


망해가는 세상에서 아니 이미 망해버렸을 모를 세상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까닭에 누군가 한 명쯤은 아무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무언의 기대가 너한테 부담을 줬을까.”


돌아오지 않을 대답이란 걸 알기에 스스로 말의 끝을 맺고 입을 다물었다.


벽 너머에서는 팔짱을 끼며 제자리에서 8자를 그리며 걷던 미혜도 지쳤는지 벽면에 기대어 앉아 눈으로만 이곳을 보고 있었다.


벽이라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기에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제천아. 이제 일어나야지.”

“...”

“지금 안 일어나면 미혜가 애플파이 다 먹어버린다?”

“...”

“흠...”


무슨 말을 해야 이 녀석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지만 만약에 이게 답이 아니라면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홍제천.”

“...”

“형이 마법진에서 사라졌다고 했지?”

“...”


얼핏 보면 여전히 반응하지 않는 것 같지만 장작을 집어넣고 있던 제천의 손이 한순간 멈췄다.


“캐롤라인 사제님이 그러셨어. 소원은 살아있다고.”

“...”

“마법진에서 사라진 형이라면 소원과 같이 살아 있지 않겠어?”

“...”


이번에는 녀석의 고개가 살짝 나를 향했다.

공허했던 눈빛에 무언가가 차올랐다.

이건 분노일까, 체념일까.


전혀 다른 느낌이 동시에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찾으러 가자.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었어.”

“찾...을 수 있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후회가 없지.”


나를 바라보던 제천이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장작을 넣던 손도 완전히 멈췄다.

하나를 넣으면 다시 하나가 생기던 장작도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모닥불이 꺼졌다.


“형.”

“응.”

“나 정말... 거지같은 악몽을 꾼 것 같아.”

“괜찮아. 꿈이야.”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잠긴 목소리로 말하며 제천은 내 어깨에 기댔다.


원래 아무나 빌려주지 않는 어깨지만 오늘 이 녀석의 이야기를 들은 대가라고 생각하며 얌전히 있었다.


물론 벽 너머에서 소리 없이 못 볼꼴을 봤다는 듯이 인상을 구기고 있는 미혜와 눈이 마주쳤지만 이쪽도 오늘만큼은 봐주기로 했다.


“이야! 홍제천!!”


제천이 내 어깨에 기대어 있기를 몇 분, 갑자기 미혜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어...라.”


그 소리에 깬 것인지, 아니면 꿈을 꾸던 사람이 깨어났기 때문에 소리가 전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와중에 제천도 눈을 떴다.


기지개를 크게 켜며 일어난 제천이 주변을 둘러봤다.


“뭐야. 여기는 어디야.”

“잘 잤냐.”

“나 잤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던 제천은 미간을 좁히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런가... 뭔가 악몽을 꾼 것도 같고.”

“악몽이라.”

“아닌가... 악몽이 아니었던 것도 같고.”


잘 모르겠다는 듯이 일어난 제천은 개운한 표정으로 허리와 무릎도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했다.


“잘은 모르겠는데 꽤나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하고 있던 것 마냥 온몸이 쑤셔.”

“잠을 잘못 잤나보네.”

“그런가봐.”


제천은 그런 소리를 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래 씨를 향해 걸어갔다.


나래 씨와 제천의 뒤로 일어나고 있는 쌍둥이가 자신들의 옆에서 자고 있는 고서우를 보며 의아해 하는 모습도 보였다.


상태창을 켜서 깨어난 사람의 수를 확인했다.


8명.


여전히 한 명은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누굴까.”

“뭐가요?”


언제 다가왔는지 미혜가 내 옆에 서서 보이지도 않을 상태창을 보는 척 하며 물었다.


“네 화면 봐.”

“뭘 보는지 알아야 보지.”

“자각몽 상태의 사람이 몇 명인가 봤어.”

“아~”


그제야 손을 휘적이며 무언가를 골똘히 보는 미혜.


“뭐. 마지막 사람은 누군지 알 것 같은데.”

“...?”

“뻔하잖아요.”

“그 뻔한 걸 모르겠단 말이야.”

“당연히 대표님이지!”


물론 석 씨는 평소에도 늦잠을 자지 않고, 칼 같이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군인을 했어도 잘 했을 것 같은 바람직한 생활 패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로운이 늦잠을 자는 타입도 아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여기 꿈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꿈을 꾸게 해준다면서요.”

“그렇지.”

“선생님은 항상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거든요.”

“석 씨가?”


그 양반이 그런 소리를 했다는 게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데.


미혜가 하는 말과 그의 얼굴이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물어봤죠.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미혜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도 한다는 듯이 손가락을 야무지게 세워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들 중에서 지금의 자신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래요.”

“...”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으니까.”


여전히 그가 그런 소리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그럴 듯한 소리였다.

만약 이게 미혜가 생각해낸 거짓말이라면 미혜는 캐릭터를 파악하고 만들어내는 힘이 뛰어난 것이리라.


“과거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못하고 지켜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지금은 지키려고 시도라도 해볼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거냐고 물었거든요.”


꽤나 흥미로운 질문들을 많이 했네.


“그랬더니?”

“과거로 간다면 어쩔 수 없으니까 그 또한 열심히 살 거래요. 다만 되도록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이 또한 석 씨다운 대답이었다.


“그러니 선생님은 진작 이런 꿈 따위 이겨냈을 거라고요.”

“...”


사실 진작이라고 하기엔 우리가 깨어난 후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 일어났다.


“그래도... 석 씨에게도 꿈꾸고 싶은 행복은 있었겠지.”


+++


동굴을 나오니 처음 들어갔을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가 원래 땅굴에 있었나요?”


분명 지상에서 들어갔던 것 같은데 동굴 밖으로 나오니 평원이었다.


우리는 바닥에서 걸어왔다.

아니 경사로도 없는데 올라온 꼴이 되었다.


“여기는 적응해보려고 해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게 처음인 제천과 쌍둥이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봤다.


쌍둥이는 일어난 이후에는 이전에 꾼 꿈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했다.



그만큼 무의식이었다는 거겠지.

평소 승주는 차분한 듯 보였지만 화가 쌓여있었고, 승우는 자기주장을 못할 것 같지만 꽤 고집이 있었던 듯싶다.


개인적인 해석이겠지만 쌍둥이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몸이 굉장히 가벼워요.”


일어난 승주가 나를 보자마자 한 첫 마디였다.

꽤나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승우는 신기하다는 듯이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음료의 효과가 남아 있었다.


“잘 잤나 보네.”


나는 제천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하고는 앞장섰다.


그렇게 나온 초원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었고, 그 가운데는 단 하나의 나무만이 있었다.


“저거 무슨 게임에 나왔던 세계수 같은 거야?”


멀리서 봐도 나무인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다가가니 제천의 말대로 세계수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뿌리의 끝만 해도 3m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함이었다.


“이런 나무는 자라려면 몇 년이나 걸리려나.”

“한... 1000년은 살아야 하지 않나?”

“그것밖에 안 걸린다고?”


옆에서 미혜와 고서우가 또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이제는 제법 정이 들었는지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멍청이냐!”

“그럼 너는 아냐?!”



아니었다.


“갑자기 나무라니...”


그런 둘은 이제는 가볍게 무시하는 나래 씨가 곁으로 다가왔다.


“올라가 볼까요?”


나래 씨가 무슨 수로 올라가냐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는 이에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거대한 뿌리 사이로 나무로 된 문이 하나 있었다.


“저거 열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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