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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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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10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2.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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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잠들지 못한(4)

DUMMY

“아까보다 조금 밝아지지 않았어요?”


첫 번째 구간을 지나 두 번째 구간으로 향하는 통로에 들어서자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처럼 나비 한 마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곳에 있었다.


우리가 통로에 모두 들어서자 나비는 휘청거리는 것 같은 날갯짓으로 처음 이곳에 왔던 우리를 안내했던 것처럼 앞장서 날아갔다.


그 뒤로 한참을 걸으면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랬기에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는 나래 씨의 말이 말없이 걷기 시작한 우리에게서 나온 첫 마디였다.


물론 그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래 씨의 말대로 처음 왔을 때 캄캄했던 내부에 비하며 사물을 구분하고, 옆 사람이 누군지 정도는 보일 정도로 밝아졌다.


밝아진 게 아니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나래 씨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네.


나는 고개를 돌려 평소라면 떠들기 바빴을 것 같은 세 사람을 바라봤다.


미혜도 제천도 고서우도 고개를 앞으로 향한 채 묵묵히 걷고만 있었다.


“어때요? 60층. 클리어 할 수 있을 것 같나요?”


내 질문에 몇 명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몇 명은 그러지 않았다.

의사는 표현하고 있지만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해요.”


뒤늦게 침묵 속에서 미혜가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어요.”


미혜의 대답에 답을 하듯 고서우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게 끝이었다.

두 사람 이후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이 침묵에 동의하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두 번째 구간에 도착했다는 통로의 끝이 보일 때까지 입을 연 사람은 없었다.


통로의 끝을 알리듯 두 번째 구간의 빛이 보였다.

단순히 통로가 어두웠기에 상대적으로 밝아 보인다고 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얼마나 강렬하냐면 두 번째 구간의 사물이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이었다.


발을 디디자마자 빛에 둘러싸이며 따스한 온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밀려오는 편안함에 눈이 감겼다.

그 사이로 희미하게 안내창이 보였다.


[얕은 잠을 자는 여왕의 두 번째 방에 진입하였습니다.]


+++


“지혁아. 일어나. 학교 안 갈거니?”


익숙한 목소리에 익숙한 말투.

천천히 눈을 뜨니 지금은 낯설어진 익숙한 방이 보였다.


책상 하나와 옷걸이 하나 그리고 침대 하나 만이 있는 무개성한 공간.

또래의 다른 아이들 방에서 볼 법한 게임기나 연예인의 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유난히 눈에 띄는 점이라고는 낡은 책상 위에 산처럼 쌓여있는 문제집뿐인 방이었다.


십년을 넘게 지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거의 돌아가지 않았던 탓에 이제는 남의 방보다도 불편해진 방 안에서 나는 이불을 둘둘 말고 누워있었다.


어머니... 아니 엄마라고 믿고 살았던 어머니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내려다보며 내 몸을 흔들고 있었다.


“깨어났으면 어서 세수하고 밥 먹어. 밥은 먹고 가야지.”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혹여 아들이 배가 고픈 상태로 공부할 까봐 걱정하는 이의 표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 부모님은 항상 공부만을 강요하는 괴물이었는데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나.


당시의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 걸지도 모르겠다.


“네...”


잠기운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했지만 이 상황은 아무리 봐도 최소한 10년도 전의 일이었다.


“꿈을 꾸는 건가...”


거울 속의 내가 볼을 꼬집었다.

통증이 되지 못한 감각이 볼을 따라 번지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아직 잠이 덜 깬 거냐?”


거울 속 내 뒤로 아버지가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대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업복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이제 아버지는 출근할 것이다.


“정신 차려라. 난 이만 간다.”


무심하게 말하던 아버지.

그 당시의 나는 아버지가 조금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보는 아버지는 출근하기 전에 아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했을 뿐이었다.


다만 그게 서툴렀고, 그걸 보는 나 또한 서툴렀기에 보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

“...”


내 부름에 아버지가 상체만 돌려 나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를 할 거냐는 근엄한 얼굴이었다.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그래. 너도 학교 잘 다녀와라.”


살아계실 때 이 말을 몇 번이나 했었을까.

아버지는 웬일이냐는 듯이 살짝 커진 눈을 미묘하게 휘며 답했다.


아마도 아버지 나름의 미소겠지.


출근하고, 그를 마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다시 거울 속 나를 바라봤다.


잠깐 사이에 조금 젊어졌다.

피부가 미묘하게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입술 색이 짙어졌다.


눈 밑에 있던 다크서클이 짙어졌다.


“흠...”


거울을 보며 고민하고 있자니 이번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학교 지각할 거니?”

“네~”


오랜만에 들어보는 잔소리에 뒤를 돌아 대답하고는 화장실을 나왔다.


확실하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


+++


가방을 메고 집을 나왔지만 학교로 갈 생각은 없었다.

이곳은 이변이 일어나기 전의 한참 전의 세계.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있고, 무너졌던 건물들이 건재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누군가. 우리를 재웠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행복했던 순간을 혹은 행복한 순간에 남아 현실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 자겠지.


고민을 하며 걸었지만 탑에서 봤던 마지막 모습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게 기억난다면 이 꿈에서 깨어나는 답이 될 수 있을까?


“다른 것보다... 내 가방은 어디 간 거야?”


꿈이라는 걸 자각한 순간부터 내 옆에 둥둥 떠다니는 구슬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는 것은 가방이나 다른 짐들 또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은 것뿐이라는 소린데...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는 지 알 수가 없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구슬에 손을 올려보았지만 나타나는 것이라고는 내 능력치에 대한 안내창 뿐이었다.


“음...?”


혹시나 싶어서 안내창을 마지막까지 읽어보니 평소와 다른 한 문장이 더 있었다.


[현재 꿈꾸는 세계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당신은 불면 상태입니다.]

[꿈꾸는 세계에 귀속되어 자각몽 상태로 적용됩니다.]

[자각몽 상태가 되어 세계의 영향에서 조금 벗어납니다.]


자각몽 상태라... 역시 여기는 현실이 아니었다.

다만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


가장 마지막 문장 옆에 있는 느낌표 모양과 2이라는 숫자.


느낌표를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작은 창이 하나 더 나타났다.


[꿈꾸는 세계의 영향이란?

- 신체적 고통이 80% 감소합니다.

- 정신적 고통이 20% 증가합니다.

- 장시간 꿈꾸는 세계에 체류 시 꿈에 잠식되는 속도가 10%씩 증가합니다. (3시간마다 갱신)

- 이동속도가 50% 증가합니다.

- 감각이 60% 감소합니다.


자각몽 상태의 경우 해당 효과들의 30%만큼 적용됩니다.]


마치 게임 가이드 같은 안내창을 닫았다.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대충 몬스터에 의해 만들어진 필드에 갇힌 것 같다.

말하자면 여기가 거대한 두 번째 구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옆에 있는 숫자는 뭐지?


“설마...”


뭔가 생각나려고 하는데 쉽사리 말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 누가 이딴 세계를 만든 거야!”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 흐트러진 집중력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그래도 얕은 목소리가 조금 더 얕아진 것 같은 이의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뛰었다.

익숙했던 동네의 모습이 사라지고 낯선 공간이 나타났다.


신기한 것은 공간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유심히 바라보지 않는다면 바뀌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어차피 현실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그리워하던 곳도 아니지 않던가.


이대로 학교에 갔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말 걸지 않을 것이며, 자신은 책과 선생님의 손끝만을 보다가 학교를 나왔을 것이다.


몇 번이고 변한 골목길의 끝에는 목검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 있었다.


“저기...!”


내가 부르기 전까지도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확실했지만 그 뒷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날개뼈까지 덮고 있는 긴 머리카락과 단정하게 입고 있는 교복.

그리고 그 밑에는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 치마가 있었다.


“아...? 어? 오. 선배!”


내 불음에 천천히 뒤를 돈 여학생의 얼굴은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아니 한 10년은 더 어려 보였다.

하지만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저 지금보다 더 동안이었다는 소리려나.


“왜 그렇게 봐요?”

“아니...”


내가 불러놓고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가 뒤통수를 세게 내리친 기분이었다.


당연히 나는 녀석이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서우... 너 여자였구나.”

“예?”

“아니에요.”


고서우의 얼굴이 어이없다는 듯이 찌푸려졌다.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에요?”

“옆에 구슬 같은 거 안 보여요?”

“네?”


내 말에 고서우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하지는 못한 듯 했다.


“구슬이라니 그게 뭐... 어?”


끝내 찾지 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던 고서우는 혼란스러운지 목도를 내려두고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 선배... 잠깐 선배라니... 나는... 아아... 그래. 여기는... 이미 사라져버린 세계.”


이미 사라져버린 세계라니. 말이 심하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언가 그 말에서 이 녀석이 이변이 일어나기 전의 세계에 미련이 없었다고 느낀다면 나의 과대 해석일까?


“그렇군요. 여기는 탑이 만들어낸 세계군요. 왜 여태 몰랐지.”


혼잣말을 이어가는 고서우의 시선이 오른쪽 아래를 향했다.

역시나 꿈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하면 단절되었던 현실과 이어지는 듯하다.


“그나저나... 선배 젊어지셨네요?”


녀석은 생각 정리가 끝났다는 듯이 놓았던 목도를 줍고 나서 말했다.


“그쪽은 어려 지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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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2) 24.01.19 15 0 11쪽
145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1) 24.01.17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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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차갑지만 뜨거운(1) 24.01.12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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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2) 24.01.08 15 0 11쪽
140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1) 24.01.05 19 0 12쪽
139 잠들지 못한(6) 24.01.03 1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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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잠들지 못한(2) 23.12.25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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