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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31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2.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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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4)

DUMMY

[ ‘탑의 역사를 기억하는 나무의 잔해’를 획득하였습니다. ]

[ ‘탑의 역사를 기억하는 나무의 잔해’를 획득하였습니다. ]

.

.

.


황금빛 실이 모여든 양털에 손을 가져다 대자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안내창과 함께 갈색 종이가 손에 잡혔다.


예로부터 인간들 사이에서는 잠이 오지 않을 때 양을 세고는 했다.

그것이 외국에서 잠을 뜻하는 sleep과 양을 뜻하는 sheep 이라는 단어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인간사에 관심이 많은 에스프레소가 탑의 신이라면 분명 이러한 점도 반영했을 것이라는 짐작대로였다.


“생각보다 금방 깨달았네.”


열매를 맺듯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나무의 잔해들을 줍고 있자니 뒷짐을 쥔 소년이 천천히 걸어왔다.


저런 모습을 보면 소년이 아니라 할아버지 같다.


“마음 같아서는 형에게 더 알려주고 싶은 게 많은데...”

“뭔가를 알려주고 있긴 했던 거야?”


내 질문에 소년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건 본인이 깨달았을 때 알 수 있는 거야.”

“네네...”


그렇지. 어떤 스승도 제자에게 직접 알려주지 않는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아닌가.


“아무튼...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형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네.”


소년의 시선이 나를 떠나서 탑의 입구로 향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모르는 새 탑에서 지냈지만 체감상 못해도 한 달 가까이는 이곳에 있었던 것 같다.


“흠...”


턱을 만져 봐도 수염은 없었다.

오랫동안 씻지 않았음에도 몸에서 냄새가 나지도 않았다.


이 또한 이 녀석과 함께 탑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가.


“보통은 내 시간을 길게 해주고 밖의 시간은 짧게 해주지 않아?”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이 공간에 가서 수련을 할 때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밖에서는 찰나의 순간밖에 되지 않는 장면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어째 반대로 해주는 것 같아서 물어보니 잠시 뜸을 드리듯 허공을 바라보던 녀석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 이제는 인간이 지저분해지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도 맡고 싶지도 않아서 말이야.”


이제는 꽤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지만 쉽게 말해서 더럽고 냄새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 대신 처리해줬다는 것 아닌가.


“인간이 그렇지 뭐...”

“그 정도인 줄은 몰랐지.”


며칠 간 같이 지내면서 느낀 건 이 녀석은 나름 “신”이라는 존재였기 때문에 인간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내가 저 녀석을 이해하기보다는 인간이란 그런 것이라는 걸 이해를 시키는 편이 빨랐다.


아니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해를 시킬 필요도 없었지만 한 번씩 체념하듯 ‘인간이 그렇지 뭐’ 하고 말하게 되었다.


“밖에서 하도 형을 기다리고 있어서 당장이라도 내보내줘야 하지만 아직 한 가지 남았어.”


에스프레소는 뭔지 알겠냐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응.”


만들 재료도 구했고, 레시피를 적을 양피지도 구했다.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레시피 개발뿐이었다.


“궁극적으로 형이 원하는 것을 떠올려.”


녀석은 자신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그것뿐이라고 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를 따라 나도 눈을 감으니 얕은 바람의 느낌이 났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녀석의 주방에 서있었다.

홀로.


+++


“대표님.”

“응.”

“아저씨는 언제 와요? 레시피 개발 이랬나. 탑에 들어간 사람이 지금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도 왜 안 나오는 거예요?”

“글쎄...”


조급하다는 듯이 다리를 떨며 물어보는 미혜를 보며 로운은 그저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도 미혜 못지않게 초초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말은 해줄 수 없었다.

이전에도 한 번 탑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이전에 아저씨... 이런 적이 또 있었죠? 그게 얼마 전 같은데.”

“지혁씨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는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지혁에게 실망하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 서로의 정보를 교류하자고 했지만 그 자리에서도 지혁은 모든 것을 얘기하지는 않은 듯 했다.


물론 그 이상의 것을 알려주었다고 해서 자신이 그걸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다.

이전 회의에서 알게 된 것들만 해도 조금 버거웠으니까 말이다.


“그쵸... 아저씨는 뭔가 좀...”


미혜는 지혁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과 같은 비능력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마법진에서 살아나갈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능력이 없었어도 특별한 사람이었어요.”


능력도 없는 사람이 마법진 내에서 능력자에게 해코지를 당할 뻔한 다른 비능력자를 구하려고 했고, 끝내 구해냈다.


능력이 없더라도, 그 마음 자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자신에게 능력이 생기고 지혁이 능력자라는 사실을 안 이후에도 왠지 연약해 보이는 지혁을 보며 자신이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저씨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 대표님도 처음 만났죠.”

“그... 그 얘기는 ... 그때는 죄송했어요. 제가 좀 안일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이야기만 하면 자신도 모르게 공손해지는 로운이었다.

로운에게 있어서 그때의 일은 인생을 통틀어서 최고의 흑역사였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특히 요즘의 자신이라면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그때는 왜 그랬는지 로운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저 미안한 마음만을 가지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는 다 잊었고. 결국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네요.”

“그러게...”


로운과 미혜는 나란히 앉아서 건물이 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옛 추억에 잠겼다.


지상에선 몬스터가 사라지고, 지혁은 탑으로 사라졌던 그날 뒤로 4주가 지났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살아남기 위해 꿈틀거렸고, 탑에서 구해온 재료들로 거처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잡은 뒤 얻은 고기와 채집해온 식물로 배를 채웠으며, 탑에서 구해온 불로 불을 지폈고, 각종 재료들을 엮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전투에는 유용하지 않아 싸우지 않던 능력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살려 일상 회복을 위해 힘썼다.


느리지만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인간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회복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줄었죠?”

“응...”


그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벙커로 사람들을 피신시키기 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벙커 내에서 몬스터가 나타나면서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지금도 탑에서 가져오는 재료들로 넉넉하게 감당할 수 없는 수였지만 이전의 인구수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줄었다.


“우리가 원하는 이전의 세계는... 다시 돌아올까요?”


미혜는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만 두었던 말을 꺼냈다.


“글쎄...”


로운은 이번 질문에도 답해줄 수 없었다.

확신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이제는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아무리 몬스터가 사라져도, 건물을 새로 지어도 죽은 사람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신의 생각을 더더욱 입에 담을 수 없는 로운이었다.


“이제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 세계를 멈추는 걸... 목표로 삼아야지.”


무력하게 변화하는 세계에 이끌렸다.

저항했고,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도 같은데 아무 소용도 없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댐을 양손으로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쏟아지는 물결에 휩쓸려가게 될 것이다.

손으로 가려서 해결되지 않는 거대한 문제를 마주하게 될 때.


인간은 강한 무력함을 느끼게 된다.


“멈춘다라... 나는 이 세계에 적응해볼래요.”


로운의 고개가 휙- 하고 미혜를 향해 돌아갔다.

지금까지 로운은 미혜가 긍정적이며 활기차며 문제를 마주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얼마 전까지 이 아이가 보여주었던 모습이 로운의 생각과는 달랐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사람이라면 가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 있는 미혜의 표정은 진지했으며 이미 생각을 끝낸 모습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쏟아진 물이에요. 되돌아 갈 수 없어요. 그렇다면 적응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로운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말하는 미혜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긴다라...”


로운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이전에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도 같았지만 로운의 삶을 굳이 말하자면 ‘피할 수 없다면 견뎌라’ 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마 이제 모두가 그렇게 될 거예요. 각자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결국은 하나 둘 이 세계에 적응해 갈 거고. 지금까지도 적응의 시간이었으니까요.”

“맞는 말이네.”


그랬다. 이 세계를 끝내겠다고 말하며 나아가던 로운도 그의 누이도, 아버지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결국은 몬스터가 나타나고 위험이 코앞에 있는 이 상황에 적응했다.


예전의 그들이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들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아. 슬슬 아저씨가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지혁 씨가 언제 온다고 말하고 갔던 건가요?”

“아뇨.”


미혜는 금방이라도 언덕을 넘어서 지혁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는 듯이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냥... 그냥 항상 이 무렵쯤이면 나타났어요. 모두가 포기할 쯤에. 대체 어디 가서 돌아오지 않는 거지? 당신이 필요하다고요! 하고 생각할 쯤에 말이에요.”

“...”


성대모사를 하듯이 말하는 미혜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성대모사에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로운은 모르지 않았다.


“아! 아저씨!”


벌떡 일어난 미혜가 언덕을 향해 뛰어갔다.

미혜의 말대로 몇 주 전 탑으로 떠났던 모습 그대로 지혁이 나타났다.


“왜 이제야 와요!”

“말했잖아. 레시피 개발하겠다고.”

“그래서 잘 만들었어요?”


그 동안 지혁을 기다렸던 모습은 사실 연기였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물어보는 미혜의 모습에 로운은 얕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번엔 무슨 커피에요?”

“음... 너... 먼치킨이라고 들어봤어?”

“먼치킨이요? 그건 치킨 아니에요?”

“...”


지혁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표정을 풀었다.

고아원에서 자란 미혜에게 판타지 게임이나 소설은 낯선 분야일 수 있었다.

게다가 그런 쪽으로는 관심도 없어보였으니 더더욱 모를 터였다.


“판타지 소설에서 아주아주 강한 존재를 ‘먼치킨’이라고 해.”

“아주아주 강한 존재...?”

“그래. 너도 나도.”


지혁의 시선이 로운을 향했다.


“로운 씨도. 가질 수 있는 아주 강한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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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2) 24.01.19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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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차갑지만 뜨거운(1) 24.01.12 18 0 11쪽
142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3) 24.01.10 14 0 11쪽
141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2) 24.01.08 16 0 11쪽
140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1) 24.01.05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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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잠들지 못한(4) 23.12.29 15 0 11쪽
136 잠들지 못한(3) 23.12.27 14 0 12쪽
135 잠들지 못한(2) 23.12.25 18 0 12쪽
134 잠들지 못한(1) 23.12.22 22 0 11쪽
»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4) 23.12.20 34 0 11쪽
132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3) 23.12.18 2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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