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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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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96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1.22 09:00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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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2쪽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3)

DUMMY

“이거 설마. 설마!”


미혜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마도.”


이곳은 꿈 속 세계. 그것도 탑에서 만들어진 세계다.

그렇다면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암석의 주인은 함께 탑에 들어왔던 사람 중에 있으리라.


지금 우리에게 없으며,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선...!”


보통 이런 상황에서 영웅이라면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목소리에 맞춰 등장했겠지만 우리의 석 씨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되지 못했다.


미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닥이 갈라지더니 바위가 솟아났다.


이렇게 큰 구멍이 두 개나 뚫려버리면 이 오두막은 무너져 버리는 게 아닐까.


“형! 무사했구나!”


제천의 부름에 우리를 바라본 석 씨는 왜 우리가 여기 있냐고 묻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답지 않게 꽤나 역동적인 표정이다.


“일단 로운 씨를 깨워야 해요.”

“...”


석 씨의 시선이 로운을 향했다.

이번에 로운은 화가 났는지 그린 듯 매끄러운 눈썹이 불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


석 씨가 로운을 향해 조용히 다가갔다.

우리와 같은 것이 보았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얼어붙은 바닥이 그가 한 걸음 씩 내디딜 때마다 부서졌다.

신경 쓰지 않은 듯 했지만 그의 다리 주변으로 황금색 실빛이 모여들었다.


한 걸음을 사이에 둔 석 씨는 뭐라고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누군가 말릴 틈도 없이 로운의 뺨을 내리쳤다.

로운의 고개가 힘없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헉!”


옆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오우...”


그와 상반되게 흥미롭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정신 차리라고!”


석 씨의 고함 소리가 얼어붙은 공기를 가르며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항상 말했잖아. 이미 일어난 일들이야. 하나 씩 해결하면 돼.”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열성적으로 말하는 그와는 반대로 로운의 입은 조용히 움직일 뿐이었다.

석 씨가 그걸 알아듣고 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 건진 알 수 없었다.


“외면하지 마. 회피하지 마. 네가 도망가 버리면 네가 짊어지고 있던 책임들은 너를 따른 애들의 것이 된다.”


멀리서 듣는 나까지도 정신이 퍼뜩 들었다.


누군가의 무의식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을 판단하기 훨씬 수월해진다.


정상적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나무 위로 도망친 사람.

기억이 사진으로 남은 사람.

이상할 정도로 거대한 창을 두고 밖을 보던 사람.


지금 고개가 돌아가 버린 남자는 자신의 한계에 닿아 도망쳤다.

그간 계속 도망치고 싶었지만 과거의 기억과 책임에 묶여 참고 참았던 걸까.


그런 사람에게 석 씨의 말이 너무 매정하게 들렸다.


“대표님... 저기...”


승우가 내 소매를 당겨 어딘가를 가리켰다.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돌아가 있는 로운의 고개 끝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운다...”


다 큰 성인이 우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더라...


“...”


단호하게 말을 이어가던 석 씨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함께 회사를 운영해가며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 많은 대화가 있고,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었던 존재가 아니었을까.


조용히 몇 방울 눈물을 떨군 로운이 돌아갔던 고개를 바로 했다.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붉게 부어올라 있는 뺨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언제나 그렇게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던 건가.


고개를 든 로운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이전까지 들리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것 참...”


부드럽고 낮게 웃는 살짝은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창피하네요.”


잠꼬대를 들킨 사람마냥 머쓱하게 웃는 로운의 주변으로 얼어 있던 바닥이 빠른 속도로 녹아갔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했다.


얼음은 녹으면서 부피가 줄어든다.

그렇다는 건 나무로 된 이 오두막을 꿰뚫었던 얼음이 단 시간에 줄어들게 된다.


이미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 난 이곳에 균열이 생긴다.


“여기 곧 무너집니다.”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을 이루고 있던 나무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아래를 바라보니 우리가 올라왔던 끝없던 계단은 없었다.

그곳에는 아주 깊은 어둠만이 있었다.


+++


허억!


갑자기 몸의 중심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감각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던 서늘함과 함께 숨이 턱하고 막힌 충격으로 일어난 듯 싶었다.


주변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잘 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얘 깨워도 돼요?”


미혜가 금방이라도 깨우겠다는 듯이 발을 들고는 고서우의 옆에 서 있었다.


그의 능력이 있다면 떨어지는 충격을 완화하여 우리처럼 잠에서 깰 정도의 타격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든가.”


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을 무작정 깨우자고 했던 의견을 고수했던 만큼 그를 깨우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게 업보라는 거겠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언가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고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엄마 5분만 더...”


그 말에 더 열이 받았는지 미혜는 발길질을 멈추고 녀석의 좌우 옆구리를 잡고 꼬집었다.


어우... 아프겠다.


“우음...”


그렇게 고서우가 일어난 것은 그의 몸 곳곳에 붉은 반점이 생긴 이후였다.


“여기... 모기도 있어요? 왤캐 간지럽지? 아니 아픈 건가.”


붉게 부어오른 부분을 문지르며 일어난 고서우는 꿈속...


어라...


무언가... 기억이 날 듯 나지 않는다.


분명 꿈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봤던 것도 같은데, 꿈속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다른 것도 같은데 얼굴은 선명하게 기억났다.


“왜요? 왜 그렇게 봐요. 부끄럽게.”


팔을 문지르고 있던 녀석이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군요.”

“뭐에요. 저도 일단은 사람이라고요.”


그렇지. 그래. 일단은 사람이지. 아니 그것보다 뭔가 다른 걸 본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꿈은 꿈이라는 거지.”


평소 꿈을 꾸고 나서 잘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체 꿈을 잘 꾸지 않는 편이라 그런가 기억이 뚜렷하지 않았다.


“아저씨 뭔가 똥 싸다 끊고 나온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뭔가... 비슷할 지도...”

“진짜? 화장실 가야 하는 거 아녜요?”


농담이라는 듯이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미혜.


“미혜 너는 뭔가 기억나는 게 있어?”

“네?”


내 말에 미혜는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묻더니 이내 고민하듯 허공을 바라봤다.


“음.. 드문드문이긴 한데 기억이 나기는 해요. 음...”


그렇게 말하며 미혜는 해죽 웃었다.

뭔데. 무슨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건데.


“그래서 아저씨는 기억나지 않으신다고요? 뭔가 궁금한 게 있으세요? 다 얘기해주기에는 엄청 길었어서.”

“아니 별건 아니고. 쟤...”


내가 뒤에서 아직 잠이 덜 깬 듯 다시 졸고 있는 고서우를 가리켰다.


“어... 뭐 평소처럼 얄밉긴 했지만. 별다른 것 없었는데... 음... 평소보다 조금 더 시니컬했어요. 아마도? 유난히 많이 싸운 것도 같고.”


말을 들으니 미혜와 녀석이 신나게 싸웠던 것도 같지만 이 찝찝하게 남은 감각을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어딘가 후련하게 긁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감각이 남았다.


“아으... 머리야.”


고서우처럼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던 제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 둘... 셋... ”


음. 열 명.


“딱 맞네요.”


사람 수를 확인하니 다들 무사히 깨어난 것 같았다.


“몇 명이라고요?”


고서우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되물었다.


“열 명. 맞지 않나? 하나 둘...”


다시 세어도 열 명이었다.


“선배님. 이런 말 될지 모르겠지만 정신 차려요.”

“응?”

“우리 아홉 명이잖아요.”

“어...?”


나와 이 녀석, 미혜와 제천, 석 씨와 나래 씨, 로운과 승주, 승우까지...


확실히 아홉 명이 맞는데...왜 열 명으로 셌지?


“애초에 열 명이 있어요?”


나는 다시 한 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셌다.


일단 나와 고서우, 미혜와 소원, 석 씨와 로운, 나래 씨와 제천, 승주와 승우...


“뭐지?”



“형!!!”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천의 목소리가 벽을 울리며 퍼져나갔다.


“예찬 오빠...?”


석 씨와 나래 씨도 제천을 따라 뛰어갔다.

우리는 통로의 끝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세 사람이 뛰어간 곳은 몇 번째 인지 모를 구간이었다.


“호환 형...”


로운도 누군가 발견한 듯이 빠른 걸음으로 세 사람의 뒤를 따랐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요.?”


뛰어가는 사람들은 막을 새도 없이 우리의 곁에서 멀어져 갔다.

옆에 선 고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그리고 그런 우리 곁으로 다가온 미혜가 사색이 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응?”

“그... 저... 나는. 나는 여기가 제대로 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저렇게 가진 않을 건데.”


말을 더듬고 있는 미혜가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봐왔지만 꽤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것 같은 얼굴이 있었다.


“소원...아.”


소원이 싱긋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환한 미소도, 아담한 체구도, 언제라도 우리를 반겨줄 것 같은 따스함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소원을 찾지 못했다.

이곳에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그래...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이상행동을 하니까 저게 진짜 소원이 아니라는 거지.”


나는 눈만 움직여 소원을 확인한 후 다시 미혜를 바라봤다.

미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대표님... 혹시 저희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는 걸까요?”


무서운지 주변을 둘러보며 승주의 팔짱을 꼭 쥐고 있는 승우와 겁에 질린 얼굴로 그런 동생을 챙기는 승주.


“저희가 귀신은 좀... 무섭거든요.”

“아...”


하긴 어린 애들은 귀신을 무서워할 만도 하다.


“귀신은... 못 때리잖아요.”

“아!”


그렇구나. 그게 문제였구나!


“귀신은 아니고... 흠...”


이게 무슨 현상일까 고민한 끝에 나올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환각이 아닐까 싶네요. 그것도 질 나쁜.”


지금 저기로 뛰어간 사람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탑에서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고서우도 쌍둥이들도 다른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 거겠지.


그 순간 눈앞에 한 안내창이 나타났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여왕의 침실에 진입하였습니다.]


“...보스... 라는 건가?”


60층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는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여왕’.


그저 추측이겠지만 이번 층의 보스는 인간의 기억이나, 무의식에 대해 꿈을 통해 관여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꽤나 곤란하다.


가장 위에 있는 안내창을 끄자 또 다른 안내창이 나타났다.


미처 끄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안내창을 본 거겠지.


가장 밑에 있던 안내창에는 방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나타났다.


[깊은 잠을 자는 여왕의 기나긴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방금 영향으로 여왕이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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