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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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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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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22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2.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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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1)

DUMMY

소원의 이야기가 끝나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제천을 나래 씨와 석 씨가 데리고 나갔다.


“저 셋은 사이가 좋네요.”


그렇게 말하는 미혜의 목소리에서 어딘가 아쉬운 기색이 느껴졌다.


“이렇게 된 세계에서 어쨌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왔잖아.”

“...”

“때로는 그 사이에 낄 수 없는 날도 있는 거야.”


애초에 셋에게는 홍 예찬이라는 사람의 존재가 중심축이 되어주고 있다.


그러니 그를 모르는 우리가 낄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도 바람이나 쐬야겠다.”

“그럼 저는 저쪽 일이나 도와줘야겠어요.”


미혜는 한 편에서 물건을 나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 쓴 웃음이 나왔다.


미혜는 알까.

자신과 나 사이에도 남들이 끼지 못하는 그런 순간이 있다는 걸.


“사람 간의 관계란게 다 그런거지... 승주는 계속 여기 있을 거지?”

“네!”


승우의 곁에 앉아 있던 승주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승주 또한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생각을 정리중인 모양이었다.


“저...대표님!”

“응?”

“그게...”


우물쭈물 거리며 바닥만 보고 있던 승주가 고개를 들었다.


“대표님에게 저희는 어떤 존재에요?”

“어... 너한테 그런 질문을 듣다니 의외인데.”

“앗... 죄송합니다!”

“아니. 뭐 죄송할 건 없고... 어떤 존재라...”


승주가 저런 걸 신경 쓰는 모양인줄은 몰랐다.

생각은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물어볼 것 같지는 않은 이미지였으니까.


아니면 이 또한 그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걸지도...


“소중한... 존재지.”

“소중한... 이군요.”


다시 바닥을 바라보는 승주는 풀죽은 강아지같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흔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너희와 우리 회사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뭐든... 이군요...”

“그래.”


그래. 모두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


그게 비록 내 미래는 사라지는 선택일지라도.


“나는 그럼 바람 좀 쐬고 올게. 누가 찾으면 금방 온다고 전해줘.”

“네! 다녀오세요.”


나는 임시로 지은 건물을 떠나 천천히 걸었다.


능력이 생기기 전의 인간이었다면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단 몇 주 만에 이룰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설프고, 투박하더라도 추운 밤의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벽을 세워 집을 만들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을을 구성할 수 있었다.


한 편에서는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당장 고기를 구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굶을 죽을 만큼 위급한 상황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물을 만들어 냈고, 누군가는 불을 만들어냈다.

한 쪽에서 식물을 자라게 했으며, 다른 한 쪽에서는 집을 쌓아갔다.


지금의 인간은 이전에 자연의 힘을 빌려 살아가던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의 인간은 자연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는 걸지도...”


조금 더 걷자 그마저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게 지금까지 주어졌던 시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여기까지구나.”


뒤로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앞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하나 있다.

익숙한 뒤통수가 하나 있었다.


“서우 씨. 여기서 뭐해요?”

“아. 선배님.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나는 고서우의 곁에 앉았다.

의외네... 시간을 내서 따로 생각도 하고.


“선배도 저 별로 안 좋아하죠?”

“네?”


뭔가 고서우라면 하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이 있다면 그 중 하나가 저 질문이리라.


이전같았다면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아도 속으로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흠...”


고민을 하고 있자니 옆에서 고서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고민이라도 해주셔서.”


진심으로 기쁜지 웃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는 은은한 화색이 돌았다.


그 얼굴을 보니 어쩐지 어떤 기억이 떠오를 듯 말듯하며 머리를 간질였다.


희미한 기억 속에 고서우는 지금보다 조금 어려 보였고, 선이 더 가늘었다.


교복을 입고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내가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애초에 교복을 입은 고서우를 볼 일이 있었나.


“다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주기를 바란 적은 없어요.”

“그래 보여요.”


이 녀석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미혜가 다이어트를 위해 채식만 한다는 것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싫어하는 것도 아무래도 상관없었어요.”

“그것도 알고 있어요.”

“...”


앞을 보며 혼잣말을 하듯이 말을 하고 있던 고서우가 내 대답에 놀랐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너머로 점차 저물어가고 있는 해가 보였다.


“그런데 왜인지... 조금은 예쁨 받고 싶어졌어요.”

“그건 정말... 의왼데요?”


이번 대답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랫입술이 삐쭉 튀어나왔다.


“저도 일단 사람인걸요...”

“흐음...”


나도 모르게 그간의 행적들이 떠올랐다.


“뭐... 좀... 알아요. 저도 제가 좀... 어딘가 빠져있다는걸. 그게 인간성이든 감정이든... 둔하기는 해요.”

“흐으음...”


상대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저 들어주는 것 밖에는...


“그래도 로운컴퍼니 사람들에게는 잘 해주고 싶은데... 그러려고 마음먹었는데.”


차분하게 말하고 있는 고서우의 목소리는 작아지기는 했지만 확실히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모어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

“선배님은 에스프레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세요?”


뭔가 다른 사람 입에서 녀석의 이름을 듣고 있자니 낯선 기분이 들었다.


“음... 탑의 신이라고 들었어요. 인간들의 차를 좋아하고. 탑을 관리하고...”

“선배는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본 적 있어요?”

“뭘요?”

“그 둘이 진짜 신인가에 대해서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그런 거 본 적 없어요? 소설이나 영화 같은 거 보면 인간이 신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없다거나, 직접 볼 수 없다거나 하는 거요.”

“아...”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에게 직접 이름도 듣고, 같이 차도 마시고, 잠도 자고...


만약 의식하지 않았다면 신이라는 사실 조차 가끔은... 정말 가끔 잊어버리고는 한다.


“다른 신들에 비해 조금 불완전한 구석이 많아요.”

“불완전한 구석이요?”

“네. 스모어도 탑의 신이에요. 탑을 관리하고... 그런데... 탑에 신이 둘이나 필요한 걸까요?”

“뭐... 탑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 아닐까요?”

“흠...”


고서우는 잠시 생각을 하듯 입을 다물었다.

완전히 저문 하늘엔 어둠이 차올랐고, 이변 이후 선명해진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쩌면 말이에요.”


자신이 정말 해도 될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다문 녀석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스모어도, 에스프레소도 반쪽짜리 신이 아닐까요?”

“반 쪽...짜리 신?”


그런 생각은 해본적도 없었다.


결국은 고서우의 말대로 반쪽짜리라고 하더라도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는 저 별만큼이나 아득히 먼 존재니까.

의문이 들어도 체감은 하지 못했으리라.


“제 기억의 일부에는 스모어가 있어요. 스모어가 본 거, 말한 거, 들은 것들이 조각조각 섞여 있어서 때로는 혼란스러워요.”


동의를 구하는 것 같은 녀석의 눈빛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스모어가 어떤 짓을 하고 다니는지... 조금은 알고 있었어요. 몰라도 본능이 알고 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그 소원씨...처럼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까.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 거예요.”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것을 내뱉는 것인지 녀석의 말은 높낮이도, 강약도 없이 일정한 속도로 이어졌다.


“근데 이제 저랑 스모어는 끊을 수가 없어요. 끊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하늘을 바라보며 던진 질문은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스모어의 기억이 저에게 있다는 것은. 스모어 또한 저를 통해 선배나,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나는 말을 끊고 신이 인간의 사생활을 보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오히려 스모어가 가진 기억의 일부를 고서우가 알고 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어쩌면 이게... 저번에 그 검은 여자가 말했던 ‘신의 대리인’인가 뭔가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하여튼 그래서 결론을 냈어요.”


고서우는 어딘가 길게 뛰어 넘은 것 같은 말을 했다.


“제가 탑에 들어가 스파이가 되겠어요.”


왜 잘 나가다가 결론이 이렇게 나는 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알 리가 없는 녀석은 당장이라도 탑까지 달려가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 잠깐만... 서우 씨. 침착하게 생각해봐.”

“뭐를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려다보는 녀석.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과 눈높이를 맞췄다.


“신이 인간을 바라보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에요. 에스프레소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물론 다른 사람들은 직접 대화를 나누지는 않으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응?”


“다른 신들은 인간들 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아요. 알아도 그걸 이용하진 않아요. 고작 인간들의 일이니까.”


“...”


“하지만 스모어는 적극적으로 이용할 거예요. 그게 스모어가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 필요할 테니까요.”

“스모어가 원한다는 건...”


내 질문에 고서우는 정말 모르냐는 듯이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소원 씨가 말했잖아요.”

“소원이... 말한?”

“새로운 인류. 스모어는 몬스터를 새로운 인류로 내세우고 싶어 해요.”


그러니 그걸 막으려고 하는 모든 인간들의 동선을 파악해서 방해하겠다는 건가.


“그러니 저는 어쨌거나 여러분들과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위험해요.”


정말 오늘은 고서우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많이 듣고 있는 기분이다.


“그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고서우!”


마지막 인사 같은 말을 하면서 뒤를 도는 녀석을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놓치면 정말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어디선가 코를 찌르는 단내가 느껴졌다.

녀석이 지켜보고 있다.


아니... 내 뒤에서는 또 다른 향도 느껴졌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내 뒤에 서서 내가 할 다음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존재가 어쩐지 고서우를 잡으라고만 하는 것 같았다.


“고서우!”


다시 한 번 불러도 녀석은 돌아보지 않았다.

뒤늦게 뒤따라갔지만 발이 얼마나 빠른지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뛰는 나와 걷는 고서우 사이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고서우와 나 사이에 빽빽하게 차있는 황금색 빛.

내가 따라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녀석의 의사이리라.


어차피 뛰어도 따라잡지 못할 바에 뛰는 것을 멈추고 배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서우야!!”


소리가 고서우에게 닿는 길을 따라 빛이 갈라지며 허공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간 반응하지 않았던 고서우의 고개가 뒤를 돌아봤다.

돌아본 얼굴에는 다른 무엇도 아닌 놀란 사람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서우야. 같이 탑에 오르자. 진심이야.”


다시 한 번 힘을 다해 외치자 사라져 가던 놀라움이 다시 고서우의 얼굴을 덮쳤다.


“흠. 선배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녀석이 한걸음에 내 앞에 나타났다.


아직 추운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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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오류의탑(4) 24.02.09 17 0 9쪽
154 오류의탑(3) 24.02.07 19 0 11쪽
153 오류의 탑(2) 24.02.05 16 0 12쪽
152 오류의 탑 (1) 24.02.02 17 0 14쪽
151 검은 나비(4) 24.01.31 15 0 11쪽
150 검은 나비(3) 24.01.29 19 0 12쪽
149 검은 나비(2) 24.01.26 18 0 11쪽
148 검은 나비(1) 24.01.24 22 0 12쪽
147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3) 24.01.22 21 0 12쪽
146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2) 24.01.19 18 0 11쪽
145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1) 24.01.17 17 0 12쪽
144 차갑지만 뜨거운(2) 24.01.15 18 0 11쪽
143 차갑지만 뜨거운(1) 24.01.12 20 0 11쪽
142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3) 24.01.10 15 0 11쪽
141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2) 24.01.08 19 0 11쪽
140 카페인은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1) 24.01.05 20 0 12쪽
139 잠들지 못한(6) 24.01.03 17 0 11쪽
138 잠들지 못한(5) 24.01.01 20 0 11쪽
137 잠들지 못한(4) 23.12.29 16 0 11쪽
136 잠들지 못한(3) 23.12.27 15 0 12쪽
135 잠들지 못한(2) 23.12.25 18 0 12쪽
134 잠들지 못한(1) 23.12.22 24 0 11쪽
133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4) 23.12.20 34 0 11쪽
132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3) 23.12.18 24 0 12쪽
131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2) 23.12.14 2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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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의심(3) 23.12.08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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