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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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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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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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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299화

DUMMY

“어떻게······. 알았소······.”


한 참의는 자신이 말하고도 참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답변이 충분히 예상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나와 나리 앞에서 유언장을 고치셨다. 우리가 한사코 말렸는데도 말이다.”


“한사코 말려?”


누이의 대답에 한 참의가 눈썹을 까닥인다.


“부추긴건 아니고?”


“내가 뭣하러 그러겠느냐? 나나 나리나 종법에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셨어. 사당을 놈들에게 팔아먹겠다는 네가 제삿상을 차려줄 리도 없고, 차려준다 하더라도 흠향하지 않을 거라고 하시며 말이다. 워낙 완고하셔서 다음 날 설득하려고 하였는데, 너도 아는 그 일이 일어났지. 이후 출소해서 보니 재산은 다 너에게 가 있으니 어찌 된 일인지는 뻔하지 아니하였겠느냐?”


그 지적에 한 참의는 잠시 침묵하다, 눈을 부라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요?”


그의 입에서 격양된 소리가 계속 터져나온다.


“그럼 내가 어찌해야 했겠소? 내게 정당히 돌아와야 할 권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찌해야 했겠소? 아버지가 순간 감정에 치우쳐 비이성적으로 내린 판단이었소! 그걸 바로잡는게 뭐가 잘못되었소?”


물론 그 말에 한 여사는 냉소를 내비친다.


“하! 그리 당당하다면 지금이 아니라 그때 말했어야 하지 않겠느냐? 본디 장남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이유는 장남이 제사를 지내고 사당을 정비할 의무가 있기에 그러는 것이니라. 그런데 그러지 아니하면서도 장남으로서 재산을 물려받길 원했다니 그거야말로 언어도단이 아니더냐? 의무를 포기하고도 권리를 원하다니 그거야 말로 도둑놈 심보 아니더냐?”


“그래서? 그럼 그 재산 지금 돌려달라기라도 하라는 거요?”


“고작 그런 말 할 거면 출소하자마자 자넬 찾아왔을 걸세.”


오 진사가 끼어든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 유산에는 관심도 없었고 장인어른께서 우리에게 유산을 분배하기로 한 것도 그때 처음 알았었네. 지금도 자네가 유산을 독점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우리 몫 돌려달라고 할 생각도 없네. 난 우리 집 재산 물려받은지 오래고 자네 말마따나 난 오씨고 한씨가 아니니.”


“거짓말 마시오! 사람은 다 똑같아! 다 욕망덩어리라고! 그럴싸한 명분은 자신의 욕망을 감추기 위한 위선에 불과해! 유산에 관심이 없었다고? 헛소리 마시오! 그걸 차지하고 싶으면서 아닌 척 하지 마시오!”


“세상 사람들이 다 너같은 줄 아느냐!”


한 여사가 다시 버럭 고함을 지른다.


“대의를 위해 재산은 물론이고 한 몸을 바칠 각오로 고난의 길을 걷는 자들이 한둘이더냐?”


“그 망할 놈의 독립운동? 그것도 다 명성을 얻고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그러며 위선떠는 것인 줄 모를 줄 아오?”


“어떤 자가 그런 걸 얻기 위해 고문과 죽음을 감수하더냐? 지사들이 그런 걸 얻으려면 적에게 굴복하는 게 더 빠른 길인데 왜 그 길을 가려 하겠느냐? 네 딸도 그 길을 가고 있느니!”


“뭐요?”


한 참의의 숨이 잠깐 멈췄다. 주리 생각을 한 순간 차오르는 분노에 잠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걸 누님이 어찌 아오!”


“아. 이제 와서 밝히마. 작년 말에 그 아이가 요양왔을 때 만났다. 내가 그 아이를 투쟁의 길로 나아가게 하였노라! 다 보여주었노라! 네가 고을을 어떻게 망쳐 놓았는지, 네가 얼마나 고을 사람들에게 증오받고 있는지 말이다!”


“뭐······. 뭐요!”


이제야 한 참의는 왜 딸이 요양에서 돌아오자마자 4개월 가까이 우울증 증세를 보였는지 깨달았다. 이는 성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그게 다 형님 때문이었던 거에요?”


남편과 올케의 무시무시한 싸움에 기를 못펴고 눈물만 흘리던 성 여사가 간만에 목소리를 낸다.


“걔가······. 걔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데요! 맨날 울고 밥도 제대로 못먹어 야위어 갔는데! 그게 다 형님 때문이었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성 여사의 말에 명백한 힐난의 뜻이 담겨 있다. 그 말에 한 여사는 처음으로 강경한 태도를 굽힌다.


“그건 지금도 미안하고 후회하는 일일세. 내가 그때 그 아이가 상처받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감정만 생각했었어. 더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던 것을······.”


그러나 후회의 뜻을 드러냈던 한 여사의 목소리에는 다시 힘이 실린다.


“허나 주리는 내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은 상처를 극복하고 자기 짝도 찾아 가시밭길로 가길 자처하였네. 그러니······.”


그러나 한 여사의 목소리는 동생의 고함에 묻힌다.


“그래! 이게 다 누님 때문이었어! 내 딸이 날 배신하게 만들고 그 망할 가짜백작 놈팽이에게 넘어가게 만든 게 다 누님 때문이었다고! 나가! 내 집에서 당장 나가! 가족도 아니고 원수야!”


“이놈아! 나는······..”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니까!”


한 참의의 열화와 같은 고성에 한 여사가 입을 열 기회를 잃는다. 한 참의의 분노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다 저들 때문이었다. 저들이 그렇게 착하고 말 잘듣던 딸을 아버지 뒤통수나 치는 아이로 만들었다. 저것들은 원수다! 나를 해치고 괴롭히려는 원수다!


오 진사가 처남의 입이 씩씩거리며 잠시 닫힌 사이 대화를 시도한다.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하겠네. 아직 처남은······.”


그러나 한 참의는 완강히 대화를 거부한다.


“나가라니까! 내 말 안들려!”


“기회가 있네! 내 어리석은 아들놈은 기회가 있어도 걷어찰 놈이어서 그렇게 되었지만, 난 처남은 다르다고 보네!”


“나가! 당장!”


“처남은 아직 부끄러움이 뭔지 알고 있어! 그래서 그렇게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려 열심히지 않는가!”


“나가! 이 새끼야! 안나가면 죽여버리겠어!”


이제 욕설까지 입에 담기자 오 진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격분한 한 여사가 뭐라 쏘아 붙일 려던 걸 저지한 오 진사는 결국 발길을 돌린다.


“다시 오겠네. 자네 머리가 식으면 그때 더 얘기하지.”


“오지 마! 오면 진짜 죽여버린다고!”


결국 오 진사는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끌며 부인과 함께 문 밖을 나서버렸다. 한 참의는 분을 참지 못하고 허공에 주먹을 휘둘러대고 성 여사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라고 한탄하며 통곡한다.


그날 밤, 분노에 휩싸이다가 체력소모 끝에 쓰러지듯이 잠든 한 참의는 악몽을 꾸었다. 12년 만에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그에게 보여준 마지막 모습의 날처럼, 분노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한 참의는 그런 아버지를 향해 소리질렀다.


그만 좀 노려봐요!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겠다는 데 왜 계속 간섭이에요! 내가 그렇게 죽을 짓을 했습니까? 지금 떵떵거리는 사람들 다 그렇게 삽니다! 나보다 더한 놈들 수도 없이 많다고요! 나라 팔아먹어도 떵떵거리며 사는 놈들이 한둘입니까? 왜 그 망할 놈의 반가의 의무 때문에 나는 그렇게 살지 말란 겁니까! 왜!


그 순간, “이놈 잠꼬대 한번 시끄럽네!”라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때 눈이 확 떠졌다. 이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그러나 자신과 아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밤의 어둠을 촛불 하나가 밝히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시꺼먼 사람그림자 여럿이 누워있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보······.. 여보······.”


잠이 들기 전에 훌쩍거리던 게 기억나던 성 여사는 이제 벌벌 떨고 있었다. 한 참의의 등줄기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이들은 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 나, 이 부르주아 새끼야. 빨리 현금 어디 있는지 말해!”


위협적인 목소리가 이 사내들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하나같이 복면을 쓰고 있었다. 한 참의는 상황을 완전히 파악했다. 그의 집에 강도들이 떼로 들어온 것이다. 회사 상황이 위태로워지자, 한 참의는 식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고용인들에게 무급휴가를 주며 집에서 내보냈었다. 그 때문에 이 큼지막한 집에는 골방에서 자는 식모를 빼면 그들 부부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부촌인 혜화동을 털러 시도할 만큼 과감한 강도들의 목표가 되어 달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한 참의의 떨리는 목소리에, 이들 중 한 명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우리? 우리는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에서 왔다!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어 노동계급을 착취해 배를 불린 너희 부르주아들을 손봐주러 왔지!”


공산당이! 한 참의가 일평생 혐오해 온 자들이지만 실제 본 적이 없는 그 공산주의자들이 자기 집에 처들어온 것이다. 그의 돈을 노리고. 그는 몇년 전 신문에서 조선공산당이 경찰의 일제검거로 해산되었다는 보도를 보고 거 참 잘되었다고 속시원히 웃었었다. 그런데 그 공산당의 잔당들이 재건위원회를 운운하며 그의 집에 처들어와 강도질을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프롤레타리아트를 착취해 중추원 참의 노릇도 하고 이렇게 큼지막한 집에서 사니, 그 대가를 치뤄야 하지 않겠어? 우리의 혁명운동을 지원해준다면 정상참작을 많이 고려해 줄 수 있긴 하니깐, 현명하게 행동하는 게 좋을 거야.”


다른 한 명이 눈 앞에서 육혈포를 까닥이며 이죽인다. 한 참의는 그 총구를 공허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뭐야? 이 더러운 부르주아놈이 넋나갔나? 빨리 대답 안해? 안그럼 죽는 수가 있어!”


공산당원들이 협박하는 말에도 한 참의는 멍하게 앉아만 있다.


그는 기가 막히고 또 기가 막혔다. 혀에 기름을 바른 것 같은 승려에게 현혹되어 상해가정부에서 온 가짜 백작과 가짜 상무를 만나 만주 석유개발 사업에 투자해 내지의 경제를 흔드는 거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가 완벽히 배신당했다. 그리고 그 가짜 백작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유혹했고 그 결과 딸에게도 배신당했다. 상해가정부에게 돈을 헌납했다고 거래처들과 관계가 끊기고 은행은 대출을 거부하며 회사주식은 아무리 애를 써도 끝없이 하락하기만 할 뿐이다. 이 상태라면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고 중추원 참의직도 상실할 것이다.


그의 찬란할 것 같은 인생은, 모든 내키는 대로 해도 되는 위대하고 자유로운 인생은 시궁창에 처박혔으며 더더욱 깊은 곳으로 침전할 지경에 처했다. 자기를 파멸로 몰아넣은 중놈은 대놓고 자길 조롱하러 사무실에 찾아왔고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한 누이와 자형까지 찾아와 자신을 매도한다.


그런데 이제는 공산당원들까지 와서 더러운 부르주아라고 욕을 퍼붓고 돈 내놓지 않으면 목숨을 앗아간다고 한다. 대체 난 어디까지 더 빼앗겨야 하는가? 어디까지 더 잃어야 하는가? 하늘은 내게 얼마나 빼앗아 가야 더 만족할 것인가?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몸뚱아리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한 참의는 순간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해 볼테면 해 봐라 이 망할 것들아!”


입에서 토해내듯이 나온 고함이 쩌렁쩌렁 울린다. 한 참의는 갑자기 소리지르는 그를 보고 당황해하는 당원들을 매섭게 노려본다.


“그래! 나 한덕만은 다 잃었다! 돈도 잃고 명예도 잃고 딸도 잃었다! 이제까지 굽실거리고 굽히며 살면서 쌓아올린 거 다 잃었다! 다 잃은 마당에 더 살아서 무엇하겠냐! 이 빨갱이 놈들아! 어서 해 봐라! 이 한덕만이의 목숨을 가져가 보란 말이다!”


“이······ 이놈 뭐야?”


“이 부르주아놈! 입 안 닥쳐?”


한 참의가 거세게 고함을 지르니 오히려 당황하는 쪽은 공산당원들이었다. 그들의 활동자금 조성 작업에서 총구를 눈 앞에 둔 부르주아가 이렇게 나오는 경우는 난생 처음이어서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던 것이다.


“아이고! 왜 이래요! 갑자기 왜 이래요!”


성 여사는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통곡한다. 그러나 한 참의는 “죽여 봐라! 어디 죽여 봐라!”라며 더더욱 공산당원들에게 대든다. 총구가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그는 어떠한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쏠 테면 쏴보라는 그의 기세에, 공산당원들은 위협적인 언사 한 마디를 할 기회를 잃은 채 당황하여 한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들의 우두머리 격이 되보이는 안경낀 사람이었다.


우두머리는 믿기 힘들다는 눈이 되어 안경 너머로 한 참의를 보다가, 갑자기 피안대소를 터트린다.


“하하하! 아하하하하!”


대단히 유쾌하고 재밌다는 웃음이었다. 당원들은 그가 왜 저러는지 몰라 당황스럽다는 눈이 되었다.


“이거, 참. 생각보다 재밌는 분이로군, 한덕만 씨. 나 이현상은 참으로 감복했소이다! 부르주아란 것들은 총이건 칼이건 뭐만 들이대면 그 자리에서는 덜덜 떨며 목숨을 구걸하기 마련인데, 한덕만 씨는 아니니 말이오.”


자신을 이현상이라 지칭한 이 우두머리격 사내가 복면에 가려지지 않은 눈으로 웃음짓는게 보인다. 이때 다른 공산당원 한명이 방에 들어어와 이현상이라는 자에게 보고한다.


“동지. 현금과 값 나갈만한 것들은 죄다 챙겼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없습니다.”


그의 손에는 불단에 들어앉아 있던 작은 금불상이 들려있다.


“아, 사기를 당했다더니 그게 정말이었군. 동지들! 아무래도 오늘밤은 집을 잘못 찾아온 거 같소.”


이현상은 그러며 총을 앞섭에 집어넣었다.


“좋소. 안심하시오. 우리에게 보여주는 기개가 재밌으니 더 위해는 가하지 않겠소. 애석하군. 그쪽이 평소에도 그렇게 기개있는 사람이었으면 지금에 이르진 않았을 것 같으니 말이오.”


이현상은 다시 “하하하!”하고 시원스레 웃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방을 나가버린다. 당원들은 경계하는 태도로 한 참의에게 계속 총을 겨누다 한 명씩 뒤를 따라 사라졌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이제 남은 소리는 한 참의가 가쁘게 헐떡이는 소리와 성 여사의 흐느낌 밖에 없어진다.


“어쩌자고 그러셨어요!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면 저는 어떡하라고요?”


성 여사가 거의 통곡할 기세로 울부짖는다. 그런데 한 참의는 그 자리에서 일어선 채 꼼짝도 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는 멍한 표정이 되어 공산당원들이 사라진 열린 문 뒤의 어둠 속만 보고 있다.


성 여사는 흐느끼며 남편이 왜 이러나 하고 말을 걸려 하는데, 한 참의의 입이 먼저 열린다.


“내가······. 내가 이렇게 당당했었나?”


“예에?”


부인이 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할 때, 한 참의는 계속 멍하니 어둠 속을 주시한다. 그는 경성에서 취직한 이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게서 신기함을 느낀다. 이제까지 사방팔방에 머리를 숙여왔다. 총독부와 경찰의 힘 있는 강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이건 뭐건 참고 그의 부를 증대시키고 사업을 확장하려 했다. 또한 자신이 가진 걸 지키는 동시에 더 불리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그의 하나뿐인 목숨을 가져가겠다고 으르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한번 가져갈 테면 가져가라고 고함을 질러버렸다. 그는 돌이켜 보았다. 자신이 다른 자들에게, 자기보다 더 높이 있다고 여긴 자들에게 그랬던 적이 있던가?


그때 한 참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묘엔 스님이 떠나기 전 그에게 남긴 말이었다.


“추후 참의님께 큰 도움이 될 구절 하나를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반야심경의 구절이지요. ‘보살은 얻을 것이 없어서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한다.’입니다. 그 뜻은 여러 번 강론하였으니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에 뒤이어 그 구절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기억한다. 불단 앞에서 성의 없이 건성으로 외웠으나 여러 번 외우다 보니 그래도 바로 생각나는 구절이었다.


보살은 얻을 것이 없어서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야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顛倒夢想 究竟涅槃.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한 참의는 전율한다. 이 구절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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