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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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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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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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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281화

DUMMY

주리는 눈 앞에서 참극이 시작될 때 잠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청방에서 왔다는 황장리가 사람 한 명을 무자비하게 끌고 왔을 때 크게 놀라 하마터면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윽고 그가 일본 총영사관에 기용된 밀정 돤궁하이이자 그 때문에 우가키 총독 암살모의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알자 분노가 치솟았다.


옥룡회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죽이소서!”를 외칠 때, 비록 중국말을 몰라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도 그들과 함께 고함을 내지르고 싶었다. 여전히 히로요시에게서 암살계획을 경무국이 모두 알고 있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생생했다. 그들까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자신이 들어오기 전부터 대원 모두가 그 계획을 준비해 왔는데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는 절망감에, 그리고 이덕주 동지와 유진만 동지가 경찰에게 잡혀서 필설로 다 말할 수 없을 고통을 겪을거라는 생각에 손에 얼굴을 파묻고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었다.


그 기억이 아직도 강고하여 돤궁하이의 비참한 모습에 연민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가 이곳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성토당하는 모습에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천 지부장이 편곤을 잡아 그를 무자비하게 후려칠 때, 주리는 사모님이 왜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권유했는지 알았다. 지부장이 편곤을 휘두를 때마다 뼈가 부러지며 기형적으로 꺾이는 모습에 차마 볼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 모습에서 주리는 시원함도, 통쾌함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 참상의 자리에 자신이 있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니 가슴이 두망방이치고 등이 떨려왔다.


그리고 눈을 감아도 얼마나 터져나오는 처절한 비명, 그리고 그 때마다 터지는 환호성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하였다. 아무리 심판을 내려야 할 밀정이라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그가 처참하게 도살당하는 광경을 보고 기쁨에 겨워 환호하는 모습은 앞으로 더 보게 되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이 뿜어내는 환호성은, 아무리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도 죽음과 고통을 즐길거리로 보는 모습은 일종의 광기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하였다.


당장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 폭력과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미 사모님도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된다고 했으며, 정우 또한 보기 싫으면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리는 그리하지 않았다.


“아뇨. 괜찮아요.”


주리는 의연히 고개를 내젓는다.


“저놈이 어떻게 죽는지 봐야겠어요.”


“괜찮겠어?”


정우는 주리의 결정에 걱정이 샘솟는다. 아무리 여러 차례의 경험에 피와 죽음을 목도한 주리였지만 정우에게는 여전히 여리디 여리며 보듬어주고 좋지 않은 건 절대 보여주지 않은 존재였다. 이미 충분히 아픔을 겪은 연인이 더 상처받는 모습은 결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주리는 살포시 미소까지 짓는다.


“정말로 괜찮아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주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 했다. 우선 정우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내색하면 하루종일 자기에게 신경쓸 것 같았다. 정우가 주리 자신만 바라본다는 것은 자기 개인의 감정만 생각하면 기분좋은 일이기도 였다. 그러나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정우가 자신에게만 잡혀 있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주리는 눈 앞의 참혹한 광경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앞으로 더욱 살떨리고 끔찍한 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리에서 눈 감고 도망치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그렇다면 앞으로도 다른 사람 걱정시키며 민폐를 끼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불현듯 일어났다.


그래서 주리는 의연히 계속 저 모습을 보겠다고 다짐하였다. 상상하지도 못한 어떤 일이 눈 앞에서 일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정우는 연인의 뜻이 완고하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주리에게 차마 이런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할 수 있다면 직접 주리의 눈을 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때 정우의 눈이 천 지부장의 눈과 마주쳤다. 지부장은 말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비명 지를 힘도 없어서 고통스런 신음만 흘리는 저 밀정놈을 어떻게 처리할지 한번 결정해 보라는 뜻이 눈빛을 통해 전달되었다. 정우는 사부의 냉혹한 눈, 그리고 사지의 뼈가 다 무자비하게 박살나 바들거리고 있는 돤궁하이를 번갈아 본후, 솔직한 감정을 담아 눈빛을 보냈다.


천 지부장은 제자의 의견에 바로 반응했다. 그는 편곤을 다시 처들었다. 그 모습에 웨이샤오바오가 촐싹대며 “창바이따후(장백대호)!”를 연호한다. 옥룡회가 운영하는 불법 투견장이나 투계장에서 자신이 판돈을 잔뜩 건 투견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 웨이샤오바오가 앞장서 바람을 잡자 박수와 함께 기대감에 가득찬 외침이 연회장을 매운다.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창바이따후!”


편곤이 높이 올라가자 좌중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명성높은 장백대호가 밀정놈을 얼마나 천천히 도살할지, 얼마나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지 기대하는 자들이 절대 다수였다. 그들은 편곤이 다시 내리쳐졌을 때 또다시 환호할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편곤이 확 내리쳐졌다. 호랑이의 강력한 앞발이 사냥감을 무자비하게 후리는 자세였다. 퍽 하고 사람의 몸이 박살나고 터지는 소리가 나며 환호성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소리가 빠져 있었다. 돤궁하이의 비명소리였다. 그리고 또 환호성 또한 빠르게 잦아들었다. 천 지부장이 보인 동작이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장백대호가 편곤으로 내리친 곳은 다름아닌 돤궁하이의 이마빡이었다. 그가 베이징 시절부터 가장 손에 익어서 주력으로 써온 무기였던 만큼 군더더기 없는 동작 한 번으로 두개골을 부수고 뇌를 완전히 파괴했다. 부수어진 머리는 끔찍하게 함몰되어 뇌를 드러냈다. 뇌수와 섞인 핏물이 함몰된 부위로부터 꿀럭꿀럭 튀어나왔다. 그 피가 흘러내리며 바닥에 고여 작고 시뻘건 웅덩이를 이루었다. 튀어나온 피는 천남건이 입은 흰 두루마기 앞섶도 빨갛게 물들였다.


돤궁하이는 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사람이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모든 증표가 나타나지 않았다.


“에······. 현제?”


장 대인이 입을 열었다.


“이걸로 현제와 조카들의 원한이 다 풀린게 맞는가?”


하북옥룡은 장백대호의 행동에 약간이나마 실망했다는 투를 풍긴다. 그는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천 지부장이 돤궁하이를 최대한 천천히, 사람의 육체가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고통을 주며 죽이는 광경을 바랬던 것이다. 종국에는 천 지부장이 돤궁하이의 배를 가르고 흘러나온 내장을 천천히 절개하며 그가 기절했다 깨어났다를 반복하며 죽어가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작두에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장 대인이 생각하는 밀정에게 걸맞는 결말이었다. 이를 위해 크고 작은 날붙이들을 오직 의제를 위해 늘어놓지 않았던가?


그런 장카이셴에게 천남건의 행동은 너무나도 관대하고 너무나도 자비로워 보였다. 그가 자신의 의동생이 아니었다면 물러터졌다고 불평을 입에 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습니다, 대형.”


천 지부장은 의형에게 담담히 말한다. 손에 들린 편곤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소제와 제 제자들은 대형께서 배푸신 성의와, 그리괴 청방 두 방주께서 베푸신 성의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저 밀정 돤가 놈은 제 손에 척살되었으니, 모두가 이에 만족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러한가?”


장 대인이 정우 등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천남건의 제자들은 게속될 것 같았던 끔찍한 광경을 스승이 빠르게 처리한 것에 지극한 안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우가 형제들의 대표격으로서 일어서서 포권한다.


“저희들은 사백이신 장 대인께서 분에 넘치는 은혜를 베푸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계획을 망친 밀정을 우리 손으로 주살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도 너무 싱거운데······.”


장 대인이 입맛을 쩝쩝 다신다. 채주들도 마찬가지였고, 옥룡회 사람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다. 이 끔찍한 고문극이 빨리 끝났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은 암흑가의 폭력성에 전혀 익숙치 않은 양지의 사람인 루 총영사와 저우 집행위원 뿐이었다.


옥룡회 사람들 중에 실망의 빛을 보이는 목소리가 슬쩍 흘러나온다.


“장백대호 천남건 대협이 거침없는 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르신 분 아닌가?”


“나는 솔직히 실망했다네.”


“대협께서 대인의 의형제여서 망정이지, 따지고 보면 대인의 성의를 무시한 걸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들에게 적에 대한 잔인함은 미덕이었으며 천남건이 『수호전』의 한 장면을 재현하여 본을 보이길 바랐던 것이었다. 앞장서 “장백대호!”를 외치며 바람을 잡은 웨이샤오바오는 대단히 곤란해하는 눈치로 이곳저곳을 바라본다. 이런 목소리 속에서 차분한 목소리는 없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술잔만 기울이던 량궈와 더불어, 이 참살극 속에서 그닥 환호하지 않고 정중동을 지키고 있던 차오펑의 목소리였다.


“형제들. 이미 일은 끝났네. 대협의 풍모에 어울리는 관대함으로 볼 수 있지 아니한가? 굳이 더 말 하지 마세나.”


젊은 나이에도 경륜이 적지 않아 장 대인의 기대를 받고 있는 차오펑이 무게를 잡으니 은근한 불만의 목소리도 빠르게 가라앉는다.


천 지부장은 피로 물든 편곤을 바닥에 조용히 내려놓고는 성큼 걸어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깐 떨떠름하던 표정을 짓던 장 대인은 다시금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다.


“와하하하! 현제와 조카들의 원한이 풀렸으면 된 거지! 그랬다니 나 또한 기쁘도다! 자, 연회를 계속한다! 아직 요리도 많고 술도 잔뜩 있다!”


장 대인의 선언에 연회장은 언제 그랬냐는 등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이 틈에 에이코는 남편의 굳어진 얼굴을 보고 살짝 속삭였다.


“잘 했어요.”


천 지부장은 대꾸 없이 술잔을 비웠다.


이때 장 대인이 왕 채주를 본다.


“저 자라새끼의 몸뚱아리 가지고 괜찮은 요리 좀 만들 수 있나? 탕수육 같은 거 말일세.”


왕 채주는 곤란하다는 답변을 한다.


“대협께서 저놈 뼈까지 다 부셔 버리셔서 살점과 뼈가 섞였을 겁니다. 이럼 뼈 추려내기가 힘듭죠. 그냥 처리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아. 그렇군. 그럼 어디 치운 뒤 투견장 개들에게 먹이로 줌세. 거기가 걸맞는 곳이겠군.”


그 말 직후 돤궁하이의 시체는 푸대자루 속에 넣어져 사라졌다. 피묻은 편곤과 기대를 샀으나 사용되지 않은 거대한 작두를 비롯해 피냄새와 분간이 잘 안가는 쇠냄새를 풍기던 날붙이들도 정리되어 사라졌다. 피가 흥건한 자리는 빠르게 청소되고 피비린내를 비롯해 그가 죽어가며 남긴 오물의 냄새를 치우기 위해 향이 피워진다. 그러나 주리는 강한 향냄새 속에서도 여전히 피비린내가 남아 있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연회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진행되었다. 다시 술이 돌고, 취기에 겨운 노래가 울려퍼지고, 오늘의 주빈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재주넘기와 각종 묘기들, 예컨데 입에서 불을 뿜어내거나 수십 개의 고리를 한 번에 뛰어넘어 통과하는 등의 것들이 경탄을 자아냈다. 차오펑은 그의 장기인 18개의 초식을 가진 장법을 선보이고, 량궈는 부인과의 이별 후 창안했다는 17개 초식의 장법을 보여주었다. 초식 하나하나가 전개될 때마다 환호가 솟아올랐다.


이전과의 차이점이라면, 정우와 형제들은 권해받은 술잔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주리 또한 몇 잔을 더 마셔도 취해 정우에게 있는 애교 없는 애교 다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연회는 거의 새벽 1시에 가까워져셔야 끝났다. 옥룡회 사람들은 술에 취해 비척거리며 호텔에 마련된 객실이나 이곳저곳에 있는 숙사를 향해 떠났다.


취기가 절정에 오르기도 하였고 아침 일찍 일어나 트럭에 탄 채 몇 시간을 도주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산에 올랐던 주리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눕지 않고 어찌어찌 씼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자신이 참 신기하다고 느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정우가 침대에 누운 후 주리를 껴앉아 주며 한 말이었다. 주리는 샐쭉하게 입술을 내밀며 “괜찮다는데 왜 자꾸 그래요?”라고 투덜거리듯 말했다. 정우는 안심했다는 표정과 불안하다는 표정이 반반 섞인 채, 주리 입술을 살짝 훔치고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주리도 뒤이어 잠에 빠졌다. 머리가 터져 피를 철철 흘리는 돤궁하이의 모습이 꿈 속에 나타나지 않기를 절실하게 바라며.


다행이도 주리는 어떠한 악몽도 꾸지 않은 채 푹 잤다. 전날 피곤해서 그러기도 하였고 중국 술이 워낙 독하기도 했으니 그럴 법 하였다. 커튼을 걷고 나니 화창한 하늘과 넘실거리는 바다가 들어와 가슴이 탁 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늦은 아침자리였다.


“자! 자! 들게나! 아무리 먹고 마셔도 식사때가 되면 늘 허기지는 법이지!”


장 대인이 대접하는 아침상에 홍소육(紅燒肉)이 있었던 것이다. 피처럼 새빨간 양념에 먹음직하게 볶아진.


평소였다면 어른들이 수저를 잡는 것을 본 뒤에 “잘먹겠습니다!”하고 히히 웃으며 달려드는 경자처럼 거리낌없이 젓가락을 가져다 대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날에 으깨지고 함몰된 머리에서 피를 쏟으며 죽은 시체를 보고는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홍소육의 붉은 양념이 돤궁하이의 몸에서 흘러나와 고인 피웅덩이와 겹쳐보이기 시작하였다.


정우는 주리의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정우는 하필 왜 아침상에 홍소육을 차렸는지 원망스러워하는 눈빛을 장 대인에게 보내지 않으려 애쓰며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더 먹어라. 이거 괜찮네.”


정우의 손으로 홍소육 그릇이 주리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앉아 있는 재호에게 전달되었다. 재호도 눈치가 있어서 “그래. 잘 먹을게.”하고 홍소육을 받는다. 사실 재호나 다른 형제들도 붉은 양념과 기름이 영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피에 익숙한 자신들이 주리를 마땅히 배려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동일하게 하던 차였다. 주리는 그런 정우의 태도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피와 홍소육의 색깔이 곂친다고 느낀 순간, 뱃속에서 느글거리는 기분이 올라오고 있었다. 시뻘건 게 눈 앞에서 저만치 치워지니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장 대인은 그런 주리의 심정을 전혀 모르는 채 껄껄 웃을 뿐이다.


“어제 슬쩍 조카며느리의 모습도 봤었네! 솔직히 소저의 몸으로는 보기 거북한 광경이었을 게야. 그런데도 그 밀정놈이 죽어가는 꼴을 참 의연히 지켜봤었지! 감탄했네, 감탄했어!”


“감사합니다, 대인.”


주리가 속을 진정시키고 예를 표했다. 장 대인의 칭찬은 기분좋은 말이었다. 어제 그 모습을 참아가며 본 것은 이와 같은 말을 듣기에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미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생각 하나가 움틀거렸다.


차라리 그때 자리를 떠나버리는게 더 나았을 거라고. 장 대인은 에이코를 바라보며 계속 주리를 칭찬한다.


“제주씨가 조카며느리에게 무공만 가르친다면 정말 중원에서 이름있는 여협이 될 것이오! 이렇게 탄복할 제자를 두게 될 제수씨에게 먼저 찬탄을 보내오!”


에이코는 으레 그 “오호호호호!”하는 웃음을 터트리고 “우리 바깥양반은 제자를 여섯이나 키웠는데 저라고 못할까요? 바깥양반은 애들을 5년이나 가르쳤는데, 이런 면에서는 한번 이겨보고 싶네요. 저는 1년에서 2년 정도면 강호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릴 수 있을 정도로 키워줄 생각이랍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그 대답에 천 지부장은 “거 이상한 데에서 경쟁심리를···....”이라며 마땅치 않다는 기색을 보이지만 이를 가지고 더 왈가왈부하지는 않는다.


어제 그 일을 보지 않은 주리였다면 에이코에게 기대감이 가득한 채 앞으로 자신을 어떻게 훈련시킬 것인지 눈을 초롱초롱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뱃속에 들어간 음식이 이물감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은 그저 조용조용히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같은 형식적인 말 밖에 하지 못하였다.


수 시간은 지난 것 같았던 아침식사 자리는 시계를 보니 30분밖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주리는 방으로 돌아기는 길에 정우를 비롯해 오라버니들이 계속 괜찮냐고 물어볼 때마다 애써 웃음지으며 “아이 참! 괜찮다니까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정우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한 소리였다. 주리가 “몇번 물어봐요?”라고 입술을 삐죽일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에이코의 얼굴이 쑥 들어온다.


“주리는 시간 괜찮니? 잠깐 나와 얘기 좀 할까?”


에이코는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곧바로 정우를 보며 “넌 따라오는 거 금지! 여자들만의 대화야. 마작하게 판돈 좀 빌려줄까?”라고 농담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은 아니었다. 에이코의 눈은 무겁게 느껴질 정도의 진지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었다.


주리는 그 기세에 “예.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하고는 사모님을 따라나섰다. 정우가 등 뒤에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에이코는 엘리베이터를 탄 후에 뜻밖의 장소로 주리를 데려가고 있었다. 주리는 어째서 여기로 데려왔냐는 의아한 시선을 사모님에게 보냈다. 그곳은 1층 로비에 있는 여자화장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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