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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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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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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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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285화

DUMMY

“지나에 대한 악감정을 이용한다고?”


소좌가 고개를 옆으로 까닥인다.


“적지 않은 요보들이 지나놈을 싫어하지. 그래서 4년 전에도 일이 터졌고 작년에도 일이 터진건 본관도 알아. 그 말만 들어서는 뭘 할건지 감이 안 잡히는데?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이치노세 대위의 입에서 답변이 나온다.


“우리는 현재 인천의 조선인들이 지나 거리에서 집단난동과 폭동을 일으키기 직전의 상황을 조성해 왔습니다. 신임 특무대장께서 결정만 하신다면 바로 작전을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뭐? 폭동? 작년처럼?”


1931년 7월의 만보산 사건으로 인한 화교배척 폭동은 기타무라 소좌도 직접 겪은 바였다. 이와타 헌병사령관은 흥분한 조선인들이 지나인을 공격하다가 더 거대한 소요사태로 번질 수 있으니 전원 영내에서 비상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소좌는 조선인들이 경성 내 지나인 거리로 처들어가 상점이란 상점은 다 박살내고 중국 옷을 입기만 하면 몰려가 두들겨 패는 난장판을 상황보고서와 신문보도로만 보았지 직접 보지 못하여 애석해하였다. 누구든 싸움을 붙이고 그걸 낄낄대며 구경하길 즐기는 기타무라 헤이스케에게 그것 만큼 재밌는 광경 보기도 힘들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봉천 특무기관에서 새로운 폭동을 예비하고 있다는 말은 흥미를 대단히 돋구는 것이었다.


“흥미로운데? 난장판을 또 한바탕 일으킨다면 재미있기야 하겠지.”


소좌가 슬쩍 웃음을 지으며 마른 입술에 혀를 낼름거린다.


“근데 그게 천남건이를 잡는 것과 무슨 관계인가?”


“아시다시피 천남건은 옥룡회의 두목 장카이셴의 의형제입니다. 갑자기 옥룡회의 관리하에 있는 지나인 거리가 조선인들의 폭동에 노출된다면 옥룡회가 나서서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려 할 것입니다. 이때 천남건이 은신처에서 튀어나와 의형을 도우러 오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오호? 그것 때문인가?”


기타무라 소좌는 이치노세 대위가 생각치도 못한 발상으로 천남건을 끌어내려 하자 재미를 느꼈다. 경찰에서 가져온 수사자료에 의하면 장카이셴과 천남건의 관계는 소좌 본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형성되었었다. 현재까지 계속될 정도라면 그 만큼 대단히 두터운 관계임이 여러모로 확실한 것 같았다. 장카이셴과 그의 조직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면 천남건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하나 든다.


“천남건의 의리가 그 정도로 대단한가? 수배중인 놈이 노출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까지 거리로 나설 수 있을까?”


이치노세 대위는 그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한다.


“본관은 놈이 장카이셴과 의형제가 아니더라도 모습을 드러낼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놈이 상하이 가정부가 되었건 여타 다른 불령선인 단체가 되었건 지금 시국에서 지나인들과의 갈등이 다시 빚어질 일은 절대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가정부나 여타 세력 좀 있다는 조직들은 주로 지나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결국 지나 국민정부와 지나인들에게 의존하는 것 외에는 생존하기 힘듭니다. 작년의 폭동에서도 가정부는 지나정부에 매우 저자세로 나가며 사망한 지나인들을 위한 위령제까지 열었습니다.”


“하기야, 그렇지 않으면 지나에서 활동하기는 커녕 살수도 없겠지.”


“그렇습니다. 지나인의 조선인에 대한 감정은 올해 1월의 대역사건으로 작년에 비하면 해소되었고 또 오늘 일어난 사태 때문에 더 상승할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다시금 지나인을 배척하는 폭동이 일어난다면 개선된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대위의 목소리가 여기서부터 의미심장해진다.


“ 천남건은 장카이셴과의 의리를 제외하고도 이 이유 때문에 직접 나서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습니다. 놈은 불령선인 단체들과 지나와의 관계, 그리고 의형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폭동 진압에 선봉으로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놈이 모습을 드러낸 바로 그때가 병력을 투입해 사로잡을 수 있는 적기입니다.”


“잠깐만. 귀관의 계획은 그럴듯하긴 하지만······.”


듣고 있던 시라키 대위가 이의를 제기한다.


“대체 뭔 준비를 해 놓았기에 바로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가? 작년에 대규모 폭동이 있었다는 건 본관도 알고 있네. 하지만 조선인들이 지나인을 공격한 것과 별개로 조선인 중에서도 자제와 진정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내는 자들도 적지 않았던 걸로 아네.”


“아, 그 말은 맞아.”


소좌가 동의한다.


“더 재밌어지려는 순간에 젠체하는 놈들이 끼어들었지. 한 몇개월은 더 가야 재밌던게 열흘도 안가서 끝나버리고 말았어. 배워먹었다는 놈들은 이래서 문제야. 꼭 재밌는 광경에 이거 야만이다, 문명인이라면 이러면 안된다 뭐다 하며 초를 치거든.”


소좌가 만보산 사건 당시 폭력을 자제하자는 목소리를 낸 조선 지식인들에 대한 경멸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혀를 찬다.


“소좌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난리가 일어났을 때 자제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없겠는가?”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일이 일어난 뒤에야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폭동의 발발 시, 그걸 주도한 자들은 자제의 목소리를 아예 듣지 않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지?”


시라키 대위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작년의 폭동이 그저 실험이었다면, 이번에는 더 계획을 세우고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깐. 그저 실험?”


소좌는 날카롭게도 이 대목을 놓치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흡사 작년 폭동의 배후에 특무기관이 있었다는 말 같은데?”


그 지적에 대한 이치노세 대위의 대답은 애매하였다.


“아, 그렇게 본다면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아니 그런 거면 그런 거고 아닌 거면 아닌 거지. 왜 이상한 대답을 하나?”


소좌의 얼굴에 짜증이 어린다. 이치노세 대위는 개의치 않고 대답한다.


“그것이······. 우리는 그때 만보산 삼성보에서 지나 당국과 조선 농민들의 충돌 당시 조선일보 장춘특파원이 과장된 호외보도를 하게 거들어주었기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그곳에서 일어난 충돌은 조선일보 장춘특파원의 호외보도로 지극히 과장되어 조선에 전달되었다. 그렇게까지 큰 규모도 아니고 조용히 끝맺어진 충돌은 중국 관민 800명과 조선 농민 200명의 충돌로 인한 대량의 조선인 사망자가 나온 사태로 보도되었다. 이는 중국인에 이한 조선인 탄압과 핍박으로 인식되어 반중감정에 불을 지피며 일주일 간의 중국인 배척 폭동으로 번지게 된 계기였다.


“거들어주기만 했다고?”


“그렇습니다. 이는 실험이었습니다. 쇼와 2년의 폭동 이후 조선인들의 반지나 감정이 그때와 동일한지, 아니면 완화되었는지 또는 악화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번 거짓정보 하나를 안겨주었을 때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 관찰하려는 게 당시 도이하라 소장 각하의 의도였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기관은 장춘 주재 영사관을 통해 그 조선일보 기자에게 과장된 정보 하나를 전달했고, 그 기자는 교차검증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본사에 호외를 송고했던 것입니다.”


“그랬군. 불령선인들은 작년의 폭동이 조선과 지나 사이를 분열시키려는 우리의 공작인 것처럼 떠들어댔는데, 그게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었구먼. 그렇다고 해서 그저 조작된 정보 하나만 가져다 주었는데 그걸 덥석 문 신문사나 거기에 낚여서 날뛴 놈들의 문제까지는 자네들 책임이 아니니 애매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구먼.”


소좌가 피식 웃고는 “그런데 도이하라 장군은 어째서 그런 실험을 했던 건가? 그냥 재미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묻는다.


“사실 그건 당시 작전주임이셨던 이시와라 간지 중좌님의 개인적 부탁이었습니다.”


“이시와라 중좌 나리가?”


여기에도 이시와라 간지 중좌가 언급되자 소좌가 눈썹을 까닥거린다.


“이시와라 나리는 무슨 이유로 그런 실험을 부탁했나?”


“중좌님은 그때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조선에서 오족협화가 가능한지 말입니다.”


“뭐? 오족협화? 관동군 안에서 그런 말이 유행한다고는 알고 있었네만······”


소좌의 얼굴에 비웃음이 슬며시 흐른다. 일본, 중국, 조선, 몽골, 만주의 다섯 동아세아 민족이 협화를 이룬다는 말은 그에게 있어서 지극히 우스꽝스러우며 등에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단어에 지나지 않았다.


“근데 왜 그런 걸 알고 싶어 하셨지?”


“이시와라 중좌님은 그때 만주를 장쉐량 군벌로부터 가져와 경락한다는 계획을 익히 세우고 있었는데, 그때 만주 경락한 후 세울 새로운 국가는 다섯 민족이 협화를 이룬 이상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만주에서 협화를 이루기 전 조선에서 협화를 이뤄보아야 만주에서 오족협화를 실현할 수 있을 지 확신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조선은 구한국 때부터 개항되었고 내지의 일부가 된 지금은 내지인과 지나인이 모두 살고 있는 곳이 되었으니, 만주에 앞서서 조선의 내지인과 조선인, 그리고 지나인의 협화를 만주에서 있을 협화의 전 단계로서 실현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인의 지나인에 대한 적대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해 정보조작을 부탁하셨던 것이라고 압니다.”


“거 협화 참 좋아하시는 분이네. 그게 말이 되나? 병신들은 병신들끼리 박터지게 싸우는게 자연스럽고 보는 맛이 있는데 협화?”


소좌의 입에 비웃음이 흐르더니 “아, 이 말은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 되는 거 알지?”라고 킬킬 웃는다.


“아무튼 도이하라 각하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셨고 부탁한 대로 하셨습니다. 손해 볼 것은 없는 계획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사태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크게 번졌습니다. 지나인에 대한 조선인들의 적대감이 그 정도인지는 우리도 몰랐습니다.”


“짚더미에 성냥불 하나 던져놓은 격이 되었다 그 말이군.”


‘정확한 표현이십니다.”


“그런데도 이시와라 중좌님이나 관동군의 높은 분들은 오족협화가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오히려 작년 폭동은 이시와라 중좌님이 만주에서만 오족협화가 실현될 수 있다고 더욱 믿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선반도가 최소 1천년 이상 조선인들만 사는 곳이었고 또 땅은 좁은데 인구밀도는 높았던 만큼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지만, 만주의 경우 본디 만주인의 땅인 동시에 지나인들과 몽골인들도 대거 유입되었고 또 지난 세기 말부터 내지인들과 조선인들도 만주로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얼빈에는 러시아인들과 유대인들까지 있습니다. 그 넓은 땅 덕분에 다양한 민족집단이 비교적 오래 공존해 왔던 만주야말로 오족협화와 아시아인의 연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이시와라 중좌님의 생각입니다.”


그 대답에 기타무라 소좌는 “푸하하하하!”하고 큰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 오족협화란게 된다면 우리 헌병이나 짭새놈들이 조선에서 뺑이나 치고 있었겠나? 굽신거리는 조선인도 많이 생기긴 했지만, 불령한 놈들은 여전히 끊이지를 않는다고! 병력으로 밀어붙여도 지금 이 모양인데 협화? 어떻게 관동군 작전주임 되시는 분이 이렇게 몽상 속에 사실 수가 있지?”


“솔직히 본관이 봐도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시라키 대위는 그래도 관동군 소속이라 말을 최대한 조심히 한다.


“불령선인 비적들이 오족협화의 슬로건에 합류한다면 그만큼 좋은 일도 없겠지만, 지금 그게 안되서 교전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불령선인들도 코웃음을 치며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 문제는 됐고······.”


소좌가 다시 원래의 이야기 소재로 돌아간다.


“폭동을 어떻게 일으킨다는 거지?”


“우리는 이미 아토베조를 경유하여 인천에서 화교배척 폭동이 일어날 환경을 몇개월 간 조성해 왔습니다. 여기 와타베 씨는 인천의 밑바닥에서 조선인의 반지나 감정을 들끓게 하기 위해 몇 개월간 노력을 기해 왔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꽤 경주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와타베 류사부로가 말을 받는다.


“그래도 반지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선동에 쓸만한 자들은 꽤 있지요. 주로 지난 경제대공황 때문에 내지의 대학이나 조선 내의 전문학교를 나와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여 장기간 실업상태에 있던 자들 말입니다. 만주사변 이후로 실업 문제가 꽤 해소될 예정이라 해도 몇년간의 경력단절 상태에 있는 자들이라 자기들 눈에 맞는 일자리, 그러니까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 보고 펜대 굴리는 자리를 얻기 힘든 실정입니다. 그런데도 대학이나 전문학교를 나올 학비를 집안에서 내줄 수 있을 정도의 집안형편 덕에 당장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죠. 하지만 고급교육을 받았는데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열등감, 그리고 대학 나오고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열패감이 가득한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소위 룸펜들이라 그거지? 사회의 잉여들이구먼.”


기타무라 소좌의 촌평에 와타베가 “정확한 표현이십니다.”라고 아부를 한다.


“이 잉여들은 배운 건 꽤 많은데 사회에서 일을 하지 못하다 보니 머릿속에 잡생각만 가득 하고 이곳저곳에 불만만 누적되어 있습니다. 잔소리하는 부모를 피해 거리를 싸돌아다니며 같은 신세의 잉여들을 다방 등지에서, 또는 여러 업소에서 만나 한풀이를 하며 넘쳐나는 시간을 죽이지요. 우리가 관리하는 그런 곳들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정보에 그쪽이 빠삭한 게로군.”


“그렇습니다. 우리 아토베조 사람들은 술자리 넋두리들을 들을 일이 많기에 밑바닥 민심은 확실히 파악하고 있습죠. 그 외에 룸펜노릇이나 하다가 우리 쪽에 사무직으로 자리를 얻은 자들도 있어서 그자들의 이야기도 들을 기회가 있었고요..”


“이런 자들은 불령선인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역으로 우리가 잘 이용할 수 있는 수단도 될 수 있습니다.”


이치노세 대위의 말이었다.


“룸펜 잉여들은 세상에 불만이 가득 차 있는데다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박감과 열패감을 해소하고 싶은데 빨간 물이 들거나 불령선인 노릇을 하기에는 겁이 많은 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총독부 권세를 건드렸다가는 박살난다는 두려움이 큰 자들입니다. 그걸 극복하고 불령선인이 되는 자들이 없지는 않으나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불만의 화살을 자기보다 더 열등해 보이는데 직업이 있고 돈이 있으며 이질감이 느껴지는 자들로 돌립니다.”


“그게 지나놈들이로군.”


“그렇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해소할 수단을 지나인에 대한 선동과 린치, 테러로 삼았습니다. 배운 게 제법 있다 보니 말을 그럴싸하게 하고 글을 그럴듯하게 써서 못배워먹은 치들을 제법 잘 선동합니다. 이들에게 작년 폭동에서 자제를 호소하던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그저 자신들의 어렵고 힘든 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있는 자들의 위선, 또는 지나인에게 돈을 먹은 자들에 불과합니다. 자제하자는 자들을 앞에서 만나면 그 얼굴에 침을 뱉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야. 그럼 재밌겠는데? 그 치들이 그럴 용기가 있을 정도로 과감하다면 말이야.”


“말씀대로 그럼 꽤나 볼만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가 뒷배가 되준 자들 중 독일에서 대학을 졸업한 자가 있는데, 그 친구가 독일에서 나치스의 수법을 배워왔습니다. 나치스가 유대자본을 무슨 세상의 거대한 흑막인 것처럼 선동하는 것처럼, 이자는 화교자본을 무시무시한 흑막인 것처럼 선전하는 전략을 쓰지요. 말이 청산유수인데다가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자입니다. 그 자 덕분에 새로운 폭동을 유발할 자들은 자신들의 열패감 해소가 아닌 진정 조선민족을 위한다는 대의를 위해 활동한다고 믿을 것입니다.”


“이거. 이거. 재미있겠군.”


소좌가 흡족한 웃음을 짓고 처음으로 요리에 젓가락을 가져다댄다.


“근데 그만한 고학력 잉여들은 그래도 수가 얼마 되지 않을 텐데, 그런 놈들로만 폭동을 일으킬 건가?”


“물론 다른 준비도 다 되어 있습니다. 룸펜들이 폭동의 머리라면, 폭동의 직접적인 수단은 항만 일용직 노무자들입니다.”


와타베가 다시 입을 연다.


“인천을 비롯한 조선 황해안의 여러 항만들은 밀입국한 쿨리들로 한가득입니다. 내지 회사건 조선 회사건 웬만하면 부리는 돈이 싼데다가 지나 본토의 가족들에게 송금하기 위해 조선인보다 더 뼈빠지게 일하는 쿨리들을 쓰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조선인 일용직들은 오래 전부터 쿨리들이 자기들 자리를 빼앗아간다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서로간의 다툼과 폭력이 적지 않았고 말이죠. 이런 자들은 선동에 잘 넘어가는 유용한 수단이 됩니다.”


“음. 알만 하군.”


“우리 아토베조는 항만 노무자의 조합을 설립했습니다. 합법적인 조합으로 말이죠. 표면상의 목적은 조선인 노무자의 권익증진이지만, 우리는 실상 그곳을 밑바닥 인생들이 지나인에 대한 증오감을 토해내는 장소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의 선동도 이제 최고조입니다. 계기 하나만 주어진다면, 그들은 지나인 거리에 한꺼번에 들이닥칠 겁니다. 인천의 지나인은 통계에 잡힌 자들만 1,500명입니다. 밀입국한 자들까지 합치면 더 많겠지만, 그래도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조선인들보다는 적지요. 옥룡회의 영향 아래 있는 경찰이 폭동을 막으려 하겠지만 작년에도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 옥룡회에는 두목인 장카이셴을 비롯해 무술이 뛰어난 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이상 옥룡회도 당해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화력을 갖춘 우리 부대도 투입되어서 옥룡회를 끝장내고 천남건이를 체포하면, 그 자리에 아토베조가 올라가겠다 그거군. 그쪽도 상당히 머리를 썼어.”


소좌가 실실 웃으며 와타베를 쳐다본다.


“또한 이것은 불령선인들이 강탈한 자금을 되찾지 못하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치노세 대위의 말이었다.


“불령선인들이 이미 그 돈을 상하이로 송금했거나, 또는 어디 은닉해 둔 채로 전원 자살을 택해 스스로 입을 막을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아. 그래. 그렇게 되면 참 골치가 아프겠군.”


“그렇다면 동일한 액수의 돈을 구해서 가져가야 하는데, 옥룡회가 가진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그 대상이 될 것입니다. 아, 사실 생각해 보니 불령선인들이 돈의 행방을 말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게 될 겁니다. 옥룡회 돈을 가져가면 그만이니 말입니다.”


그 말도 소좌는 상당히 마음에 들어한다.


“손자병법 가라사대, 보급이 없으면 적에게 빼앗아 오면 그만이지. 이거 참, 근데 손자도 지나인이네!”


기타무라 헤이스케는 한바탕 웃고는 다시 와타베를 바라본다.




“와타베 씨. 솔직히 난 아직도 그쪽이 괘씸해. 폐하의 황군을 뒷세계 이권다툼에 이용하려는 그 심산 말이야.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대단히 재미있는 계획임은 틀림이 없어. 마음에 드는 계획이야. 시라키 군. 귀관의 생각은 어떤가?”


사라키 대위는 이 계획이 딱히 재미있다고 느끼진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는 투였다.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 지나 정부와 연결된 조직이 없어진다는 것도 나쁠 것은 하등 없습니다.”


“그래. 그럼 귀관도 동의한다는 게로군.”


소좌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이후 이치노세 대위는 와타베와 함께 폭동을 일으킬 계기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기타무라 소좌는 그 계획을 듣자 “귀관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악당이군!”이라 낄낄 웃는다. 시라키 대위는 그 말에 순간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고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어보았으나, 그것이 폭동을 유발하기에 제격인 계획이라는 설득을 받고, 그리고 이 일이 성사될 시 아토베조에게 전달받을 선물에 대해 듣자 입을 다물어 버린다.


논의가 모두 끝나자 소좌가 나름의 폐회선언을 한다.


“난 언제나 난장판을 좋아해! 병신들끼리 아귀다툼을 벌이는 꼴을 구경하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지! 지들끼리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게 유도한 뒤 내버려 두고 그걸 구경하는 것이 본관의 낙이라네! 오늘은 아토베조가 이리 정성스럽게 바친 성의를 즐겨야겠어!”


“받아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와타베는 고개를 깊숙히 숙인 뒤 손뼉을 두어 번 짝짝 친다. 장지문이 열리고 화려하게 치장한 유녀들이 들어와 장교들의 옆 자리에 다소곳하게 앉는다. 넓은 술잔에 청주가 또르르 따라지자, 소좌가 건배사를 한다.


“자, 멍청한 룸펜 잉여들을 위해 한잔 들지! 이런, 신성한 천장절에 폐하의 만수무강이 아닌 잉여들을 위해 잔을 들다니! 본관도 생각보다 참 불령한 놈이야. 안 그래?”


소좌의 너스래에 두 대위는 잠깐 눈치를 보다가 유쾌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그때였다.


마루 쪽 장지문이 드르륵 열렸다.


“헤헤헤. 나리님들. 본관에게도 한잔 주시지 말임다.”


“엉?”


소좌를 비롯해 음모를 모의한 자들은 이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라 입이 벌어졌다. 대뜸 실실 웃으며 들어온 인물은 다름아닌 해군육전대의 마쓰우라 곤베에 중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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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284화 +10 21.05.23 329 10 21쪽
283 283화 +6 21.05.18 316 6 18쪽
282 282화 +6 21.05.09 350 7 23쪽
281 281화 +4 21.05.05 310 8 18쪽
280 280화 +6 21.05.02 334 8 17쪽
279 279화 +10 21.04.26 313 7 20쪽
278 278화 +6 21.04.22 324 8 16쪽
277 277화 +10 21.04.18 309 7 25쪽
276 276화 +10 21.04.11 335 10 16쪽
275 275화 +12 21.04.04 319 1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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