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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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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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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4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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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288화

DUMMY

즐거운 일을 하다가는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다. 주리는 새삼 그것을 깨달았다. 에이코가 아이들을 데리고 부두로 떠날 시간이 와버린 것이다. 하필 들어온지 바로 다음 날에 떠나는 배편을 잡았냐는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사모님이 아이들과 이곳에서 오래 머물기 힘든 현실이라는 문제 때문에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키면 사모님과 대화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었다. 그 짧은 시간에서도 많은 걸 배우고, 즐거운 이야기들을 들었으며, 큰 다짐을 하였다. 그만큼 사모님이 몇 시간이라도 더 같이 있어주었으면 하였으나, 이미 예약한 출항시간이 임박해 왔다.


에이코는 떠나기 전에 어김없이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다.


“출항 전까지 절대 밖으로 나다니지 말고, 강호 일에 얽히지 말도록 조심하세요! 그리고 주리 잘 돌봐주고요! 쓸데없이 또 무게잡고 차갑게 굴지 말고!”


천 지부장은 지금 부인과 입씨름하기는 싫은지 ”알겠소. 그리 하리다.”라고 짧게만 답한다. 에이코는 그러다가 “이제까지 몇년 간 내 잔소리를 안들었으니,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거라우! 오호호호호!”하며 제자들의 입에서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천 지부장의 얼굴에는 딱히 변화가 없다. 변화라면 이마에 일자 주름이 잠깐 생긴 정도였다.


에이코는 정우와 형제들에게는 짧은 덕담과 격려 한 마디씩 하다가, 정우에게는 특별히 몇 마디 더 붙인다.


“너도 네 사부님에게 들었겠지만, 주리는 2년간은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하는 거 알지?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그 동안 충분히 아껴 다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 하겠습니다.”


주리가 에이코 앞에서 결의할 때, 정우도 천 지부장에게 그 말을 들은 터였다.


“네 사모님이 그 애를 최소 2년간 맡겠다는구나.”


천 지부장이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였다.


“그 동안은 그 애와 만날 수 없을 게다. 너희들 수준에 근접하기까지 수련시키기에는 시간이 대단히 부족하니.”


처음에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눈 앞이 잠시 캄캄해졌었다. 2년동안 자신과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니. 순식간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자기 옆에 꼭 붙어서 온종일 종알거리고 까르르 웃는 주리를 그 세월 동안 못본단 말이던가!


“아니, 그래도 그건 좀······.”


민호가 당황해한다.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2년간 아예 만나지도 못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재호가 입을 열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그들은 아직 연애를 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우와 주리의 끈끈하고 애정 넘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던 차였다. 그런데 그 모습을 그 시간 동안 못본다고 하니 둘이 지극히 안타까워지는 것이었다.


“사실상 신혼인 너희를 갑자기 떨어트려 놓는게 미안한 말이다만···....”


천 지부장조차도 눈에 잠깐이나마 유감의 감정을 보인다. 그러나 그 감정은 바로 냉철하게 변한다.


“그렇다고 아직 무력이 약한 아이를 계속 데리고만 다닐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긴 하지만, 아가씨가 딱히 폐를 끼친 일도 없었는데요.”


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였다. “그건 그래. 우리 따라오려고 열심이였지.”라고 명수가 동조한다. 천 지부장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지는 모르는 게다.”라며 무겁게 답한다.


그런데 이때 정우가 얼굴을 들었다. 순간 얼굴에 낀 구름이 사라진 표정이었다.


“주리라면 그러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따라야겠죠.”


잠깐의 암담한 감정도 잠시, 정우는 바로 차분해졌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주리는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를 항상 걱정하고 있었다. 그 밝은 얼굴에 그늘이 드리울 때는, 자신의 무력이 전혀 없음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위험에 처하게 하진 않을까 한숨짓는 것을 정우는 언제나 봐 왔다. 애시당초 부일배 부호의 딸이자 관동군 장교의 정혼자라는 지극히 안락한 미래가 보장된 삶을 박차고 이 길로 들어섰다. 그렇다면 사모님의 말을 들을 때 주리의 선택은 사실상 정해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너라면 그리 말할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다시금 천 지부장의 눈에 유감의 감정이 일시적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정우의 표정이 그가 보기에 괜찮은 것 같자 구태여 제자의 생각을 더 묻지 않았다. 형제들은 다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정우는 살짝 웃음지으며 그게 모두를 위해서 좋은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짧은 당부 후에 에이코의 얼굴에 안쓰럽다는 기색이 살짝 나타났으나 잠깐이었다. 정우를 믿겠다는 웃음이 입꼬리에 드러난다.


이제 사모님의 시선이 주리에게 향한다. 평범한 작별인사가 오간다. 앞으로 열흘 후에 다시 만날 터이니 너무 아쉬워 말라. 그 동안 몸 조심해라. 그 동안 정우와 못 다한게 있으면 실컷 해라 등등. 주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도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들어 있는 걸 느꼈기에 코끝이 시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론 “그 동안 나 사조모님 소리 안듣게 하게 조심하고! 오호호호호!”라고 고별사를 끝내자 “아이 참! 사모님!”하며 볼을 부풀릴 수 밖에 없었다.


경자는 그 동안 “아빠! 상하이에서 또 봐요!”하며 팔을 활짝 벌린다. 천 지부장은 순간 망설이는 듯 하였으나, 자신의 단단하고 거대한 체구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어린 딸의 갸날픈 몸을 조심스레 안아준다. 경자는 잠깐 후에 아버지 품에서 벗어나 폴짝 뛰며 “오빠들하고 언니도 다음에 봐!”라고 팔을 흔들어준다.


규일은 누이와 지극히 대비되게 절도를 갖춘 채 “아버지와 사형들, 사저의 무사무탈함을 바라나이다!”라고 하며 포권을 한다. 이렇게 자란 아들과 소통할 일이 얼마 없었던 천 지부장은 무어라 답해줘야 할지 생각하는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연다.


“네 누이와 네 무공의 증진을 잘 보았다. 앞으로도 기대하마.”


아버지의 그 한 마디에 규일의 얼굴에 웃음은 떠오르지 않으면서도 감개무량함이 가득하다.


“소자, 더욱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정부 어르신들과 아버지께 보탬이 되겠나이다!!”


경자는 동생의 그 태도에 “자기만 맨날 멋진 척이야!”라고 입술을 삐죽이지만, 그 말에 악의는 전혀 없다.


형제들은 “사모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잘 가라!”, “배멀미 조심하고!” 등의 작별인사를 끝으로 잠깐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내었다.


이들에게 작별을 아쉬워할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들은 바로 짐을 챙겨서 장 대인의 배웅과 웨이샤오바오의 아래 양산빈관을 떠났다. 장 대인이 새로운 은신처로 마련해 준 곳은 차를 타고 인천 시내로 들어간 후 구불구불한 뒷골목을 걷고 또 걸어서 도착한 2층 여관이었다. 대로변은 커녕 이런 후미진 곳에 있어서 손님을 받을 수 있을지 지극히 의심되는 곳이었다. 물론 이곳은 평범한 길손을 받는 곳은 절대 아니었다.


“본토에서 여기로 일하러 온 친구들을 임시로 묵게 하는 곳입죠.”


웨이샤오바오의 설명이었다. 옥룡회나 기타 오룡회 소속 형제조직의 밀수인력이나 밀입국한 쿨리들의 임시거처가 이 여관이었다. 이들은 옥룡회에서 위조된 신분증명을 만들어 줄 때까지 이곳에서 숨어 지내며 경찰의 단속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긴급상황 시 빠르게 은신할 수 있는 지하실도 갖춰져 있었다.


역시 옥룡회 사람인 여관 주인이 나와 굽실거린다. 웨이샤오바오는 장 대인의 심부름꾼이라는 위세를 즐기길 좋아하는지 거드름을 피운다.


“제일 좋은 방은 다 준비돼 있소? 사전에 연락 받았겠지만 여기 천 어르신은 대인의 의형제이시니 불편한 것 없이 모셔야 할 것이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소인이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요.”


물론 제일 좋은 방이라지만, 이미 모두들 들어올 때부터 기대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 여관 주인이 장 대인의 직통전화를 받자마자 기겁해 몇 안되는 종업원들을 데리고 밀수꾼들과 쿨리들이 지저분하게 쓴 방들을 청소하랴 정리하랴 난리법석을 떨긴 하였다. 그러나 이미 방에 배일 대로 배인, 잘 씻을 수 없는 육체노동자들이 머물며 풍긴 퀴퀴한 냄새들은 도무지 어찌하려 해도 방법이 없었던 것 같았다. 바로 전날까지 양산빈관의 훌륭한 객실에서 머물었던 이들에게는 영 못미더운 방이었다.


그래도 인천에서 군산으로 떠날 때까지 은신하며 지내기에는 좋은 장소일 수 밖에는 없었다. 으슥한 뒷골목에서 장사 안되는 여관처럼 위장한, 경찰들의 눈에 쉽사리 띄지 않는 곳이다. 헌병이 그들을 인천으로 도주했다고 판단했어도 쉽사리 찾기는 힘들 터였다. 낡고 퀴퀴한 흔적이 남아있다 해도 상하이에서는 이보다 더 심한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있던 청년들에게는 그래도 괜찮은 곳이었다.


물론 주리에게는 살짝 얼굴이 찌푸려지는 그런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정우와 같은 방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주리는 씻고 이부자리를 깐 후에 갑자기 정우에게 볼멘소리를 한다.


“나 걱정도 안 되어요?”


앞으로 2년간 수련에 매진하느라 못볼 터인데 거기에 대해서 한 마디도 없냐는 말이었다.


“걱정할 게 뭐 있겠니?”


정우가 웃음지으며 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리가 사모님의 수련을 잘 해낼 거라고 믿었기에 굳이 입 밖에 내지 아니하긴 하였다. 하지만 주리가 이것을 무관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주리는 그저 정우가 진지하게 생각해 미안해 할 때 놀릴 거리를 찾기 위해 그리 말했던 것일 뿐이었다. 오히려 정우가 자신이 잘 해낼 것임을 새삼 확인받아서 기뻤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 시간 동안 만나지 못하고 떨어져 있어야 함을 다시금 생각하자, 그와 함께 보내는 매일매일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상하이 도착하기 전까지, 뭘 바라는 지 알죠?”


그 말을 하며 전굿불에 비친 얼굴이 살짝 상기된다. 정우는 미소지으며 “말 안해도 다 알겠다.”라고 대답하며 바로 주리의 입술을 훔친다. 정우 또한 결코 많지 않은 시간을 후회없이 보내고픈 건 마찬가지였다.


이 와중에 격렬한 키스 끝에 잠깐 입술이 떨어졌을 때, “이번에 그냥 확 사모님을 사조모님으로 만들어 드릴까요?”라고 킥킥대자 피식 하고 웃고 만다.


그렇게 3일 정도가 지나갔다. 늘 붙어 다니는 정우와 주리에게는 아니었지만, 다른 형제들에게 이 여관에서의 생활은 다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료했다. 천 지부장은 아무리 답답하러다로 여관을 절대 떠나지 말라고 지시했고 필요한 물품은 여관주인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모두들 밖으로 잘못 나갔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일어날 사태를 예상하여 그러지 아니하였다.


그러다 보니 잠자고 일어나서 삼시세끼 밥 먹고 할 일은 천 지부장에게 군사과학 강론 듣기였다. 그는 제자들을 군산으로 갈 동안 늘어지게 놔 둘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시간이 날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천 지부장이 개인적으로 시간을 쓰는 시기였다.


천 지부장이 친구 가레예프에게 선물로 받은 책, 소련군 총참모부 부참모장 트리안다필로프의 저서 『현대 군대의 작전특성』과 프룬제 군사대학의 교수 게오르기 이세르손의 저서 『작전술의 진화』를 정독하고 번역할 때였다.. 천 지부장은 훗날 임시정부가 옛 신흥무관학교 같은 사관학교를 만든다면 이 책을 교범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여 러시아어 원서를 조선말로 번역 중이었다. 형제들이 마작을 할 수 있는 때는 사부가 번역에 열중할 때였다.



그 시간 동안 형제들은 떠들석하게 마작판을 벌이거나 주방 빌려써서 몇 안되는 재료 가지고 그럴싸한 요리 만들기, 그리고 실없는 농담따먹기로 시간을 보냈다. 혈기방장한 청년들이 바깥에서 햇볓도 쬐지 못한다는 것은 영 답답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은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저 불평 없이 죽치고 숨어있을 뿐이었다.


주리는 은신생활에 그럭저럭 적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작을 배우고 그 재미에 흠뻑 빠진 덕이었다. 판돈 하나 걸지 않고 그냥 심심파적으로 하는 건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서 왜 노름꾼들이 그렇게 많은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천 지부장은 제자들이 마작으로 소일거리를 삼는 것을 그렇게까지 좋게 보지 않았기에, 자신의 군사과학 강론부터 먼저 열었다.


“문 안으로 들어갈 것이 없으면 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참 탁월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천 지부장이 『작전술의 진화』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강론한 말이었다.


“지난 대전쟁에서처럼 전과확대에 투입될 제2제파가 없는데 전선에 돌파구 형성부터 한다는 것은 지금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지. 당시에는 당시의 맥락이 있었고 이런 발상을 하던 사람이 거의 없던 때임을 감안하여도 무익한 희생이 너무나도 많았어. 솜, 베르됭, 이프르, 파스샹달······ 모두 제대로 된 제2제파가 돌파구에 투입되었다면 공세가 진행될 동안 고작 몇 킬로미터 진격하는 데 그치치도 않았겠지. 이세르손은 그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구나. 하지만 보불전쟁 이후 당대 유럽 군대들에서 선형전략과 측방노출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은 이상 당시의 관념을 넘어서는 일은 힘들었겠지. 동부전선에서 브루실로프도 결국 그리하였고.”


“무섭긴 했을 겁니다. 손자가 적을 포위하려면 5배 이상의 병력이 있어야 했다고 했는데 이제는 거의 대등한 병력으로도 포위가 가능하고 지형의 이점만 있다면 더 적은 병력으로도 포위가 되니까요.”


민호의 말이었다.


“그렇다. 보불전쟁 이후는 나폴레옹 시대에 하나의 전장에서 모든 게 결정되는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1871년 이후는 선형전략의 시대였고 얼마나 더 긴 전선을 확보하느냐가 승리의 열쇠였지. 하지만 이세르손은 지난 대전쟁으로 선형전략의 시대가 끝났음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논리로 증명하고 있다. 이제는 종심전투와 종심작전, 그리고 종심전략의 시대야.”


“그렇다면 앞으로 또 세계대전이 터진다면, 가장 깊은 종심을 갖춘 나라가 승리한단 말씀인가요?”


명수의 물음에 천 지부장이 “그렇다.”고 단언한다.


“또한 적의 종심을 휘젓기 위해 측방노출의 위험을 감수하고 돌진할 수 있는 기계화되고 차량화된 제2제파를 갖춘 쪽이 승리하겠지. 1918년의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이 그럴 수 있는 돌격대를 편성하여 효과를 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전술적 수준이었다. 이제는 작전술적 수준에서 그리하여야 해. 연속된 종심작전을 통해 적을 포위섬멸하여 굴복시키는 양상이 앞으로의 대세가 될 게다. 열강의 장교들이 대전쟁 시기의 선형전략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시베리아에서 붉은 군대와 함께 백위파를 상대로 싸우며 어렴풋이 생각하던 걸 게오르기 사모일로비치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구나. 그런 점에서 우리가 트리안다필로프와 이세르손의 책을 가지게 된 건 행운이다만······.”


그러다가 천 지부장이 주리를 본다.


“넌 제대로 듣고 있느냐?”


“예, 예?”


멍하니 있던 주리가 깜짝 놀라 두리번거린다. 모두의 시선이 주리에게 집중되어 있다. 주리는 얼굴이 빨개져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낸다.


“죄송합니다. 하시는 말씀이······. 너무 어려워요······.”


주리는 어떻게든 천 지부장의 강론을 이해하려 애를 썼지만, 그럼에도 지극히 이해하기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정우가 항상 강론이 끝나면 천 지부장의 말들을 해설해 주긴 했지만, 기초적인 용어들도 체감이 잘 안되어 머릿속에 통 들어오지가 않았다.


천 지부장은 쩔쩔매는 주리에게 차갑거나 거친 말은 하지 않고 “지금은 어렵겠지만 일단은 그런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두거라. 나중에 영자가 처음부터 알려줄 것이니.”라고 하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간다.


“여튼 우리가 독립되고 다시 나라를 세운 후 제2제파로 기동할 기계화전력을 갖추어야 한다. 소련군은 작전술적 기동부대로 활용할 기계화군단 편제를 만들었다는데 우리가 당장 그 수준이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단급 수준에서 그러한 부대를 편성해야······.”


그런데 천 지부장의 강론이 중간에 끊긴다. 따르릉 하고 전화벨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전화는 여관주인이 받았다. 중국말로 뭔가 말이 오간 후, 주인이 천 지부장을 부른다.


“어르신! 대인이십니다!”


“대형이? 알겠소.”


천 지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전화기로 간다.


“예, 대형. 덕분에 잘 지냅니다. 예···... 예···...”


그런데 어느 순간, 천 지부장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어진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투견장 말입니까···....? 예. 정말 감사합니다. 애들 데리고 바로 가겠습니다.”


천 지부장은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제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사부를 쳐다본다. 천 지부장의 얼굴에서 무시무시한 분노가 날뛰려다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대형께서 말씀하시길······.”


그의 눈이 섬뜩하게 빛난다.


“우딩웨이를 잡았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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