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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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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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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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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2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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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297화

DUMMY

한 대리는 그의 옛 방으로 들어와 씨근덕거렸다. 그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에 놀란 하인들이 빠르게 응급처치를 해준 뒤였다.


아버지가 자신의 논리를 받아줄여 줄 것이라 확신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경성에 한 번도 올라와 본 적도, 근대문명이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아버지였다. 조선조 500년 내내 양반들을 사로잡은 전근대적 관념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안하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이성과 합리, 과학적 사고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이런 아버지와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문명의 혜택을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람과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서로간의 무슨 이해가 가능하단 말인가?


그런데 10여분 후 머리가 식은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하였다.


완전히 실패했다. 아버지를 설득해서 사당 부지를 청주경찰서에 매매하는 발판을 만드는데 완벽히 실패했다. 오히려 아버지의 전례 없는 분노만 받게 되었다. 경찰과 아버지 양 쪽에 눈총을 사게 된 것이다.


경찰서의 협박 건은 지극히 곤란하였다. 상대가 경찰인 이상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으니 만큼 분명 어떤 형식으로건 불이익이 있을 게 분명했다. 아무리 그가 총독정치에 우호적이고 불온한 언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한들, 경찰은 그런 것을 따지며 사람 잡아넣는 곳이 아니었다. 이렇게 더 설득의 여지가 없는 상태로 실패한 만큼 저들이 무슨 보복을 가할지 몰랐다.


그러나 경찰보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의 심기를 완전히 거슬렀다는 것이었다. 그가 외아들이었으면 또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10살 이상 터울의 손윗누이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신임과 정을 단단히 받고 있는 자형도 있다.


그는 성장하며 상속에 대해 알게 되며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경계감을 가져왔다. 물론 사실상 조선의 모든 집안이 아들에게 더 많은 몫을 분배한다. 딸은 시집가면 출가외인이 되고 사위는 자기 문중의 재산을 물려받기 때문이다. 슬하에 딸만 있다면 친척집 아이를 양자로 삼아 상속자로 삼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딸이나 사위에 대한 재산분배 유무는 어디까지나 상속을 결정하는 사람의 의사에 달렸다.


아버지는 늘 누이를 아꼈다. 배움에서 항상 성취를 이루어 왔던 누이를 아꼈다. 누이를 능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시집보내지 않는다고 공언했다가 하마터면 혼기를 놓칠 정도로 아꼈다. 그리고 그런 누이를 시집보낼 만큼의 인물이었던 자형도 지극히 아꼈다.


오늘 그는 아버지의 분노를 유발했다. 오늘의 언쟁으로 아버지는 자신을 자랑스러운 아들에서 집안 망칠 망종으로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아들이자 적장자로서 자신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재산이 자형과 누님의 몫으로 바뀌어버릴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후회감이 몰려들었다. 대체 어쩌자고 내가 잃기만 할 도박판 따위에 끼어들었단 말인가? 경찰의 보복이 두려울지라도 아버지의 재산과 명망을 상속받기만 하면 청주의 유지로서 그들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이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협박이 두렵고 또 약속한 금액에 흔들리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


이제 어찌한단 말인가? 바로 아버지에게 찾아가 용서를 빌어야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다가 상속도 못받게 되면 그야말로 최악이 아닌가?


그러나 일어서려던 순간, 마음 속에서 뜨거운 화가 치밀어올랐다.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아버지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가? 그저 상황을 이성적으로 봐야 한다는 논지를 전개한 것일 뿐이지 않는가? 그런 내게 아버지는 고함을 지르고 상해까지 입혔다. 내 합리적인 논지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모독적인 말을 퍼부었다.


한 대리는 서양인의 학당에서 충격을 받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조선의 부모들은 효라는 수직적인 관념 하에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한다고. 그 때문에 자식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려 든다고 말이다. 이 말에 본인과 학급 사람들은 한 대 얻어맞은 얼굴이 되어 버렸다. 강하게 반발하며 학당을 뛰쳐나가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한 대리는 지금 자신이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미 성인이 되어 혼사를 치르고 자식까지 본 아들을 이렇게 대하는 것도 다 아버지가 자신을 소유물로만 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도 조선에 자유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천부적으로 부여된 권리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잘못된 건 아버지다. 왜 내가 아버지에게 사과해야 하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냉정해야 한다는 판단이 고개를 들었다. 그저 눈 딱 감고 잘못했다고만 하면 되지 않을까? 괜히 아무것도 얻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그냥 다 내가 불효를 저질렀다, 잘못했다고만 하면 용서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난 수도 없이 눈을 감고 수도 없이 머리를 조아려 오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에게 그러지 않을 건 또 뭔가?


이렇게 어찌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할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밖에서 앙칼지게 들려왔다.


“게 있느냐? 들어가마!”


미처 말도 안 꺼냈는데 장지문이 벌컥 열렸다. 설날 이후 오랜만에 보는 누이가 무서운 표정을 한 채 들어오고 있었다. 해가 갈수록 눈매가 날카로워져만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뒤로는 자형이 뒤따라들어왔다. 지극히 심각한 얼굴이었다.


자형과 손윗누이가 온다는 말을 듣지 못한 터여서 적잖이 놀란 차에, 누이가 소리부터 내질렀다.


“아버지께 어쩌자고 그런 말씀을 올린 게냐? 단단히 진노하셨다! 나도 그리하고 있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게냐!”


“부인. 일단 진정하시오.”


오 진사가 마구 호통을 치던 부인을 말렸다. 한 여사는 몸을 부르르 떨고 무섭게 동생을 노려보았다.


아까 전 까지만 해도 아버지를 찾아가 사과를 올려야 할지 말지 전전긍긍하던 한 대리는 누이가 보자마자 소리부터 지르니 순간 심사가 뒤틀렸다. 집안에서 아버지 다음으로 무서운 게 이 누이였다. 한참이나 높은 나이에 사내 못지 않게 당당한 태도와 엄한 성격 탓에 누이가 시집가기 전까지 기를 못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분명 아버지부터 먼저 만나며 흥분한 아버지 말만 듣고 이리 꾸짖는 것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사과하고픈 마음이 빠르게 사라졌다.


“집안 상황을 고려해 최대한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것 뿐입니다. 그게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군요.”


“뭐라? 그게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 이런 불측불효한 놈! 대체 한성에서 뭘 배웠기에 그런 망언이냐!”


“자. 자. 진정하시오. 부인이나 처남이나 너무 흥분한 듯 하오.”


더욱 화를 토해내는 부인을 오 진사가 다시금 말리느라 애썼다.


“처남. 나도 놀랐다네. 항상 처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던 장인어른이셨네. 그런데 이렇게 자네에게 상처까지 입힐 정도로 진노하시는 건 처음 보았다네. 어째서 그런 말을 하였는가?”


한 참의는 역성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여자들 사이에 도는 말이 이런 것이라고 느꼈다. 항상 아버지가 칭찬을 아끼지 않던 자형이었다. 자신의 유산을 가져갈지도 모르는 자형으로서는 자신과 아버지의 사이를 더욱 벌려야 이익이다. 그런데 이런 걱정하는 말을 한다는 건 그저 조선조 500년 동안 변함이 없던 위선떠는 행동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한씨 집안 사람도 아닌 분이 왜 참견이신지 모르겠군요.”


“뭐, 뭐라?”


한 여사는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오 진사도 한 대 거세게 얻어맞은 얼굴이 되었다.


“이건 저와 아버지의 문제입니다. 자형이 오늘 왜 오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집안 사람도 아닌 자형이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 출가외인인 누님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좀 쉬고 싶습니다. 이만 돌아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가······. 네가 어찌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이더냐! 어찌 네가!”


한 여사가 화를 참지 못하고 동생에게 삿대질을 하였다.


“그래. 종법상 우리는 아무래도 다른 집안 사람일세.”


아내와 달리 오 진사는 손아래처남에게 그런 말을 들은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그럼에도 난 장인어른께 처남을 어떻게든 바른 길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하고 여기 왔네. 그러니······.”


“바른 길? 뭐가 바른 길입니까?”


한 대리는 자형에게 눈을 치켜떴다.


“독립운동 하겠답시고 이곳저곳에 민폐끼치고 집안재산 까먹는 게 바른 길입니까?”


“아니 저! 저!”


누이의 흥분한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형하고 누님이 바깥에서 그런 거 하고 돌아다니며 제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합니까? 경찰에 붙들리기라도 하면 제게도 피해가 온다는 거 알기는 해요? 이미 저 회사에서 여러 번 승진 미끄러진 처지인데 두분이 불령한 짓 했다는 통보가 회사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제가 어떻게 될지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그럼 그딴 데 그만 두면 되지 않느냐!”


누이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회사인지 뭔지 모르겠다만 때려치우고 내려와라! 네가 한성 올라가더니 신학문이랍시고 오랑캐 소리나 주워삼키더만 이제 내려올 때가 된 모양이구나!”


“회사 나오라고요? 미쳤어요?”


한 대리도 성이 나 거친 소리까지 한다.


“거기 나오고 나보고 여기 오라고요? 수도도 전기도 전차도 없는 곳에? 누님은 이런 곳에서만 있어서 모르는 모양인데, 문명이란걸 한번 겪어 보면 그런 소리 못합니다! 여기서 비합리적일 정도로 적은 소작료 가지고 애쓸 때 거기서는 서류만 써도 더 많이 벌어요! 그런데 관두고 내려오라고요?”


“지금 벌고 못벌고가 중요하더냐? 네가 아버지 곁에서 그렇게 떨어져 있다가 이 집안을 오랑캐 소굴로 만들려 할 정도의 위인이 되었거늘?”


“오랑캐, 오랑캐 하는데 그게 대체 언제적 말입니까? 지금은 세상이 바뀐지 오래 되었어요! 누님이 그렇게 오랑캐라 하는 서양이 이제 문명의 중심지요, 표준입니다. 우리 조선은 소중화니 뭐니 하고 공자왈 맹자왈 주자왈 하며 공허한 말만 하다 그 문명에서 뒤쳐졌다고요! 시대가 변했는데 왜 옛날과 똑같이 살려 합니까!”


“그래! 오랑캐가 작금의 세상을 지배하는게 지금 시대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도 사서에서 배우지 않았더냐! 중원을 200년 가까이 차지한 몽골 오랑캐도 결국 북으로 쫓겨났다! 만주 오랑캐는 중산이라 하는 손문이 앞장서서 이끌어 쫓겨났고! 오랑캐들은 그들의 지배가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만 지금은 어디에 있더냐?”


“그게 지금과 같아요? 전근대국가와 근대국가가?”


“난 그 근대인지 전근대인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알 생각도 없다! 확실한 것은 오랑캐의 지배는, 그리고 패도의 지배는 그게 얼마나 걸리건 항상 무너져왔다는 것이다! 진시황이 그리하였고 수양제가 그리하였듯이! 너는 그걸 알면서도 불효하고 불충한 오랑캐 말을 주워삼키며 아버지에게 불효를 저질렀단 말이더냐?”


“그래요! 총독정치가 언젠가는 끝난다고 칩시다! 근데 그게 지금 끝납니까? 작년에 그렇게 만세 불러서 뭐가 됬습니까? 난 만세소리 진동할 때 내가 회사에서 어떤 꼴을 당할지 몰라서 떨었어요! 왜 되지도 않는 짓이나 해서 주변사람 다 힘들게 하고 다닙니까!”


“이런 못난!”


서로 눈을 이글거리며 말다툼을 벌일 때 다시 오 진사가 나섰다.


“동복동기간끼리 이러지 마시오. 처남 형편도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오. 나도 그 회사란 게 뭔지 도통 모르긴 하오만, 처남이 어쩔 수 없이 왜놈들 밑에서 일하니 계속 곤란한 일이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오. 너무 화만 내진 맙시다.”


이에 부인이 장탄식을 했다.


“어찌 마음 속에 심화가 끓지 아니하겠습니까? 집안이 오랑캐로 전락할 지경에 처하였나이다!”


“그래도 꾸짖기만 하면 될 일도 잘 안되게 될 것 같소. 부인도 그렇고 처남도 그렇고 모두 과하게 흥분하였으니, 일단 쉬었다가 내일 다시 얘기합시다.”


오 진사는 그러고 처남을 보았다. 안쓰럽다는 심경이 눈에 배어나왔다.


“처남도 오늘 그런 일을 겪었으니 심사가 뒤틀리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걸세. 하룻밤 쉬고 머리가 가라앉은 뒤 자신을 돌아보면 심경이 달라질 수 있을 걸세.”


그러나 한 대리는 이미 자형의 그런 태도조차도 보기 싫어서 “위선 떨지 마시죠! 솔직하게 좀 구세요!”라고 소리치려 했었으나, 그 말이 입에서 나오기도 전에 자형이 발길을 돌렸다. 누이는 한 차례 더 눈을 부라리고는 남편을 따라 나갔다.


한 참의는 더욱 씨근덕거리며 머리에 김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래! 다 내 잘못이지! 신학문 배우고 머리 깎고 양복 입은 내 잘못이지! 일본 회사에서 일하는 내 잘못이지! 공맹정주의 가르침 따위 다 위선이고 허위인걸 확인하고 근대문명이란 게 만인대 만인의 투쟁과 경쟁으로 발전한 것임을 목도한 내 잘못이지! 욕망을 삼강오륜이란 억압 속에 가둬두지 않고 자유롭게 표출하는 것이 서양과 일본이 발전한 근원임을 깨달은 내가 다 잘못한 거지!


그렇게 씩씩대던 한 대리는 저녁도 걸렀다가 어느 새인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닭 소리에 잠이 깬지 얼마 후, 자신이 어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몸을 떨었다.


내가 미쳤지! 아버지에게 용서받고 유산상속에 지장이 가지 않을 수 있게 만들 기회를 내 스스로 차버리지 않았는가! 괜히 자존심이 앞서서 맞서서 고함을 지르다니! 맨날 이성이 어쩌고 합리가 어쩌고 하던 내가 어쩌다가 이런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짓을 저질렀는가!


자형의 말이 맞았다. 머리가 식으면 심경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 했는데, 지금 바로 자신이 그랬다.


게다가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 생각 하나가 더 났다. 자기와 통화한 경찰이 분명 말했다. 자형과 누님이 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어서 내사중이라고. 비록 어제 그렇게 비꼬고 싸워대긴 했지만, 그리고 항상 어려운 누이였지만, 동기간의 정이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최소한 그걸 일러주기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서둘러서 하인이 대령한 세숫물로 빠르게 씼고 아버지를 뵈러 사랑채로 가려던 차였다. 지금 중요한 건 자존심이 아니었다. 사랑채 마당에 엎드려 머리를 쾅쾅 찧는 한이 있더라도 용서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문 하나를 지나 사랑채 마당으로 들어선 그 순간이었다.


“이······. 이게 무슨!”


그가 본 것은 마당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십여 명의 제복순사들이었다. 패검 소리가 찔걱거리며 차가운 새벽공기를 울렸다. 하인, 하녀들이 두려움에 떨며 그들에게 길을 비켜주고 있었다.


“네 이놈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행패냐!”


한 진사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한 대리는 굳어있던 다리를 움직여 빠르게 사랑채 앞으로 갔다. 활짝 열린 사랑채 안에 이부자리 위에서 몸을 일으킨 한 진사가 노호성을 지르는게 보였다.


“내가 언제 네놈들보고 이리 들어오라 했느냐! 썩 물러나지 못할까!”


그 말에 순사들 가운데에서 풍채가 좋고 뱃살이 툭 튀어나온 사람이 나왔다. 견장에 경부 계급장이 붙은 걸로 보아 이 경찰들의 우두머리 격 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사람은 일본말로 이렇게 말했다.


“아. 실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식으로 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협조를 안해주시는 이상 강제로 집행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옆에 있는 순사가, 아마도 조선인으로 보이는 순사가 바로 통역했다. 그 말에 “이······ 이 놈이!” 하고 한 진사가 고함을 지르려던 그 때였다.


“놔라 이놈들! 이게 무슨 행패냐!”


안채 쪽에서 고함이 들렸다. 이때 한 대리는 똑똑히 보았다. 자형과 누이가 포승줄에 묶여 순사들에게 끌려오는 모습이 말이다.


“오세창. 한자청. 너희들을 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한다.”


경부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자세한 건 서에서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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