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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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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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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289화

DUMMY

인천항 4번 부두의 널찍한 물류창고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창고였다. 칭다오, 상하이, 다렌 등지로 향하는 물자들, 또는 그곳에서 들어온 물자들이 목제상자에 담겨 곂곂히 쌓여 있다. 이 무거운 상자들을 나르는 데 중국인 쿨리들의 땀방울이 얼마나 바닥에 떨어지고 말라갔는지 모를 일이다. 환기가 그렇게 잘 되는 곳은 아니기에 큼큼한 땀냄새가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그러나 창고 건설 때 인천부 당국이 지하 저장고라는 건설사측의 주장을 의심없이 수용한 지하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오직 소문을 듣고 알음알음 찾아온 사람들만이 안다. 그리고 지금 주리는 그 창고 지하가 어떤 곳인지 목도하였다.


지하층에 도착했을 때 반겨준 건 순간 가슴을 놀라게 하는 소음이었다.


컹컹컹! 왈왈왈!


수십 마리의 개들이 한꺼번에 으르렁대며 짖는 소리였다. 품종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사납기 그지없는 개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댄다. 조선의 시골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런 개들은 물론이고, 주리가 동물도감에서 본 불독, 도사견, 포인터, 도베르만 등의 개들 중 가장 사납고 강한 개들이 마구잡이로 짖어댄다. 그 개들이 쏘아대는 눈빛에 이미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겼던 주리도 가슴이 졸아드는 기분이었다. 철망 안에 갖힌 개들이 날뛰며 몸을 부딛쳐 철겅거리는 소리, 그리고 “주커우(住口)! 주커우!”하며 개들을 을르는 중국인 조련사들의 고함이 소음에 추가된다. 지하인 만큼 더욱 환기가 안되어 개들의 분변 냄새도 코에 끼쳐온다.


개들이 갇혀서 날뛸 날만 기다리는 철망은 구석진 자리에 있었고, 널찌막한 지하층의 중앙에는 의자들 층층히 배치되어 있었다. 한층 지하로 움푹 들어가 원형 철창으로 둘러싸인 정가운데를 둥그렇게 둘러싼 모양이었다.


이곳은 옥룡회 소유의 투견장이었다. 지상은 멀쩡한 물류창고인 반면, 지하에서는 밤만 되면 개들이 우리에서 끌려나와 이빨을 드러내며 아귀다툼을 벌인다. 그리고 일확천금을 꿈꾸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짐승들의 무자비한 싸움 자체를 즐기며 어느 개가 이길지에 돈을 건 사람들이 싸움과 취기에 흥분하여 고성을 지르고, 도박에 진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디가 험악한 중국인들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곳이었다.


이 투견장은 인천 부두와 중심가에 옥룡회가 만든 여러 도박장 중 하나였다.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돈 되는 사업은 모두 진출한 옥룡회인만큼 이 불법 투견장을 운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천남건 지부장이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에 온 이유는 개들이 싸우는 원형 경기장에 놓인 것들로 명확했다. 3일 전에 청방이 성의라고 보내온 밀정 돤궁하이를 처참하게 도살하라고 늘어놓은 흉기들이 전굿불 아래 시퍼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천 지부장이 울부짖는 돤궁하이를 짓부순 편곤도 그 중에 있다. 그때 가져왔던 거대한 작두가 유독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다. 우딩웨이의 사지를 묶을 십자가 모양의 형틀도 눈에 띈다.


우딩웨이가 잡혔다는 말에 형제들은 모두 흥분했다.


“그 썩을 놈이!”



민호가 가장 먼저 욕지기를 내뱉었다. 우딩웨이, 그들이 수개월 간 목숨을 걸고 벌어온 자금 10,000여원을 전부 가지고 도주한 자였다. 강호 경험도 많고 옥룡회에서 신뢰받는 고참 단원이자 얼굴을 알고 술자리도 몇번 같이한 자였기에 충격이 더더욱 컸다.


“어떻게 잡혔다고 합니까?”


민호의 물음에 천 지부장은 무섭게 굳어진 얼굴로 답한다.


“아직 말씀 안해주셨다. 가면 알게 되겠지. 투견장까지 차를 보내주신다 하니 잠깐 기다리거라. 그곳에서 심판하신다 하신다.”


“그 자식 대갈통을 부숴버려야 해!”


대석이 으르렁대며 주먹을 꽉 쥔다. 우딩웨이의 만행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옥룡회의 신뢰에 잠시나마 금이 갔으며, 이는 백범 선생이 우가키 총독 암살을 위해 유진만, 이덕주 두 동지를 침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옥룡회가 아닌 청방을 택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청방 내의 밀정들에 의해 정보가 새어나가 의거를 해보지도 못하고 체포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놈 때문에 엿먹은거 생각하면!”


재호가 이를 갈고 명수도 분기에 눈을 부릎뜬다. 우딩웨이가 이 모든 난리를 만든 원흉이었다고 해도 심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다들 우딩웨이를 심판대에 올리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종팔이 정우에게 묻는다.


“근데 대인께서 그놈 생간을 꺼내 우리에게 맛보게 해주겠다고 하시지 않았냐?”


그 물음 한 마디에 갑자기 모두의 흥분이 가라앉는다. 이미 피를 여러 번 손에 묻힌 그들일자라도, 아무리 그래도 복수라며 사람의 장기를 먹는다는 것은 대단히 꺼림칙한 일이었다. 돤궁하이가 도살당할 때도 옥룡회 사람들처럼 속시원함을 느끼기는 커녕 부담감과 꺼림칙함을 느낀 그들이었다. 우딩웨이의 처참한 죽음을 바랬지만, 그렇다고 대인이 정말 그렇게 한 뒤에 그걸 성의라고 내밀면 어찌해야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분노가 최고조일 때야 그놈 간을 씹어먹겠다고 날뛰었지만, 막상 일이 닥치고 보니 정말 그래야할지는 지극히 당황스럽다.


“그래.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은 하셨는데······.”


정우는 무심코 말한 후 아차 하며 옆자리의 주리를 황급히 돌아보았다.


“뭘······. 맛보게 해주신다고요?”


주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정우는 일전 양산빈관에서 대접받을 때 장 대인이 우딩웨이의 생간을 씹게 해주겠다는 말은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주리가 괜히 충격받고 번민할 것이 걱정되서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우딩웨이를 어떻게 벌할지 입 밖으로 내버리고 말았다.


주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사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지금까지 그저 지나간일로 생각한 돤궁하이의 도살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피를 쏟아내며 사지가 꺾여나가던 그 모습을. 그런데 장 대인은 그보다 더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우딩웨이가 송금액 10,000원을 가지고 도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왔을 때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그때는 주리도 분개해서 “그 나쁜 놈! 콱 죽어버리면 좋겠어요!”라고 소리쳤었다. 그러나 그 우딩웨이의 간을 먹는다는 것은 역시 다른 문제였다.


정우는 눈치없이 그 말을 입에 담은 종팔을 힐난하고픈 마음을 참고 둘러댈 말을 찾는다.


“비유적으로 말씀하신거야. 원수의 간을 씹어먹겠다는 표현은 우리나라에도 있잖아.”


그렇게 말하는 정우의 표정은 형제들에게 무언의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다들 그 의사를 알아차리고 빠르게 수습하려 한다. “아. 그래. 그냥 표현이지.”, “표현이 격하신 게야.”라고 한마디씩 한다. 실수를 알아차린 종팔은 정우에게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을 보인다. 그러나 주리의 얼굴에서 핏기가 돌아오지 않는다. 장 대인의 호걸다운 호탕한 모습과 동시에 배신자에게 극도로 무자비한 모습, 그리고 밀정을 될 수 있는 한 끔찍하게 죽이라며 광기까지 내보이던 옥룡회 사람들을 본 주리로서는 장 대인이라면 정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천 지부장의 얼굴은 험악하다.


“대형께서 그리 하겠다고 정하셨으면 그리 하시겠지. 그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라도 말이다.”


그러며 천 지부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섬뜩하게 말했다.


“일전의 놈은 너희들 얼굴 봐서 그렇게 심하게 가진 않았지만, 그놈에게는 다를 것 같구나.”


정우는 사부님이 이번에는 절대로 손속을 두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였다. 그는 장 대인만큼 밀정과 배신자의 죽음을 즐기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비를 베풀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였으니.


그래서 정우는 이곳으로 향하는 차에 타면서부터 주리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우딩웨이에 대한 분노보다 더 큰 것은, 주리에게 또 끔찍한 광경을 보여줄 걱정이었다. 밀정을 죽이라고 한목소리로 아우성치며 얼마나 피가 흘러넘칠지 기대하는 옥룡회 사람들의 서슬퍼런 모습, 천 지부장이 돤궁하이의 사지를 부수고 두개골을 부수어 도살한 광경에 주리는 분명 충격을 크게 받았다. 괜찮다고 여러 번 말해도 전혀 괜찮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내인 자신과 형제들도 몸서리쳐지는 광경이었는데 주리가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주리는 몇분 후 혈색이 돌아와서는 “그 나쁜 놈, 이제 나자빠져 죽겠네요!”라고 종알대었다. 정우는 일부러 밝아 보이려 하는 그 태도가 오직 걱정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의 발로임을 안다. 그 때문에 정우는 그 말에도 “그래. 그렇겠네.”라고 단답형으로만 대답하였다. 그 때문에 투견장으로 가는 차 안의 분위기는 무거워지고 말았다. 옥룡회에서 보내준 트럭 짐칸에 타고 투견장까지 가는 시간 동안 그들의 입이 열린 적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개들이 으르렁대는 소리를 들으며 투견장으로 들어오자, 관중석에서옥룡회 사람들과 앉아 있던 장 대인이 몸을 일으키는게 보인다.


“현제! 조카들! 잘 와줬네!”


장 대인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잔혹한 기쁨이었다. 모두들 포권하며 그에게 인사한다.

“오늘은 기쁜 날일세! 우리 옥룡회를 망신시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엄청난 피해를 준 놈을 여기서 끝장내게 되었으니 말일세!”


“이 아우는 대형께서 배푸신 성의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정부 요인분들께서도 필히 기뻐하실 것입니다. ”


천 지부장은 그러고는 “대체 그놈을 어떻게 잡은 것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런데 장 대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놈이 글쎄 어디로 도주한 줄 알았더니 인천에 왔지 뭔가? 우리 애들이 돌아다니다가 놈 얼굴을 알아보고 바로 잡아서 끌고왔다네!”


“예? 여기로 돌아왔단 말씀입니까?”


“그래. 그 정도의 거액을 가진 놈이 외국으로 도주도 안하고 왜 여기 왔는지 이해가 안가긴 하는데, 이유가 뭐든 상관이 있겠나? 중요한 건, 놈이 이제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는 걸세!”


그러며 장 대인은 기분좋게 웃는다. 그는 의형제에게 폐를 끼치게 만든 우딩웨이를 최대한 잔인하게 죽일 수 있게 된 것 자체로 매우 고양된 터였다.


하지만 정우는 이상함을 느꼈다. 10,000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옥룡회의 손이 닿지 않는 외국으로의 도피는 물론이고 환전 후 도피한 장소에서 사업 종잣돈으로도 쓸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왜 제발로 인천에 돌아와 잡힌 것인가? 왜 끔찍한 죽음이 뻔한 인천으로 돌아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놈이 가져간 돈도 찾으신 겁니까?”


명수의 물음에 장 대인은 고개를 젓는다.


“놈의 수중에는 얼마 없었네. 그 동안 다 써버린 것 같은데 우리 애들이 어디다 썼냐고 추궁해도 말을 안하다 하더군. 이 자리에서 밝혀보도록 하지!”


장 대인은 다시금 웃으며 손을 펼친다.


“자, 기대하시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성의를 최대한 보여주도록 하겠네!”


그 직후 호령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놈을 끌고오라!”


거친 목소리에 투견장이 쩌렁쩌렁 울리자 조련사들의 호령에 조용해졌던 개들이 다시 짓는다. 그 소음 속에서 저만치 누군가 끌려오는게 보인다. 성난 얼굴의 옥룡회 사람 둘이 그를 질질 끌고온다. 얼마나 심하게 구타를 당했는지 원래 얼굴이 어땠는지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의 중년 사내였다. 정우가 기억하는 우딩웨이의 얼굴과는 판이하게 달라져있었다.


우딩웨이는 끌려와 투견장 한가운데에 무릎꿇려졌다. 장 대인이 몸을 확 일으킨다. 부글부글 끓는 얼굴로.


“우딩웨이! 이 자라새끼야!”


장 대인은 숫제 투견장으로 뛰어내린다. 그의 거대한 손이 우딩웨이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가격한다.


“이 18대 조상까지 다 욕보일 새끼! 네놈 때문에 우리 옥룡회는 강호의 망신거리가 되었다! 고객 돈 하나 제대로 관리 못한 놈들이라고 뒷말하는 놈들이 자자해! 네놈이 저지른 짓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우의가 흔들리고 신뢰를 잃을 뻔했다! 다들 네놈을 믿고 일을 맏겼거늘 신뢰를 배신으로 갚아? 강호의 도의를 저버리고 우릴 배신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무릎이 꿇려진 채 고개를 푹 숙인 우딩웨이는 말이 없다. 장 대인은 우딩웨이가 대답하건 말건 얼굴에 잔인한 웃음을 띄운다.


“강호의 도의를 어긴 이상 내가 널 어떻게 처리할 지 알고 있겠지? 지금 네 옆에 있는 것들을 다 하나씩 써주마. 네놈의 살가죽을 서서히 벗겨내고 내장을 쑤시고 후벼파주마. 그리고 숨이 붙어있을 때 저 작두로 허리를 잘라버린 뒤 아직 숨이 붙어있을 때 저기 개들의 먹이로 만들어주마! 극상의 고통 속에서 서서히 물려죽어가는 그 꼴은 최고의 안주거리겠지! 저 녀석들은 이미 사람고기 맛을 잘 아니, 아주 맛있는 식사가 될 게다. 네놈 몸뚱아리는 그저 개똥이 되어 으스러지는 게다! 알겠나!”


장 대인이 폭풍같이 토해내는 분노에 정우는 몸이 떨릴 정도였다. 그 말에 어느새인가 관중석을 꽉 채운 옥룡회 사람들이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를 연발한다. 이들은 3일도 안되어 또 배신자의 피를 볼 날이 왔음에 흥분하고 있었다. 이들의 소음에 다시 개들이 짓는 거센 소리가 섞여든다.


“아, 아쉽군. 간은 빼서 현제와 조카들에게 회쳐 줘야 하는데 그럼 기절해서 물려죽는 고통은 못느끼잖아? 하지만 간을 회치겠다고 약속했으니 어길수는 없겠어! 네놈이 처절하게 질러대는 비명으로 강호의 규칙을 어긴 놈들이 어떻게 되는지 일벌백계로 삼으마!”


장 대인은 으름장을 지르고는 다시 웃는 얼굴이 되어 조카들을 본다.


“이리 내려오시게! 이놈을 원하는 대로 하게나! 돈을 어디다 썼는지 알아야 할게 아닌가?”


그러나 형제들 중에 선뜻 내려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천 지부장만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이었다. 정우는 누가 해야 한다면 자신이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일어나려다가도 주리가 자신이 그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감정에 엉거주춤한다.


그런데 웃음소리가 하나 들린다. “으하하하!”하는 큰 웃음소리, 냉소와 비웃음이 가득 담긴 웃음이었다. 그 웃음의 주인은 놀랍게도 우딩웨이였다.


“이놈이 미쳤나?”


장 대인이 어이없어한 순간, 우딩웨이가 수그린 고개를 확 쳐든다. 우딩웨이의 눈을 마주친 순간, 정우는 흠칫 놀랐다. 그 눈은 도살장에 끌려온 가축의 눈이 아니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루어서 더 이상 이승에 미련이 없다는 사람의 눈이었다.


“강호의 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우호? 대인! 그 말이 참으로 우스꽝스럽습니다!”


우딩웨이의 목소리는 모두를 한층 더 놀라게 한다. 그의 목소리는 대단히 당당했던 것이다.


“뭐가 우스꽝스러우냐, 이 자라새끼야!”


장 대인의 호통에도 우딩웨이는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제게는 말이죠, 대한민국 임시정부, 빵쯔놈들의 정부 같지도 않은 정부와의 우의라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헛소리입니다! 개똥같은 소리에 불과하다 이겁니다! 그런데 옥룡회의 규칙이 아닌 그걸 훼손시켰다고 날뛰시는 게 제게는 그저 배꼽잡는 소리인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말이 끝나마자 장 대인의 손이 다시금 날아든다. 퍽 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이놈이 천천히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관중석의 옥룡회 사람들도 분기가 치솟아 “저 미친놈이!”, “대인께 감히 무슨 말버릇이냐!”라고 거칠게 내뱉는다. 아예 투견장으로 뛰어들려는 자들도 보인다.


그러나 우딩웨이는 전혀 기죽지않는다. 그는 한때 충성을 바쳐온 옥룡회 분타주에게 눈을 치켜뜬다.


“예! 맘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저는 산채로 개먹이가 되어도 그때 그 돈 가져간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빵쯔놈들 물먹이는 것! 지들이 피해자라고 징징대는 빵쯔들 망하게 하는 것! 구이쯔들에게 돌 하나 못던지면서 우리에게는 착한 짱꼴라는 죽은 짱꼴라니 하면서 그 지랄을 떤 빵쯔놈들 엿 먹이는 것!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난 그렇게 할 겁니다!”


“오냐. 죽여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그렇게 혀를 나불댈 수 있는지 한번 보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장 대인은 바닥에 나열된 흉기 중 하나를 잡는다. 극히 날카롭게 갈아놓은 낫이었다.


“이걸로 니 새끼 가죽부터 벗겨주마!”


그러며 장 대인이 눈짓을 하자


그러다가 장 대인은 “아니, 손톱부터 하는게 나을까? 아니면 이빨?”이라며 쇠집게도 하나 집어든다. 그런데도 우딩웨이는 여전히 눈을 흡뜨고 입을 멈추지 않는다.


“강호의 도의? 개풀 뜯어먹는 소리 마십쇼! 빵쯔놈들 뒤나 닦는게 강호의 도의입니까? 빵쯔 새끼들이 뭔 짓을 하건 가만히 있는게 도의입니까? 잘나신 빵쯔 아우님을 현제, 현제 하며 챙기는게 도의입니까? 집어치우십시오!”


“빌어먹을! 혀부터 뽑아야겠구나! 저놈 입 벌려라!”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장 대인이 집게를 꽉 잡는다. 탈취한 돈을 어디다 썼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디에 은닉했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것은 잊어버렸다. 투견장에 “죽이소서!” 소리와 개들이 왈왈 짓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그런데 그때, 우딩웨이가 고함을 지른다. 순간 장 대인조차도 멈칫하게 만드는, 좌중의 “죽이소서!” 소리가 잦아들게 만드는 처절한 고함이었다.


“대인은 작년 7월의 일을 잊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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