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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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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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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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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화

DUMMY

인천의 양산빈관에 한인애국단 사람들이 막 연회에 들어가려 할 때, 기타무라 헤이스케 소좌는 지휘본부에서 짜증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말이 되나, 안되나 호리 군!”


소좌는 애꿏은 부관에게 성화를 낸다. 그가 잡고 있는 암호화된 전문은 인천 일대를 담당하는 제10헌병대에게서 도착한 전문이었다. 제10헌병대는 상황전파받은 즉시 인천으로 들어가는 모든 통로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출입하는 차량과 인력을 철저히 통제했으나, 불령선인이나 그 협조자로 의심되는 자는 단 한명도 포착하지 못했다고 전해 왔다. 이는 소좌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정보나 다름 없었다.


“분명 놈들이 한강을 건너 부천으로 빠졌다면 목적지가 인천 말고는 갈 곳이 없다는 말이잖나! 그런데 인천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


제7헌병대 소속 1개 분대가 불령선인들을 뒤쫓다 섬멸당했다는 보고에도 잠깐 짜증만 낸 소좌였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너무 달랐다. 불령선인들의 도주예상지점을 인천이라고 확신하던 차였다. 불령선인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하고 유일한 선택지로는 그것밖에 없어 보였다. 그런 관계로 인천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한 꽤나 두통을 유발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짧게는 조선 황해안 전체, 그리고 사태가 장기화되면 조선의 모든 항구와 해안을 다 뒤져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시라키 대위의 우려였다.


“게다가 그렇다고 인천으로 가지 않았다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러면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집니다.”


“그래. 그렇지.”


소좌가 말을 받는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소좌는 더 짜증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 징그러운 미소가 빙긋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더 재밌는 거야! 놈들이 발악하면 할 수록 내 기분은 하이해지거든! 앞서 말했지만, 여긴 좁디좁은 반도라네, 시라키 군! 이미 차량을 상실한 이상 도보로 가건 차량을 탈취하건 도주반경은 제한되어 있어. 설령 예상을 넘어서더라도 곳곳이 우리 병력인데 어떻게 도망치겠나? 비록 내 예상이 깨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네. ”


소좌는 검지손가락을 세우고 그럴싸한 격언을 한다.


“인생이란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겠나?”


“아니······. 아무리 그러셔도 너무 여유만만하신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상황을 정리하길 원하는 시라키 대위로서는 기타무라 소좌의 태도에 안달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조용히 있던 호리 대위가 입을 연다.


“말씀하신 대로 놈들이 도주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사령관 각하께 경기도 일대에 대한 일시적 검문을 건의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래. 그래.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게지.”


“또한 여기 제10헌병대가 놈들을 놓쳤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호리 대위는 계속 조언한다.


“소관이 보기에, 우선 인천부터 시작한 뒤에 봉쇄와 검문의 범위를 넓혀 가야 합니다. 또한 인천항에 대한 최소 10일간의 봉쇄조치가 단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려진 임시조치 기한 내에서 놈들을 찾아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불령선인들이 인천으로 도주하려는 의도임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던 소좌는 이와타 헌병사령관에게 바로 보고했었다. 소좌는 48시간 동안의 인천항 봉쇄와 출항금지 조치를 제안했다. 이와타 소장은 이에 동의하여 하야시 사령관과 우가키 총독에게 항만봉쇄 승인을 받아내었다. 이를 통해 인천에서 출항예정인 모든 선박의 일정이 금일 1800시를 기하여 내려질 것이었다.


그러나 저들이 인천에 갔는지 가지 아니했는지, 아니면 제10헌병대의 검문망을 뚫고 인천에 잠입하여 밀항 기회를 노리고 있는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봉쇄조치의 연장이 필수적이었다.


“그래. 제10헌병대에서 일 제대로 못하는 멍청이들이 헛짓했을 수도 있지.”


소좌가 그러며 마른 입술에 혀를 낼름거린다. 뱀이 갈라진 혀를 내미는 것처럼.


“가정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으니, 일단 자네 제안대로 해야겠네.”


더 강력한 조치를 생각한 소좌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에 열이 띄기 시작한다.


“우선 인천을 더 봉쇄해야 해. 48시간으로는 인천항에 정박한 모든 선박들을 다 뒤지고 인천 전체를 수색할 수 없어. 아니, 인천에 오지 않았을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모자라. 놈들을 완전히 잡으려면 반도 내의 모든 항만들을 샅샅이 뒤져야 해! 48시간으로는 부족해! 무기한 봉쇄조치가 필요해! 철저하고 완전한 봉쇄가! 그 어떤 미꾸라지도 빠져나가지 못할 봉쇄가!”


군의 강력한 지휘 아래 조선의 모든 해운이 일시 정지되는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서 육군이 가진 막대한 권력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여객선도, 상선도, 어선도 모두 항만을 떠나지 못한 채 헌병의 수색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한 체계가 명령 하나에 일시 멈추는 광경이 소좌에게는 그렇게 바람직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바로 헌병사령관실로 찾아갔다. 소좌는 인천을 시작으로 경기도 일대 해안을 모조리 봉쇄한 뒤 봉쇄의 범위를 차츰 확장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와타 사령관의 반응은 떨떠름하였다.


“귀관의 조치는 가장 확실한 조치네만, 대단히 무리한 조치이기도 하네. 본관이 인천 봉쇄조치를 건의하였을 때, 총독각하께서는 인천항을 통한 세수에 문제가 생길 것부터 먼저 우려하셨네. 물론 불령선인 체포가 지금은 더 중요한 문제라 48시간 봉쇄조치를 승인하시긴 하셨지만, 그 이상을 각하께서 허락해 주실지 모르겠네.”


그 말에 소좌는 당혹감을 느끼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하지만 봉쇄조치가 풀리면 놈들이 도주할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면 완전히 우리 손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타 소장의 답변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본관도 기본적으로는 귀관의 발상에 동의하네. 하지만 총독각하께서는 폐하의 대리인이시자 조선반도 전체의 통치자로서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고려한 뒤에 결정을 내리신다네. 며칠 더 봉쇄기한을 연장할 수는 있겠으나, 무기한 봉쇄까지는 기대하기 곤란하지 않을까 하네.”


이 점을 내가 너무 간과한 건가? 기타무라 소좌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소좌에게 있어서는 불령선인 전원 체포와 관동군 자금의 회수가 가장 중요한 일이고 그것만을 바라보아야 했지만, 우가키 총독은 더 큰 것을 봐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항만봉쇄로 불령선인을 단기간에 잡는다면 좋은 일이지만, 만약에 사태가 장기화된 채 계속 봉쇄조치가 진행된다면 조선의 모든 해운업체들과 어업 관련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몇몇 업체는 도산에 이를 수도 있다.


가뜩이나 대공황으로 여러 업체들이 몰락한 와중에 남면북양 정책과 수력발전소 건설 등으로 대표되는 여러 경제개발 계획을 위한 예산이 필요한 총독으로서는 세수부족을 초래할 것이 분명한 항만봉쇄를 선뜻 택하긴 어려운 일이리라.


“비록 본관이 단기간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봉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각하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은 작은 일에 불과하네. 언론에 공개된 일도 아니고. 게다가 하필 오늘 엄청난 일까지 터졌네. 자네도 보고를 받았겠지? 각하께서는 이 문제 때문에 당분간은 다른 쪽에 신경쓰실 여유가 없으시다네.”


조선인 윤봉길이 상하이의 천장절 행사장에서 폭탄을 투척했고 그 때문에 시라카와 대장과 시게미쓰 공사를 비롯한 여러 요인들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다는 정보는 소좌도 이미 들은 터였다. 그러나 소좌는 지금의 일에 몰두하여 “미친놈들이 일을 터트렸군.”이라고 한 마디로 평론했을 뿐 그 이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상하이에서 벌어진 폭탄 사건이 지금의 수사까지 영향을 끼칠 줄은 생각치 못하였다.


“그럴수록 놈들을 더욱 철저히 체포하여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자네 말이 맞긴 하지만 이건 공개되지 않은 사건이라네. 공개되어서도 절대 안 되고. 각하께서는 해운업체들 사정 뿐만 아니라 조만간 있을 국제연맹 조사단의 방문까지 고려하시는 상황일세. 그런 마당에 항만봉쇄조치가 단행되고 곳곳에서 헌병이 엄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조선이 제국의 통치 아래 안정적이라는 인상이 뭐가 되겠는가? 놈들은 이미 우리에게 한방 먹였네. 감히 신성한 천장절에 그 난리를 치다니! 그런 와중에 우리 제국의 위신에 더 흠이 갈 수 있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게 총독 각하의 판단일세. 그래서 경복궁에서 원유회도 예정대로 진행하셨고.”


소좌는 총독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잘 알고 봉쇄를 더 요청하지는 못하였다. 놓쳐버린 바에야 차라리 일이 조용히 사라져주길 바라는 게 총독의 심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령관은 3일 정도 봉쇄기한을 연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곤란할 것 같다고 하며 대신 수색에 필요한 병력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소좌는 그 이상은 요구하지 않고 경례를 붙이고 사령관실을 나왔다.


“이 새끼들이 골 때리게 만드네?”


뛰어봤자 반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저들이 자기 손을 벗어난다는 것은 아무리 예상 밖의 상황을 즐기는 그라도 살짝 짜증이 나는 일이었다. 손 안의 장난감이 재미있지 만지지도 못하는 장난감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데 수사본부로 들어오자 뜻밖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봉천 특무기관장 대리가 민간회선으로 전문을 보내왔습니다.”


호리 대위의 보고에 전문을 낚아채듯이 본 소좌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 친구 무슨 생각이지?”


전문의 발신자는 봉천 특무기관 제3과 2반장이자 특무기관장 대리라는 이치노세 하루노부(市瀬晴信) 대위였다.


-본관은 수사본부장이신 기타무라 소좌님과 관동군 헌병사령부 대표이신 시라키 대위님만이 참석하는 비밀회동을 요청드립니다. 혼마치의 고급요정 벤텐야(弁天屋)의 밀실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해군 쪽 인사에게 회동이 누설되면 절대 안 됩니다. 1930시까지 참석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놈은 뭔 말을 하려고 수사본부가 아닌 딴데서 회동을 하자고 해? 그리고 고급요정? 오늘 그 일 터진거 모르는 건가? 게다가 왜 우리에게 오라마라야? 일처리를 제대로 못해서 난리나게 만든 게 누군데?”


소좌가 그러며 눈살을 찌푸린다. 그래도 같은 관동군인 만큼 시라키 대위가 나름의 변호시도를 한다.


“해군에 새어나가는 걸 우려할 정도로 극비의 사안을 논하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쪽으로 그 친구가 왔다가 괜히 그 미즈노란 놈이 끼어들겠다고 우기면 딱히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제길. 그건 그래. 이번은 외출허가 핑계로 내보냈지만 또 그랬다가 해군성에 꼬지르기라도 하면 나만 피곤해지지.”


소좌가 그러며 목을 우두둑 꺾는다. 원래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는 고개였지만 기울어지니 한층 더 기형적으로 보인다.


“여튼 가서 얘기라도 들어 보자고. 나도 물어볼 게 많아. 대체 뭔 생각으로 해군예산을 횡령해 공작금으로 쓴다는 기똥찬 발상을 했는지 말이야.”


감탄 반, 비웃음 반이 섞인 말이었다.


그리하여 기타무라 소좌는 호리 대위에게 부대를 맞기고 약속시간에 맞춰 군용차 뒷좌석에 앉아서는 용산에서 출발하였다. 원래 해가 지기만 하면 네온싸인으로 불야성을 방불캐 하던 혼마치라 여느때의 천장절이라면 더더욱 흥청거리고 비척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갰지만, 기념식장에 날아든 조선인의 폭탄 소식 때문인지 놀라울 정도로 한산하였다. 저 멀리 상하이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천장절을 노려 일으킨 테러에 겁을 집어먹은 내지인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었다.


벤텐야는 거리 남쪽 외곽에 자리잡은 규모 있는 요정이었다. 소좌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돈을 아주 처발랐구만.”이라는 감상평을 내놓았다. 요정 내부는 대단히 공들인 것 같은 내부구조에 고급스러운 자재들로 한가득했던 것이다. 오늘 있던 그 사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영업하고 있는 이 요정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샤미센 켜는 소리, 게이샤의 아리따운 노랫소리, 취해 흐느적거리는 불협화음 가득한 노랫소리로 가득하였다.


나비넥타이를 맨 사환이 그들을 보자마자 쪼르르 달려온다.


“기타무라 소좌님과 시라키 대위님 되십니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 봉사정신 좋네.”


둘은 사환의 안내를 받아 요정에서 가장 깊숙히 있는 방을 찾아 마루를 걸었다. 그런데 그때, 기타무라 소좌의 왼쪽에서 장지문이 와락 열렸다. 문 틈으로 취객 한 명이 손에 술병을 들고 튀어나왔다. 그 바람에 취객은 소좌와 부딪쳤다.


“뭐야? 어떤 새끼야? 죽고 싶어? 엉?”


취객은 대단히 험상궂은 인상을 하고 술에 취해 시뻘개져 있어서 누가 잘못보면 오니인 줄 알 정도였다. 그러나 그 취객은 “이건 뭐야?”라는 식으로 피식 웃는 소좌의 황갈색 군복과 헌병완장을 본 순간, 얼굴에서 짜증과 화가 아닌 경악과 긴장을 드러낸다.


“시······. 실례했습니다!”


취객은 바로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숙여 사과한 후 급한 나머지 댓돌에 올린 자기 구두를 신는게 아닌 손에 들고는 부리나케 사라져 버렸다. 소좌는 그 광경을 보고 낄낄 웃는다.


“요즘은 이 맛에 군바리 노릇 하지. 안 그래?”


그 말에 시라키 대위도 “그렇지 말입니다.”라며 맞장구를 치고 웃는다.


밀실로 안내된 그들의 앞에서 장지문이 탁 하고 열린다. 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상마다 떡하니 차려진 가이세키 요리였다. 하나같이 일류 요리사들이 공을 들여 조리하고 꾸민 것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상차림에 그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둘의 상 옆에는 다소곳이 앉은 기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초빙한 바로 그 이치노세 대위의 몰골을 본 순간, 기타무라 소좌는 웃음을 터트렸고 시라키 대위는 당혹스럽다는 얼굴이 되었다.


“두분, 제 요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벌떡 일어나서 정중히 경례하는 이치노세 대위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얼굴에 성한 곳이 없었다. 왼쪽 눈두덩이는 부어올랐고 눈자위를 둘러싸 시퍼런 멍이 들었다. 이마는 찢겨나가 꿰맸는데 여전히 실밥을 풀지 못한 상태였다. 오른쪽 광대뼈 쪽에도 멍이 시퍼랬고 입술 또한 찢어졌고 딱지가 겨우 아물어 있었다.


“아. 그래. 일단 앉지 그래?”


소좌가 킥킥대면서 경례를 받아주고 자리에 낮는다. 그런데 이치노세 대위는 바로 앉지 못하였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조심조심 다리를 굽히더니 엉덩이가 방석에 닿을 때 오만상을 찌푸리는 것이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괜찮은가?”라고 물어보는 시라키 대위와 달리 기타무라 소좌는 여전히 웃는다.


“누구에게 받은 지 몰라도 정신주입 한번 확실히 받은 모양일세그려? 이번 일 때문인가?”


소좌는 이치노세 대위와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그는 항상 괴롭힘을 받은 상대를 조롱하는 게 버릇이었다. 그 조롱에 이치노세 대위가 입술을 움틀거렸으나, 하려던 말을 삼키고 정중히 나선다.


“이 일은 해군이나 다른 곳에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하기에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접대도 하고 말이야. 근데 참 일개 소좌하고 대위에게 불과한 우리가 이런 뻑적지근한 접대를 받아도 되는 건가?”


그렇게 묻는 소좌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화려한 고급요정에서 비밀회동을 하자고 불러 가이세키 요리를 대접하는 게 다른 의도가 있다고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 그것이······. 회동에 앞서 소좌님께 먼저 소개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뭐? 우리 말고 누가 왔는데?”


소좌가 묻는 그 때였다. 안쪽 장지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깔끔한 고급 양복을 맞춰입은 사내 한 명이 들어왔다. 머리를 짧게 깎았으며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자인데, 왼쪽 눈썹을 가로지르는 흉터자국 때문에 처음 보면 흠칫 놀라게 되는 인상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오늘 회동에 참석하게 된 와타베 류사부로(渡部龍三郎)라고 합니다..”


“뭐야? 저 사람? 어디 소속이야?”


군사기밀을 다루는 회동에 갑자기 웬 양복장이가 나타나자 소좌의 얼굴에서도 당황함이 나타난다.


“소인은 코신회(交進會) 직계 아토베조(跡部組)에 적을 두고 벤텐야를 경영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초면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회? 직계? 조? 그럼 야쿠자가 아닌가?”


시라키 대위가 놀라며 이치노세 대위를 바라본다.


“귀관은 지금 야쿠자가 경영하는 요정에서 우릴 접대하고 야쿠자를 비밀회동에 참석시키겠다는 건가?”


“대위. 설명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소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신다.


“언제부터 야쿠자가 군사기밀을 논하는 자리에 들어왔지? 물개놈들은 안 들여보내는데 야쿠자는 들여보내? 이거 심각한 거 아닌가?”


“본부장님. 그건 차차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소좌의 찡그린 얼굴은, 이치노세 대위의 다음 말로 바뀌었다.


“여기 이 아토베조에서 장백대호 천남건과 놈의 뒤를 봐주는 지나 조직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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