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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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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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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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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80화

DUMMY

“폐방(弊邦)의 일원이었던 이 돤궁하이(段公海)란 놈은 적 총영사관에 포섭되어 동료 네 명과 함께 정보를 적에게 팔아넘기고 있었습니다. 돤궁하이는 한인애국단의 유진만, 이덕주 형제가 우리 측 배로 조선에 간다는 정보를 적에게 넘겼다가 우리의 단속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황장리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폐방은 놈들에게 포섭된 밀정 중 주도적인 역할을 한 한명을 CC단에 넘겼고, 한 명은 직접 황푸강 바닥에 가라앉혔으며, 한 명은 오룡회에 성의의 표시로 보내었고, 다른 한 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사과의 표시로 보냈습니다. 두 방주께서는 오룡회 총타주께서 장 분타주께도 성의를 보내는 게 좋다는 하신 의견을 받아들이셔서 장 분타주와 옥룡회에 이 단가 놈을 보내드리는 바 입니다.”


무릎 꿇은 채 덜덜 떨고 있는 단궁하이는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들썩거리고 있었으나, 저 만치 앉아있는 정우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다.


“대인께서는 폐방의 성의에 만족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황장리가 공손히 포권하며 허리를 숙이자, 장 대인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만족이오! 대만족이오! 두 방주의 사려깊음에 이 장 아무개는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소이다! 우리는 오룡회의 산하단체에 불과한데 이런 성의를 보내셨으니 말이오! 귀방(貴邦)이 폐회(弊會)와 형제지간과 다름없음을 이걸로 다시 보여주셨구려!”


장 대인이 몸을 일으킨다. 그 거대한 체구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두 방주의 성의에 감사를 표하오! 귀방과 폐회의 우의는 영원할 것이오!”


“감사합니다, 대인. 감사합니다. 방주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황장리가 재차 포권을 하여 공손함을 보이고 자리로 물러난다. 적의 밀정이 사로잡힌 채 무력화되어 연회장 한복판에 놓이게 되자, 흥분한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독한 술의 취기 속에서 일상적인 잔인함에 익숙해져 있던 옥룡회 사람들은, 점차 흥분을 토해내며 고함을 질러댄다.


“작두로 오체분시를 하소서!”


“간을 들어내 회치소서!”


“저놈의 쓸개를 빼서 모두에게 맛을 보여주소서!”


“귀와 코를 자르고 눈을 파내소서!”



그들 중 이런 행위에 연관된 자는 소수에 불과하였으나, 그러한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환경에서 자라고 일했던 자들이었다. 평소 입에 담기도 힘든 무시무시한 말들이 고함이 되어 식장을 뒤흔든다.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죽이소서!


소음으로 식장이 가득해지자 장 대인이 “조용!”하고 외치며 위엄있게 오른손을 쳐든다. 그 한 번의 동작에 언제 그랬다는 듯 고함이 일제히 멈추고 무서운 침묵이 흐른다.


“형제들이여!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저 개잡종놈과 직접적인 은원은 없다. 하지만 오늘의 주빈인 천 현제라면 얘기가 다를 것이다.”


그 말대로였다. 천 지부장의 얼굴은 지극히 싸늘하게 굳어져 있었다. 벌벌 떨고 있는 돤궁하이에게 누구라도 보면 몸서리쳐질 눈빛이 쏘아진다.


“술이 좀 깬 형제는 창고에서 이것저것 다 가져오라!”


장 대인의 지시에 10여명이 몸을 일으키더니 우르르 나간다. 냉혹한 눈들이 벌벌 떨고 있는 밀정에게 향한 채 적막이 흐른 지 20여분 후, 나갔던 단원들이 돌아왔다. 바닥에 보자기 하나가 깔리고 그 위에 이런저런 무구들이 쩌렁 소리를 내며 정리된다.


육체를 가르고, 자르고, 베고, 긁어내고, 구멍을 뚫고, 뼈를 부수고, 내장을 끄집어내는데 적합한 각종 소름끼치는 날붙이들이 불빛 아래서 번뜩인다. 그리고 몇몇의 입에서 탄성을 질러낼 것이 등장하였다. 장정 네 명이 달라붙어서 운반한 그것은 커다란 천에 싸여 있었다. 그것이 내려지고 천이 벗겨진 순간, 그 정체가 모두의 눈에 드러났다.


그것은 작두였다. 그것도 마른 체구의 사람을 가로로 재었을 때의 길이와 비슷한 지름을 가진 거대한 칼날을 자랑하는 작두였다. 이 작두를 가져온 장정 중 한명이 작두날을 잡고 쩍하고 벌린 순간, 이 자리에 나열된 모든 날붙이들도 압도당할 만할 무시무시한 광채를 내뿜는다.


“이것들은 최소 4년 전에 사용한 뒤 쓸 일이 없었던 것인데, 지금 이 자리에서 오랜만에 쓰기 적절해 보인다네, 현제!”


장 대인이 유쾌하게 웃는다.


“『수호전』에서 양산박의 두령들이 황문병이를 어떻게 도살했는지 잘 알 걸세! 36천강설과 72지살성은 밀고자를 처리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던 호걸 중의 호걸들이었지! 물론 우리는 천강설과 지살성의 환생은 아니네만, 항상 호걸들을 동경하지 않았나?”


천 지부장은 짧게 대답하였다.


“예. 그러합니다, 대형.”


그리고 그는 몸을 일으켰다. 호랑이의 눈을 한 채.


그런데 목소리 하나가 끼어든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그것은 루춘팡 총영사의 목소리였다. 그는 뺨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고 떨리는 목소리를 낸다.


“대인. 물론 저자가 크나큰 죄를 지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적절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정식 재판도 거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죄인을 처리한다는 건······.”


그 순간이었다. 좌중의 모든 옥룡회 사람 절대다수가 루 영사에게 일제히 시선을 돌린 것이다. 지극히 싸늘한 시선으로. 그가 중화민국 정부의 대표인 총영사란 점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것 같았다.


“아. 영사님. 영사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영사님은 옛날로 치면 관부(官府) 사람이시니까요. ”


장 대인은 껄껄 웃으며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한다.


“하지만 여긴 강호입니다, 영사님! 나라에는 나라의 법이 있듯이 강호에는 강호의 규칙이 있습죠! 지금도 우리 정부는 청방을 비롯한 강호인들의 힘을 유용하게 쓰고 있지 않습니까? 옛날에 장 위원장께서 공산당 놈들을 상하이에서 박살내었을 때 처럼요! 우리 쪽에서도 그때 한몫 거들었었죠. 그러고 보니 벌써 얼마 전이 딱 5년 되는 날이었습니다그려!”


장 대인은 5년 전의 상하이 쿠데타를 언급하고 있었다. 당시 국민혁명군 사령관 장제스는 공산당과 노조를 제압하는 쿠데타에 청방과 홍방을 비롯한 암흑가의 조직들을 앞세웠던 것이었다. 오룡회 또한 장제스 측과 접촉하여 구역 내에 있는 공산당과 노조의 모임장소에 처들어가 몽둥이를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국민혁명군과 경찰에 잡아다 끌고 갔던 바였다.


“영사님이 친히 이 자리에 왕림해 주신 것도 그렇고, 정부 분들은 우리 강호 사람들과 항상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지 않습니까? 청방의 두 방주께서도 당적이 있으신데 말이죠. 그렇지 아니합니까, 저우 위원님?”


장 대인의 시선은 국민당 경성지부 집행위원 저우스셴에게 향한다. 저우 위원은 그 시선에 눈을 돌리려다 말고 “예. 그렇지요. 두웨셩 씨는 우리 당의 중요한 분 중 한 명이시지요.”라고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그래요! 두 방주는 국민당에서 많은 일을 하고 계시고, 또 우리 총타주께서도 국민당의 일을 여럿 받아서 하시고 계십니다! 대단히 섭섭하게도 당과 정부에 계신 분들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강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늘상 그러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시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필요할 때는 항상 우리들을 찾으시지요.”


이 부분에서 장 대인의 목소리에 다소 비웃는 투가 들어간다. 국민정부와 국민당의 사람들이 들키지 않고 켕기는 일을 하고 싶을 때는 암흑가 사람들을 찾는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분들이 우리 강호 사람들을 찾는 이상, 주는게 있으면 받는게 있는 당연한 거래가 있지요. 비록 청조와 그 이전 조의 황제폐하를 모실 시절보다 법과 경찰이 곳곳에 끼어드는 시대가 되어서 관부가 강호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도 옛일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우릴 쓰시는 분들은 강호에는 강호의 규칙이 있다는 걸 아주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경찰도 그렇고 CC단도 그렇지요. CC단의 천궈푸 단장께서 우리 총타주께 양지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씀은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장 대인은 루 총영사에게 간접적이지만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정부 사람이라고 강호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고 말이다. 루 총영사는 수백여 명의 옥룡회 장정들이 일제히 쏘아보는 눈빛에 명백히 기가 질린 모습이 역력하게 되었다. 결국 한숨을 푹 쉬고는 “예······. 뭐······.”라고 얼버무린 뒤 자리에 앉아버리고 만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영사님.”


장 대인은 이제 시선을 천 지부장에 돌린다.


“현제. 이제까지 자네와 조카들이 우리와의 사이에서 겪은 불미스러운 일들은 저놈을 제물로 삼아서 끝내시게나. 도관에서 도사님이라도 초청하여 저놈을 하늘에 바치는 제사라도 지내면 좋으련만, 그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말일세.”


“괜찮습니다, 대형.”


천 지부장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저놈을 제게 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그 모습을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바라본다. 천 지부장의 그림자가 단궁하이에게 드리워진다.


그의 앞에 놓인 무수한 무구들을 본 천 지부장은 허리를 숙여 하나를 잡았다. 시꺼멓기 이를 데 없는 편곤이었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보기에도 가슴 철렁해지는 도리께 부분과 길쭉한 봉과 같은 손잡이를 묶은 쇠사슬이 쩔렁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하하하! 괜히 무슨 백화점처럼 이것저것 가져다 놓을 필요가 없었네그려!”


편곤을 잡은 천 지부장의 모습을 본 장 대인이 좋아라 웃는다.


“장백대호에게는 그저 그 편곤 하나면 다 끝나지! 왕년에 베이징에서 나하고 용호형제라는 이름을 떨칠 때처럼 말일세!”


천 지부장은 의형의 찬사를 뒤로 한채 밀정 앞에 섰다. 단궁하이는 벌벌 떠는 입술을 겨우 연다.


“살려주십쇼······. 살려주십쇼······.”


그 목소리는 대단히 애처로워서 분노에 가득 차 욕설을 퍼붓던 과격한 장정의 마음에도 일말의 동정심을 일으킬 만 하였다. 두들겨 맞고 멍자국이 가득한 얼굴에 피와 오물이 엉겨붙은 채로 결박당한 무력한 모습과 더불어서.




천 지부장은 매서운 눈으로 그를 잠시 노려보았다. 밀정을 보는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이리하였다.


“왜 그랬지?”


그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무심하였다. 증오나 분노가 섞여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단궁하이는 천 지부장의 그 태도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은 듯 입을 연다.


“노······. 놈들이 절 잡아다가 마구 팼습니다! 말도 못할 정도로요! 그리고 제 가족을 잡고······.”


이때 “이 자라새끼가 어디서 입을 나불대!”라고 욕설을 퍼붓는 자가 있었다. 단궁하이를 끌고 온 황장리였다.


“꼼꼼하게도 놈들에게 뒷돈 챙긴 거 다 적어놓은 놈이 이제 와서 변명질이냐? 한심해 빠진 놈 같으니! 밀정짓을 해도 한때 강호에 몸담았단 놈이라면, 죽어도 장부답게 죽어라!”


분노로 일그러진 황장리의 얼굴에 단궁하이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천 지부장은 무뚝뚝하게 입을 연다.


“계속 말해 봐.”


단궁하이는 최소한 몇 분이라도, 저 무시무시한 편곤에 몸이 으스러지지 않으려는 듯 거친 목소리로 사정을 토해내려 했다.


“저는······.”


그러나 그 순간, 웅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뚝 하고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그의 입에서 “아아아악!”하는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천 지부장이 순식간에 그의 오른팔을 편곤으로 내리쳐버린 것이다. 그의 팔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도무지 꺾이지 않을 방향으로 무참히 꺾여나간다.


“다른 놈들과 똑같은 소리겠지.”


천 지부장이 냉혹하게 말한다.


“이것저것 핑계대 봤자 소용없는데 말이야.”


그 다음으로 비명이 재차 터져나왔다. 그의 왼팔 또한 무자비하게 휘둘러진 편곤에 기형적으로 꺾여나갔다.


“네놈 때문에 우리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천 지부장이 고통에 가득차 절규하는 단궁하이를 발로 차 뒤로 쓰러트렸다.


“우리 동지 둘이 네놈 때문에 차가운 감옥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의 편곤이 다시 날아들었다.


“네놈이 한 짓에······.”


이번에는 오른 다리.


“책임을 져야지?”


그 다음에는 왼 다리였다. 단궁하이는 이제 처참한 몰골이 되어 울부짖는다. 사지가 박살나고 부러진 뼈가 살을 뚫고 나와 피를 뿜어낸다 그러나 그 울부짖음은 환호성 속에 묻혀 버린다. 정적을 지키며 천 지부장을 바라보던 옥룡회 사람들은, 그가 편곤을 휘두를 때마다 흥분해 고성을 지르고 기쁨에 겨워 환호하였다.


. 천 지부장이 앞으로 몇번 더 편곤을 휘두르면 그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 되버리고 말 것이었다. 핏덩이로 화(化)해버릴 터였다. 그 순간, 천 지부장은 뒤를 돌아보았다. 의제의 무자비한 심판에 만족해 껄껄 웃는 장 대인을 지나,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에이코는 그 시선에 다른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편에게 자신 말고 그쪽을 한번 보라는 신호였다. 천 지부장의 눈은 부인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제자들이 앉아있는 곳이었다.


“제길······.”


천 지부장의 편곤이 처음 휘둘러지고 비명이 터져나올 때 민호가 입에서 내뱉은 욕지기였다.


“저놈 가죽을 산 채로 벗기면 속 시원할 줄 알았는데······.”


“누가 아니래냐?”


재호가 말을 받았다.


“솔직히······. 저놈 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다.”


명수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내뱉었다. 대석은 묵묵히 식탁만 보고, 종팔은 억지조라도 술 한잔을 넘긴다.


저 단궁하이는 분명 증오스러운 자였다. 저자가 정보를 팔아넘기는 바람에 우가키 총독 암살계획이 시도도 못해보고 실패로 돌아갔다. 계획을 위해 준비한 그들의 노력은 허사가 되었고, 누가 밀고했는지 몰라 불안 속에 수 주를 보내었다. 계획은 실행하기도 전에 적발되어 유진만 동지와 이덕주 동지가 아무것도 못해본 채 체포되었다.


이 모든게 저자를 포함해 청방 내 숨어있던 밀정들이 만든 결과였다.


그래서 그들은 단궁하이가 황장리의 손에 잡혀 끌려왔을 때, 죽이라고 고함을 지르던 옥룡회 단원들과 목소리를 함께 했었다. 장 대인의 지시로 시퍼런 날붙이들이 나열되고 작두가 대령될 때는 장 대인이 과연 원한을 어떻게 푸는지 잘 아신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막상 천 지부장의 심판이 단궁하이를 으스러트리는 걸 본 순간, 그리고 그것에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지는 걸 들은 순간, 그 환호 속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이들 모두 다 손에 피를 묻혔다. 백범 선생의 지시나 천 지부장의 지시, 또는 그들의 판단으로 밀정의 애걸복걸과 비명을 무시한 채 머리통에 총탄을 박거나 올가미로 목을 죈 뒤에 다리에 돌을 묶어 오밤중에 황푸강 바닥에 가라앉히던 일을 여러 차례 했었다. 중원 강호에서 배신자가 강호의 규칙에 따라 무자비하게 처리되었다는 말을 전해듣고 속시원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잔인하게 죽어가는 상대를 보고, 그리고 거기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니 정신이 퍼뜩 드는 것이었다. 이미 수도 없이 폭행당하고 상하이에서 인천까지 끌려와서 수백 명의 증오를 한 몸에 받아가며 피떡이 되어가는 모습은, 아무리 그들이라도 똑바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정우 또한 마찬가지의 심경이었다. 그 또한 단궁하이의 모습에 분노를 느꼈다. 계획이 실패하고 동지들이 적에 붙들리게 만든 장본인이 눈 앞에 있는 이상, 마음 속에서 진노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수백명이 누군가가 공개적으로 처형되는데 일제히 환호하고 웃는 그림 속에 들어가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보다 더욱 신경이 쓰이는 존재가 옆에 있었다.


“괜찮아?”


정우의 눈은 주리의 얼굴을 바라본다.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고 시퍼래진 입술을 꼭 깨문 얼굴을.


“볼 수 없으면 눈 감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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