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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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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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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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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284화

DUMMY

기타무라 소좌는 눈썹을 씰룩였다. 이 야쿠자 놈은 뭐하는 놈이기에 그 정보를 안단 말인가?


와타베란 자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소좌가 의문을 제기하기도 전에 입을 연다.


“천남건은 현재 인천의 지나 밀수조직 옥룡회의 보호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곳 외에는 놈이 도망갈 곳이 없을 것입니다.”


“이봐, 잠깐. 와타베라 했나?”


소좌는 엄연히 초면인 와타베 류사부로에게 반말부터 한다. 소좌는 이미 일상에서 접할 일이 많은 민간인들은 웬만하면 보자마자 자기의 아랫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었지만, 상대가 야쿠자라는 걸 알자 더욱 익숙하게 하대하려 한다.


“옥룡회는 또 뭐야? 밀수조직? 천남건이가 거기로 도망가? 그리고 그 정보는 또 어디서 얻은 거야? 그리고 이치노세 대위.”


소좌의 시선이 둔부에서 욱신거리는 고통 때문에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특무기관 장교에게 향한다.


“대체 특무기관은 뭘 하길레 야쿠자들이랑 일하는 건가?”


“설명을 드리자면, 우리 특무기관은 현재 보병 제9여단장이신 도이하라 겐지 소장 각하께서 기관장이었던 시절부터 이러한 조직들과 협력관계를 맺었습니다. 우리나라 조직이건 지나 조직이건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이치노세 대위가 침착하게 대답한다.


“ 코신회와 직계 아토베조는 특히 밀접한 협력관계를 가지는 조직입니다. 우리 기관은 코신회가 가지고 있는 뒷세계의 정보들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본관의 임무는 아토베조가 보내온 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한 공작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그래. 알만 하군.”


소좌는 거기에 대해 더 문제를 제기하진 않는다. 정보공작과 수집에 암흑가 조직을 쓴다는 이야기는 그도 익히 들은 바였기 때문이었다. 양지에서 나오지 않는 중요한 정보는 관련자가 요정이나 홍등가에서 술기운에 취해 넋두리를 하다 누설하여 음지에서 튀어나오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민간인을 여기 들이나? 이건 군사기밀에 관련된 일이야. 엉뚱한 놈이 듣고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고. 특무기관에서 일하는 귀관이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인데?”


“본부장님 말씀이 맞네.”


시라키 대위도 거든다.


“특무기관이 야쿠자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도 엄연히 따지면 군법위반일세. 그저 그게 특무업무에 유용하니 어쩔 수 없이 넘어갈 수 있는 거지만, 그렇다고 해도 야쿠자를 이런 자리에 들여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본관이 세운 계획에 아토베조의 협력이 필수적이고, 또 여기 와타베 씨가 그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치노세 대위의 대답에 소좌는 코웃음을 친다.


“그렇게 중요한 거면 두목을 대령시켜야지 똘마니를 데려와? 아토베조란 놈들은 일처리를 이상하게 하네?”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대답이 나온다.


“아, 와타베 씨가 현재 조장대행입니다. 와타베 씨는 현재 아토베조의 와카가시라(若頭), 그러니까 2인자로 현재 조장이 병환 중이라 대행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토베조의 조장은 코신회 본가의 와카가시라라서 지금의 와타베 씨는 코신회의 대간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꽤나 거물이시구먼.”


야쿠자의 조직체계에서 큰 조직의 경우 와카가시라라는 부두목이 자체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소좌도 들은 바가 있었다. 기타무라 소좌는 이 문제로 트집잡을수는 없자 쩝 하고 입맛을 다시고 물러난다.


“그래서? 천남건이가 옥룡회인가 뭔가 하는 지나 조직과 뭔 관계인데? 확실한 근거가 있는 거겠지?”


그 질문에 와타베가 웃음을 짓는다.


“근거가 없다면 소인이 이 자리에 참석하겠다고 하지도 않았겠지요.”


“아. 그래. 내가 바보같은 질문을 했군.”


소좌가 피식 웃고는 “계속해 봐.”라고 대꾸한다. 와타베는 이 말로 서두를 시작한다.


“소좌님께서도 장백대호라는 이명(異名)이 있는 천남건이 하북옥룡으로 통하는 장카이셴이란 지나인과 의형제 관계라는 건 알고 있으실 겁니다.”


“뭐?”


와타베의 그 말에 소좌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건 어디서 들은 얘기지? 그건 경찰에서 우리가 가져온 정보인데?”


“우린 경찰에도 인맥이 좀 있습니다. 그리고 하북옥룡과 장백대호의 관계에 대해서는 우리 코신회의 회장님께서 거의 30년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30년 전?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우리 회장님께서는 당시 도야마 미쓰루(頭山滿) 선생을 모시고 겐요샤(玄洋社)의 산하단체인 코신회를 세우신 후 대륙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아, 그 도야마 선생. 존함은 익히 들어 봤지. 근데 그게 왜?”


“회장님께서는 그때 베이징에서 우리 영사관과 육군참모본부의 후원 아래 거점을 마련하고 사업을 벌이려 하셨는데, 원래 그곳을 장악하고 있던 지나 조직인 황성파와 충돌이 있었습니다. 황성파가 자기네들 구역을 침범했다고 오밤중에 기습을 하여 큰 피해를 입고 베이징에서 물러나야 했었는데, 그때 황성파에서 선봉을 이끈 놈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용호형제라고 통하던 장카이셴과 천남건이었지요.”


“아하. 그래서 아는 건가?”


“그렇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용호형제와의 싸움을 우리 조장님을 비롯한 여러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장카이셴이란 놈은 청룡언월도를, 천남건이는 쇠도리깨를 들고 치고 들어왔다는데, 회장님께서도 상당한 실력자셨지만 그 두놈을 당해낼 수 없었다고 하셨답니다. 회장님께서는 매우 굴욕적인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놈들의 실력에 감탄하시기도 하셨죠.”


여기까지 오자 소좌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니까, 그 하북옥룡 장카이셴이란 지나놈이 바로 옥룡회의 두목으로 있으며 자기 의형제를 도와주고 있다 그건가?”


“그렇습니다, 소좌님! 이해가 정말 빠르시군요!”


와타베 소좌가 경탄했다는 듯 머리를 조아리는데 그의 말투에 은근한 아부의 뜻이 있었다.


“우리 아토베조는 5년 전에 조선에 진출한 이래로 인천으로의 확장을 노렸습니다. 인천은 대륙과 반도의 해운교통을 잇는 가장 좋은 거점으로 우리처럼 극도(極道)의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늘 손에 넣고 싶은 곳이지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옥룡회가 인천 뒷세계에 또아리를 틀어서 그렇다, 그 말인가?”


그 말을 한 사람은 시라키 대위였다.


“그렇습니다, 대위님! 옥룡회는 상하이에 소재한 지나조직 오룡회의 산하조직으로 본토에서 오는 자금력과 간부들의 무력으로 인천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놈들은 인천에서 온갖 밀수사업과 돈세탁, 도박장 운영, 쿨리 밀입국 등의 각종 돈 되는 사업은 다 장악하고 있죠.”


“그런데 왜 경찰 쪽에서는 정보가 없었지?”


소좌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가 관련정보 종로서에서 다 털어왔는데 장카이셴이 천남건의 의형제라는 정보는 있었지만 그놈이 옥룡회의 두목이고 인천 뒷세계의 거물이라는 정보는 없었어. 짭새들의 정보력이 형편없던 건가?”


“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와타베가 목소리를 낮춘다.


“장카이셴은 사업에서도 교활한 놈입니다. 인천에 오자마자 바로 인천부윤과 인천경찰서장, 그리고 인천 관할 헌병대장부터 찾아가 금칠부터 시작했지요 .우리가 파악한 걸로는 매달 선물 명목으로 다달히 한두푼 보내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옥룡회는 양지의 사업들도 여럿 벌이고 있습니다. 놈은 합법적인 무역회사와 여러 숙박업체들을 차려놓고 사업을 위장하고 있지요. 그 때문에 장카이셴은 그저 돈 많고 통 큰 지나인 사업가로 보일 뿐입니다. 관할서인 인천서에서 장카이셴을 그렇게 보고하고 있기에 경찰 상부에서도 그렇게 파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흠. 그래. 뭔가 범죄소설 같은 얘기지만, 그럴싸하긴 하군.”


이 와중에 인천 관할 헌병대장 얘기가 나오니 시라키 대위가 놀란 눈이 된다.


“그럼 제10헌병대도 놈들의 뒷돈을 받았다는 것인가? 그럼 검문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보고한 것도 말이 되긴 하는데······.”


“그 건은 나중에 털어보면 되겠지.”


소좌가 혀를 낼름거린다. 사냥감 하나를 더 포착했을 때의 반응이었다.


이때 이치노세 대위의 입이 열린다.


“우리는 코신회와 함께 중대한 공작을 진행하려 했습니다. 코신회는 베이징 진출 실패 이후에도 계속 대륙에 거점을 만들고 현지 조직들과 연결하여 왔는데, 그 덕에 지나에서 공작을 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만주사변 이후 지나 국민정부 내에서 목소리가 더욱 커진 배일 인사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의가 우리 사령부 내에서 활발했었습니다. 재무부장 쑹쯔원, 외교부장 뤄원간이나 쿵샹시 같은 자들 말입니다.”


“뭐? 지나 정부의 주요인사들을 제거하자는 공작이 있었단 말인가?”


계속 놀랄 소리만 나오니 시라키 대위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본관은 이 건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네!”


“그럴 것입니다. 특급기밀로 지정되어 참모부 각 과장급들 이하로 누설이 금지된 계획이었습니다. 이 계획의 실행주체인 우리 특무기관 정도만 위부터 아래까지 알 수 있었습니다.”


“허, 참! 아무리 지나라도 정부요인들을 그렇게.···... 봉천 특무기관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들키면 어찌하려고 그랬는가?”


상식이 그래도 있는 시라키 대위로서는 특무기관이 일을 꾸며도 너무 큰 일을 꾸몄다는 생각에 입이 바싹 마른다.


“그걸 막기 위해 코신회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코신회가 대륙 조직에 하도급에 하도급, 그리고 또 하도급을 주는 형태로 암살을 의뢰한다면, 수도 없는 하도급의 사슬 속에서 우리의 존재를 숨길 수 있을 거라는 게 당시 기관장이셨던 도이하라 대좌님의 판단이었습니다.”


“흠. 그래. 괜찮은 계획 같긴 하군.”


소좌의 짧은 평가였다.


“그리고 이에 더불어 논의가 진행되며 제거해야 할 목표도 더 많아졌습니다. 올해 초에 대역스럽기 짝이 없는 만행을 저지른 불령선인 단체, 참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말입니다. 감히 폐하를 시해하려 한 그 무도한 자들을 프랑스 조계당국의 보호하에 있다는 이유로 경찰과 외무성이 손 놓고 있는 꼴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놈들이 더 뭔가 터트리기 전에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해 제거대상에 놈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여기에 또 마침 소련 국방인민위원회 부위원장 투하쳅스키가 기동훈련 참관차 극동에 온다는 정보도 있었습니다. 그 김에 우리를 위해 일하는 세묘노프의 백계러시아인 부하들을 소련령에 침투시켜 투하쳅스키와 극동특별적기군사령관 블류헤르의 제거도 꾀했습니다.”


“잠깐. 가정부 놈들이야 그렇다 치고 투하쳅스키까지 제거한다고?”


시라키 대위는 매우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이었다.


“이거 배후를 들켰다가는 지나, 소련과 동시에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치노세 대위는 얼굴을 찌푸렸는데, 그들의 상관이 세운 계획의 현실성 때문이 아닌 그저 정신주입봉을 너무 맞아서 여전히 욱신거리는 둔부 때문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여러 단계의 하도급을 거치기 때문에 우리가 배후로 드러날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하도급 중간에 있는 조직들도 다 처리할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일 터지면 피 보는건 전방이란 말일세!”


시라키 대위가 재차 불평을 하나, 소좌는 흥미롭다는 표정이 되어 “점점 재밌어지는군. 계속해 봐.”라고 한다.


“그러나 당장 우리 쪽에서 그 공작을 실행할 예산이 부족했습니다. 만주국의 안정과 건설사업에 필요한 예산소요가 매우 많아서, 우리 특무기관에는 부족한 예산만 할당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령관 각하께서는 육군성에 특별 비밀예산을 요청하셨는데, 대신 각하께서 거부하셨습니다. 너무 위험한 계획이라고 말입니다.”


시라키 대위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내가 대신 각하라도 그랬겠다!”라고 쏘아붙이려던 말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령관 각하께서는 육군성이 예산을 내주지 않는데 어쩌겠냐고 계획에 회의적이 되셨지만, 계획을 주도한 정보과장 이타가키 대좌님과 작전과장 이시와라 중좌님, 그리고 우리 도이하라 기관장님께서는 예산 문제로 계획이 좌초될 수 없다고 보셨습니다. 예산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 예산조성에 코신회와, 그리고 코신회 직계 아토베조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아토베조의 예산조성과 운송은 본관이 총책임자로서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치노세 대위의 얻어맞아 엉망으로 부어오른 얼굴에 분노가 치솟는다.


“멍청한 경찰들이 이를 망쳐놨습니다! 우리의 예산조성 활동을 그냥 불법활동인 줄 알고 관련된 지나 조직과 코신회의 4차단체 사람들, 그리고 중간에서 연락책으로 파견된 제 부하인 하마다 대위를 체포해 버린 겁니다!”


“이런! 여기 짭새들이 끼어들었구먼!”


기타무라 소좌는 이치노세 대위의 화를 참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폭소를 터트려버린다. 그에게는 상대가 누구건 간에 남의 불행은 즐거움의 대상인 것이다.


“도이하라 대좌님은 9여단장 영전 전에 일을 마무리짓기 위해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었으나, 경무국장이 어찌나 꽉 막힌 인간이던지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유치장에 수감된 하마다 대위에게 청산가리 앰플을 몰래 넘겨서 입을 막아야 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반도 남부로 파견된 제 다른 부하들도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호송차량을 습격해 중간에 빼내는 데는 성공하긴 했지만, 그 때문에 우리 계획이 시행 전부터 틀어져버렸던 겁니다!”


“이런. 이런. 참 안 됐어!”


소좌는 놀리듯이 말하다가, 이치노세 대위가 핵심적인 부분 하나는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대체 뭘로 예산조성을 하려 했기에 짭새들이 불법이라고 잡아 가두고 난리를 쳤지?”


기타무라 소좌가 한 마디 날카롭게 묻자, 순간 이치노세 대위와 와타베 모두 얼굴이 굳어지고 시선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죄송합니다, 소좌님. 그것은 우리 특무기관에서 절대 엄수해야 할 기밀입니다. 그것이 새어나가면 본관과 와타베 씨 모두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아,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소좌는 그 반응에 더 캐묻지는 않지만, 뭔가 대단히 뒤가 구린 일을 했을 것임은 바로 짐작이 간다.


“그래서 그 예산조성이 실패한 후, 다른 대안이라는 게 해군예산을 횡령해 가져오는 것이었나?”


시라키 대위의 물음에 이치노세 대위가 긍정한다.


“그렇습니다. 이 계획을 주도한 분 중 한 분이신 이시와라 작전과장님은 국주회라고 하는 일련종계 종교단체의 열렬한 신자입니다. 이시와라 중좌님은 해군성 주계과에 있는 국주회 인맥을 통해 특무기관의 공작에 필요한 예산을 해군성 예산을 통해 따로 조성하던 차였습니다. 조선에서 예산조성 계획이 실패하자, 이시와라 중좌님은 그 비밀예산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역시 국주회 인맥이자 자신을 개인적으로 추종하는 몇몇 하급 참모장교들을 통해 특무기관으로 직접 자금을 송금한다는 계획을 수립해 진행하였습니다.”


“그게 아오야기 일당이로군!”


기타무라 소좌가 손뼉을 탁 친다.


“그렇습니다. 아오야기 테츠오 중위, 후지무라 토비자루 중위, 우에스기 사부로 중위, 쿠스노기 모토스케 중위가 그들입니다. 그런데 이시와라 중좌님이 이들에게 전달한 지시사항이 불령선인들에게 새어나간 겁니다! 그래서 아오야기 중위 등은 봉천으로 열차편으로 오던 중 그놈들에게 자금을 다 털려버린 겁니다!”


“이런, 이런 불쌍한 아오야기!”


소좌는 좋아 죽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아오야기 중위의 비극은 몇 번을 직접 보고 들었지만 그에게는 대단한 유희거리였던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서 공작에 끼워넣은 지나 조직들이 전부 지나 경찰과 CC단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소련에 침투한 백계러시아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놈들은 이 공작의 전모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오야기 놈이 멍청했던 탓이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런 걸 너무 세세하게 말해준 이시와라 중좌님도 딱히 훌륭했다는 말은 못 하겠어.”


“이시와라 중좌님은 측근들이 계획을 납득하기 힘들어할까봐 일부러 그랬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크게 후회중이시라고 합니다.”


이때 이치노세 대위의 눈에 핏발이 돋는다.


“이 공작이 망하는 바람에 졸지에 본관이 져야 할 책임이 너무나도 큽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정보가 새나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불령선인 약혼녀에게 그 아오야기가 속아버린 탓에 피해가 너무나도 막심합니다. 우리의 지나 공작거점 여러 개가 사라졌고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던 백계러시아인 밀정들이 오게페우에 덜미를 잡혀 한 순간에 날아갔습니다! 게다가 상하이 가정부를 제거하지 못하여 오늘 윤봉길이란 놈이 감히 신성한 천장절인 오늘 엄청난 짓까지 저질렀습니다! 불령선인 놈들에게 이 굴욕을 설욕하지 못하면 사내가 아닙니다!”


“그래. 그래. 불쌍하기도 하지. 책임은 정신주입 받으면서 많이 진 것 같은데, 더 져야 할게 있다니 불쌍타, 불쌍타.”


소좌가 위로의 말을 던지지만 조롱조를 숨기지 않는다.


“이치노세 대위. 귀관은 그러니까 여기 아토베조를 도와서 옥룡회를 무너뜨려야 천남건과 그 부하들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같은데, 맞는가?”


시라키 대위의 물음이었다.


“그렇습니다. 천남건이 도주할 곳은 의형인 장카이셴이 있는 인천밖에 없습니다. 밀수사업을 조종하는 장카이셴이라면 사태가 잠잠해진 틈을 타 천남건을 상하이로 밀항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그 전에 옥룡회 구역을 무력으로 쓸어버리고 천남건이를 잡아 족쳐서 우리 공작금이 어디 갔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 그래. 귀관 뜻은 잘 알겠는데······.”


이때 웃고 있던 기타무라 소좌가 갑자기 얼굴을 무섭게 굳힌다.


“근데 참 괘씸하네?”


“예? 무엇이 말입니까?”


기타무라 소좌의 적대적인 반응에 이치노세 대위는 예상 밖이라는 듯 당황한다.


“그러니까 결국 뒷골목 세력다툼에 우리 병력을 보내서 경쟁조직 없애고 아토베조가 인천을 장악하게 해달라는 건데, 어딜 하류인생들 싸움질에 폐하의 황군을 동원하려 들어?”


대단히 불쾌하다는 호통이 방안을 쩌렁쩌렁 울린다.


“그리고 와타베 나리가 말한 대로라면 장카이셴은 인천 곳곳에 금칠을 해 놓고 합법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며? 그런 놈과 그런 놈이 두목인 조직을 공격하려 들다가 역으로 우리만 피볼 수 있단 말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소좌님.”


시라키 대위도 그 판단에 동의한다.


“본관 또한 불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황군이 언제부터 암흑가 싸움질에 동원되었습니까? 인천 뒷세계를 차지하고 싶으면 자기 힘으로 싸울 것이지, 딴 곳도 아닌 우리 헌병을 부르겠다는 심사가 너무 노골적입니다.”


“장교님들. 비록 우리가 옥룡회에 비해 약하여 헌병의 힘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장교들의 굴욕적인 말에도 와타베 류사부로는 오히려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한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천남건과 그 부하들을 잡기 위해 필수적인 수순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나 정부와 연결된 옥룡회가 인천에서 계속 설치게 둔다면 우리 제국의 국익에도 해가 될 것이······.”


“어쭈? 뒷골목 야쿠자 주제에 국익을 입에 담아? 이거 웃기는 놈이네?”


소좌가 낄낄댄다. 그에게 있어서 하류인생을 사는 자들이 국가를 논하고 사상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참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옥룡회를 무력으로 박살내기 전 이곳저곳에서 막힐 텐데? 그렇게 금칠을 해놓았다면 말이야. 그걸 방지하려고 장카이셴 관련자들 다 수사하고 그러며 시끄럽게 하다가는 천남건이가 인천에서 도망갈 지도 모르는데, 우리더러 견책당할 거리를 만들라고? 이 봐, 극도 나리. 한낱 시정잡배 주제에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황군의 장교와 같이 일하다 보니 황군도 움직일 수 있을 줄 알았나? 착각도 유분수지!”


거친 힐난에 와타베의 얼굴이 일순간 움틀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와타베는 여전히 낮은 태도를 유지한다.


“소좌님. 우리는 절대 헌병에 피해가 가지 않게 옥룡회를 공격할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소좌님께서는 합법적인 근거에 따라 옥룡회를 진압하고 장카이셴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뭔 계획?”


소좌는 이 야쿠자가 헛소리를 한다면 잘 차려진 가이세키 연회상을 뒤집어버릴 자세였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소좌의 표정이 짜증에서 흥미로움을 느끼는 쪽으로 바뀌었다.


“조선인들의 지나에 대한 악감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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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282화 +6 21.05.09 350 7 23쪽
281 281화 +4 21.05.05 310 8 18쪽
280 280화 +6 21.05.02 334 8 17쪽
279 279화 +10 21.04.26 313 7 20쪽
278 278화 +6 21.04.22 324 8 16쪽
277 277화 +10 21.04.18 308 7 25쪽
276 276화 +10 21.04.11 334 10 16쪽
275 275화 +12 21.04.04 319 1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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