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KKA 님의 서재입니다.

경성활극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로맨스

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최근연재일 :
2023.08.15 19:04
연재수 :
332 회
조회수 :
107,967
추천수 :
3,801
글자수 :
2,778,318

작성
21.06.20 22:45
조회
363
추천
6
글자
20쪽

286화

DUMMY

장교들의 얼굴은 빠르게 굳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 때문이었다. 대관절 어떻게 저 해군육전대 중위가 왜 능청맞은 웃음을 흘리며 술을 달라고 하게 된 것인가?


“저······. 저자는 누굽니까?”


이치노세 대위가 놀라서 말을 더듬는다. 시라키 대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해군육전대에서 파견나온 자일세.”라고 대답하자 그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든다. 이치노세 대위는 지금까지 인천에서 옥룡회를 쓸어버릴 폭동을 어떻게 일으킬 것인지 논의한 이후 탈환한 자금을 어떻게 특무기관 본부까지 다시 옮길 것인지를 말하려던 차였다. 이는 절대 해군에 새어나가서는 안되는 논의였다. 그런데 육전대라도 해군 소속 장교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귀관이 여긴 어떻게 알았나?”


기타무라 소좌가 마쓰우라 중위를 노려본다. 이 육전대 중대장은 당당하게 유곽 가고 싶으니 중대 전체에 외곽허가증 끊어달라던 터무니없는 위인이다. 그 점이 소좌의 마음에 들었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헤헤헤. 신마치에서 처음에 갔던 업소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더 좋은데 없냐 하니 여기 소개해줬지 말임다. 물이 정말 좋은지 아니면 꽝인지 중대장으로서 먼저 알아보려 왔는데, 마침 소좌 나리와 대위 나리께서 여기로 들어가는 게 보였슴다. 나리님들도 여기서 놀러 오신건가 하고 따라갔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 줄은 꿈에도 몰랐슴다.”


“정말 우연인가?”


소좌가 무섭게 노려보는 눈에도 중위는 그저 실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더 미심쩍은 웃음을 풀지 않는다.


“그렇슴다. 그렇슴다. 본관이 나리님들께서 어디로 가는지 알 턱이 없었지 말임다.”


“그래. 그렇다고 치지.”


소좌는 수사본부 내에 해군에 정보를 흘린 놈이 있다면 죽여달라고 빌 정도까지 심문실에서 가지고 놀겠다고 다짐한다. 이때 벤텐야의 지배인이자 아토베조의 조장대행 와타베 류사부로의 얼굴은 심각하게 일그러진다. 그가 생각하건데 아마도 이 육전대 중위는 그의 관리하에 있는 신마치의 유곽에 들렀던 모양이었다. 대체적으로 그 업소들의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손님들을 벤텐야로 유도하게 되어 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것이다.


이때 시라키 대위가 묻는다.


“귀관은 우리 대화를 어디까지 엿들었나?”


중대한 질문에도 마쓰우라 중위는 헤헤 웃는 낯이다.


“본관은 그렇게 들은 거 없슴다. 들은 거라고는 관동군 특무기관 나리들이 야쿠자 조직과 손잡고 아편 팔려고 돈 부치려다 불령선인들 때문에 망하게 된 거가 있슴다. 그리고 그 불령선인들이 지나 밀수조직 비호를 받다는 것도 조금 들었슴다. 그리고 나리님들께서 그 밀수조직 박살내려고 인천에서 난리를 피우려고 하신다는 것도 약간 들었슴다. 지나놈들 싫어하는 요보들 꼬드겨서 말임다.”


사실상 이 자리에서 오고간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엿들었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다.


이놈을 처리해야 할까? 기타무라 소좌는 두 대위와 눈빛을 교환한 뒤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을 빠르게 내린다. 아무리 그래도 해군성의 지시로 파견된 자다. 물리적으로 제거해 입을 막아버린다면 누가 그를 살해했는지 당장 그들부터 조사를 받게 된다. 결국 일만 커진다.


마쓰우라 중위는 육군 장교들이 자신에게 함부로 해코지를 할 수 없음을 잘 안다는 듯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시라키 대위는 떨떠름하다는 듯 시선을 피하고, 이치노세 대위는 저놈을 당장 제거할 수가 없어서 지극히 답답하다는 얼굴이 된다.


“걱정들 하지 마시지 말임다. 본관은 나리님들께서 나누신 얘기를 촉새처럼 떠들고 다닐 생각이 없슴다. 그랬다면 나리께 한잔 달라고 부탁드리지도 않았을 검다. 미즈노 나리가 들으면 좋아할 소식인데도 말임다.”


그러며 중위는 머리를 긁적이며 모자란 것처럼 보이려 하지만, 소좌의 눈에는 보기와 달리 교활하리만치 영리해 보일 뿐이다. 중위의 태도는 은근히 노골적이었다. 해군 특수경찰대의 미즈노 대위에게 엿들은 사항을 즉시 자리를 떠나 보고하지 않고 그들 앞에 섰다는 건 이자가 자신들을 협박하고야 말겠다는 의사표시나 다름없었다. 언제든지 미즈노 대위에게 보고할 수 있다는 신호도 주면서.


쥐도새도 모르게 제거할 수도 없고 저놈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 소좌는 속에서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다는 데 지극히 짜증을 느끼지만, 방법이 없었다.


“좋아, 중위.”


소좌가 손수 술병을 든다.


“술을 청하였으니 본관이 한잔 따르도록 하겠네. 와타베 씨, 한 상 더 차려도 무리는 없겠지? 여자도 한명 더 붙이고.”


“헤헤헤. 감사함다.”


마쓰우라 중위가 헤벌쭉 웃으며 들어온다. 와타베 류사부로는 긴장으로 얼굴이 굳어진 채 종업원을 불러 가이세키 정식상을 한상 더 봐오도록 한다. 다시 상 하나를 더 차리려면 시간이 걸리기에 우선 간단한 안주와 술잔부터 대령된다. 중위는 소좌가 채워준 잔을 넙죽 마신다.


소좌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귀관의 입을 조용히 만드는 데 얼마가 필요하지?”


“헤헤헤. 별거 없슴다.”


마쓰우라 중위가 구석에 놓인 가방들로 시선을 돌린다. 와타베 류사부로가 장교들 한명한명에게 바치는 ‘성의’가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나리님들께서 받으신 만큼 받으면 괜찮지 말임다.”


“욕심도 많군.”


소좌가 투덜거리듯이 내뱉고 와타베를 쳐다본다. 와타베는 뇌물을 바쳐야 할 장교가 한명 더 늘어난데다가 이자가 계획에 누구보다 심대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기에 속으로 신음하지만, 지금은 달란 대로 줄 수 밖에 없었다.


와타베는 부하를 불러 똑같은 액수의 돈가방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적지 않은 양이 추가로 빠져나간다는 말에 부하들도 곤란해 했지만, 와카가시라 겸 조장 대행의 지시니 따르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다.


“헤헤헤. 감사함다. 감사함다. 돈 받은 값은 확실히 하겠슴다.”


마쓰우라 중위가 과장된 몸짓으로 굽실거린다.


“하지만 명심하게.”


소좌가 중위를 무섭게 노려본다.


“귀관이 물개놈들에게 입을 뻥긋하기라도 한다면, 우린 귀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그건 귀관도 잘 알겠지?”


“어어쿠야. 무서운 말씀을 하심다.”


중위가 재밌다는 듯 웃는다.


“미즈노 나리에게 뭘 말해줄 리가 없슴다. 그 나리는 계급장만 대위지 골샌님 책상물림임다. 해군병학교 안나왔으면 어디 방구석에서 먼지쌓인 원고지나 뒤적거릴 서생같은 나리에게 잘 보여서 뭐에 씀까? 그 나리도 절 싫어하니 본관의 말을 믿을 것 같지도 않으니 말임다.”


마쓰우라 중위는 웃음 속에서 실전경험이 없는 미즈노 대위를 숨김없이 경멸하는 투를 드러낸다.


“좋아. 귀관을 믿도록 하지.”


소좌는 중위의 빈 잔에 술을 더 채워준다. 중위는 그 술을 넙죽 받아먹고는 한 마디 묻는다.


“듣자하니 시가지에서 진압작전을 전개할 것 같은데, 맞슴까?”


“계획대로라면 그렇게 되겠지.”


소좌의 대답에 중위가 낄낄 웃는다.


“그렇다면 우리 중대가 제격임다. 우리는 상하이에서 큰길과 뒷골목을 가리지 않고 바리게이트 치거나 건물 틀어박혀 악을 쓰는 지나놈들을 죄다 쓸어버렸슴다. 골목 하나 하나, 건물 하나 하나 단기관총으로 두두두 퍼붓고 수류탄 까넣고 화염방사기로 싸그리 구워버리며 전진했슴다. 시가지 전투에서는 우리 중대가 황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독보적일 것임다!”


상하이 사변에서 육군 병력이 본격적으로 파견되기 전, 제일 먼저 해군육전대가 중화민국 제19로군을 상대로 치열한 시가전을 치렀음은 육군 장교들도 알고 있는 바였다. 마쓰우라 중위는 상하이 사변 참전이 심대한 자랑거리인지 계속해서 전공을 내세운다.


“시야는 제한되고 바리케이트 하나 돌파하면 또 나오고 지나 새끼들은 악바리같이 달려들고 난리도 아니었슴다. 지랄맞은 새끼들이었슴다. 그래서 그런 놈들 하나하나 걸레짝으로 만들 때 기분은 정말 최고였슴다!”


그러며 중위는 항복한 중국인 포로들을 즉석에서 어떻게 처치했는지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헌병대와 특무기관 장교로서 잔인한 일에 익숙한 시라키 대위나 이치노세 대위도 식사자리에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소좌는 그럭저럭 재밌다는 듯 중간중간 피식 웃는다.


“그 지나놈들을 또 죽이게 된다니, 본관과 우리 애들은 참 행운아임다!”


“듣자 하니 상하이에서 꽤 고생한 모양이군.”


“이만저만 아니었슴다! 시가지만큼 개같은 전장환경도 없을 검다. 우리 애들도 그때 10명 중 4명이 거기서 전사하거나 중상자가 되어버렸슴다. 그만큼 지랄맞은 게 시가전임다. 그런 데서 구르고 살아남아야 진짜 쓸만한 놈이 나오는 검다. 본관과 우리 애들은 상하이에서 고생한 애들 중 가장 난놈들임다. 놈들을 선봉에서 싹 쓸어버리겠슴다.”


“참으로 자신만만하군. 그만큼 귀관의 활약을 기대하지.”


소좌가 보기에 비록 이자가 해군육전대 장교로 해군 쪽에 정보를 흘릴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신변도 위태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엿들은 정보를 누설한 이상 더 이상 그들을 상대로 무얼 거래할 입장이 못되는 것이다. 경계는 하되 너무 심각하게 보지는 말고, 오히려 해군육전중대가 실전에서 검증한 전투력을 적극 활용한다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을 터였다.


요릿상이 도착하자 마쓰우라는 젓가락을 들고 게걸스럽게 요리들을 탐닉한다. 쉴새없이 오고가는 젓가락질에 밥풀이나 요리 부스러기가 상 위에 떨어진다. 시라키 대위가 대단히 못마땅한 얼굴이 되어 옆자리의 이치노세 대위에게 “육전대 놈들은 다 저모양일까?”라고 속삭인다.


이때 유녀가 “한잔 더 드시와요.”라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중위의 빈술잠을 채워준다. 그 순간, 마쓰우라 중위의 눈이 번쩍 빛난다.


“에헤헤헤! 벤텐야가 듣던 대로 물이 좋네!”


중위는 그러며 술잔을 잡으려던 오른손을 쳐들었다 .손끝이 향하는 곳은 유녀의 옷 앞섭이었다. 그 순간, 육군이라지만 엄연히 계급이 그보다 위인 사람들 앞에서 해도 될 것이 있고 안될 것이 있는지 분간은 하는지 “헤헤헤. 장난이었슴다.”라고 둘러대고는 그 손을 빠르게 술잔으로 가져다 댄다. 중위는 그러고는 “막 달아올랐을 때 시작해야지 시기가 늦으면 안 좋습니다.”라고 능청맞게 말한다. 그는 이 육군 나리들이 먼저 유녀들을 주물러야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고 있었다.


원래 그럴 생각이었지만 흥이 깨져버린 소좌는 술만 마신다.


중위는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았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치노세 대위를 보고 낄낄 웃는다.


“특무기관 나리는 어쩌다가 그렇게 되셨슴까? 본관이 말귀 못알아 처먹는 놈 손봐줄 때도 저러지는 않았지 말임다.”


이치노세 대위는 대단히 불쾌하단 얼굴이 되어 “귀관에게 대답해 줄 의무는 없네.”라며 딱 자른다. 그런데도 마쓰우라 중위는 계속 실없는 말을 건다.


“우리 쪽 예산 손대서 가져가던 게 안 풀린 것이 대단히 큰일이었나 봄다. 아니면 원래 모시는 분이 정신주입을 엄하게 하시는 분인 검까? 정신주입이야 늘 있는 일이지만 얼굴보다는 아무래도 엉덩이를 손봐주는데 좀 심하게 주입당하신 것 같슴다.”


이치노세 대위는 대답해주기 싫다는 듯 아예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 무렵 굳어진 얼굴로 불편하게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와타베는 부하들이 갑자기 부르는 바람에 잠깐 실례하겠다며 나갔다. 와타베는 보고를 듣자마자 얼굴이 지극히 일그러졌다.


“카시라! 난리가 났습니다!”


부하들이 기겁해 보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육전대 장교가 말한 대로 해군육전대 병력 20여명이 그의 관리하에 있는 유곽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육전대가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접대한 유녀들의 몸에 성한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쪽 여자애들 다 울면서 손님 더 못받겠다고 합니다. 거기 우리 애들이 유녀들 윽박지르는 한편 달래느라 정신없다고 합니다.”


“저 망할 놈이 장교만 아니면!”


와타베 류사부로는 저자가 평범하게 돈 좀 만지는 사람에 불과했다면 일본도를 빼들고 직접 썰어버렸을 거라고 분개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상대는 해군육전대 군인들이었다. 장교들의 위세가 지난 시기에 비해 턱없이 낮아진 지난 10년 전이면 모르겠으나, 지금 그랬다가는 아토베조는 헌병에게 모두 끌려가고 코신회도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더더욱 머리에 김이 솟을 말이 나오고 있다.


“헤헤헤. 소좌 나리. 하나 더 부탁드려도 되겠슴까?”


“뭔가?’


소좌는 이 또라이 같은 육전대 놈이 또 뭘 요구하려는지 몰라 눈살을 찌푸린다.


“일 끝나고 나면 말임다, 여기 우리 애들이 좀 써도 괜찮은지 말임다?”


그 한 마디에 와타베가 뜨악한 얼굴이 된다.


“이거 이쁜이들 물이 이제까지 갔던 곳들 중 가장 좋슴다. 인천 시가지에서 우리 애들이 목숨걸고 구르면 이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함다. 그 지나놈들이 관리하는 업소년들 잡아다가 노는 것도 있지만, 애들 다 지친 마당에 앙칼지게 구는 년들 가지기에는 피곤하지 말임다. 그러니 여기 애들을.......”


“손님!”


와타베는 화가 치솟고 또 다급한 나머지 마쓰우라 중위를 손님이라고 부르고 말았다.


“죄송한 말씀이오나 우리 벤텐야의 유녀들은 하나같이 상등품입니다. 총독부의 고관들이나 그런 분들을 접대하기 위해 준비한 상품입니다. 상품가치에 훼손이 될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뭐? 훼손?”


낄낄 웃던 마쓰우라 중위의 얼굴이 급격히 험악해진다. 그 다음 순간, 와타베가 입에서 “억!”하고 비명을 지른다. 마쓰우라 중위가 술잔을 잡아들고 와타베의 얼굴에 확 던져버린 것이다. 정확히 들이맞은 술잔이 쨍그랑하고 깨진다.


“야 이 뒷골목 극도 새끼야! 손님 차별하냐? 총독부 나리들에겐 여자 내놓고 우리 군인들에게는 못내놓겠다 이거야? 우리가 대일본제국을 위해 전방에서 뭐 빠지게 굴렀는데 여자를 못 내놓겠다고? 상품가치 떨어질까봐? 이런 X같은 새끼를 봤나!”


“중위! 진정하게!”


분위기가 급격히 험악해지자 시라키 대위가 먼저 나선다.


“귀관은 상급자 앞에 있다는 것도 잊은 겐가? 아무리 우리가 육군이라지만 대체 이건 무슨 경우인가?”


마쓰우라 중위도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어조를 낮춘다.


“죄송함다. 저 뒷골목 놈이 우리 군인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잠깐 화가 났었슴다.”


한 순간에 굴욕을 당한 와타베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이치노세 대위가 그만 하고 물러가라는 신호를 눈으로 보내지만 결국 와타베는 할 말은 하기로 한다.


“우리 관리하에 있는 유곽에서 육전대 분들이 곤란한 일을 하였습니다. 유녀들을 험하게 다루거나 폭행하고 업소의 기물을 파손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군에 계신 분들이 그러셨던 적이 여러 차례였습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니 부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니들이 손님대접을 뭐 같이 했겠지!”


마쓰우라 중위가 낮게 으르렁거린다.


“접대하는 애들이 뭐같이 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대단한 일이라고 지랄이야? 왜 띠꺼운 소리하고 자빠졌어? 나라를 위해 싸우는 군인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질 못할망정 군인이 거칠다고 손님대접을 안하려 해? 너 이적행위자냐? 지나 첩자냐? 아니면 로스케 첩자야? 한낱 야쿠자가 감히 군인을 무시해? 여기 다 박살나는 꼴 보고 싶어? 엉?”


“자. 자. 중위. 좋은 날에 열 받지 말자고. 천장절이 아닌가?”


소좌가 히죽 웃으며 마쓰우라 중위를 달래려 한다.


“와타베 씨 말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닐세. 손님 가려받는 건 솔직히 어쩔 수가 없긴 해. 하지만, 귀관 말도 확실히 일리가 있지. 우리 군이 목숨을 걸고 황국의 안보태세를 수호함으로서 여기 후방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그렇슴다! 소좌 나리는 역시 뭘 좀 아심다!”


중위는 소좌가 자기를 타이르면서도 편을 들어주자 환호작약한다.


“그런 관계로, 나라를 위해 아토베조에서 그 정도의 손실 쯤은 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며 소좌는 웃음을 흘리며 와타베 류사부로를 응시한다. 와타베는 굴욕감에 몸을 떨면서도 소좌에게 어떤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방금은 욱하는 마음에 대꾸했지만 장교들을 적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었다.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음. 그래. 말귀 잘 알아듣네.”


그러다가 소좌는 대뜸 웃음을 터트린다.


“귀관의 중대 애들이 힘이 넘치는 걸 고려하면 오히려 유녀들에게는 좋은 일 아닌가?”


그 말에 중위는 폭소를 터트리고 시라키 대위도 눈치를 보다 웃음을 흘린다. 이치노세 대위는 지극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와타베를 쳐다본다.


얼마 후, 기타무라 소좌와 시라키 대위, 그리고 마쓰우라 중위가 취한 채 유녀를 어깨에 끼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마쓰우라 중위는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유녀의 목에 입술을 갖다댄다. 유녀는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공포에 질려 와타베를 바라보았다. 와타베는 안 보이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연회석에는 이치노세 대위와 와타베 류사부로만 남았다.


“어쩌다가 저런 오니 같은 놈이 나타난 겁니까!”


와타베가 하소연하듯이 감정을 토해낸다.


“이번 일에서 저 해군육전대 때문에 손실이 이익보다 크면, 소인의 처우는 손가락 한두개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이 계획에 협조하여 돌아오는 이익은 대위님께서 보장하셨잖습니까? 소인은 그걸 믿고 군과 연관되는 걸 떨떠름해 하는 조장님과 다른 윗분들 설득해 가며 일을 추진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면······..”


와타베는 처음으로 군과 협조하자고 결정했던 걸 후회하였다. 그는 만주사변 이후 다시 나라를 움직이는 힘으로 부상한 군부와 좋은 관계를 맺어두면 뒷세계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누리게 되는 것도 넘어서서 아예 군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지금도 정계의 막후에서 영향력이 있는 뒷세계의 대부 도야마 미쓰루처럼 말이다.


그 때문에 봉천 특무기관과 적극 협조하며 특무기관의 보호 아래 조선을 중간거점으로 한 채 내지까지 아편거래망을 구축하려 한 것인데, 군을 이용하기는 커녕 오히려 군에게 끌려다니는 처지가 될 수 있음을 오늘 확인하고 말았다. 아무리 뒷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야쿠자 조직이라도 군부대의 권위와 병력에는 당해낼 수 없는 것이다.


“미안하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이치노세 대위가 한숨을 푹푹 쉬며 궐련을 입에 문다.


“그런 만큼 반드시 성공해야 하네. 일이 잘못되면 자네도 그렇지만 나도 큰일나. 나는 군법재판 회부가 자비롭다고 느끼게 될 거야. 하나야 소좌님······. 특무기관장 보좌께서 말 그대로 날 때려죽이실 거라고.”


그의 얼굴에 온전한 데가 없게 만든 사람은 봉천 특무기관장 보좌인 하나야 타다시(花谷正) 소좌였다. 정신주입이란 명목의 구타가 일상적인 곳이 군대였지만, 하나야 소좌는 그 정도가 지독하기로 악명높은 사람이었다. 임무 실패에 대해 이치노세 대위가 보고한 순간, 그는 몇 시간이고 끔찍한 인격적 모독과 함께 얻어맞고 또 얻어맞고, 끝없이 얻어맞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까지. 그만큼 이 계획은 그의 출세를 넘어서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달린 일이었다.


“실패는 생각하지 마세. 나는 불령선인 놈들을 잡아 그 돈을 회수하고, 자네는 인천을 장악하고 조선의 아편시장을 장악하는 걸세. 밝은 미래만 상상하자고.”


와타베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이라 투덜대며 홧술만 확확 들이킨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경성활극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4 304화 +14 21.11.14 282 8 19쪽
303 303화 +12 21.10.31 268 5 19쪽
302 302화 +8 21.10.24 253 6 17쪽
301 301화 +8 21.10.17 276 4 35쪽
300 300화 +8 21.10.11 245 7 26쪽
299 299화 +14 21.10.04 252 6 16쪽
298 298화 +8 21.09.22 257 5 22쪽
297 297화 +5 21.09.12 257 5 16쪽
296 296화 +14 21.08.30 251 5 17쪽
295 295화 +6 21.08.22 247 8 22쪽
294 294화 +10 21.08.16 237 8 19쪽
293 293화 +10 21.08.08 253 3 25쪽
292 292화 +12 21.08.01 256 3 39쪽
291 291화 +16 21.07.25 260 5 35쪽
290 290화 +8 21.07.18 290 8 23쪽
289 289화 +16 21.07.11 308 6 18쪽
288 288화 +10 21.07.04 332 8 18쪽
287 287화 +12 21.06.27 314 8 18쪽
» 286화 +8 21.06.20 364 6 20쪽
285 285화 +10 21.05.30 345 10 21쪽
284 284화 +10 21.05.23 329 10 21쪽
283 283화 +6 21.05.18 316 6 18쪽
282 282화 +6 21.05.09 350 7 23쪽
281 281화 +4 21.05.05 310 8 18쪽
280 280화 +6 21.05.02 334 8 17쪽
279 279화 +10 21.04.26 313 7 20쪽
278 278화 +6 21.04.22 324 8 16쪽
277 277화 +10 21.04.18 308 7 25쪽
276 276화 +10 21.04.11 335 10 16쪽
275 275화 +12 21.04.04 319 10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