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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Hell (Baby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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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사랑
작품등록일 :
2020.05.14 22:25
최근연재일 :
2020.07.01 20:01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563
추천수 :
32
글자수 :
89,271

작성
20.06.22 20:09
조회
14
추천
0
글자
8쪽

BE Hell-19

SF 호러 장르의 정통 소설입니다.




DUMMY

Chapter 8


“미스터 제시 앤더슨! 정신 차리세요! 미스터 제시 앤더슨! 정신 차리세요!”


무척이나 안정된 목소리가 암흑을 뚫고 전해져 왔다.

제시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미스터 제시 앤더슨! 정신이 드나요?”

“누구...”


제시는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뒷말을 잇지 못했다.


“미스터 제시 앤더슨! 이제 정신을 차렸나요?”


제시는 암흑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찾아 허공에서 두리번거렸다.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나 귀에 익은 목소리이지만 정확하게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을 꼭 집어낼 수가 없었다. 다만 오래전에 들었던 소리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누구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때까지도 머릿속이 어지러워 소리를 찾아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미스터 제시 앤더슨! 왜 부모님을 기다리지 않으셨나요?”


순간 눈앞의 수많은 별들이 요동을 치며 움직였다. 누가 뒤통수를 망치로 친 듯 띵했고 눈앞이 아찔했다. 별들은 뒤쪽의 빛의 여운을 남기고 다시 제자리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가슴이 오그라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유람선 사랑호의 A.I. 아담이었던 것이다.


제시는 보이지 않는 얼음 괴물이 자신을 꼭 껴안아 오는 것 같이 부르르 한기에 떨어야 했다. 지금 그 목소리를 들었다는게 너무나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담의 목소리 제시의 현실감각을 흔들고 있었다.


“왜..부모님을 기다리지 않았죠?”


비록 일관성있게 낮은 어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비난조의 감정이 들어있었다.


“왜..부모님을 기다리지 않았던 거죠?”

“왜..부모님을 비참하고 죽게 만들었죠?

“왜..부모님이 뒤에 남겨 놓았죠?”

“왜..부모님을 끔찍한 죽음 속에 몰았나요?”


아담은 조금의 인정도 봐주지 않고 제시를 몰아갔다. 제시는 두 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이 차갑게 변한 아담의 목소리는 계속 창날이 되어 쑤셔 들어왔다.


“네가 나한테 그러라고 시켰잖아. 나보고 먼저 가라고 시켰잖아.”

제시는 금방이라도 목구멍에서 피를 토할 정도로 절규를 뱉어냈다.

“그만 닥쳐! 그들이 곧 뒤따라 올 거라고 나한테 거짓말을 했잖아.....”


제시의 끝말은 흐느낌이 되어 흐려졌다. 잠시 낮게 침묵만이 흘렀다. 제시의 거친 숨소리만이 약하게 새어 나왔다.


“그건 그냥 예의상 해본 말이었잖아요. 그렇다고 진짜 정없이 먼저 갈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정말 무정한 아들이네요.”


다시 한번 아담의 목소리가 지금까지와 다르게 확 변했다.


“역시 부모님을 죽게 만든 것은 미스터 제시 앤더슨 당신이죠.”


유쾌한 듯 하면서 놀리는 투를 이어갔다.

제시는 자신의 머리를 부수기라도 하려는 듯 귀를 막은 두손에 힘을 가했다. 무슨 틈이 있는 지 아담의 목소리는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제시는 다시 한번 거짓말쟁이라고 닥치라고 말하려고 입을 벌렸다.


“제시! 역시 우리를 죽게 한 건 바로 너구나.”


갑자기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한이 잔뜩 서린 남자의 목소리였다. 제시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기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앞쪽이 환해 졌다. 유리방의 모퉁이 너머 우주공간 밖으로 두 명의 사람이 나타났던 것이다.


남녀 부부 한쌍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불에 활활타고 있는 중이었다. 산소가 없는 우주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화학적 법칙을 무시한 채 불길은 거세게 두사람을 태우고 있었다.


제시는 그들이 누군지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자신의 부모였던 것이다.


“제시...왜 우리를 기다리지 않았니? 너만 살려고?”


원망어린 말과 함께 두 구의 시체는 앞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유리벽을 무시하고 그대로 통과해 방안으로 들어왔다. 앞으로 계속 흘러가더니 어느새 두 사람은 제시의 양옆에 서서 묵묵히 그를 내려다봤다.


제시는 두 눈을 감고 귀를 더욱 세차게 막았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양옆의 불타고 있는 부모님이 무엇을 하는 지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양 옆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여 불에 휩싸인 얼굴을 손바닥으로 막고 있는 귓가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입을 벌려 그안 깊고 깊은 공간속에서 원한어린 말을 꺼집어 냈다.


“이 모든 게 너 때문이야.”


뜨겁고 역겨운 공기가 양쪽 귓가를 지져대는 것 같았다. 제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눈을 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불타는 두 구의 시체는 사라지고 주변은 애초의 암흑속으로 빠졌다.


제시는 귀를 막고 있던 두 손을 눈앞으로 가져갔다. 양손바닥 중간이 동전크기로 구멍이 나 있었다. 누가 불로 지진 듯 구멍 가는 검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악!”


제시의 짧은 비명이 유리방안을 가득 채웠다.


죠앤과 호프먼 박사는 개인적인 일을 최소화하면서 계속 제시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 제시가 허공에대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았고 자신의 귀를 막고서 허공에대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손바닥을 보고 비명을 지르고 그대로 기절하는 것을 감상할 수 있었다.


죠앤은 기절한 그가 들어있는 유리방을 BE안으로 불러 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손엔 주사총이 들려 있었다.


“흥미롭군!”

호프먼은 죠앤이 듣던 말던 혼잣말을 계속 이어갔다.


“극히 소심한 성격탓인가? 이렇게 일찍 환각에 빠지다니. 그 비싼 신경 약물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겠군.”

“이 프로젝트에 더없이 적합한 맞춤형 체질 같네요.”


죠앤은 호프먼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죠앤의 재치있는 대꾸에 호프먼의 오른쪽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하지만 저 체질에 신경약물들을 추가한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기대대지 않으세요?

죠앤의 목소리가 그녀답지 않게 들떴다. 호프먼은 잠깐 미간을 좁혔다가 풀었다.

“흥미롭군. 기발한 발상이야. 저 체질에 신경 약물을 투입하면...흥미로와.”


죠앤은 호프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방안으로 들어갔다.


그 시각 랜디는 자신의 성 집무실에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물론 고급실크 가운 또한 흐트러져 있었다.


그의 검은 마호가니 책상위엔 서너개의 술병이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었다. 그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남자의 모습은 아득히 멀어져가 있었다.


그저 늙고 초췌한 모습이 전부였다.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집어 들었다. 입에 가져가 기울이는 데 술잔이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소리쳤다.


“테드....테드...”


목이 갈라지는 소리가 까마귀가 짖어 대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그사이로 불빛이 들어왔다. 테드는 문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더니

가만히 서있었다.


“술...술..이 떨어 졌잖아...빌어먹을 잔이 비었다고 어서 술 가져와!”


테드는 걱정스런 표정과 함께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인님. 계속 이러시면 건강이 위험해지십니다.”

“잔소리 말고...술 가져와.”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고함과 함께 들고 있는 잔을 세차게 던졌다. 잔은 통통한 테드의 왼쪽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 벽에 부딪히고는 산산히 부서졌다.


‘쨍그렁...’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테드는 굳은 표정과 함께 상체를 잠깐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랜디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표정과 함께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앙상마른 두손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화면 속에 제시 또한 전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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