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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省元) 님의 서재입니다.

이방인온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성원(省元)
작품등록일 :
2020.11.28 17:19
최근연재일 :
2022.08.11 00:05
연재수 :
2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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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7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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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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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26화 - 반목에 이은 도발.

DUMMY

캄캄한 밤, 안학궁성 내의 서궁(西宮)에 위치한 해위지의 별채에 해씨 부자(父子)들이 모여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이런 젓갈을 담가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



해위지는 주안상이 차려진 탁자를 치며 성을 내고 있었다. 마주 앉은 두 아들 역시 상기된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뭐가 어째? 빌어먹을 늙은이가 감히 고추가인 내게 도전을 해!?”


“아버님. 동부에서 저희가문에 분명히 적대감을 표출한 만큼 절대 좌시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꺾어놔야 할 족속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연자환과 연자유를 찍어내지 않는다면 훗날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감히 고추가조차 배출하지 못 하는 일개 부족의 대가 따위가 우리 소노부를 능멸하다니! 그것도 어전에서!”



장남 해서유태가 부친의 비어있는 술잔을 채우면서 말을 이었다.



“아버님. 연씨 가문과 제가회의까지 간다면 어쩌면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연씨 놈들이 고양성을 두둔하려 들 것이니 고양성 역시 연씨 놈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네 말이 맞다. 고양성이 연자환을 거든다면 왕후 명림단 역시 북부를 움직여 동부를 지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허나 아버님. 제가회의에서 승패가 나지 않으면 전쟁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저희가문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저희 부족이 오부의 군사력 중에서 가장 강력하지 않습니까?”


“애초에 제가회의에서 대가들의 신임을 얻을 생각도 없었다. 그동안 착실히 쌓아왔던 사병을 활용해 아예 연씨 집안을 몰살시켜버려야지. 계루부나 절노부 모두 과거 ˚추군, 세군 사태로 털렸으니 제깟 것들이 힘을 합쳐봤자 소용없다.”



가만히 듣고 있던 차남 해준종이 슬며시 말을 거들었다.



“전쟁으로 치달을 것 없이 암살단을 보내어 치워버리는 것은 어떨까요? 아버님.”


“허허. 아무리 연자환이 곧 뒈질 늙은 놈이어도 명색이 동부의 대인이다. 암살이 먹히기야 하겠느냐?”


“제가 착실히 준비한 녀석들을 활용해보고 싶은데 허락만 해주신다면 시도해보겠습니다. 아버님.”



십대인 해준종은 혈기만을 믿고 암살이 성공할 것이라 순진하게 믿고 있었다.


허나 그의 의도대로 암살이 성공만 해준다면 깔끔하게 동부를 치워버리고 저렴한 방법으로 대대로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독침을 아주 잘 쏘는 녀석 둘이 있습니다. 제 아무리 호랑이를 잡는 놈이라고 할지라도 독에 면역까지 될 리 만무하니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아버님.”


“해준종. 아버님 말씀대로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 연자유 역시 조의선인 출신이거늘, 꼼수가 통할 리 없다.”



형 해서유태가 비아냥거리며 아우의 말을 끊었다. 아우 역시 형의 말을 가뿐히 씹어버리며 말을 계속 이었다.



“연자유 그놈이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도 해봐야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대비하기 전에 빨리 손을 쓰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아버님.”


“도발 해볼 가치는 있긴 하다만.. 독의 살상력은 어떠하냐?"


"전에 고평성의 쥐새끼들을 치웠을 때보다 더 강력한 독입니다. 여러 독침을 한꺼번에 맞으면 반드시 즉사합니다."


"네 말대로 연자유 그놈이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놈인지 알 필요도 있고.. 하물며 성공한다면 오히려 다른 대가들도 겁을 먹고 우리에게 조아리겠지. 허면 그들이 대비하기 전에 바로 실행해라.”


“감사합니다. 아버님.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해준종은 곧 자신의 거처로 가서 그동안 정하시와 거래했던 용병들과 함께 자신이 가장 아끼는 부하인 조윤과 조호를 불러 암살단을 꾸렸다.


쌍둥이인 형 조윤과 동생 조호는 해준종의 직속 조의들이었다. 해준종은 일심동체인 그들을 조윤호라고 부르며 늘 자신의 수족처럼 아꼈다.



“조윤호, 이번 일이 성공한다면 훗날 내가 고추가가 되었을 때, 너희들에게 성 하나씩을 다스리게 해줄 것이야. 연자환은 어차피 곧 뒈질 늙은이니 너희들이 오늘 반드시 치워버려야 하는 놈은 연자유다. 독침은 제대로 준비했겠지?”


“예. 주인님.”


“반드시 성공시켜라. 그래야 내가 해서유태 형님을 누르고 고추가인 아버님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쌍둥이 조윤, 조호는 곧 자객 일곱을 데리고 은밀히 안학궁성 내 연자환의 거처로 향했다.


조윤호가 이끄는 검은 도복의 암살단이 연자환의 거처로 들어왔을 때, 경계병들이 있긴 했으나 방비가 허술해 보였다.


“호야. 뭔가 허술해 보이는 것이 느낌이 좋지 않다.”


“기분 탓이니 염려 놔. 형. 저기 보이는 별채가 연자환이 기거하는 별채다. 저 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죽이고 나오면 성주가 될 수 있다고.”



호롱불이 밝게 타오르는 별채의 창문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조윤호와 자객들은 소리 없이 조용히 그림자를 향해 다가갔다.



‘모두 독침을 꺼내라.’



조윤의 명령대로 나머지 여덟 명이 독침을 꺼내어 그림자를 향해 조준했다.



-훕! 훕!-


-팍팍팍!



창문의 창호지를 꿰뚫은 독침들이 내부의 그림자의 두상에 모두 명중했다. 그러나 독침을 맞은 그림자들은 계속 정좌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객들은 확인사살을 위해 검을 뽑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 형체를 향해 검을 쑤셨다.



“아뿔싸! 당했다!”


“이런 가짜였다니! 제길!”



자객들이 방 안에 들어가 검으로 쑤신 것들은 정교하게 꾸민 허수아비들이었다.



“쏴라!”



갑자기 들려온 연자유의 호령에 방안으로 날아든 수십 개의 도끼날 화살촉들이 자객들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크악!”


“아악!”



끊임없이 날아든 화살은 방 내,외부는 물론 모든 자객의 몸을 뒤덮었다.


온몸을 찢긴 조윤호와 자객 일곱은 피를 뿜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곧 ˚철태궁을 든 연자유가 들어와 방안을 살폈다. 연자유의 얼굴을 확인한 조윤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금 독침을 만지작거렸다.



“죽여..야 해. 으..”


“이따위 하책을 쓰다니 네놈의 주인은 매우 멍청한 주인인가 보구나. 끝까지 덤비려는 네놈의 근성 하나는 인정해주지. 근데 혹여 암살이 성공하거든 네 주인이 성이라도 내어 주겠다더냐?”


“어으극, 주,,죽어라.. 연자..유.”



연자유는 곧 활시위를 당겨 조윤의 머리를 조준했다. 조윤이 독침을 입에 대려는 순간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조윤의 이마를 꿰뚫었다. 조윤은 불려고 했던 독침을 입에 문 채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다.



동부의 군사들이 잠입한 자객들을 처치하자 연자환이 슬그머니 나타나 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허허. 해위지 그놈이 많이 화가 나긴 났나 보구나. 그렇다고 이따위 멍청한 하책을 쓰다니. 다행히 네 말대로 방비를 했으니 망정이지 설마 이렇게 대놓고 들이댈 줄은 몰랐다.”


“아버님. 해위지의 머리에서 나왔을 계책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 어리바리한 두 아들 놈 중에서 나온 하책일 것인데 이렇게 나왔으니 저희도 소박하게나마 답례를 해야겠습니다.”


“어떤 답례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연씨 가문을 모욕했으니 잘 준비해서 보냈으면 좋겠구나.”


“예. 아버님. 그리고 일이 끝내는 대로 태왕폐하를 알현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오늘 태왕 폐하께서도 은근히 놀라하시던데, 폐하께 눈도장을 잘 찍어둬야겠지. 여러 가지로 잘 준비해서 알현해라. 그래야 우리 가문을 후원해주지 않겠느냐.”


“분명 그렇게 될 것입니다. 금일 해위지가 저희에게 장난을 걸었으니 저도 장난을 쳐봐야겠습니다. 상황이 일단락되었으니 아버님께선 돌아가 쉬십시오.”


“그래. 이 아비는 그럼 쉬도록 할 테니 잘 정리하여라.”



연자유는 부하들을 시켜 방안에 쓰러진 자객들을 마당으로 옮긴 뒤, 박힌 도끼날 화살촉을 모두 뽑아냈다. 온몸이 찢긴 상처의 시체들로 바닥에 피가 흥건해졌다.


복면을 벗겨 하나하나 면상을 확인하던 연자유는 곧 미소를 지으며 두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 두 놈의 수급을 베고 내 말의 안장에 매달아 놓아라.”


“예, 도사.”


“수급을 벤 몸통은 호랑이 사냥 미끼로 쓸 것이다. 지금 당장 호랑이 사냥에 나갈 것이니 모두 채비들 해라. 그리고 군사들을 풀어 주변의 경계를 삼엄히 하라.”


“알겠습니다!”



연자유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 호랑이 가죽을 망토처럼 걸친 수십 기의 중무장한 근위대가 연자유의 뒤를 따랐다.


다음날 새벽녘.


해가 떠오르며 아침이 다가오는 시기, 서궁 해위지의 거처의 대문에 수레 소리와 말들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대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들은 호랑이 가죽을 걸친 군사들과 함께 죽어있는 거대한 호랑이를 실은 수레를 보고 놀라 부랴부랴 해씨 일가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대문으로 달려 나온 차남 해준종은 문 앞에 서 있는 연자유의 군사들을 향해 일갈했다.



“연자유!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아침부터 군사들을 이끌고 도발하는 것인가!?”


“오오! 막내 도련님께서 아침 일찍이 기상하셨구려. 머리가 나쁘면 부지런하기라도 해야지. 내 마침 호랑이 사냥을 나갔다가 기똥찬 놈을 하나 잡았기에 선물로 드리려고 왔소이다.”



연자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린 해준종을 야기죽거렸다. 해준종이 자신을 응시하자 그는 곧 말고삐를 움직여 보란 듯이 안장에 매단 수급들을 들추었다.



“앗! 조윤 조호!”



연자유가 탄 말의 안장에 매달린 조윤과 조호의 수급을 본 해준종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수급들을 보고 놀라는 해준종을 보며 역시나 한 연자유는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 이러니 네놈더러 젖비린내난다고 하는 것이다. 일을 꾸미려거든 제대로 해야지 표정 관리조차도 못하는 놈이 감히 이따위 하책을 내놓은 것이냐!?”


“뭐! 뭐라! 이 죽일 놈이! 감히!”


“이런 하책을 쓰는 너 따위가 고추가의 차남이라니, 서부도 별 볼 일 없구나! 아참. 이 수급들의 몸뚱이가 제법 맛이 좋았는지 이 호랑이가 아주 맛나게 물어뜯더구나!”



호랑이 굴에 들어와서 대놓고 능욕하는 연자유의 배포에 해준종은 이성을 잃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으아아아! 연자유 이놈! 네놈을 반드시 죽이겠다!”


“흥분 마라, 젖비린내 나는 어린아이야! 이따위 계책은 두 번 다시 쓰지 마라!”


“으으으!”



해준종이 가장 아끼던 부하들의 수급을 보며 분개하고 있을 때, 해위지와 해서유태도 곧 대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오! 고추가. 좋은 아침입니다. 동부의 호랑이, 연자유 새벽녘부터 고추가를 뵙습니다.”


“연자유! 이게 무슨 행패냐!? 초대도 하지 않았거늘 네놈이 내 거처에서 느닷없이 찾아와서 단잠을 깨우느냐!?”


“고추가. 너무 오래 주무시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은데 슬슬 기상할 시간도 되지 않았습니까? 그나저나 내 두 자제분께 선물을 준비해서 이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선물 같은 소리! 네놈에게 선물 따위 바라지 않는다!”


“고추가, 근자에 우리 집안에 호랑이 사냥에 쓸 미끼 아홉 마리가 들어왔는데 그 미끼들이 어찌나 몽매하던지요. 그 미끼를 이용해서 큰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 왔습니다. 이 정도 호랑이면 가죽값 최고로 받을 겁니다.”



분명 수레의 호랑이는 아주 큰 성체였다. 어지간한 전문적인 사냥꾼들과 사냥을 하지 않는 이상 잡기 힘든 크기였으나 호랑이 가죽을 걸친 눈앞의 연자유에게는 그저 만만한 사냥감일 뿐이었다.



“감히 우리 해씨 가문을 능멸하고도 네놈의 가문이 무사할성싶으냐!?”


“고추가, 능멸이라니요. 먼저 얕잡아 본 것이 잘못 아니겠습니까? 이따위 하책을 쓰시지 말고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임하시지요.”



연자유는 곧 안장의 수급들을 해씨 부자들에게 내던졌다. 해준종은 분통을 터뜨리며 수급들을 거두었다.



“연자유, 네놈! 반드시 내가 죽인다!”


“너 같은 조무래기가?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 고추가. 소인은 이만 물러갑니다. 하하하!”


“이놈. 연자유. 감히 고추가인 날 이리도 능멸하다니! 오늘 일은 절대 잊지 않겠다!”



연자유의 군사들은 호랑이 수레를 둔 채, 말머리를 돌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악에 받친 해준종은 수급들과 함께 호랑이를 그대로 불태워버렸다. 애써 키웠던 부하들이 모두 사망했기에 서둘러 시위들을 확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조윤호가 이리도 쉽게 몰살당하다니 너무 아깝구나. 이렇게 된 이상 붉은 너울부터 따로 만나야겠다.’



연씨 가문에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해씨 가문에 대해 각 부의 대인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기에 해준종의 입지는 더욱더 쪼그라들고 있었다.



***



제나라로 이동중인 정하시의 본대는 드넓은 대지 길에서 상단을 멈춰 세우고 휴식을 하고 있었다.


요소요소에 대형 화롯불들이 시위들과 노예들의 추위를 녹여주고 있었다.



”야이 한족새끼들아! 추워죽겠는데 따듯한 국물과 고기가 먹고 싶다! 좀 가져와 봐!“



쉬지 않고 강행군을 했기에 모두 피곤해하고 있을 사이, 감옥 마차 안에서 털가죽을 뒤집어쓴 채 깐죽거리는 황영에게 재이가 편곤을 들고 다가갔다.



”이번엔 맞는 게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 더 지껄여 봐라.“


”어휴. 야차 같은 놈. 난 그냥 먹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야. 징징거린다고 해서 줄 것도 아니잖아?“


”노예가 헛소리를 지껄이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지껄이는 거냐?“


”내가 노예가 되고 싶어서 됐냐? 덩치 크다고 엄청 까부는 놈이군. 나 고려 조의선인 출신이야. 너희 노예 상단 따위에게 이따위 대접받을 분이 아니라고. 아 몰라! 밥 줘! 배고파!“



정하시 상단에게 잡혔으니 죽거나 팔리거나 둘 중의 하나인 상황에 황영은 자신의 몸값을 높여보겠답시고 조의선인이라는 이름을 팔고 있었다.


재이에게 깐죽거리는 황영의 목소리를 듣던 정하시는 마차에서 나와 황영이 갇힌 감옥 마차에 다가갔다.



”하하. 조의선인이 여기 또 한 분 계셨다니 놀라울 따름이군요. 허면 어떻게 대접해드리길 바라시는지요?“



정하시가 다가오자 재이는 자세를 고치고 그녀에게 묵례했다. 붉은 너울의 등장에 황영은 나무 창살에 얼굴을 들이밀며 그녀에게 최대한 다가갔다.



”오! 간드러진 목소리의 주인공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붉은 너울의 상단 대행수를 뵈오!“



재이는 황영이 바짝 기댄 나무 창살을 향해 편곤을 휘둘렀으나 황영은 날쌘 반사 신경으로 편곤을 피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안면이 으깨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감히 주인님을 능멸하는 소릴 지껄이다니 죽고 싶은 게로구나. 당장 머리가 으깨지고 싶으냐!.“


”어휴. 네가 무슨 지아비라고 돼? 그나저나 내 갈 길 가려던 거 괜히 사람 건드려서 이렇게 노예로 전락시키다니, 제나라 사람들은 원래 노예 만들 때 이따위 하책을 쓰시오? 여기 갇힌 것이 너무도 억울하오.“



황영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정하시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상단의 시위를 죽여 놓고 어찌 그리 말씀하시는지요?“


”이것 보시오, 공격한 것은 그대들이 먼저 했소. 그나저나 가까이서 들으니 유수와 맞서고 있을 때보다 확실히 목소리가 더없이 영롱한 것이.. 하.. 선녀가 있다면 이런 목소리일까 싶소.“



황영이 갑작스럽게 말한 유수라는 이름에 정하시는 그에게 되물었다.



”유수라니요? 그게 누구입니까?“


”일전에 호각 불어대며 고려 군사들과 맞붙으려 하지 않았소?“


”아, 그 중리소형이라는 자의 이름이 유수입니까?“


”이런! 고급정보를 너무 쉽게 알려줬나? 내 그 계집을 잘 알고 있소. 그나저나 이리도 쉽게 알려줬다니, 내 대행수의 목소리에 반해서 그만 이리 말해버렸소.“



황영의 거침없는 이빨연주에 정하시는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당장에 죽일 수도 있지만 겁 없이 지껄이는 이 사내가 나름 흥미로웠다.



”아, 그러고 보니 흑각궁을 지녔던 자가 맞지요? 그 맥궁은 그대의 것입니까?“



맥궁을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훔친 호권의 활이 마치 자기 것인 것처럼 황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해댔다.



”그럼 내 것이지 누구 것이겠소? 내 맥궁을 뺏어가다니 매우 섭섭하오. 아니 그걸 가져가셨으니 내 목숨 값으로 치러도 충분치 않겠소? 날 여기서 내보내 주시오.“


”하하하. 재밌는 분이시군요. 헌데 흑각궁을 뺏었다니요. 어차피 그 안에서는 못 쏘는 것을 제가 보관한다고 여기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흠흠, 아무렴 대행수 뜻대로 하시되, 부디 내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해야 할 일이 있소.“



억양과 눈빛이 바뀌며 말하는 황영의 모습에 정하시는 의아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해야 할 일이라니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복수요.“


”복수라? 하하. 들을수록 흥미로운 분이군요. 재이, 이 사내에게 따듯한 음식을 가져다주세요.“



황영은 비굴함을 무릅쓰고 살기 위해 감언이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 그를 정하시 역시 죽일 생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조의선인과 복수, 이 두 가지만으로도 황영은 분명 정하시에게 흥미를 끄는 사내였다.


정하시는 ‘복수‘라는 그의 말에 서로 이해관계가 성립될지도 모르는 황영이라는 사내가 어떤 자인지 궁금해졌다.



’복수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사내일지도 모르겠군. 일단 살려둘 가치는 있겠어.‘



노예상단에 잡힌 이방인온달과 마찬가지로 정하시 본대에 잡힌 황영 역시 제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작가의말

˚추군, 세군 사태 : 545년 겨울 고구려 안원왕 때 왕위계승을 문제로 외척인 추군과 세군의 파벌이 전쟁을 벌인 사건입니다. 정부인이 후사를 얻지 못하자 중부인의 아들과 소부인의 아들끼리의 외척간에 내란을 벌이게 되는데 이 전쟁에서 소부인의 세군이 패배하게 되고 추군은 세군의 일족 2천여명을 몰살시켜버립니다. 추군 측 태자인 고평성이 등극하게 되니 그가 양원왕입니다.


˚철태궁(鐵胎弓) : 각궁과 제조방법은 같으나 단지 궁간(弓幹)을 철로 만들어 위력을 높인 활로, 전시와 수렵에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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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화 - 숨은 온달 찾기 ②. +8 21.01.26 178 12 15쪽
44 43화 - 숨은 온달 찾기 ①. +8 21.01.23 235 11 14쪽
43 42화 - 나쁘지 않은 온달. +8 21.01.22 187 10 14쪽
42 41화 - 생존 보고. +10 21.01.21 198 10 14쪽
41 40화 - 도움과 작별. +8 21.01.20 203 12 13쪽
40 39화 - 다시 찾아온 적들. +9 21.01.19 193 11 14쪽
39 38화 - 서부의 도사(道使) +6 21.01.16 197 11 14쪽
38 37화 - 싸이코와 강이식(姜以式) +6 21.01.15 204 10 15쪽
37 36화 - 새로운 국상. +6 21.01.14 200 12 14쪽
36 35화 - 철태궁(鐵胎弓). ② +4 21.01.13 210 13 14쪽
35 34화 - 철태궁(鐵胎弓). ① +5 21.01.12 227 12 14쪽
34 33화 - 복수와 탈출. +8 21.01.09 267 13 14쪽
33 32화 - 위기. +6 21.01.08 192 11 16쪽
32 31화 - 스쳐 지나가는 원수. +8 21.01.07 199 11 14쪽
31 30화 - 동향 사람의 도움. +7 21.01.06 217 11 15쪽
30 29화 - 답례. +10 21.01.05 212 14 17쪽
29 28화 - 정하시와 재이 ② : 사소취대 (捨小取大) +10 21.01.02 221 12 16쪽
28 27화 - 정하시와 재이 ① : 복수의 근원 +10 21.01.01 220 10 14쪽
» 26화 - 반목에 이은 도발. +12 20.12.31 247 11 18쪽
26 25화 - 반목의 시작. +12 20.12.30 246 13 14쪽
25 24화- 을지문덕과 동병상련. +12 20.12.29 270 11 17쪽
24 23화 - 운명 +14 20.12.26 298 11 16쪽
23 22화 - 두 여인과 능욕. +12 20.12.25 368 14 14쪽
22 21화 - 지키려는 자와 무너뜨리려는 자. +8 20.12.24 290 11 17쪽
21 20화 - 살아나는 원한의 씨앗 ② +10 20.12.23 295 12 15쪽
20 19화 - 살아나는 원한의 씨앗 ① +8 20.12.22 294 12 17쪽
19 18화 - 떠나는 하사안. +6 20.12.19 303 11 16쪽
18 17화 - 정하시 일당과의 만남. +4 20.12.18 315 13 15쪽
17 16화 - 부친의 행방을 찾으러간 사이. +3 20.12.17 319 1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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