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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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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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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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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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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쪽

228

DUMMY

세컨드가 만든 두 남녀가 눈을 뜬다. 둘 다 예쁜 에메랄드와 푸른 빛의 오드아이다. 다만, 남녀 위치가 반대다. 여성은 오른쪽이 에메랄드, 왼쪽이 푸른색이다.


눈가 밑의 애교점도 그러했다. 여성이 왼쪽, 남성이 오른쪽이다.


머리카락도 비슷했다. 투 톤 컬러로, 남성은 밖이 에메랄드, 여성은 푸른색이었다. 안쪽은 그 반대였고.


생김새도 좋다. 남성은 언더컷의―― 이곳에서는 제법 짧다고 할 머리로, 한쪽 이마를 드러내는 멋진 스타일이었다. 여성 또한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제외하면 남성과 스타일 자체는 같았다. 맞춘 것처럼 이마를 튼 것도 반대였지만.


짧게 평가하면 선남선녀의 남매랄까.


그런 둘은 빠르게 장내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즉각 리아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구의 정장 차림 차림과 함께 꽤 그림이 된다. 검은 넥타이도 썩 어울린다. 여성 쪽도 같은 차림임에도 늘씬하게 빠진 몸매와 긴 다리 덕분에 잘 소화해 냈다.


기품도 있다. 정중히 가슴에 손을 모은 그 모습은 흡사 고위 귀족과도 같다.



“쩌······ 쩐다.”


리아는 감탄했다. 무심코 천박한 말을 할 정도로.


그만큼 대단했다. 저 남매는······. 지성이 있는 것도 그렇지만, 마력레벨이 압권이다.


――무려 초월자다.


그래. 세컨드는 초월자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그것도 둘이나······.’


너무 굉장해서 도리어 침착해진다.



“일단 인사가 먼저겠지.”


생각을 정리하고, 리아는 몸을 숙여 둘을 일으켜 세웠다.


이 선남선녀의 남매는 몹시도 어려워했다. 정말 그래도 되느냐며, 심각한 눈빛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까지 하였다.


어찌저찌 일어나고 나서도 변함없었다. 꼬리에 불이 붙은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손자, 손녀 같은 위치이다 보니 이해는 간다만······ 좀 과하지? ――아니! 그보다, 나 벌써 할머니가 된 거야?!’


16살의 초겨울. 초고속으로 할머니가 되고야 말았다······.


아마 이 나이에 할머니가 된 16살은 없겠지.


안 그래도 결혼 시기가 꽤 긴 동네이다 보니 더더욱 없을 것이라 보인다. 뭣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라는 게 꽤 충격적이다.



“걸리시는 점이 있으십니까?”

“아, 아니. 좀 놀랐을 뿐이야. 그보다 이 아이들은?”

“머큐리, 베누스라고 명명했습니다.”

“어······ 그렇구나. 좋은 이름이야.”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세컨드를 따라 남매―― 머큐리와 베누스는 깊이 머리를 숙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황송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특히 머큐리와 베누스는 감격마저 한 듯 환희에 찬 기색이 흘러나왔다.


무심코 얼굴 근육이 움찔거릴 반응이다. 그러나 물을 말이 많기에 내리눌렀다.



“다시 봐도 굉장하네. [자동화]를 사용할 수도 있고.”

“황송한 말씀입니다만 열화판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리아 님께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본인은 저리 말하고, 남매도 그렇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렇지만 리아가 보기에는 대단하기만 했다.


그야 [자동화]는 에르도 못 쓰는 마법이 아닌가.


물론 세컨드와 같은 열화판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공간 이동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여 여태 못 썼었으니까.


하지만 에르는 용왕이다. 그에 비해 세컨드는 마법으로 만든 오토마타다. 비견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넘칠 정도로 대단했다.


‘3단계 마력도 그래. 역시 효율이 엄청나.’


세컨드가 소비한 마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체의 대략 10%쯤으로, 보충을 위해 왔다고 한 것에 비해선 좀 적은 양이었다. 다른 말로는 겨우 10%만으로 초월자 둘을 만들 수 있다는 소리였다.


즉, 보충 없이도 세컨드는 초월자를 열 개나 만든다는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경악스러운 효율이 아닐 수 없다.



“으음. 근데 3단계 마력으로는 만들 수 없나 보네.”


중얼거린 말을 들었는지 세컨드가 면목이 없다는 표정이 됐다.



“아~ 그래서 열화판이란 거구나.”

“말씀대로. 제가 모자란 탓에 신력을 담는 사도의 창조까진 이르지 못합니다.”


그리 말한 세컨드는 넙죽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기껏 신력까지 내려주셨건만······ 못난 저를 부디 벌하여 주시옵소서.”

“버, 벌?! 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니?!”


이건 좋지 않다. 에이브안이 보고 있지 않은가.


괜히 세컨드가 오고 쭉 눈치를 봤던 게 아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사람을 막 굴리는 듯한 인상을 받고 싶겠는가.


세컨드도 이러한 심정을 이해해 준 줄 알았었다. 의미심장한 눈빛과 함께 평소의 과한 예의 차림이 덜했었으니까. 모처럼 의견도 내주었기에 더더욱.


안 그래도 무릎을 꿇고 기다렸던 세컨드다. 이래서는 손녀의 평소 행실이 어떤지 염려스러울 것이다.


억울하다······.


아무것도 안 한 리아의 처지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차라리 불량한 자세로 진짜 삐딱하게 굴었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날라리 인상은 잘 그려지지 않지만.’


어쨌거나 자신은 행실이 바른 아이. 날라리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일만을 해왔다.


할아버지에게 괜한 오해를 받는 건 사절이다.


딱!


리아는 즉각 [염력]으로 모두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드물게 무척 진지한 얼굴을 했다.



“세컨드.”


나오는 말 또한 평소와는 달랐다. 그 음색은 만인을 굴복시키는 패왕의 것.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가 거실을 짓눌렀다.


재차 무릎을 꿇진 않았지만, 세컨드와 남매는 비할 바 없는 태도로 신하의 예를 취했다. 다만, 기분 탓이 아니라면 황홀해하는 것 같달까, 홍조를 띤 얼굴은 흡사 취한 사람 같았다.


순간적이지만 맥이 빠졌다. 모처럼 분위기 잡고 훈계하려 했는데 저런 반응이지 않은가.


하지만 언젠가는 한 번 말하려 했던 문제다.


리아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연기하기는 쉬웠다. 하얀 악몽, 패왕으로 군림한 그녀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었기에······.



“너희는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는구나. 걸핏하면 목숨으로 죄를 갚는다 하고. 무얼 위해 1순위로 본인의 안전을 지정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건 리아 님을 위해······.”

“후우. 날 위해주는 건 너무 기뻐. 하지만 나 또한 너희들이 소중하단다. 그야 너희는 나의 아이들이지 않더냐. 부모로서 자식을 아끼는 거야 당연하지. 그런 너희들에게 매번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니?”

“저, 저희를 자식이라고······?”

“나로 인해 탄생했으니 그런 거 아니겠니? 머큐리와 베누스는 손주 같은 느낌이고.”

“오오······.”


설마 자신들도 포함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나 보다. 번쩍 고개를 든 머큐리와 베누스의 눈에 눈물이 고여간다.


세컨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쁜 에메랄드빛 눈동자에서 뚝뚝 눈물이 흘러내렸다. 참고로 곁에서 지켜보던 식스는 이미 진작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감동할 요소가 있었던 건지······. 눈물샘이 느슨해도 너무 느슨하다.


‘할아버지도 황당해 하시잖아.’


모르겠다. 어련히 알아들었겠지. 다들 능력 하나는 기막히니.


다소 김이 빠진 리아는 가볍게 손을 튕겨 모두의 눈물을 닦아줬다.



“너희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도, 자신을 낮추지도 말렴. 만들었다고는 하나 너희를 대신할 건 이 세상에 없단다. 가슴 펴고 당당히 살아가렴.”

“예! 반드시······ 반드시 리아 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식스를 비롯하여 다들 재차 무릎을 꿇지만······ 어련히 잘 알아들었겠지. 에이브안도 약간 식겁한 것 말고는 딱히 질타하려는 낌새도 없고.


‘잘 풀린 거겠지······.’


별로 자신은 없지만 대충 그렇게 여기로 했다. 어쨌거나 툭하면 목숨으로 때우려고 들지 않을 테니 그것으로 만족이다.


그렇게 리아는 모두를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한동안 머큐리와 베누스가 어떤 일을 하는지와 공정 상회의 일들을 들었다.


세컨드는 몹시도 경건한 태도로 이것저것 말해주었다.


그리 이해되지는 않았다. 까먹지 않고 모두 기억은 하지만 어째서 그리된 건지 조금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영향력을 확대. 리아 님의 바람대로 순조롭게 인간국의 물류를 장악하리라 판단됩니다.”


‘응. 진짜 모르겠네. 장악한다고 좋나? 괜한 시기만 받을 거 같은데. 일도 많아질 테고. 그것보단 얌전히 있는 편이 좋지 않나? 게다가 왜인지 나의 바람으로 되어있지 않아?’


뭔가 할 말이 많다. 그렇지만 초롱초롱한 세컨드의 눈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식스와 남매들을 보니 쏙 들어가 버렸다.


일단 문제는 없어 보이니 괜찮지만 왠지 불안하다.



“으음.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골에서 사는 것이지만 에이브안은 똑똑하다. 어떨 때는 에르의 말대로 현자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분명 지금의 이야기도 문제없이 따라갔을 터이다.


다소 과격한 넘버즈보다는 상식인이기도 한 터라 에이브안의 의견은 참고가 될 것이었다.



“자세한 정황을 모르는지라 이렇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애당초 우리 마을은 경제라는 것 자체가 없는 곳이고. 하지만 대충 상황은 그려지는구나. 분명 원래 있던 조합은 부패한 것이겠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국가 단위로 일을 진행하는 게 아니냐? 나로서는 당최 어찌하여 그리 큰 규모가 되었는지는 의문이로구나. 하지만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우리 리아는 그런 아이였으니 말이야.”

“그, 그런가요?”

“음. 옛날부터 불합리한 것을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지 않았느냐. 이 할애비를 닮은 게지.”


손녀니까 닮기야 했을 것이다. 성격까지 닮았는지는 좀 갸우뚱하게 되지만······.



“근데······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나요?”

“뭐, 딱히 걱정되진 않는구나. 자금이라던가, 정세 이야기를 들어보니 크게 걸릴 것도 없어 보이고. 되려 할애비는 잘도 거기까지 키웠구나 싶단다.”

“이제 막 지점이 늘어났을 뿐이지만요.”


이래저래 에이브안이 보기에도 큰 문제는 없는 듯하다.


그걸로 만족하고 리아는 자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물론 세컨드가 원한 마력의 보충도 제대로 해주었다. 왜인지 소비한 10%보다도 훨씬 많이 들어가서 좀 이상했지만······.



“세컨드, 모처럼인데 저녁 먹고 가지 않을래? 머큐리랑 베누스도.”

“허가해 주신다면 기꺼이!”

“영광입니다!”


역시나 반응이 과하다고 생각하며 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이었다. 뭔가 감각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공간 이동인가?”

“기운으로 보건대 넘버즈라 사료됩니다.”

“넘버즈? 또 누가 왔나? 일단 가보자.”

“옛!”


리아는 모두를 이끌고 집 밖으로 나갔다.


기운이 느껴진 곳은 마을에 새로 만든 광장으로, 그곳에는 완전 무장의 사람이 여럿 있었다.


전원 눈에 익은 자들로, 미리 마력을 확인하지 않았던 리아는 화들짝 놀랐다.


반가움이 앞섰던 리아는 단숨에 공간을 도약하듯 내달렸다.



“다녀왔구나, 폴스.”

“예! 임무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그랬다. 돌연 공간 이동으로 나타난 자들의 정체는 마국으로 떠난 폴스들이었다. 그들이 근 20여 일의 여정을 끝내고 돌아온 것이었다.


폴스의 외침에 이어 마족 주민들이 리아의 앞에 도열했다.



“총원 스물일곱. 전원 무사히 복귀했음을 보고드립니다.”

“다녀왔습니다, 아가씨!”

“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힘드셨을 테니 우선 여독을 풀도록 하죠.”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바지탄스의 말과 함께 마족 주민들은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렇게 얼추 인사가 끝나니 세스와 델리안이 도착했다.


리아는 살갑게 맞이해주는 둘에게 바지탄스들을 맡기고, 폴스에게로 갔다.



“폴스도 수고했단다.”

“과분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뭘. 내가 더 고맙지. 자자. 폴스도 얼른 쉬러 가자.”

“예.”


그렇게 모두의 뒤를 따라가니 세컨드가 폴스의 곁으로 붙었다.



“수고했어, 폴스.”

“응. 세컨드도 와 있었네?”

“보고 할 게 있어서.”

“저 부관들은 뭐야?”

“필요해서.”

“흐응. 그렇구나.”


둘의 대화 뒤에 머큐리와 베누스가 자기를 소개했다. 폴스는 미적지근하게 반갑다고만 하였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 실로 담백하다.


넘버즈끼리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랐던 리아로서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관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 생각했는데, 의외로 폴스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신성이 꽤 높아졌네?”

“리아 님께 받은 포상이야.”


자부심 가득한 세컨드의 말에 폴스는 부럽다며 중얼거렸다.



‘신성? 그게 뭐야? 포상은 또 뭐고. 그런 걸 준 기억은 없는데?’

『답. 시전자―― 이스피리아의 신력을 뜻함.』


갑자기 대답이 돌아와서 움찔했지만 리아는 침착하게 물었다.



‘내 신력? 그게 포상이라고? 신성이란 것이랑도 무슨 연관이 있어?’

『신력이란 신의 기운. 즉 신성을 의미함.』

‘으음. 무슨 수수께끼 같은 말이네.’

『개체명―― 세컨드의 마력레벨을 확인해 보길 권고.』

‘마력레벨······?’


뜬금없는 소리였으나 아이가 괜한 말을 하진 않을 터. 궁금증을 품고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리아의 눈은 부릅떠지게 되었다.



‘세, 세상에! 마력레벨이······ 800이라고?! 아, 아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넘버즈들은 성장이 가능하게 창조되었음.』

‘어, 그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어. 그렇지만 그저 마력을 주입해 준 것만으로 마력레벨이 오른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마력이 있다고 한들, 그걸 받아들이는 육체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계 이상으로 주입해 봐야 고문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했기에 어렸을 적 리아에게 마력을 주입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심하면 갈 길을 잃은 마력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다 사망하고 말기에······.


넘버즈라고 다르진 않다. 마력을 쌓는 기본적인 구성은 같으니 과한 마력은 육체의 붕괴에 다다른다.



‘아니, 잠깐······. 애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사양이었다면? 생각해 보니 쑥쑥 들어가기도 했었잖아? 대충 이쯤이면 되겠다 싶어서 끊었지만······ 더 들어갈 수도 있어 보였지?’

『긍정. 모든 넘버즈는 마력레벨 1,000의 스펙으로 설계되었음.』



“에엑?!”

“무, 무슨 일이니, 리아야.”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심 평정을 가장하여 대꾸했으나 리아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무려 마력레벨 1,000이지 않은가.


나 자신조차도 아직 999인데 넘버즈들이 이미 정상에 도달했다니 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나.


꽤 위기감이 들었다.


자신보다 뛰어난 이들을 부려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사실을 들킨다면 다들 불량하게 변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부정. 시전자―― 이스피리아가 압도적으로 우수함. 넘버즈의 창조도 그러하기에 가능한 것이었음.』

‘으응? 그, 그래?’


마음씨가 좋은 아이다 보니 괜스레 달래준 게 아닌가도 싶다.


그렇지만 꽤 일리 있는 말이기도 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진 않는다고, 확실히 능력이 없으면 넘버즈를 만들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우수하다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음. 일단 나중에 다른 넘버즈들도 마력을 더 채워주도록 하자. 편애하거나 차별한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되니까.’


자랑은 아니지만 넘버즈는 무척이나 잘 따라준다.


갑작스러운 사실이 충격적이지만, 강해진다고 딱히 큰 문제는 없겠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생각을 정리한 리아는 고민을 훌훌 털고 걸었다.





바지탄스들을 환영하는 성대한 축제가 열린 다음 날, 세컨드와 남매는 돌아갔다.


당연히 평범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판타지 세계에 곧잘 등장하는 웜홀 형의 차원 문을 통해 갔다.


너무 놀라 에르에게 물어보니 대략 8급의 마법으로, 공간과 공간을 잇는 공간 이동의 종류라 알려줬다. 더불어 한 번의 관찰만으로 에르는 곧장 터득하여 [전이문]이라 명명된 그 마법을 바로 사용해 냈다.


자신도 사용해 보고 싶은 건 당연. 리아는 사라지듯 에르의 허리에 달라붙어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전 [그림자 이동] 때와 마찬가지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은 이르다는 대답이······.


아쉽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르다는데 어쩌겠는가. 에르가 괜한 소릴 할 리도 없고.


그렇게 리아는 배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뭐, 일단 방부터 정리할까요?”

“응.”


리아는 에르와 함께 확장 공사로 인해 생긴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갔다.


2층은 좌우로 펼쳐진 복도와 화장실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그중 왼쪽 끝은 현재 라프리트와 안네가 머무는 방이었다. 반대쪽인 오른편 끝은 사랑스러운 아들, 아이리스가 지내는 방이다. 그 바로 옆은 비비안이 머물고.


어제 세컨드가 머문 방은 라프리트의 옆방. 리아는 그곳의 문을 열었다.



“응? 웬 가구?”


원래부터 손님이 지낼 수 있게 최소한의 가구는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살풍경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고, 말 그대로 일박 머무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랬는데······ 지금의 방은 너무나도 잘 꾸며져 있다.


나무로 만든 흔한 침상과 선반 겸 서랍장은 그대로지만 나머지는 전부 새롭게 꾸며졌다.


그 광경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람이 사는 곳 같달까······. 너무 과하지도, 검소하지 않은 실내는 편히 지내기 좋아 보인다.



“세컨드랑 아이들이 꾸며준 건가······?”


의아하게 여기면서 리아는 커튼을 열었다.



“깨끗하네.”


말한 그대로 방은 깨끗했다. 그야말로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솔직히 누가 머물렀는지 몰랐다면 방금 막 청소를 끝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히려 너무 깨끗한 나머지 은폐한 살인 현장 같기도 했다.



“으으. 일단 깔끔하니 청소는 없던 걸로 하죠. 가구도 그대로 두고요.”

“알겠어. 근데······ 추워?”


무서운 생각을 해서 그런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팔뚝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에르의 시선도 좀 부담스럽다. 그 탓에 리아는 제법 소리를 높였다.



“아, 아뇨. 안 추워요. 아시잖아요? 여차하면 마법으로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걸.”

“응. 그래도 힘들면 말해주었으면 해.”

“읏. 네.”


반짝반짝 빛나는 에르의 미소가 작렬한다.


오랜만의 기습 공격은 실로 강력했다. 간신히 대답은 했으나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더는 버티기 힘들었던 리아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에르에 웃음소리가 들리지만, 한시가 급하다. 대충 기분 탓이려니 넘겼다.


진정도 할 겸 리아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서두르는 모습에 마주치는 주민들이 의아하게 보기도 했지만, 리아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촌장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 정도 진정되어 있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열렸다.



“어머. 리아 님, 어서 오세요.”

“응. 안녕, 식스.”


식스의 환대를 받으며 리아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잘 잤니? 지내는데 불편하진 않고?”

“예. 촌장님과 드에 씨가 무척 반겨주시고 편했어요.”

“그래? 다행이네.”


미처 드에와는 인사를 시키지 못했는데 알아서 잘 대면하였나 보다.



“리아 님께선?”

“폴스를 보러 왔어.”

“――이곳에!”


용건을 말하기 무섭게 옆의 그림자에서 폴스가 튀어나왔다. 한쪽 무릎을 꿇은 신하의 자세로······.


‘내, 내 그림자에서 지내는 거야, 뭐야?’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냥 [그림자 이동]으로 나타난 것이겠지만, 갑작스러운 탓에 허튼 생각이 든다.


여하튼 놀란 마음을 좀 달래고 리아는 폴스를 일으켜 세웠다.



“일단 앉자.”

“예!”

“금방 차를 내드릴게요.”

“아. 고마워.”


싱긋 미소 짓고 식스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녀를 전송하고, 리아는 어제 세컨드와 대화를 나누었던 테이블에서 폴스와 마주 앉았다.



“근데 할아버지가 안 계시네?”

“촌장님은 외출하셨습니다.”


확실히 밭이 있는 곳에서 에이브안의 마력이 감지된다. 아마 일과대로 둘러보는 모양이다.


그렇게 잠시 잘 잤냐는 둥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식스가 돌아왔다.


식스는 찻잔을 내려놓고 차를 따라줬다. 델리안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기품 있는 자태였다. 오히려 천사의 날개 덕분에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내가 만들었다지만 정말 잘 어울리네.’


자화자찬하고 있으려니, 차를 따른 식스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 일이 없으면 같이 있을래?”

“네!”


기쁜 얼굴이 된 식스는 냉큼 폴스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생성]으로 본인의 잔까지 만들어 차를 따랐다.


사양 따윈 없다. 합석할 생각 만만이다.


‘뭐, 불만은 없지만.’


애초에 식스는 저런 친화력이 좋은 성격으로 설정했다. 물론 성녀처럼 막무가내는 아니다. 적당히 눈치가 있고 밝은 성품을 지니도록 했을 뿐이다.


리아로서는 머릿속에서 그린 그대로의 모습이 마음에 들 따름이다.



“그러면 슬슬 이야기를 시작할까? 마국에서 별일은 없었니?”


그렇다. 아침부터 폴스를 찾아온 이유는 마국에서의 일을 듣기 위해서 였다.


어제 축제 때 대충 듣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건 간략한 이야기로, 상세히 들어는 봐야 하기에 오늘 찾아온 것이었다.


이윽고 폴스는 차분히 마국에서의 여정들을 말하였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재빠르게 마중을 나온 마왕성의 병사들로 인해 무사히 마왕을 만났다고 했다.


복귀에 제법 시간이 소요된 것은 마왕 때문으로, 그의 환대와 사정 청취로 인해 며칠 머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더불어 지내는 데에도 아무 불편함이 없게 신경을 써주었다고.



“의외로 극진히 대접해 줬네······.”

“어진 군주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이걸 부탁받았습니다.”


[차원수납]을 연 폴스가 돌돌 말린 양피지를 공손히 내밀었다.


받아서 살펴보니 양피지 중앙에 실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봉인을 위한 밀랍이 발라져 있었는데, 그곳에 뫼비우스의 띠 4개가 겹친 문장이 찍혀있었다.



“이게 마왕―― 아니, 마왕 가문의 문장이니?”

“마왕 본인의 문장입니다. 인간과 달리 왕가라는 게 없다 보니.”

“어, 그래?”

“예. 마왕은 세습제가 아닌, 대결로 그 자리를 찬탈하는 형식입니다.”

“특이하네······.”


정말로 특이했다. 암만 강하다고 하더라도 국정을 잘 다스린다는 보장도 없건만.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다는 점만 보면 언뜻 공정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국가의 관점에서는 위험천만한 줄타기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도 그리 권장할 방식은 아니지 않나 싶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관심을 거두고 리아는 밀랍을 마법으로 떼어냈다. 그리고 묶인 실을 풀러 양피지를 펼쳤다.


단정한 문체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읽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양피지에 적힌 글자는 공용 언어였으니 말이다.


‘뭐지······? 공용 언어는 인간들의 나라에서만 쓰는 게 아니었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놀라면서 리아는 양피지를 읽어 나갔다.


내용은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수차례나 걸친 감사의 인사와 함께 마왕성으로 초대한다는 것만이 적혀 있었다. 제대로 직인도 찍혀있는 것을 보니 이 양피지가 초대장도 겸하는 모양이다.


다만, 강제는 아니었다. 마음이 내키면 와달라는 부탁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쩌시겠습니까?”


사전에 내용을 들었는지 폴스가 물었다.



“글쎄. 딱히 안 가도 되지 않을까? 감사받을 이유가 없잖아?”

“그렇군요.”

“거절한다는 편지를 써야 하나?”

“필요 없을 겁니다. 애당초 그런 걸 바라지도 않은 듯 했으니.”

“흐음······.”


저리 말하지만······ 역시 예의상 편지 한 통 정도는 써야 할 것 같다.


리아는 에르에게 부탁하여 국왕에게 보내도 손색이 없을 양피지 한 장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법으로 단숨에 글씨를 찍어냈다.



“대충 이 정도면 괜찮으려나?”


내용은 이따금 친구들이나, 벨루디스 왕가에서 온 편지에서 따와 작성했다. 에둘러 표현하는 서식이라면 그쪽이 어울릴 테니.


한 번 체크해 준 에르도 문제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리아는 [생성]으로 밀랍을 붙였다.



“문장은 없으셔도 됩니까?”

“내 문장?”

“예.”

“에이. 딱히 문장도 없는데 뭘. 가문이랄 것도 없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이대로 전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응? 바로 보낼 수 있니?”

“[그림자 이동]으로 가능합니다.”

“오오. 편하구나. 그러면 부탁할게.”

“존명!”


기쁜 얼굴로 양피지를 받아 간 폴스는 바로 손을 놨다. 그러자 양피지는 테이블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무사히 마왕의 집무 책상에 올려 놓았습니다!”

“책상? 아아. 거기 놔두면 보기야 하겠네. 수고했어, 폴스.”

“별말씀을.”


나중에 바지탄스의 말도 들어봐야지만 한 건 해결이다.


만족한 리아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럼······ 이야기도 끝났겠다, 온 김에 드에 씨나 만나러 갈까?”

“그전에 잠시.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응?”


뭐라 말릴 새도 없이 폴스가 [그림자 이동]을 발동하여 팔만 집어넣었다.


이내 꺼내는 그 손엔 푸른 물이 들려 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물이었다. 배구공 크기의 그것은 마치 투명한 풍선에 담긴 것처럼 동그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폴스의 손에서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극소량이긴 하지만 마력이 느껴진다.



“신기하네. 웬 거니?”

“보시는 대로, 슈페리얼 슬라임입니다. 나름 진귀한 녀석이다 보니 리아 님께 헌상하기 위해 가져왔습니다.”

“마국에서?”

“예.”

“어, 그래도 되는 거야?”

“야생에 있던 녀석이라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리 말하며 폴스는 정중히 슬라임을 건네줬다.


생전 처음 보는 슬라임. 설마 했는데 이런 생물이 사는구나 싶어 놀랍다. 다만, 이전처럼 판타지다운 것을 봤음에도 엄청 흥분되지는 않았다.


‘헤에. 이게 슬라임인가······.’


만화 속에서나 보던 생물의 감촉은 시원하고 말랑말랑했다.


리아는 뭔가 만지는 맛이 있어 슬라임을 품에 안고 쓱쓱 쓰다듬었다.



“기분 탓이려나? 시선이 느껴지는데?”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는 아니지만 제 나름의 지능은 갖추고 있습니다.”

“오호. 그렇구나.”


어디를 통해 보는지 모르겠지만 시선만큼은 확실히 느껴진다. 신기해한달까, 나름 호의적인 반응이다.


폴스의 말대로 최저한의 지능이 있나 보다.



“이 애들은 뭘 먹고 사니?”


이에 대한 대답은 식스가 했다.



“리아 님이 아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뭐든 잘 먹고, 다 잘 소화해요. 한마디로, 이 세계의 청소부 같은 느낌의 아이랄까요? 이 특성을 이용해서 인간들의 대도시나 왕성에서도 슬라임을 정화조의 역할로 활용하고 있을 거예요.”

“오~ 그건 알고 있던 것과 크게 차이가 없네.”


확실히 아들이 한때 빠졌었던 소설에서 비슷한 내용이 있었었다. 다만 거기에는 주의 사항이 있긴 했었다.


‘근데 어제 막 만든 식스가 되게 자세하게 아네.’


혹시나 하였지만 역시 식스의 스펙도 엄청난 듯하다. 덕분에 열등감 같은 게 살짝 느껴진다.



“흐음······. 그런데 방치하면 위험하진 않니? 사람을 습격한다거나.”

“딱히 사람을 습격하거나 하진 않아요. 온순한 성격이랄까, 본인들의 밥이 누구를 통해 나오는지는 알아서,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먼저 손댈 일은 없을 거예요. 그래봤자 약해서 되레 당할 뿐이지만.”

“그렇구나······. 아! 수는? 불어나거나 하지 않았나?”

“먹은 것들을 토대로 분열 증식하긴 해요. 그런데 폴스가 데려온 아이는 슈페리얼 슬라임이라 뜻대로 조절할 수 있어요.”

“응? 남는 에너지는? 그냥 본인이 축적하는 건가?”

“네. 일반적인 슬라임과 달리 상당히 강해지기도 해요. 능력도 다채로워지고요.”

“헤에~ 대단하네.”


리아는 슬라임을 들어 그 투명한 몸체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살짝 부끄러워졌는지, 공 같았던 슬라임이 힘이 빠진 것처럼 옆으로 퍼졌다.


‘조금 귀엽네.’


미소로 재차 쓰다듬고 리아는 다시금 슬라임을 품에 안았다.



“모처럼 받았으니 일단 우리집에서 기르도록 할까.”


나트알의 모든 집은 [정화]로 오수를 처리한다. 방학이 되어 돌아오자마자 바로 그 작업을 끝마친 것이었다. 요새 안에 있는 집들도 전부.


이제 와 슬라임이 활약할 장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달리 둘 곳도 없고 약하다 하니 집에서 키우는 편이 좋아 보인다.


식스에게 맡길까도 생각해 봤으나, 폴스가 준 선물인지라 단념했다. 게다가 이 집에는 책이나 기타 중요 물품들이 많다. 멋대로 먹어 치우기라도 하면 좀 곤란하다.



“우리 부모님들이 적적하실지 모르니 적당히 어울려 주렴. 그렇지만 아무거나 막 먹으면 안 된다?”

《알았어!》

“그래. 착하구나.”


마치 본인에게 맡기라는 듯 슬라임은 위아래로 출렁였다. 뭔가 신난 것 같기도 하다.



“어라? 대화가 가능하신가요?”

“응? 너흰 못 들었니?”


식스는 폴스를 쳐다봤다. 그러나 폴스도 마찬가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나만 들렸나? 뭐, 딱히 상관없겠지.”


애당초 짤막한 소통만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구태여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여차하면 몸짓을 통해 알아보면 될 테니.


그렇게 다른 것을 물어보려 했다.


그랬는데······ 폴스와 식스가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왜, 왜 그러니?”

“역시 리아 님······.”

“단세포나 다름없는 슬라임마저도 의사소통이 가능하시다니.”

“저기, 칭찬이지?”

“당연하죠! 슬라임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이 세상 만물과도 가능하다는 것이잖아요?! 진짜 너무 대단하세요!”


식스가 저리 흥분하며 외치지만······.


글쎄다. 영 칭찬으로 들리지가 않는다.


특히 단세포라는 말이 그러했다. 나 자신도 단세포라는 듯하여 순순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놀리는 건 아니겠지만······.’



“하아. 그건 그렇고, 슈페리얼이 뭐니? 이제 와서란 느낌이지만, 왠지 자주 들려서 좀 궁금하네.”

“역시나 리아 님. 지고하신 분께는 우열 따윈 없다는 말씀이군요.”

“굉장해······.”

“아, 아니. 그냥 물어봤을 뿐이란다.”


다시금 뜨거운 눈빛들이 쏟아진다.


넘버즈들에게 자신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 걸까······.


몇 번이고 생각한 사안이긴 했다. 그렇지만 진짜로 한 번쯤은 개별 면담을 진행해 봐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자니 폴스가 대답했다. 상당히 의아하다는 눈치로······.



“일단 슈페리얼은 최고위 등급이라는 뜻입니다.”

“있는 그대로네? 그럼, 페리의 경우······ 래퍼드 중에서 최고위 등급의 종이라는 건가······.”

“예. 말씀대로입니다.”

“그건 누가 정한 거니?”

“어······.”


말문이 막힌 듯 폴스가 눈을 끔뻑거렸다. 식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꼬고는 입술에 검지를 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뭔가 괜한 것을 물은 기분이다.


하지만 후회란 언제나 늦는 법. 정정할 틈도 없이 폴스가 번뜩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누가 감히 리아 님의 허락도 없이 정한 것이냐는 말씀이었습니까?!”

“아! 그런 것이었나요, 폴스?!”

“응. 그야 리아 님의 의견도 없이 정한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

“어, 네. 그건 확실히 그래요.”


땡.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다. 아니, 도리어 뭘 어떻게 하면 저렇게 연결되는지가 궁금할 지경이다.


‘그래. 절대 아니니까, 식스도 호응하지 말렴.’


이러한 마음도 모른 채 둘의 대화는 점점 열기를 띠가 시작했다.


참다못한 리아는 둘의 머리를 손날로 철썩 때렸다.


당연히 힘 조절은 했지만, 설마 맞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둘은 곤혹과 놀라움을 내비치며 맞은 머리에 손을 올렸다.


폭주하는 둘을 무사히 말린 리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정들 하렴. 나는 단순히 기준이 있는지를 물었을 뿐이라고?”

“시, 실례했습니다.”

“죄송해요······.”


퍼뜩 무릎을 꿇는 둘.


뭐, 이젠 익숙하다.


과민하게 반응하기에도 지친 리아는 둘을 [염동]으로 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그래서, 기준이라는 걸 혹시 알고 있니?”


조금은 내리깐 물음에 식스가 황급히 대답했다.



“아, 네! 아마 존재의 역량에 따라 정해졌을 거예요.”

“존재의 역량?”

“그······ 게임의 몬스터 같다고 말하면 되려나요? 으으. 말로 설명하려니 어렵네요······.”

“음. 레벨에 따라 진화하는 체계 같은 거?”

“네! 그거랑 비슷해요.”

“아는 것까지만 자세히 말해주렴.”


알겠다고 한 식스는 몬스터의 등급에 대해 상세히 말해줬다.


요약하여 정리하자면, 몬스터는 크게 6가지의 등급으로 분류된다.


제일 밑이 커먼.


게임으로 치자면 일반 등급으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몬스터다. 비율로 따지자면 근 40%에 달할 정도로 많다나.


마력량은 인간으로 치면 얼추 20정도. 그리 강하지는 않고 마력도 0단계 압축이라고 한다.


외형도 일반 동식물과 크게 차이가 없어 몬스터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단다. 실제로 인간을 비롯하여 많은 종족들이 일반 동식물로 분류한다고······.


다만, 종에 따라서는 타종의 윗 등급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대하단다. 더불어 마력레벨도 많으면 백 단위에도 이른다고 하니 얕봐선 안 될 것이다.


다음은 익셉셔널.


익셉셔널은 매직 등급으로, 커먼 등급의 몬스터가 마력을 모아 진화한 개체라고 한다.


일반 동물이 마수가 되는 것과도 비슷한 개념인데, 한층 강해지는 건 물론이고 외형이 변하기도 한단다. 비율은 전체의 30%쯤.


참고로 일반 동물이 마수가 되는 케이스의 대부분은 커먼 등급으로의 진화. 간혹 건너뛰어서 익셉셔널이 되는 때도 있다는데, 그리 높은 확률은 아니라고.


이때부터가 1단계 마력을 쌓는 진정한 몬스터로 인정받는 시기다.


이 다음은 엘리트.


레어 등급임과 동시에 상위종이라 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 엘리트 등급이다.


이에 걸맞게 엘리트에 도달하는 개체는 대략 10%.


언뜻 많아 보이지만 전체 숫자에서 보면 한 줌이나 다름없고, 그 힘 또한 상당하다고. 지능 또한 평범한 인간 정도는 우습게 뛰어넘을 정도라고 한다.


익셉셔널에서 진화한 경우 이번에도 외형에 변화가 있다고 하는데, 커먼에서 진화한 것과 달리 그 정도는 미비한 수준이라고 했다.


마지막 슈페리얼.


레전드 등급이라 할 수 있는 이 단계는 도달한 개체가 한 줌의 한 줌이라고 한다. 비율로는 5% 내외. 몬스터들에게 있어 최상위의 경지로, 몬스터들 사이에서는 왕족으로 취급된다고······.


그 강함과 더불어 카리스마로 무리를 만들기도 하며, 그들의 지배자로서 군림하는 것이 이 슈페리얼이라고 한다.


경악스럽게도 페리가―― 그 게으른 고양이가 이곳에 속하기도 했다.



“마, 말도 안 돼. 진짜 맹수였어? 그런 게 학원 벽 너머 공원에 잘도 있었네······.”

“페리 씨요? 음······. 아마 페리 씨는 단순히 부모를 잘 만나 태어난 게 아닐까요? 자식은 부모의 등급을 고스란히 계승해서 태어나는 경우가 태반이거든요. 물론 그만큼 자식을 가지긴 어렵지만.”

“어, 그런 거니?”

“스스로 진화를 거쳤다기엔 페리 씨는 너무 어리니까요. 학원의 뒤편도 의외로 출산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고요.”


생각해 보면 그곳만큼 출산하기에 좋은 자리도 없어 보인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까, 각국의 엘리트들이 잔뜩 모이는 베르다드 바로 옆에서 고위험종의 몬스터가 출산할 것이라 상상하기는 어렵다.


‘페리를 낳고 난 다음에 부모는 바로 떠났겠군. 안전하다지만 계속 남아있으면 분명 들켰을 테니.’


슈페리얼 래퍼드의 습성인가 싶기도 하지만 자식과 헤어진다는 게 좀 안타깝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위험하더라도 인간의 영역 밖에서 낳아 길렀으면 어땠으려나 싶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학원 뒤편의 공원은 몬스터도 거의 없고, 있더라도 매우 약하기에 페리는 잘 자라긴 했다.


‘마냥 편히 자란 듯싶지만 조금 안쓰러운 부분도 있었네.’


살짝 불쌍하니 다음 간식은 좀 많이 챙겨주기로 하자.



“리아 님, 다른 두 등급은······.”

“아, 미안. 계속해 줘.”

“네. 그러면 번외 등급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우선, 언아이올. 진화 체계가 없는 종으로, 근본부터가 마수인 이들을 일컫는 등급이에요. 동식물에서 마수, 마물이 되는 종들과는 근원부터가 다르죠. 통칭 마수종이라 불리는데, 제가 추측하기로는 환수의 먼 자손이 아닐까 해요. 개체마다의 강함도 제각각이고요.”

“공국에서 만난 늑대 씨가 분명 언아이올 울프라고 했었지. ······근데 마수종? 난 페리가 마수종이라 들었었는데?”

“와전된 것으로 생각해요. 마수는 1단계 마력을 쌓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슈페리얼 등급의 마수를 보고 착각한 거죠. 사실 기준은 거슬러 올라간 근본이 되는 종과 과로 나뉘는데.”

“으음. 확실히 루비아 씨도 뭔가 뒤죽박죽이라고 했었지. 이것도 쇠퇴한 영향인가······.”

“참고로 드래곤도 마수종―― 언아이올 등급에 속해요. 비슷해 보이지만 와이번은 아니고. 어차피 둘 다 딱히 분류하진 않으니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요.”

“······.”


뭔가 복잡하다.


이런 건 루비아가 제격이다. 나중에 들려주면 알아서 정리해 줄 것이다.


마음속 메모장에 적고 리아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마지막은 챔피언이에요. 딱히 어느 종에서 진화한 건 아니고, 슈페리얼, 언아이올 가릴 것 없이 몬스터들의 영웅을 지칭하는 등급이에요.”

“인간들의 영웅처럼?”

“네. 영웅이라 불릴 정도니까 강력한 건 덤이고요.”

“따르는 몬스터들도 많겠네······.”

“그 부분은 인간과 비슷해요. 영웅왕으로서 국가 형태의 세력을 보유하기도 하죠.”

“으음. 국가라······. 들으면 들을수록 인간은 진짜 사면초가네.”

“솔직히 전망이 좋진 않죠.”


가장 큰 문제는 내부부터 단결이 안 되어있는 점이다. 파벌이니 국가니 나뉘어 있는 것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도플갱어가 암약하는 상황인데.’


풍전등화랄까, 진짜 언제 인간들의 국가가 사라지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용케도 번성했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


리아는 단숨에 기분을 정리했다.



“설명 고마워. 폴스도 호위하느라 수고했단다. 선물도 챙겨줘서 고맙고.”

“도움이 돼서 기뻐요. 헤헤.”

“말씀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영광입니다.”


극과 극의 반응이지만 둘 다 몹시도 좋아한다.


이 기세를 몰아 리아는 슬라임을 테이블에 놓고 양 손바닥을 내밀었다.



“둘 다 손을 잡으렴.”


살짝 놀라면서도 폴스와 식스는 지시대로 조심히 손을 잡았다.


입꼬리를 올린 리아는 그대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 막대한 마력은 마주잡은 손을 통해 폴스와 식스에게로 전해졌다.


――딱 어제 세컨드에게 주입해 준 양만큼.



“열심히 일해준 포상이란다.”


자신이 말하고도 닭살이 돋는다. 당최 무슨 자신감으로 이딴 걸 포상이라고 지껄이는지······.


하지만 이건 기회. 마력을 채워줄 구실을 넘길 수는 없다. 게다가 넘버즈라면 왠지 좋아할 거 같았다.


그 예상대로 폴스는 급하게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고, 식스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제, 제가 받아도 되는 건가요?”

“무, 물론이지. 열심히 설명해 주었잖니. 앞으로도 할아버지를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준 것이기도 하니 부담 갖지 않아도 돼. 다른 넘버즈도 차례대로 줄 거란다?”

“감사합니다······.”


이젠 엉엉 울기 시작하는 식스.


리아는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식스의 눈물을 닦아줬다. 한동안 그렇게 진땀을 빼며 둘을 달랬다.



“죄송했어요, 리아 님.”

“감격이 격해진 나머지 추태를 보였습니다.”

“괘, 괜찮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저 위로했을 뿐인데 재차 둘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도대체 눈물샘이 얼마나 느슨한 건지 모르겠다.


‘아이야, 감수성이 너무 풍부한 거 아니니?!’


넘버즈의 소프트웨어를 도맡은 아이를 살짝 탓하고, 리아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질질 끌면 끝이 없다.


서둘러 자리를 옮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리아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자자. 나는 드에 씨에게 인사하러 갈게. 너희는 조금 쉬고 있으렴.”

“어찌 그런! 모시겠습니다!”

“저도 함께 갈게요!”


엎어지면 닿을 정원인데 호들갑이다. 하지만 일단 눈물은 그쳤으니 별말 하진 않았다.


리아는 복도의 여닫이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느긋하게 화단을 가장한 약초들에 물을 주고 있는 드에가 보인다. 기초마법인 [식수]지만, 능숙하게 물을 주는 모습을 보니 제법 손에 익은 듯하다.



“저 왔어요, 드에 씨.”


부름에 화들짝 놀란 드에는 재빠르게 다가왔다.


사설이지만 8개의 다리를 일사불란하게 놀리는 그 모습은 제법 박력이 넘쳤다.


어쨌거나 인사를 하러 왔으니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다행히 폴스와 식스는 진정하여 슬라임과 함께 나란히 앉았다. 물론 떠드는 건 리아와 드에뿐이었지만.


그렇게 제법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염화]가 걸려 왔다.



『델리안?』

『음. 아침부터 미안하구나.』

『아뇨. 무슨 일이세요?』

『방문자가 찾아왔구나. 촌장이 대응하고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리아가 와봐야 할 것 같단다.』

『응? 절 찾아온 거예요?』

『그렇다고 하려나? 직접 보는 편이 빠를 게다.』

『알겠어요. 금방 갈게요.』


[염화]를 종료하고, 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폴스, 나를 델리안에게 데려다줄래? ――아니다, 모처럼이니 다 같이 갈까? 드에 씨는 어때요?”

《권유는 감사합니다만, 저는 신목의 곁에 있고 싶습니다. 아직 물주기도 끝나지 않았고요.》

“그런가요.”


남기로 한 드에에게 슬라임을 맡기고, 리아는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인 폴스가 [그림자 이동]을 발동하였다.


곧장 특유의 몸이 떨어지는 감각이 들었고, 이윽고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다른 곳으로 나타났다.


작가의말

요즘 신캐 출현이 많네요

다음화도 출현할 예정인데....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날이 덥습니다

시원해졌다 싶었다가도 덥고 어쩌자는 건지...

이럴 때에 감기 걸리기 쉬우니 다들 몸조심 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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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217 +2 24.03.14 45 0 50쪽
255 216 +2 24.03.01 52 0 40쪽
254 215 +2 24.02.22 58 0 40쪽
253 214 +2 24.02.15 53 0 45쪽
252 213 +2 24.02.01 68 0 48쪽
251 212-2 +2 24.01.22 49 0 21쪽
250 212 +2 24.01.22 59 0 33쪽
249 211-2 +2 24.01.03 65 0 20쪽
248 211 +2 24.01.03 95 0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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