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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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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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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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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쪽

225

DUMMY

대화를 마치자마자 루시아스는 바로 약속을 이행했다.



“어?”


놀란 성녀의 외침과 함께 하늘에서 쭉 뻗은 거대한 신력의 기둥이 사라졌다. 덩달아 성녀에게서 느껴지던 루시아스의 기척이 엄청나게 반감했다.


지금의 성녀는 솔직히 축복을 받았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시선만큼은 여전하지만······.”


정말 질리지도 않나 보다. 도대체 뭐가 재밌다고. 할 일도 없나 보다.


‘뭐어······, 할 일이 없어 보이긴 했지.’



“아아?!”


갑자기 성녀가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았다.


알렉은 화들짝 놀라고는 곧장 성녀에게로 달려갔다.


아는 사람이 오자 성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러다 이내 왈칵 눈물을 쏟아내며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알렉의 팔이 허우적댄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굳히고는 조심스레 성녀를 토닥였다.



“무슨 일입니까, 루시 님.”

“루시아스 님이······. 여신님이 느껴지지 않아요.”


성녀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버림을 받은 아이처럼 무척이나 서럽게.


언뜻 안쓰러울 광경이다. 그러나 리아는 냉철했다. 눈가를 날카롭게 하고는 무심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군. 괜히 머리가 꽃밭이 아니었나.”

“뭔 소리야?”

“간단한 이야기야. 세스, 너라면 인간의 생활권도 아닌 이런 오지에 쉽게 오겠어?”

“아항. 그런 뜻이야?”


곧장 이해한 세스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분명 너라면 어느 곳이든 쉽게 발걸음을 옮기겠지. 하지만 그건 네가 강하기 때문이잖아? 제 한 몸쯤은 지킬 수 있기에 주저도 없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지. 근데 저들은?”

“무지하게 약하지. 나름 기척을 없애는 데에 익숙한 녀석이 있긴 해도 전투는 자신 없어 보이고. 아마 도련님 한 명도 못 이기지 않을까? 보자마자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 여기까지 잘도 왔어. 이 근방은 좀 강한 녀석도 있는데.”

“단순히 운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

“혹시 신력?”

“정확히는 루시아스 님의 기척이야. 이젠 너도 알겠지만, 이 세상에서 오대신은 절대적이잖아?”

“함부로 공격하기에는 껄끄럽단 거로군. 멀쩡히 온 이유가 있었네.”

“그런 거야. 언뜻 무계획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거지. 하지만 좀 안일해. 결국에는 그저 껄끄럽다는 것에 불과한데.”

“음. 확실히······. 죽이려 했을 때 별 느낌이 없긴 했어.”

“응? 아까는 쫓아내려고 했다지 않았어?”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세스는 어설프게 둘러대고는 딴청을 부렸다.


진짜 못 말리겠다.


분명 세스는 느긋하고 온화하다. 마을에서도 그 특유의 털털한 성격으로 금세 주민들과도 친해졌다. 어떨 때는 원래 나트알에서 살았나 싶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저래 보여도 세스는 비정한 면도 갖추고 있다. 아무리 냉혹하더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주저 없이 행한다.


농담조로 말하긴 했지만, 필시 진심으로 저들을 죽이려 했을 것이다.


마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좀 극단적이다. 그러나 그를 탓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것이 마을의 일원으로서 세스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기에.


오히려 미소가 지어진다. 그가 이만큼이나 마을을 위해 주고 있어서······.



“일단 돌아가자. 기다리는 분들도 계시고.”

“그려.”


대화를 마친 리아는 에이브안에게로 갔다. 그리고 꾸벅 머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또 멋대로 다 정해버리고.”

“뭘 그런 걸로 사과하느냐. 어차피 마을의 주축은 리아잖니. 세대가 변한 거지. 설마 루시아스 님과 대화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활짝 웃은 에이브안은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경 쓰지 말거라. 이제 와선 새삼스러울 따름이야. 정 걸린다면 미리 촌장의 업무를 예행 연습했다고 생각하려무나.”

“제가 촌장이요······?”

“달리 적임자가 없잖느냐. 마을 모두를 집결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리아뿐이란다. 다른 자가 뽑힌다 한들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거야.”


응응 이라며, 로즈가 고개를 끄덕인다.


로즈는 그렇다고 친다. 어리니까. 게다가 마을 주민도 아니고. 하지만 세스마저도 “뭐, 그렇겠지.”라며 동의한다.


리아도 대충 각오는 해뒀었다. 몬스터 군단과 타종족인 세스, 바지탄스들을 데려온 건 바로 자신이었으니.


그러하니 한데 어울려 묶을 수 있는 중심은 아마 자신이 아니고선 어려우리라 생각은 했었다. 마을 내에서도 대충 그런 분위기가 흐르고 있어, 에이브안의 말대로 새삼스러운 이야기였다.


매번 비슷한 소리가 나올 때면 늘 적당히 얼버무렸었는데······. 확실히 한 번은 진지하게 마주해 볼 일인 거 같다.



“할아버지도 도와주실 거죠?”

“물론이지. 이 할애비만 믿으려무나.”

“걱정도 팔자네. 가만히 있어도 다들 어련히 알아서 도와줄 텐데.”

“너도?”


세스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꽤 편안한 곳이잖아? 나도 마음에 들기도 하고. 슬슬 정착할 때라는 거지.”

“그래······. 만약 그때가 되면 잘 부탁할게.”


새삼스러웠나, 세스는 머쓱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콧잔등을 쓸었다.


리아도 조금 쑥스러웠다. 어쨌거나 자신이 나고 자란, 가족 모두가 있는 나트알을 좋아해 주는 것이니.


제아무리 은혜를 입었다지만 세스의 성격상,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정착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호인족은 방랑하는 유목민. 한 지역에 정착하는 건 그들로서는 큰 결단이었을 것이다.


‘보기보단 책임감도 강하니 힘껏 도와주겠지. 그러면······ 여차 오라버니를 촌장 대리로 세우는 것도 어떠려나 싶네. 왠지 잘할 거 같아. 나는 간판만 촌장인 걸로 하고.’



“나쁘진 않을 거 같네.”

“뭐가?”

“아니. 그냥 한 번 고민해 봤을 뿐이야. 그보다 이제 가기나 하자.”

“저거는?”


세스가 엄지로 뒤편을 가리켰다.


질리지도 않는지, 성녀는 아직도 엉엉 울고 있었다.


리아는 크게 한숨을 토해냈다.


마음 같아서는 놔두고 싶다. 다 울고 나면 알아서들 오라 하고 싶다. 진심으로 그러한 욕구가 무럭무럭 자랐으며, 달래주고 싶은 의욕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진짜 무시하고 가기에는 로즈가 있다.


정서 교육상, 도덕적 관념상으로도 그냥 지나치는 건 너무 좋지 않다.


애들은 주변 어른의 거울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모습을 보였다가 후에 로즈가 삐딱선을 탈 수도 있다.


침을 찍 내뱉는 로즈의 모습을 상상해 봐라.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는 수 없다.


리아는 재차 나오려는 한숨을 참고 주저앉아 있는 성녀에게로 갔다.



“뭘 아직도 울고 있는 건가요? 당신이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는데.”

“하, 하지만 저는 이런 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온 거예요. 리스크가 있는 건 당연하잖아요? 되려 여기까지 루시아스 님의 기척 덕분에 무사히 왔잖아요? 그 기적에 감사하는 게 어때요?”

“루, 루시아스 님의 기척이요?”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 루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가냘픈 외모와 더불어 남심을 자극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여자인 리아에게는 짜증만을 유발할 뿐. 도통 생각이라는 걸 하는지 의심스럽기만 했다.



“후우. 백방 당신은 자신이 하는 일 모두가 잘 되었겠지. 무언가 분란이 일어나도 당신이 중재하면 전부 잘 풀렸을 거야. 그야말로······ 어떻게든 되었겠지. 마치 온 우주가 당신을 돕는 것처럼······.”


하지만 그건 결코 너만의 힘이 아니다.


아니, 까놓고 말해 그냥 루시아스 덕분이다. 성녀 혼자만으로는 결코 그토록 좋은 결과만을 낼 순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은 모두가 알듯이 오대신이 만들었어. 그 영향력 아래 태어난 존재들에겐 당연히 오대신은 절대적. 루시아스의 기척이 느껴지는 당신이라고 예외는 아니야. 한 마디로―― 당신은 호랑이의 위세를 등에 업은 여우였다, 라는 거야.”

“루시 님의 노력을 멋대로 단정 짓지 마라!”


참을 수 없게 된 알렉이 소리쳤다.


리아는 그를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런 적 없거든요? 제아무리 루시아스 님의 기척이 있다고 한들, 본인이 나서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 성녀님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어떠한 것도 변하지 않았겠죠.”

“그럼――”

“――하지만 좋게 결론을 낸 건 어디까지나 루시아스 님의 덕. 물론 본인의 힘으로 잘 풀어냈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건······ 암만 생각해도 무리가 아닐까요?”

“그건 루시 님이 열심히 노력하셨기에 얻은 성과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요? 정말로―― 진심으로 그런 게 가능하다고 봐요?”

“그렇다!”


흔들림 없는 눈빛. 마력 또한 잔잔하고 굳건하게 맥동하고 있다.


그는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었다. 루시, 그녀의 힘만으로 모든 난관을 헤쳐 나온 것이라고······.


‘하아. 이거 답답하구먼.’


레비아 때와 마찬가지다. 아무 의심도 하지 않는 맹목적인 믿음만을 줄 뿐인 수동적인 자세다.


몹시 귀찮다. 레비아와 달리 말을 들을 낌새조차 없어 소귀에 경 읽기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데리고 있어야 한다.


당연히 마음 같아서는 당장 세스에게 내다 버리라 하고 싶다. 그렇지만 루시아스가 말한 ‘우리 모두’라는 게 자꾸만 걸린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이 괜한 소리를 할 리는 없다. 자세한 내막을 알기 전까지는 데리고 있어 달라는 루시아스의 말을 따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괜히 찝찝하기도 하고.


속에서 올라오는 짜증을 꾸역꾸역 참으며, 리아는 억지로 입을 열어 말했다.



“저기요. 제 친구 중에는 세기의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똑똑한 분이 계시거든요? 정말 너무 똑똑해서 마치 미래를 보는 것과도 같은 예측도 해내죠.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서진 않아요. 결코. 심지어는 드물지만, 실패할 때도 있어요.”

“루시 님은 다르다!”

“여기까지 온 것도요? 위장도 없이, 대놓고 말을 타고 다니면서 습격 한 번 당하지 않고 무사히 도착한 것도 모두 루시 님의 덕인가요?”

“물론이다!”

“허, 참. 너무하네요. 잿빛 씨에게 미안하지도 않아요? 애써 온몸에 진흙까지 바르고 정찰에 힘을 쏟아주셨는데? 상식적으로 봐도 편히 말에 타고 온 사람보다는 기여도가 높아 보이는데요.”

“그의 수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습격이 없었던 건 루시 님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루시아스 님의 인도였겠죠. 성기사면서 무슨 소릴 하는 건가요, 당신은.”


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간 말이 안 통하는 게 아니다.


꼴을 보니 제 입장이 어떠한지도 모르는 듯하다. 절대 이쪽에게 큰소리칠 처지가 아니거늘. 들을 이유도 없고.


말릴 생각이 없는 성녀도 문제다. 도대체 알렉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다녔길래 종자가 마음대로 설치게 놔둔단 말인가.



“진짜 머릿속이 꽃밭으로 꽉꽉 들어찼네. 얼마나 오냐오냐해 준 거야?”

“성녀님을 모욕하지 마라!”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이봐, 당신. 뭘 남의 마을에 멋대로 와서 큰소리 질이야?! 성녀니까 어디서든 대접받는 게 당연한 줄 아나 본데? 까불지 마. 여긴 우리 마을이야. 루시아스 님조차 양해를 구하는 판국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양 설쳐?”

“······.”


알렉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그 분노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진짜 반성할 줄을 모르는군. ······이봐요, 서로 이리 마음에 안 드는데 굳이 머물 필요가 있나요? 신탁 때문에 주저된다면, 제가 루시아스 님과 만나 담판 짓도록 하죠. 철회해달라고.”

“흥. 어차피 우리도 오래 머물 생각 따윈 없었다.”


‘우리라니. 성녀의 의견은 묻지도 않아? 언제부터 종자가 그만한 권한을 갖게 된 거냐.’


주제 파악을 못 해도 유분수지.


명백히 폭주하고 있음에도 그런 줄도 모르고, 알렉은 성녀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돌아가죠, 루시 님.”

“아, 안 돼요.”

“신탁이라면 괜찮습니다. 저쪽이 해결해 준다지 않았습니까.”

“그, 그게 아니에요, 알렉.”

“안전이라면 괜찮습니다. 제가 있잖습니까.”

“――그 당신이 못 미더워서 그러는 거잖아요.”


참다못한 리아가 끼어들었다.



“이곳에는 그럭저럭 강한 몬스터가 제법 살아요. 굳이 강하지 않더라도 본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냥하는 몬스터도 있죠. 게다가 그들 모두 삼국과 세인트리안에는 알려지지 않은 종들이고요.”

“참견하지 마라. 그 정도는 물리칠 수 있다.”

“당신이? ······아아. 그렇군. 당신, 실전 경험이 별로 없죠? 처음 보는 미지의 몬스터를 상대로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 경험이 없는 풋내기뿐이거든요. 아니면 그런 걸 다 무시할 정도의 강자라는 건데······ 마력레벨이 겨우 77인 당신이 그럴 리는 없겠죠.”

“루시 님을 위해 단련을 거듭한 나를 모욕하는 거냐?!”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요?”


스릉.


알렉이 검을 뽑아 들었다.


확실히 말만 장황한 건 아니었다. 자세를 취하자마자 일정한 호흡이 흐르며, 곧장 마력이 전투태세를 갖춘다.


익숙한 동작만 보더라도 훈련을 개을리하지 않았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딱 그 수준이었다.


핑!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리고, 알렉의 검이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 땅에 꽂혔다.



“뭣?!”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아다 던졌을 뿐이에요. 별로 대단한 기교도 아니죠. 그렇지, 세스?”

“재밌어 보이긴 했어. 이렇게······ 하는 건가?”


세스는 곧장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더니, 표창을 날리듯 옆으로 쏘아냈다.


푹.


마치 무른 두부에 박히는 것처럼 나뭇잎이 나무 깊숙이 박혔다.



“어때?”

“여전하네. 나쁘진 않아.”

“헤헷.”


알렉은 말문을 잃고 멍하니 떨어진 검을 쳐다봤다. 그리고 세스와 리아를 한 번씩 바라본다.


암만 미련하고 어리석더라도 이쯤 되면 알 것이다. 누가 강자인지를.


리아는 몸을 돌렸다.



“떠나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다만, 왔을 때처럼 몬스터에게 발각되지 않는 일은 아마 없겠죠. 아니, 애초에 당신들은 발각됐었을 거예요. 그저 루시아스 님의 기척 때문에 습격당하지 않았을 뿐이지. 무슨 소리인지는······ 아마 성녀님이 더 잘 아시겠죠. 본인의 일이니까.”


그래서 나가자고 하는 알렉을 말린 것이고.


콧방귀를 낀 리아는 뒤를―― 성녀를 돌아봤다.



“익숙해지세요. 지금 그 상태를. 모두 그러한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죠. 굳이 따진다면 신과 연결된 상태가 비정상이랄까. 어차피 돌아갈 때쯤에는 알아서 다시 연결될 테니 차라리 지금을 즐기도록 해봐요. 그러는 편이 좀 더 마음이 가벼울걸요?”


그 말만 남기고 리아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미안해요, 로즈.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험한 분위기가 되기도 했고.”

“아, 아뇨. 조금 놀라긴 했지만 괜찮아요, 리아 언니.”


괜찮다고 했으나 로즈의 귀여운 얼굴은 잔뜩 찡그려진 상태 그대로였다.


많이 놀랐나 싶어 염려됐는데, 바로 그때 로즈가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저분은 대체 뭔가요?! 성기사가 맞나요?!”

“로, 로즈?”


화가 많이 났는지 로즈가 마구 버둥거렸다.


어린아이가 버둥대 봐야 떨어뜨릴 일은 결단코 없지만, 이렇게나 분개하는 로즈는 처음 보는지라 리아는 당황했다.



“리아 언니는 여신님과도 대면한 사이! 편히 대화도 나누는 언니에게 저 태도는 도대체 뭔가요?! 성기사면서! 하물며 여신님의 발언 중에 끼어들기나 하고!”


‘아. 뭔가 했더니.’


로즈는 정통 계파 쪽의 매우 신실한 신자다. 기왕 비교하자면 교황청의 신관과 같은 느낌이다.


그런 그녀의 관점에서 여신님이 있건 말건, 제멋대로 구는 알렉은 불경을 넘어선 이단. 마음에 들 턱이 없었다.


충분히 이해되는 사유이고, 화내는 포인트가 뭔지도 알겠다. 그렇지만 귀엽달까, 진지하게 화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살짝 깨물어 주고 싶은 기분이다.


하지만 진짜 깨물 순 없어, 리아는 웃으며 로즈를 달랬다.



“오. 좀 날카로운데, 꼬맹이.”

“아앙······?”

“아가씨에게 한 소리가 아니니까 얼굴 좀 풀어. 놀라겠다.”

“응?”


로즈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이는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하는 법. 리아는 서둘러 방긋방긋 미소를 만들어 냈다.



“뭘 어떻게 하면 그리 사악한 얼굴이 되는 거야? 몬스터도 기겁할 거 같던데.”

“윽. 돼, 됐으니까. 뭔 소리인지나 말해 봐.”

“네! 알려주세요, 세스 아저씨!”

“아, 아저씨······.”


아주 나이스다, 로즈!


리아는 너무나 기특한 로즈의 머리를 싹싹 쓰다듬어 줬다. 그리고 통쾌함에 우쭐대는 얼굴이 되어 말했다.



“너도 델리안에게 할망구라고 불러대면서 뭘 새삼스레. 이젠 그럴 만한 나이이기도 하잖아?”

“아, 아가씨라고 나이 안 먹는 줄 알아?”

“헹~ 나는 이미 아줌마네요~ 귀엽디귀여운 아들이 있는 아줌마!”


타격이 전혀 없음을 안 세스의 인상이 구겨졌다.


더없는 완벽한 승리. 리아는 감미로운 승자의 기분을 마음껏 만끽했다.



“어쨌거나, 뭔 소리인데?”

“하아. 별거 아냐. 저 녀석이 섬기는 건 루시아스가 아니라는 것뿐이니까.”

“아하~ 과연. 그렇게 된 거로군.”

“무슨 뜻이에요, 리아 언니?”


리아는 순간 고민됐다. 사실대로 말해줘도 되는 건지.


하지만 알려줘도 별일 없을 것이란 안일한 생각으로 가볍게 이야기해 버렸다. 이에 따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추호도 모른 채······.










달리 갈 곳이 없었던―― 아니, 까놓고 말해, 멋대로 돌아다니다간 죽을 확률이 굉장히 높았던 성녀들은 결국 나트알로 오게 됐다.


그때의 축 처진 성녀의 모습은 안쓰러워 보이기 그지없었다.


물론 리아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지만.


하지만 주민들은 너무나도 착했다. 당장 내쫓아도 시원찮은 성녀들을 무척이나 잘 챙겨줬다. 되려 몬스터 군단에게 검을 겨눈 알렉에게 불같이 화를 낸 리아를 말릴 정도였다.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냐며.



“다들 우리 마을의 주민인데!”


벌써 이틀이 흘렀음에도 아직 토라진 리아는 거칠게 침대로 뛰어들었다.


화가 전혀 풀리지 않는다. 특히 페리를 향해 살기를 내뿜었을 때는 자칫 이성을 잃어버릴 뻔했었다.


재빠르게 에르와 가족들이 말려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그날이 알렉의 제삿날이었을 거다. 그만큼 리아는 그들―― 특히 툭하면 땍땍거리는 알렉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폴스가 없어서 다행이랄까. 루데릭을 닮아 약간 욱하는 기질이 있는 터라, 만약 폴스가 있었다면 진작에 사달이 났을 터. 말리는 건 오히려 리아의 역할이었을 거다.



“유즈라 씨와 좀 닮은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야!”


도리어 유즈라와 비교한 것 자체가 실례. 당장이라도 잘못을 고해하며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다.



“괜찮아?”

“네. 그냥 좀 짜증이 난 거예요.”

“그래.”


묵묵히 대꾸한 에르가 침대 옆에 앉았다.



“에르.”

“응?”

“그······ 모처럼 어머니를 뵌 거잖아요? 간접이긴 하지만. 아무 말도 없이 괜찮은 거예요?”

“솔직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이야.”

“엥? 그래요?”

“응. 대화도 몇 번 나눠보지 않아서 새삼스럽지도 않아.”

“어······ 그렇게 대화가 없었나요?”

“저번에 리아가 주고받은 대화가 더 많을 거야.”

“네?! 그, 그토록 적다고요?!”


에르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고 듣긴 했었다. 그렇지만 설마 이렇게나 적을 거라고는······.


여태 신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매번 시큰둥했던 에르의 반응이 이해된다.


그야 뭔갈 말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추억이 없는데 어쩌겠는가.


왠지 지뢰를 밟은 느낌이다. 아니, 줄곧 밟아댄 느낌이다.


너무나 배려가 없었다는 사실을 반성하며 리아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 사람들은요?”

“그냥 마을을 배회하고 있어.”

“팔자 좋네요. 곧 있으면 수확철인데.”


다종다양한 작물을 기르는 나트알에서는 거의 격주마다 수확하는 실정이다.


이는 어찌 보면 전부 리아의 탓이었다. 아내 사랑이 지극한 에르가 여러 씨앗을 어디에선가 구해오고, 이를 에이브안이 개량하여 이 토지에 맞게 마구 심은 것이었다.


어쩐지 식사의 질이 점점 좋아지더라니.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을 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하다못해 넓어진 밭일만큼은 전부 도맡아 하려 했는데, 주민들은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며 일손을 보태줬다.


그 정이 고마우면서도 정말 얼굴을 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최근에는 몬스터 군단도 합심하여 잡초를 뽑아준다거나, 가축들을 돌봐줘 제법 여유로워지긴 했다. 그렇지만 섬세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 작물들도 있어 하루하루가 바쁘다.


리아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에르와 함께 여러 밭에 물을 대고 온 참이었다.


이러한 실정에 놀고먹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초대받지 않은 외부인이······.



“좋아! 결정했어!”


리아는 가볍게 몸을 튕겨, 훌쩍 날아올라 일어섰다.


그대로 신발을 신고, 리아는 바로 곧장 집을 나갔다. 아주 음침한 미소와 함께······.


그 뒤를 에르가 조용히 따랐다.





이스피리아의 성지.


이 마을은 상당히 특이했다. 적어도 잿빛은 이러한 곳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마을의 주민이라 하면 인간이 전부인 곳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타지에서의 임무만을 맡았던 잿빛도 다르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도 여기 이 마을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우선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우뚝 솟은 요새. 어디에나 있을 법한 농가에 뜬금없이 제대로 완공된 요새가 있다. 높이나 넓이 또한 나무랄 데가 없어 언뜻 보면 군사지역이란 착각이 들 법도 하다.


그리고 주민.


이곳의 주민들은 하나 같이 특이했다.



“흠. 이렇게 인가?”

“아니. 좀 더 발을 넓게 해서 찌르게. 짧고 간결하게.”


근처에 잘 다듬은 나무 봉으로 창술을 하는 남자가 있다.


여기까진 이상하지 않다. 흔히 볼 광경은 아니지만, 제국이라면 심심찮게 볼만할 것이다.


하지만 남자의 자세를 가다듬어 주는 또 다른 남자.


이 자야말로 굉장히 특이했다. 왜냐하면 그는 엘프였기 때문이다. 놀라 몇 번이나 다시 봤으나 쫑긋 솟은 남자의 귀는 변함없었다.


그렇다. 이곳의 주민 중에서는 인간이 아닌 자도 있는 것이었다.


잿빛조차도 엘프는 처음 봤다. 그들은 인마대전이 벌어진 뒤 인간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는 갈라사르에 틀어박혔으니 말이다.


이따금 성국에서 정찰을 나가려고도 했었다. 그렇지만 매번 ‘갈라사르의 마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연유로 철회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때 파견 나가는 인물로 선정된 것이 잿빛이었다.


당시에는 자신만만이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철회된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스피리아나, 정체 모를 놈에게 미행까지 당한 현재로서는 자신의 잠입술이 완벽하지 않음을 알기에······.


여하튼 이 마을은 주민의 구성이 실로 특이했다.


지금도 그렇다. 바로 근처 옆을 고위험군의 마수종이 지나간다. 대낮의 마을 한복판을······.


아니. 자주 본 광경이긴 하지만, 학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니 조금 새롭다.



“응? 페리. 이 이른 시간부터 어쩐 일이니?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혹시 배고프니?”


고위험군의 마수종―― 슈페리얼 래퍼드와 마주친 인간 주민들이 친근하게 말을 건다. 그것도 모자라 수확한 듯한 과일을 꺼내 잘라줬다.


간단하게 손가락으로······. 휙 그으니 정확하게 이등분으로 잘려버렸다.


정정한다.


이곳의 사는 인간들 또한 전혀 평범하지 않다. 흔히 볼 법한 마을의 아줌마 같더라도 그들은 모두 가공할 전투 병기였다.


과연 자신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 못 해. 아마 성국 내에서도 집행 부대인 백익편성과 심판관들 외에는 아무도 못 하지 않을까?’


급격히 갈증이 난 잿빛은 수통을 꺼내 물을 마셨다.


바로 그때였다. 커다란 날갯짓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다가왔다.


서둘러 경계하며 바라보니 그곳에는 한 마리의 마물이 있었다.



“어······.”


스윽.


꿀벌 형태의 그 마물이 첫 번째 다리 한 쌍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진정하고 자세히 봤더니 그것은 노란 점액질이 담긴 작은 병이었다.



“호, 혹시 주는 거야?”


끼득끼득하는 소리를 내며 마물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하니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놀라움도 잠시. 아까 페리에게 과일을 잘라준 아줌마가 다가왔다.



“지쳐 보여서 준다고 하네. 괜찮으니까 받아두셔.”

“어, 네.”


주민들과 잘 지내라는 신탁도 있었겠다, 잿빛은 두려움을 참고 마물이 건넨 병을 받았다. 그랬더니 마물은 재차 끼득끼득 소리를 내고는 훌쩍 떠났다.



“건강 관리 잘하라네.”

“저기, 혹시 아까의 마물―― 그, 주민의 말을 알아들으시나요?”

“그렇지? 뭐, 우리도 처음부터 알아들은 건 아니야. 댁들도 같이 지내다 보면 차츰 알아듣겠지.”


어딘가 호탕한 아줌마는 그리 말하고는 떠나갔다.


잿빛은 그 뒷모습을 한동안 멍청하니 바라봤다.



“특이하다 싶었지만 정말 특이하네······.”


영문을 모르다 생각하며 잿빛은 받은 병을 살폈다.



“뭔가요?”

“저도 잘······.”

“마물이 준 것입니다. 버리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런 말 하면 안 되죠, 알렉. 모처럼 준 건데.”


동감이다. 아무리 마물이라지만 이쪽의 건강을 염려하여 준 것인데 대뜸 버리라니.


참으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건만. 단지 종족이 다르다는 연유로 편견을 갖다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다. 알렉은 성기사―― 인간 우월주의의 성국에서 자란 사람이기에. 그로서는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이쪽이 이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잿빛은 버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되려 궁금함에 조심스럽게 마개를 열어보았다.


열린 공간으로부터 달달한 냄새가 올라온다.



“꿀?”

“진짜요?!”

“아마······.”


확신하진 못한 잿빛은 새끼손가락 끝에 조금 묻혀 맛을 보았다.


달콤하면서도 진득진득한 깊은 풍미가 입안을 감싼다.



“우와.”


무심코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 정도로 맛있고 진한 꿀로, 잿빛이 먹어본 꿀 중에서는 단연코 압도적이었다.



“저, 저도! 저도 맛을 봐도 될까요?!”

“루시 님, 어찌 마물의 것을······.”

“알렉. 여신님의 말씀을 잊은 거예요? 저들도 주민이라고요. 사이좋게 지내야죠!”

“이, 잊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교류를 원한다면 이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거라구요.”


‘암암. 그렇고말고.’


이제야 좀 성녀답다고 생각하며, 잿빛은 내민 성녀의 손가락에 꿀을 조금 묻혀줬다.



“자. 알렉도.”

“부, 부탁합니다.”


성녀의 명을 차마 무시하지 못한 알렉이 떨리는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곳에 정말 쥐꼬리만큼의 꿀을 묻혔다.


저리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 많이 줘봐야 하등 쓸데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나, 알렉의 눈에서 고마움의 빛이 쏟아진다.



“와! 진짜 달고 진해요!”

“화, 확실히.”


이제 와 더 달라고 해도 안 줄 거다.


잿빛은 무심하게 마개를 닿고 병을 품에 넣어버렸다. 성녀가 아쉽게 바라보지만, 그 시선도 애써 무시했다.


이내 성녀도 포기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따금 주민들을 마주쳤는데, 그들은 모두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줬다.


솔직히 놀라울 정도의 대우였다. 마음껏 돌아다니도록 놔둔 것도 그러했다. 첫 만남을 생각하면 최소한 감시자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물론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느끼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말 편안히 방임해 놓은 상태다.


다만, 모두에게 환영받는 건 아니었다.



“앗!”


맞은 편에서 오던 토끼 귀의 수인 여성이 이쪽을―― 정확히는 성녀와 알렉스의 복장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탓에 작물을 담은 바구니를 땅에 떨어뜨렸다.


데구르르. 바구니에 담긴 연두빛 사과가 굴러간다.


황급히 달려 주운 잿빛은 돌려주러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오, 오지 마!”

“저, 저기······.”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네. 가지 않을게요.”


당혹스럽지만 저리 싫어하는 거다. 잿빛은 구태여 다가가지 않고 그 자리에 사과를 내려놨다.


그랬음에도 여성의 반응은 여전했다.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열심히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린 탓에 헛된 발버둥에 그쳤다.



“무슨 일이죠?”


소란에 온 것인가. 소녀―― 이스피리아가 나타났다.


오해하기 딱 좋다.


바로 위기를 직감한 잿빛은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주위를 살핀 이스피리아가 수인 여성에게로 갔다.



“괜찮아요.”

“게, 게헤르······.”


안심되어 긴장이 풀렸나, 수인은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이스피리아는 그런 여성의 등을 어루만지며 달랬다.


그 모습을 잠시 보고 있으니 집사―― 찬크에르가 다가왔다.



“따라와라.”

“읏!”


순간적으로 알렉이 성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잘도 움직였다며 잿빛은 감탄했다.


그만큼 엄청났다. 학원에서와는 달리 반론 따위 허락하지 않는다는 양 엄청난 압력을 내뿜는 찬크에르는. 안 그래도 기품에 어울리는 복장인지라 어딘가의 왕족 같아 말대꾸는 엄두도 안 났다.


성녀도 압도되어 주춤거렸다. 그렇지만 남아선 좋을 게 없다는 판단으로 그를 따라 이동하기로 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요새의 안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잿빛들도 머무는, 집들이 늘어선 주거지역으로 안내했다. 거기서 대충 빈집을 골라 안으로 들어갔다.


찬크에르는 대충 거실 한편에 멈춰 섰다. 별다른 설명은 없다. 아무 말도 없이 그는 가만히 서 있었다.



“저기, 어째서 저흴 여기로?”

“기다려라.”


살갗이 에는 듯한 차디찬 대답이 돌아왔다.


기껏 용기를 냈으나, 성녀도 이러한 반응은 필시 처음 겪는 것. 어쩌지 못하고 얌전히 구석에서 대기했다.


조금 궁금하긴하다. 왜 불렀을지. 그러나 잠시 기다리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참지 못하는 머저리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게 실로 안타깝다.



“성녀님께 너무――”

“――성녀님께 뭐요?”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알렉의 말을 자르며 이스피리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이스피리아는 천천히 방안을 훑어봤다.



“그래서, 성녀님께 뭐죠?”

“무, 무례하다고 했다.”

“여기, 에르가요?”

“그렇다.”

“후후. 코미디가 따로 없네요. 무례한 게 어느 쪽인데.”

“뭣?!”

“아아.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아요. 대충 에르는 본래 당신들이 말도 못 붙일 상대인 것만 알아둬요. 그냥 보기에도 그렇잖아요?”

“헛소리를······.”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루시아스 님께 물어보세요. 진정 제가 한 말이 헛소리인지. 나중에 성녀님이 물어보시면 되겠네요. 뭐, 결과는 뻔하지만. 벌써 사색이 될 당신들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왕족처럼 보이기는 하다만 그 정도란 말인가.


저리 확신을 두고 말하는 거니 거짓말은 아닐 거다. 애당초 이스피리아는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고.


‘하지만 성녀가 말조차 못 붙인다라······. 도대체 정체가 뭐지?’


짝짝.


이스피리아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시답잖은 이야기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죠.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부른 건 아까 전의 일 때문이에요.”

“저흰 아무것도 안 했어요.”

“네. 알아요. 저도 지켜봤거든요. 분명 당신들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

“당신들은······?”


잿빛은 몸을 떨었다.



“당신은 짐작되나 보네요. 과연 일신성단의 일원이라 할지.”


이스피리아의 말대로다. 짐작되고도 남았다.


일신성단은 성국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정예부대. 그중에서도 정보를 취급하는 청익편성은 보다 짙은 성국의 어둠과 직면한다.


더군다나 이스피리아는 성전 사태를 일으킨 자인 디바오러라 거의 확정한 상태다.


그때 벌어진 사태의 결과와 종합하면······ 답이 나왔다.


잠시 바라보던 이스피리아는 잔인하게 그것을 공개했다. 성국의 대죄를······.



“당신들이 만난 그분은 피해자예요. 세인트리안에 납치당해 모진 고문을 받은 피해자요.”

“그, 그런······.”

“거짓이다! 성국이 뭣 하러 그런 짓을 한다고!”

“글쎄요. 저도 이유는 듣지 못했네요. 하지만 진짜라고요?”


그리 말한 이스피리아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무언가의 화면이 나타났다.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임무의 특성상 비슷한 것을 보고 다룬 적이 있다. 그건 일정 순간, 어느 한 장면을 기록하는 아티팩트다.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는 이윽고 하나의 장면이 나타난다. 이상하게 환하지만, 분명 어두컴컴한 어딘가의 감옥이었다.


관리는 그다지 잘 되어 있지 않다. 감옥 여기저기 먼지가 쌓여 있는 등 오랫동안 방치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곳에 누군가가 있는 것인가?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화면이 움직였다.


비치는 건 쇠창살이 늘어선 한 지점. 들쥐나 겨우 있을 듯한 그곳에 한 인영이 있었다.



“읏!”


성녀가 무심코 입을 막으며 비명을 냈다.


감옥 안에 있는 자―― 성별을 알아보기 힘든 그자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했다.


잔뜩 생긴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피는 진작에 굳어 거무칙칙한 딱지가 앉았으며, 머리카락 또한 피와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엉겨 붙어있다. 생기는커녕, 피골이 상접하여 앙상한 뼈만이 비친다.


그러한 참혹한 광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알몸으로 두 팔이 벽의 쇠사슬에 묶인 채로······.


살아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냥 시체와도 다를 바가 없었다.



“미안해요. 조금 정정할게요. 방금까진 괜찮았는데······ 지금은 좀 언짢아졌어요.”


놀랍게도 소리마저 구현되는지, 굉장히 노한 이스피리아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작디작은 팔이 나와 쇠창살을 잡고는 열어젖힌다. 경첩에 달린 자물쇠는 무용지물. 싱겁게 박살 나며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감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네. 요즘 세상이 어느 때인데 인권이라는 것도 모르는 거야?”


재차 화가 난 듯 음성이 울리고, 곧이어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시체나 다름없는 자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경이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상처가 사라진다. 조금의 흉터조차 남기지 않는 건 물론이거니와, 사라진 신체 부위마저도 능히 복구한다.


1급 신관 못지않은 [치유]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서서히 이목구비가 드러나자, 잿빛은 참지 못하고 침음을 흘렸다.


성별조차 구별할 수 없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여전히 빼빼 마르긴 했으나 혈색이 좋아 명확히 얼굴이 구분된다. 무엇보다 그―― 아니, 그녀의 머리에 달린, 새롭게 돋아난 토끼의 귀가 다른 사람이라 착각할 수 없게 했다.


그렇다. 아까 그 수인 여성이다. 바로 그 주민이었다.



“거, 거짓이다! 서, 성국이 그럴 리가 없다!”

“흐음. 그래요?”


무심하게 말한 이스피리아는 재차 화면을 보았다. 그랬더니 장면들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몰라볼 정도는 아니어서, 이윽고 갇혀 있던 다른 수인 3명을 구출하는 장면을 봤다.


언뜻 보기에도 그 3명의 상태도 만만찮았다. 전원이 넝마. 아까는 몰랐지만, 눈과 귀 모두 도려내고 잘린······ 말을 잇기 힘든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금세 나았고, 여성―― 아이리스의 사용인이라 알려진 델리안이 나타났다. 아까 창술을 지도하던 엘프와 함께.


다만, 화면 속 델리안의 귀가······ 무척이나 길었다.


‘에, 엘프였다고?!’


눈을 부릅뜨며 놀라고 있자니 저 둘이 뭔가 다툰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함께 무언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이스피리아가 감옥을 튀어 나간다.


보고 있음에도 실로 경악스러울 엄청난 속도. 감옥의 입구라 여겨지는 기나긴 계단을 단숨에 지나쳐, 미로 같은 집안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보이는 풍경. 그건 잿빛에게도 너무나 낯익은 정경이었다.


바로 그, 성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성당이 보이는 장면에서 화면이 멈췄다.



“봐서 알겠지만, 이건 제 기억을 재생한 것이죠. 그래요······. 이제 와 새삼스럽지만, 제가 자인 디바오러에요.”

“거, 거짓이다!”

“뭐가요? 제가 자인 디바오러인 것이요?”

“전부다! 전부 거짓이다!”

“거짓, 거짓. 오직 그것뿐이네요, 당신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일신성단이라는 조직이 있는 것만으로 뒤가 구리다는 걸 알 텐데.”


질렸다는 듯이 이스피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적당히 좀 하시죠.》”

“크읏!”


신음을 내며 알렉스가 무릎을 꿇었다.


잿빛도 그러했다. 의지를 무시하고 무릎이 꿇어졌다. 성녀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당혹스러운 눈으로 이스피리아를 올려다봤다.


유일하게 멀쩡한 건 찬크에르 뿐이었다. 그자만이 이스피리아의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이, 이건······.”

“신언······이네요.”

“마, 말도 안 돼.”


알렉스가 아무리 부정해도 성녀가 인정한 이상 틀림없는 사실. 잿빛 또한 말에 담긴 강대한 신력을 느끼고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성녀님이 여신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달라. 이건 그저 본인이 본인의 말을 전했을 뿐이야.’


역시 잘못 보지 않았다.


눈앞의 이스피리아는 지상에 강림한 신, 그 자체다. 느껴지는 신력 또한 여신님이 아닌, 혼돈이 가득한 그때의 그 신력이다.



《흐음. 이제 보니까, 당신도 세인트리안에 있었네요. 저기, 성녀님과 함께. 그럼 이해하셨으리라 봅니다. 지금 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설마 직접 느끼고 있으면서 신언조차 거짓이라 우기진 않겠죠?》

“하, 하지만 성국은······.”

《지금 그 말. 당사자에게도 할 수 있나요? 당신의 나라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그분들에게.》


알렉스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그도 아는 것이다. 방금 본 장면들이 결코 허구가 아님을. 암만 부정을 하고 싶어도 생동감이―― 구역질조차 밀려오는 현실감이 이를 어렵게 했다.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아 고집을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무슨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젠 그 굳은 머리를 조금 유연하게 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잿빛은 이리 생각했다.


그러나 이스피리아는 그에게 자주적으로 맡길 마음이 전혀 없었다. 무척이나 싸늘하게 알렉스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길을 제시했다.



《정 못 믿겠으면 당장 교황 씨의 앞으로 보내주죠. 직접 그에게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세요.》

“······.”

《왜 입을 다물죠? 보내준다니까요.》

“저, 저기. 미, 믿습니다. 알렉은 그저 혼란스러운 것이에요.”

《성녀님? 내 이름은 이스피리아야. 저기가 아니라고. 말이 나온 김에, 매번 고상한 척, 순진무구하게 굴어대는데, 그거 알아? 당신, 누구의 이름도 말하지 않더라. 오직 알렉, 알렉. 다른 사람에게는 저기, 저······ 등등 한사코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


그렇기는 했다. 지금 떠올려 보면 성녀는 확실히 타인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알렉스 말고는.


물론 잿빛에게는 잿빛이라 불러주기는 한다. 그렇지만 그건 이름이 아니라 코드네임이다.


구태여 본명을 가르쳐줄 필요를 못 느꼈기에 알려주지 않았지만, 마을 주민들은 분명 아니다. 제대로 자신을 소개했고, 성녀도 친절히 대해주는 주민들과 나름 어울리며 지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났음에도 성녀는 단 한 번도 이름을 부른 적이 없다. 이스피리아의 말대로 어정쩡하게 지칭하여 부르기만 했다.



“그, 그런 줄은 모르고 있었어요.”

《관심이 없는 거겠지. 대충 순박한 척 굴어대면 모두가 잘해줬을 테니. 아주 살판 났겠어? 아무것도 안 해도 루시아스 님의 기척 덕분에 다들 떠받들어 주니 말이야.》

“저,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모두에게 진심으로 다가갔어요······.”

《한사코 이름은 안 부르면서? ······아니, 이름을 알기나 해?》

“무, 물론이죠.”

《말해 봐. 우리 빼고, 당신이 아는 사람 전부.》


성녀는 우물쭈물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은 외견과 더불어 사랑스러웠다. 그렇지만 여신님의 위광이 없어서 그런가, 이전보다는 확연하게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어쩌면 진짜 여신님 덕분에······.’


정말로 기분 탓 같지 않다. 이전이었다면 생각이 잠긴 모습에 열심히 떠올리려 하는구나 싶었겠지만, 지금은 진짜 모르기에 우물대는 것으로 보인다.


말을 더듬는 것도 그렇다. 찔리고 당혹스러워 궁상스럽게 반응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문득 잿빛도 보고 싶어졌다. 성녀가 정말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지.


‘암만 그래도 아예 모르진 않겠지······. 거쳐 간 사람이 몇 명인데.’


작은 기대와 함께 성녀가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


‘어이어이. 설마 진짜 모른다고? 한 명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암만 그래도 예하의 성함 정도는 알 거 아냐?!’


경악이 무색하게, 성녀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앞에서는 만인을 품을 것처럼 자애롭게 굴더니.


나름 성녀를 경외하던 잿빛은 극도로 실망하며 탄식했다.


그때였다. 고성과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알렉스가 일어났다.


상당히 힘겨워 보인다. 그렇지만 알렉스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끝끝내 버텼다.



“루, 루시 님은 성녀다.”

《그래서요?》

“여신님께 선택받아 [정화]를 사용하시는 성녀님. 만인을 치유하시며 위안을 주는 성녀님이시다.”

《이번에는 성녀, 성녀인가요? 하아······. 신념이라는 게 무섭긴 무섭군.》


참을 수 없다는 듯 이스피리아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개는 좋네요. 꿋꿋이 버텨내고. 모시는 자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은 제법 마음에는 들어요. ······하지만 말이죠? [정화]? 그거 별거 아니에요. 마법의 일종이거든요. 제법 어렵기는 해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쓸 수 있는 마법이죠. 타인에게 발동하는 것도 적당히 남을 위할 줄 알면 될 테고.》

“그, 그게 무슨. [정화]가 마법이라니······.”

《저 또한 [정화]를 쓸 수 있기에 하는 말인데요?》

“뭐······?”

《왜 놀라는지를 모르겠네요. 당신의 주장대로 따지더라도 그래요. 저는 지금도 신언으로 말하고 있어요. 몹시도 아니꼽지만, 신께 선택받았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요? 루시아스 님과 직접 대면하여 티타임을 가진 적도 있는데? 심지어 재차 약속까지 잡았고요. 그런 제가······ [정화] 하나를 못 쓸까요?》


알렉스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차마 반론하기는 힘든 완벽한 논리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이스피리아는 성녀 못지않은······ 도리어 성녀보다도 더욱 신께 사랑을 받는 존재였으니.


하지만 자비는 없다.


이스피리아의 맹공은 꺾일 기미도 없이 재차 이어졌다.


손가락을 튕기니 빛이 모여들더니 한 뺨 크기의 투박한 완드가 나타났다.


이스피리아는 몸체 전체가 은빛인 그것을 알렉스의 발치에 던졌다.



《[정화]가 담긴 마도구에요. 보다시피, 방금 막 만들었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몸이 자유로워졌다.


알렉스는 억지로 버텨낸 괴로움에 숨을 헐떡이다가, 조심스레 바닥에 떨어진 완드를 주워들었다.


혼란스러워 보인다. 아마 신언의 압력이 사라졌는지도 모를 것 같다.


그만큼 충격일 것이다. 그가 손에 든 것은 신의 축복 그 자체―― 아니, 신의 축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증거품이니 말이다.


이스피리아는 선뜻 마음껏 시험해 보라며 권했다.


하지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여태껏 진실만을 말한 이스피리아다. 아무리 반발심리가 있다고 한들 그것을 몰라보진 않을 거다.


알렉스 또한 마찬가지. 아니라며 줄곧 부정했지만 차마 완드를 사용하려 들지 않는다.


제 손으로 자신의 신앙을, 신념을 무너뜨릴 순 없었기에······.


그러나 이번에도 이스피리아는 자비가 없었다. 재차 손가락을 튕기니 완드가 휘리릭 날아가 그녀의 손에 떨어진다. 그리고 슬쩍 쳐다보니 왼손 검지에서 피가 스멀스멀 나왔다.



“엣?! 피, 피가.”


피가 익숙지 않은 성녀가 소리를 높인다.


그에 반해 이스피리아 무심하게 방울진 피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완드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감쪽같이 피가 사라졌다.


증발하거나 흘러내리지 않았다. 분명 똑똑히 보고 있었음에도 돌연 자취를 감췄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이스피리아는 완드를 뭉개버렸다. 으스러진 소리로 볼 때 금속임은 명백했다. 그러나 완력 하나만으로 가볍게 고철로 만들어 버렸다.


아까움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라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양 주저하지 않았다.


이스피리아는 그런 고철을 무심히 뒤로 던지고는 재차 검지에 피가 맺히게 했다. 그리고 바라보니 이번에도 방울진 피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확실하다. 잿빛도 들어본 것에 불과했지만, 방금 막 눈앞의 펼쳐진 현상은 그것 외에는 설명이 안 된다.


[정화]. 신께 축복받은 신성한 힘이다.


이스피리아는 그 신성한 힘을 완벽히, 마도구로 만들 만큼 능숙히 다룰 수 있는 것이다.


‘마법······ [정화]가 단순한 마법의 일종이라니.’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여태 헛된 것을 배우고, 믿어왔다는 사실에 회의감마저 든다.


‘하지만······’


잿빛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래 봬도 성직자 나부랭이. 믿음이 깨졌다 한들 여신님을 섬기는 것엔 변함없다. 흔들리는 일 따윈 없는 것이다.


정신이 들고 보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으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눈을 떴을 땐 모두가 빤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팩트 폭격! 받아라 어리석은 자들이여! 하하핫!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2가 준비되어 있으니 인사는 그쪽에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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