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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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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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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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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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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25-2

DUMMY

“쯧.”


거슬린다는 듯 이스피리아가 혀를 찼다.


잿빛은 얼른 사과하려고 했다. 어쨌거나 대화를 끊은 셈이었으니.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스피리아의 신경은 잿빛에게 향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늘―― 지붕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이번 건 없는 셈 치죠. 이끌려 온 것에 불과하니. 그런데······ 꽤 다급하네요. 뺏어갈 마음 같은 건 있지도 않은데.”

“아?”


알렉스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꽤 낯익은 광경이다.


의아한 그때 문득 성녀가 눈에 들어왔다. 입을 가린 성녀가 굉장히 놀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왜 그러시죠?”

“축복······.”

“네?”

“축복을 내리셨다고요. 방금 막 루시아스 님이. 제법 공들인 느낌으로 봐선 그저 그런 축복은 아닌 것 같네요. 아마 전반적인 능력 전부가 상승했을 거예요. 당신도 정신을 집중하면 신력이 느껴지겠죠.”


답답했는지 이스피리아가 끼어들었다.


‘정말 축복이라고······? 내가?’


잿빛은 얼떨떨했다. 그야 그 축복이 아닌가.


알고 있기로 축복을 받은 자는 오직 성녀뿐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일부 몇 명 있긴 했으나, 그 외에 다른 사람은 본 적조차 없다. 심지어는 교황과 주교, 금익편성의 심판관들도 그러했다. 아무도 축복을 받지 못했다.


직접 두 눈으로 본 것이니 확실하다.


타국으로 왔어도 그러했다. 축복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랬는데······.


믿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스피리아의 말대로 집중하면 느껴진다. 몸을 감싸고 있는 여신님의 신력이······.


재차 확인해 보았음에도 변함은 없었다. 눈물을 흘릴 것 같이 따스한 이 기운은 성녀에게도 느낀 그것―― 여신님의 신력이었다.



“축하드려요, 잿빛 씨!”

“아, 네. 감사합니다.”


마치 제일인 것처럼 성녀가 손뼉을 친다.


얼떨결에 감사를 전했지만······


기괴하다.


더없이 기괴했다. 방금까지 침울하여 풀이 죽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는 양 웃고 있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기괴했다.


‘이게 성녀라고······? 그렇다기보다――’


――똑똑.


이어지는 생각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인해 끊어졌다.



“들어오세요.”


이스피리아의 허가에 문이 열린다. 그리고 얼굴을 내비치는 건 보랏빛이 감도는 금발의 미녀였다.



“담화 중에 잠시 실례하마.”

“괜찮아요, 델리안. 무슨 일이세요?”


찬크에르와는 다른 의미로, 학원과는 다른 소박한 복장의 델리안이 가느다란 눈매로 실내를 살폈다.


그 날카로움을 읽은 이스피리아가 웃으며 말을 건다.



“루시아스 님이 잠시 다녀가셨어요.”

“음? 직접 강림하였다고?”

“아뇨. 그냥 축복만 내려주셨어요.”

“아하. 그리된 거로군.”


고개를 주억거린 델리안은 고개를 돌려 잿빛을 쳐다봤다. 망설임 없는 그 태도는 신력을 느낄 수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면 찬크에르······. 저 사람도 위를 보고 있었어. 더럽게 쌀쌀맞은 눈초리였지만.’


놀랄 노 자다. 성스러운 신의 기운이건만 이 마을의 주민들은 아무렇지 않게 느끼고.


이리 흔한 능력이었나 싶어 조금은 자랑스럽게 여겼던 자신이 창피해진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특별한 거라면?’


문득 든 의문.


잿빛의 뇌리가 번뜩였다.



“엘프의 델리안······. 그래! 갈라사르의 마녀였나?!”

“호오? 날 알고 있느냐?”


설마 했던 본인!


잿빛은 입을 막으면서도 놀란 눈으로 델리안과 이스피리아를 보았다.


농담이나 사칭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확실히 축복 덕분에 감각이 좋아졌나 보다. 알 수 있다. 델리안에게 엄청난 힘이 내재했음을······.



“뭐, 여러 일이 있어서 말이다. 모른 척 있어 주면 고맙겠구나.”


이곳에서 괜한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건 잿빛도 마찬가지.


어차피 어디 가서 말해 봐야 아무도 안 믿을 거다. 자신이라도 그 갈라사르의 마녀가 사용인 노릇을 한다고 들으면 머리는 괜찮은지 의심부터 할 거다.


성녀와 알렉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들은 갈라사르가 뭔지, 그 마녀가 뭔지 전혀 모르고 있으니까.



“대화는 끝난 거니?”

“아직이요.”

“난항인 모양이로구나.”

“두 명이나 머릿속이 꽃밭이어서요. 루시아스 님께 선택받았다는 게 그리도 자랑스러운 건지······. 안하무인이 따로 없어요.”

“그러니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겠지만······. 골치 아프긴 하겠구나. 본인이 이룬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말이야.”

“루시 님이 이룬 게 없다니!”


발끈한 알렉스가 소리쳤다.


델리안은 그런 알렉스를 아무 감정 없이 쳐다봤다. 그러다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는 관심도 없다는 양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자신감만 들어차 있긴 하구나. 아무 생각이 없어. 심지어 자신들이 살해당하는 미래 따윈 추호도 생각지 않아. 멋대로 찾아온 마을에서 이리 성을 내고 말이야.”

“대접받는 게 당연했을 테니까요. 상대가 누군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 따위 관심 있을 턱이 없겠죠.”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성녀도 그렇지만, 나로서는 종자가 주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돼. 왜 자네가 골치아파 한지도 알겠어.”

“저도 모시는 자보다 말이 많은 종자는 처음 봐요. 폭주하는 것도 전혀 말리지 않고. 분명 종자의 업무는 오냐오냐해 주는 게 아닐 텐데요.”


알렉스는 까드득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저 대화는 정론. 성녀의 평판을 깎아내리지 않게 입을 다물었다.


이제 와선 늦었다는 생각이지만······.


애초에 그것 하나 모르고 난리 친 것 자체가 한숨이 나올 따름이다. 진심으로 예하가 왜 알렉스를 호위로 놔뒀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프리에나는요?”

“일단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네. 한데, 저러한 태도를 보인다면 어찌 나올지 모르겠군. 세스에게 맡기기에도 그렇고.”

“팽 씨들도······. 꿀을 나눠준 걸 보면 개의치 않은 듯하지만······ 조금 염려스럽네요.”

“이 자들을 내보내는 건? 암만 봐도 괜한 불화만 가져오지 않느냐?”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루시아스 님이 데리고 있어 달래요.”

“제아무리 신의 지시라지만 자네가 순순히 따른다고?”

“아니꼽지만 흘려듣기에는 조금 걸려서요.”

“그것도 그렇구먼······.”


둘은 고민스럽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저기―― 아, 아니, 이스피리아 씨. 무슨 이야기인가요?”

“하아. 듣고도 몰라요? 여기 델리안도 그렇지만, 마을 주민들이 당신네, 세인트리안에 당한 게 있다는 소리잖아요.”


까칠한 이스피리아의 말에 알렉스는 재차 울컥했다. 그렇지만 가까스로 주먹을 쥐어 어떻게든 참아냈다.



“저, 어떤 일을 당하셨나요······?”

“와아. 진짜 대단하네. 방금 보여주고, 쳐 듣고도 저딴 소릴 한다고?”


마침내 폭발한 이스피리아가 한 걸음 내디뎠다. 하지만 델리안이 막아섰다. 무척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그러나 잿빛은 알아봤다. 절대 말리기 위함이 아니었음을.


역시나 그녀 대신 델리안이 성녀의 앞에 섰다. 아까의 미소는 없었다. 차디찬 냉소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성녀를 내려다봤다.



“분명 여태 자신의 말이라면 모두 껌뻑 넘어갔겠지. 루시아스 님의 위광이 있었으니. 그러나 이젠 생각이라는 것을―― 남을 배려한다는 것을 좀 배우려고 해라, 애송아.”

“아, 아뇨. 저는 결코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셈이······.”

“그런다는 녀석이 당사자에게 묻는다고? 너의 그 무심한 질문이 피해자의 상처를 도려낸다는 것을 어찌 모르더냐?”

“저, 저는 그러려는 게······.”

“운다고 해결되나? 그것 또한 제 기분만 헤아릴 뿐이 아니더냐? 네게 그따위 질문을 듣는 나는 어떻겠나? 어리광 부리지 마라. 평범한 시민이라면 그래도 되겠지만, 네년은 성녀다. 자신만을 우선시할 거라면, 위정자의 기본적인 책무조차 다하지 못할 거라면······, 모든 걸 내려놓고 조용히 산속에서 숨죽이고 살아가라. 버티고 있어 봐야 괜히 일만 키울 뿐이다.”


속사포처럼, 그렇지만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한 델리안은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은 제법 속이 후련한 것처럼 보였다.


알렉스는 곧장 주저앉아 우는 성녀에게로 달려갔다.


둘의 모습을 보며 잿빛은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이건······.’


루시아스의 위광이 벗겨져서 그런지,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게 돼서인지 모르겠다. 성녀와 함께 행동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하지만 이제야 알겠다. 여신님이 어찌하여 신탁까지 내려 성녀를 이곳에 두려 했는지······.


그 광경이 눈앞의 이것이다.


――여신님은 성녀가 좌절하기를 바란 것이다.


성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신님의 위광이 있든 없든 모두가 떠받들테니.


그건 여신님조차도 업신여기는 이스피리아······ 그녀가 있는 이 마을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털썩.


성녀의 앞에 옷가지가 떨어졌다.


이곳 주민들이 입는 소박한 옷이었다. 그것들과 함께 두툼한 장갑이 놓였다.



“먹고 마시는 자, 일을 하란 말이 있거든요? 언제까지 손님으로 있을 생각은 버려요. 처음부터 손님도 아니었고.”

“루시 님은 지금――”

“――어리광은 그만 부리라는 말 못 들었어요? 안 그래도 멋대로 와서 식량만 축내는 처지면서.”

“일을 하라는 거냐? 루시 님에게?!”

“당연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먹을 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아세요? 당신이 먹은 것들 모두 제 할아버지인 촌장님은 물론, 저와 주민들이 함께 애쓴 결실이에요. 염치가 있으면 도울 생각부터 해야지 언제까지 놀고먹으려고요?”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신분이 높으면 아무 일도 안 하는 줄 아나. 당신네 교황―― 으음. 지금은 놀고 있지만 그 사람도 근 1,000년 가까이 일했고, 각국의 국왕님들도 현재 절찬리 업무를 보고 있어요. 하물며 신조차도 일하는 판국에 성녀가 뭐 대수라고······.”

“알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아요, 알렉.”


성녀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주워 들었다. 그 눈엔 당찬 기운이 담겨있었다. 아까의 슬픔은 사라지고.


이스피리아는 밑에 ‘남은’ 옷가지들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따로 없네. 뭐, 일만 제대로 해준다면 불만은 없어요. 알아서들 갈아입고 나오세요.”


못마땅해 보이지만 이스피리아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찬크에르와 델리안도 별말 없이 뒤를 따랐다.



“자. 어서 갈아입을까요?”

“괜찮으십니까?”

“네. 성의라지만 벗는다고 문제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무서워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알겠습니다.”

“잿빛 씨도요.”

“예.”


잿빛은 자신의 몫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흥얼거리며 굳이 안방으로 들어가는 성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많은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는 여신님의 말씀은커녕, 축복을 받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치도 않았는데. 요즘은 매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종잡을 수가 없다.


‘성녀님 때문에 놀랄 일은 또 얼마나 벌어질지······.’


문득 불안해진 잿빛은 기도를 드렸다. 제발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길 간절히 기도했다.


단순한 위안이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제법 마음만큼은 홀가분해진다.


그렇게 근심을 좀 덜고 잿빛은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거부권은 없다. 이스피리아마저 일을 하는 것이다. 축복을 받을 만큼 신실한 잿빛으로서는, 어지간한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감히 따르지 않을 순 없었다.


작가의말

어이, 일을 해라 성녀!!

너의 백수 생활은 오늘부로 끝이닷!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후후. 오랜만에 1주일 안에 연재를 올리네요

기분 최고입니다

앞으로도 이대로 쭉쭉 나아갔으면 하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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