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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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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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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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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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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쪽

227

DUMMY

“준비는 이 정도면 되겠지요.”


재차 훑어보고 세컨드는 공간을 열어 서류들을 넣었다.


이상은 없다. 리아의 대리인이라는, 분에 넘치는 중책을 맡은 자로서 수차례에 걸쳐 꼼꼼히 확인했다.


차후 필요한 서류들까지 모두 챙긴 세컨드는 지팡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


방에서 나오는 세컨드를 발견한 이클립스가 뛰어온다.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여.



“누나! 다른 나라로 간다고?!”


당도하자마자 이클립스는 흥분하여 소리쳤다. 그 뒤를 따라온 누이, 메이어가 미안하다고 눈짓으로 사과했다.


살짝이지만 입가를 올린 세컨드는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췄다.



“네. 업무상의 일로 잠시 제국의 황성에 다녀올 겁니다.”

“와······ 제국.”


부럽다는 음색으로 중얼거린 이클립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 결심한 듯 표정을 다잡았다.



“누나, 나도 가고 싶어!”

“저와 함께요?”

“폐라는 건 알아. 그래도 가 보고 싶어. 황성을 갈 수 있는 기회가 흔치도 않을 테고.”

“그건 확실히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좋게 타이를까, 어울리지도 않는 짓까지 하며 세컨드는 고민했다.


그랬는데 시원찮은 목소리가 괜스레 끼어들었다.



“뭐, 괜찮지 않아?”

“서드······.”

“너무 대놓고 싫어하는 거 아냐?”


근육질의 마초 빡빡이―― 서드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아니꼬운 꼬락서니에 세컨드의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솟아났다.



“리아 님께 하달받은 임무라는 것을 잊었나요? 당신의 안타까운 머리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지만, 좀 해이해진 것 같습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우리에겐 더더욱······.”


실실 웃고 있지만 서드에게서 슬금슬금 마력이 끓어올라 왔다.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는 진심으로 불쾌해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실언이었군요. 사과하죠.”


평소 티격태격하는 사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세컨드는 정중히 온 마음을 담아 머리를 숙였다.


암만 가볍고 무례하게 군다지만 서드 또한 엄연히 리아에게 창조된 사도. 그런 자에게 리아의 명령을 까먹었냐는 물음은 그 충정을 의심하는 것과도 같다.


만약 세컨드가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그 즉시 상대를 찢어 죽였을 것이다.


그만큼 최악의 모독이었다.


다른 사도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다시는 어리석은 그 입을 열지 못하도록 영혼까지 죄다 소멸시킬 터다. 상대가 같은 사도라 할지라도······.


도리어 침착하니 화만 낸 서드가 상당히 온화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사도끼리의 싸움은 엄금이라 참은 것일 수도 있지만.


하지만 달리 말한다면, 암만 화가 났어도 리아의 명령을 어기지 않는 강직한 충성심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다.


지극히도 당연하지만, 과연 사도. 비할 바 없는 숭고함이다.


같은 사도로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세컨드는 재차 마음을 담아 머리를 숙였다.



“사과는 이제 됐어. 그보다 데려가는 건 어때? 이클립스가 견식을 넓히는 것 또한 리아 님아의 바람이잖아.”

“흠. 제국 쪽이 적극적이다 보니 한두 사람 늘어도 트집잡히진 않겠죠.”

“내가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괜찮은 거야?”

“제 직원으로서 가는 것이라면 명분은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황성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놓죠. 이후는 맡기도록 할게요.”

“오케이. 방해되지 않게 잘 보고 있을게.”

“응?! 서드도 가는 거야?!”

“그래. 어떻게 너희만 보내겠냐.”

“와아!”


이클립스는 벌써부터 신나는지 두 팔을 들고는 펄떡펄떡 뛰었다.


피식 웃은 서드는 이클립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이클립스는 헤실헤실 웃으며 서드의 허리춤에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영 서드를 어색해했는데 함께 지낸 기간이 좀 되어서 그런지 상당히 친밀해졌다.


리아가 의도한 대로 됐달까, 확실히 서드는 타인과 친밀해지기 쉬운 성격인듯하다.



“동생 때문에 죄송하게 됐어요, 세컨드 씨.”

“서드도 말했듯 모든 건 리아 님의 요망. 당신에게 사과받을 이유는 없어요.”

“정말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알고 계시잖아요? 행복해지시는 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눈을 크게 뜬 메이어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진짜 굉장하신 분이세요. 이스피리아 님은.”

“당연하죠. 저희의 창조주이신데.”

“창조주······. 혹시, 이스피리아 님은 신이신가요?”

“저희에겐 그래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죠. 딱히 저희의 관점이 아니더라도 신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확실히 서드 씨를 눈앞에서 창조했을 땐 눈이 튀어나올 듯 놀랐었습니다. 저에게는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고.”

“평범한 인간? 저희가요?”


쿡쿡, 세컨드는 조용히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달까, 그리 보이게끔 창조한 리아의 전능함에 무심코 경외하게 된다.



“죄, 죄송해요. 기분 상하게 해서······.”

“아뇨. 조금 유쾌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한 가지는 정정하고 가야겠네요.”


세컨드는 검지를 세워 강인하게 말했다.



“우린 인간이 아니에요. 우린 리아 님의 손과 발로서 창조된 종이자, 리아 님의 의지와 뜻을 충실히 이행하는 대변인―― 사도입니다.”

“사도······말입니까?”

“대충 신의 사자 정도라 생각하면 될 겁니다.”

“그렇군요······.”


귀족 출신이지만 어렸을 때의 교육이 전부인지라 메이어는 사도라는 개념 자체를 모른다. 그래도 신의 사자라니까 얼추 이해하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부정적인 기색은 없다. 서드가 창조되는 광경을 지켜보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범상치 않은 리아의 능력을 직접 겪어보기도 한 터라 제법 쉽게 받아들였다.


‘은혜도 입었다지만 실로 마음에 드는 자세로군요.’


메이어의 평가를 조금 수정하고 세컨드는 몸을 돌렸다.



“자. 이제 출발하도록 하죠.”


세컨드는 거두절미하고 함께 가는 자들을 모두 주변으로 모이게 했다.



“엔가나, 저택을 맡깁니다.”

“예. 무사 귀환 하시길.”


조용히 다가온 엔가나와 그의 노집사는 정중히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세컨드는 지팡이를 바닥에 살짝 내려쳤다.


앞의 공간이 별안간 기다란 타원형으로 갈라졌다. 딱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하지만 두께는 매우 얇아 옆에서 보면 그냥 실이 쳐진 것으로 보인다.



“가죠.”


세컨드는 저택이 아닌, 전혀 다른 배경이 비치는 그 공간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럼, 가 볼까?”


뒤를 이어 서드가 공간을 망설임 없이 넘어섰다.


잠시 주저하던 이클립스와 메이어는 그 모습에 용기를 얻고는 발을 디뎠다.


공간 너머는 회색의 돌 재질이 고스란히 드러난 투박한 풍경의 어느 곳이었다.


상당히 인테리어에 무심한 광경이지만, 오랜 역사가 담긴 그곳의 무게감이 감히 깔볼 수 없게 한다. 무엇보다 그 넓이와 압력마저 느껴지는 중압감이 방문자로 하여금 위축되게 하였다.


그곳의 도열한 사람, 그리고 그 정점에 앉은 인물을 본 이클립스와 메이어는 숨을 삼켰다.


그 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세컨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자기소개를 하자면, 저는 세컨드. 공정 상인 조합의 조합장입니다. 일단 만나서 반갑다고 하죠, 황제님.”


예의상의 인사를 들은 황제―― 옥좌에 턱을 괴고 있던 그는 눈길만 돌려, 이제 막 닫힌 공간의 균열을 쳐다봤다.



“공간 이동인가······. 이만한 술수가 있기에 이리 일찍 시간을 잡은 것이었나.”

“[포탈] 혹은 [전이문]이라 불리는, 이동에는 제법 편한 마법입니다. 뭐어, 시원찮은 재주지만요.”

“[전이문]?! 전설 속의 대마도이지 않은가?!”


남들과 달리 옥좌의 계단 앞에 있던 남자―― 샤라즈 공작이 놀란다. 그의 발언에 도열한 신하들도 술렁였다.


세컨드로서는 우스웠다.


겨우 8급의 [전이문] 따위이지 않은가. 그걸로 대마도라니. 기가 막힐 정도로 수준이 저열하다. 한편으로는 딱 버러지다운 수준이라 웃음이 나오지만.


그러한 심정은 숨긴 채 세컨드는 미소 지었다.



“과연. 마법성 장관님께선 마법에 대해 나름 해박하시군요.”

“흐, 흐음.”


곤란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고 샤라즈 공작은 물러섰다. 방금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발언했을 뿐, 그가 끼어들 차례가 아니었다. 다만,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지 눈빛에는 미련이 남아있다.



“뒤의 자들은?”

“견학생 같은 겁니다. 저 혼자 오면 조촐해 보일 테니 구색 갖추기로 데려온 것이죠.”

“흠. 나쁘진 않군. 그녀의 사도가 둘이나 되는 이 일행을 감히 조촐하다고 평가할 어리석은 녀석 따윈 확실히 없겠지.”

“좋게 봐주셔서 고맙네요. 모처럼 데리고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눈웃음치면서 세컨드는 생각했다.


‘꽤······ 쓸만하네?’


황제는 아무 생각 없이 화답이나 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제법 번듯하게 차려입은 이클립스와 메이어였지만 그게 전부다. 관록이라는 건 찾아볼 수도 없고,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제대로 누가 온 것인지를 알려 경고한 것이었다. 쓸데없이 떠보려는 자들에게.


물론 마초 대머리가 있긴 하다. 상당한 덩치인 그를 면전에 두고 만용을 부릴 용기는 어지간하면 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엔가나라는 전례가 이미 있다. 게다가 도플갱어의 암약도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폭주할지도 모르기에 황제는 표면상이라도 확실하게 짚고 간 것이었다.


분명 최소한의 성의는 다했다는 표시겠지. 구태여 그런 짓을 할 만큼 황제가 이 만남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조금 예상 밖이지만.



“뭐~ 대충 인사도 끝난 거 같으니 우린 돌아다녀 볼까?”


크게 기지개를 켜는 서드.


제멋대로 굴지만 여긴 엄연히 황제의 집이다. 절차상 세컨드는 시선으로 황제에게 물었다.



“프라바이드.”


프라바이드 공작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안내를 맡긴다. 설령 짐의 집무실이라 할지라도 원한다면 정중히 모시도록.”

“옛!”


머리를 깊이 숙인 프라바이드 공작은 일언반구도 없이 서드들에게로 갔다. 그의 인도 아래 그들은 이곳―― 옥좌의 방에서 퇴실했다.


‘서드가 있으니 맘 놓고 즐기기나 하시죠.’


걱정된다는 듯 뒤돌아보는 이클립스.


실로 주제도 모른다. 전혀 걱정할 처지가 아니거늘.


하지만 그리 생각하면서도 세컨드는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당연히 버러지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그러나 이클립스는 리아가 직접 거둬들인 버러지. 개인적으로도 조금 마음에 들어 나름대로 신경 써 줬다. 그게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터다. 애당초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쪽도 할 일을 하죠.”

“그러지.”


동요도 없이 황제는 슬쩍 눈짓했다.


샤라즈 공작은 곧장 대신 한 명을 불렀다. 호명된 대신은 백금의 쟁반을 들고 세컨드에게로 왔다.


세컨드는 쟁반에 놓인 것들을 쳐다봤다.



“공정 상인 조합의 설립 허가서와 칙허인이다.”

“살펴봐도 될까요?”

“좋을 대로.”


세컨드는 쟁반에 놓인 허가증부터 마법으로 가져와 읽었다.


허가증은 장황하게 말을 늘려놨으나 요지는 간단했다. 제국의 영토에 공정 상인 조합의 설립을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하단에는 똑똑히 황제의 인장도 찍혀있다.


벨루디스와는 달리 복잡한 술식이나 진품임을 알리는 별도의 장치 같은 건 없었다. 아무도 위조하지 않는다는―― 혹시 누군가가 위조하더라도 반드시 숙청한다는 확고한 결단이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과연 황제의 권위가 드높은 제국이라 할 수 있다. 좋은 배짱과 자신감이다.



“세율은 이대로도 괜찮으십니까? 수입의 5%는 소규모 점포에나 과세하는 비율일 텐데요?”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에 비하면 싸다. 선행 투자라 여기도록.”

“음~ 그렇게 되기야 하겠다만, 나중에 딴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녀에게 미움받긴 싫으니 염려 마라.”


기색을 살펴보니 거짓의 기운은 없다. 꽤 진심인 듯 마력도 잔잔하다.


‘딱히 거짓말하더라도 상관없지만요.’


어차피 차후 세율을 올리더라도 순순히 따를 생각이긴 했으니 말이다. 너무 과하지 않은 합리적인 증세라면.


너무 물러터진 생각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조합이라는 건 결국 그 지역의 안보가 지켜진다는 전제하에 존속할 수 있는 것. 국가가 쓰러지면 근간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한―― 유지 및 존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세금이다.


즉,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공생 관계. 세금을 적게 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손익계산은 나름 마쳤나 보네요. 딱히 틀리지도 않았고.’


이 정도라면 인간 중에서는 꽤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주제 파악 못 하고 날뛰진 않으리라.


나름 만족하며 세컨드는 쟁반에 놓인 황제의 칙허인도 [차원수납]에 넣어뒀다.



“다음으로 부지입니다만, 혹여 점찍은 곳이 있으신지요?”

“아니. 부담 없이 고르도록 남겨뒀다.”

“아무 곳이라도 괜찮나요? 이 황성이라도?”

“편히 고르라고 했을 텐데?”


이번에도 절대 농담 따위가 아니었다. 황제는 진심으로 이 황성을 조합의 건물로 쓴다고 하면 순순히 내어줄 의향이었다.


‘참으로 옳은 자세로군요.’


리아가 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 금은보화든 가족이든 간에.


그것을 하등한 버러지가 이해하니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다.



“그럼, 일은 얼른 끝내도록 하죠.”

“당장 보러 가는 건가?”

“네. 할 일이 많거든요.”


스윽.


황제가 일어나 옥좌의 밑으로 내려왔다.


배웅하려는가 싶었는데, 황제는 입꼬리를 올리고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짐도 함께 가마.”

“황제 본인께서 말입니까?”

“바람을 쐬기엔 좋지 않은가. 마침 공무도 많은 참이었다. 숨을 돌리기엔 적절하겠지.”

“저는 택시가 아닙니다만?”

“짐마차라는 건가? 후후······. 그런 취급을 할 셈은 아니었다만, 그리 느꼈다면 사과하지.”


허허실실 웃는 황제. 아주 따라올 생각 만만이다. 황제가 웃는 게 신기한지 주변은 어안이 벙벙해져 있고.


세컨드는 놀랄 시간에 황제나 말렸으면 싶었다. 그렇지만 본인이 저리 확고한 것이다. 신하의 입장에서 말리기란 쉽지 않을 테고, 괜한 소동을 일으켜선 안 되는 세컨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벌어질 소동은 전부 황제님께 위임하겠습니다.”

“맡겨둬라.”

“참고로 호위는?”

“사도가 동행인데 필요하나?”

“최소한의 보필할 자가 있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귀찮은 건 사절이다. 리아의 명령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조금의 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자진해서 일을 만들 마음 따윈 더더욱 없고.


확고한 의사를 안 황제는 눈길을 옆으로 돌렸다.



“샤라즈, 동행을 허가한다.”

“옛!”


즉각 샤라즈 공작이 황제의 옆에 섰다. 아무래도 같이 가는 건 확정인 듯하다.


세컨드는 재차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물었다.



“추천하시는 지역이 있으신지요?”

“상업지구밖엔 없겠지. 기왕이면 콜로세움과도 가까우면 더욱 좋겠군. 그곳엔 필요한 물자가 제법 있으니.”

“그렇습니까.”


세컨드는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쳤다.



“가시죠.”

“음.”


황제는 눈앞에 열린 공간으로 갔다. 주저나 망설임은 없다. 당당한 걸음걸이에서는 황제에 어울리는 위용만이 존재했다.


‘버러지라도 황제라는 직책의 인간은 좀 다른 걸까요.’


아무래도 좋은 평가를 하며 세컨드도 [전이문]으로 내디뎠다.





“후우. 드디어 끝났군요.”


작게 숨을 토해내며, 세컨드는 소파에 몸을 깊이 뉘었다. 물론 벨루디스의 수도, 아네픽시르에 있는 저택으로, 방금 막 일을 마치고 돌아온 길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피로가 쌓였다. 그만큼 괜찮은 부지를 고를 수 있었지만, 여러모로 진이 빨린 하루였다.


하지만 그런 세컨드를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나 보다.


똑똑.



“들어오세요.”


허가에 문이 열린다. 얼굴을 내비치는 것은 서드. 그가 손을 흔들며 여유롭게 안으로 들어온다.



“여. 수고했어!”

“웬일이야?”

“오늘은 고마웠다고. 이클립스도 좋아하더라.”

“안 그래도 아까 들은 참이야.”

“후후. 성실하고 착해.”

“어딘가의 마초 빡빡이랑은 다르게.”


피식 웃으면서 서드는 책상에 걸터앉았다. 바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할 말이 있나 보다.


서드와는 같은 집에서 지내는지라 당연히 대화 정도는 나눈다. 그렇지만 각자 할 일이 있어 생각보단 접점이 없다. 기껏 있어 봐야 저녁에 함께 식사하는 게 전부. 대화 자체가 적다.


어차피 그리 할 말도 없고······.



“일은 잘 풀린 거야?”

“당연한 걸 묻지 마, 빡빡이.”

“뭐, 그것도 그렇군. 하지만 황제가 몸소 따라갈 줄은 몰랐어. 안 그래?”


당시를 떠올린 세컨드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람이 많은 거리 한복판에 국가의 톱이 나타난 것이다. [전이문]―― 인간은 평생 구경도 못 했을 마법으로. 파격적인 행보는 둘째치고, 등장 방법이 시선을 끈다.


더군다나 변변찮은 호위도 없이 샤라즈 공작 한 명만을 대동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일반 시민이란 본디 황제의 얼굴을 모른다. 왜냐하면 만날 일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해도 무방하다. 겹치는 동선은커녕, 간혹 거리로 나오더라도 무수히 많은 병사에 가려 얼굴을 볼 기회조차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비병을 불렀다. 뭔가 굉장히 수상쩍은 녀석들이 있다는 연유로.


투철한 신고 정신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굉장히 치안이 좋고, 시민들의 준법정신도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도라는 점이 한몫했겠지만.


여하튼 제국에 대해 뜻하지 않은 수확이었다.


경비대들의 숙련도나 체계도 제법이었다. 출동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으며, 대처 또한 준수했다.


이것들은 거리의 세분화 및 파출소 형태의 중계지점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 신고에 대한 대응과 조기 대처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은 자명했다.


다만, 그러한 경비대라도 황제의 얼굴은 모른다. 그래서 규정대로 연행하여 조사하려고 했다.


경비대가 자국의 황제를 연행하려는 것이다.


이 초유의 사태는 샤라즈 공작이 나서 금세 수습되긴 했다. 그렇지만 설마 황제가 이딴 식으로 거리로 나올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하겠나.


패닉에 빠진 경비대에겐 세컨드조차 동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경악하며 급히 무릎을 꿇는 백성들도.


그나마 경비대가 호위를 자처하고 나서 설명 과정이 짧아졌으니 다행이랄까.


하지만 이후로도 고생은 끊이질 않았다. 빈 부지가 없나 보려 했건만 황제는 멀쩡하게 운영되는 건물을 추천하는 게 아닌가.


사양하는 건 당연했다. 괜한 원한을 사면 귀찮아질 게 뻔했으니까.


그러나 황제는 막무가내였다. 제법 괜찮은 부지에 자리한 숙박소로 가더니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하라고 명령했다.


그렇다. 명령이다.


제국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황제의 명령은 거부권 따윈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 숙박소의 오너는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샤라즈 공작이 내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딴 식으로 일을 처리해도 되려나 싶은 폭군의 행보다. 그렇지만 오너의 표정은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황제는 부지를 받는 대가로 칙허인을 준 것이다.


분명 손해는 막심하다. 오너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다름없다. 하지만 황제의 품위를 손상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다지만 칙허인이란 너무나도 탐이 나는 것. 더군다나 새 건물을 세울 대금도 지급해 주니 그렇게까지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결국 그대로 낙찰. 부지를 고르려던 짓이 무색하게 곧장 결정됐다.


물론 불만은 없다. 세컨드가 보기에도 황제가 지정한 곳은 접근도 원활한 최적의 부지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황제가 일이 일찍 끝났으니 같이 차를 마시자고 권유한 것이다.


말이 권유지 빚을 갚으라는 협박에 가까웠다.


당연히 그런 협박 따위 우스울 따름이다. 눈썹 하나 꿈쩍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이클립스를 걸고넘어졌다. 지금쯤 신나게 황성을 둘러보고 있을 텐데 벌써 돌아간다면 실망하지 않겠느냐고······.


황당하게도 황제는 처음부터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거다. 이클립스는 그냥 좋은 핑곗거리. 같이 오지 않았어도 별의별 이유를 갖다 붙였을 터였다.



“그렇게나 별로였어?”

“아니. 제법 괜찮았어.”


의외지만 황제와의 티타임은 정말 나쁘지만은 않았다. 황제답게 식견이 높다고 할까, 은근히 말이 통하는 것이었다. 리아가 얼마나 위대하고 존엄한 분인지 명확히 알고 있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 버러지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임에도 꽤 즐겁기까지 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버러지 따위에게 휘둘렸잖아! 짜증이 안 나게 생겼어?!”

“허······. 그건 좀 기분이 상할 만하구먼.”

“그렇지?! 너도 영 눈치가 없는 건 아니구나?!”


조금 다시 봤다. 빡빡이 주제에 공감도 할 줄 알고.



“이 굴욕을 언젠가 꼭 설욕하겠어.”

“적당히 하도록 해. 그보다 보고는?”

“이제 갈려고. 방금까지 시뮬레이션 돌려보고 있었어. 추태 따윈 보일 수 없으니.”

“직접 간다고?”

“어. 슬슬 부관이 좀 필요할 거 같아서.”

“벌써 그럴 때인가······.”

“나 혼자였으면 훨씬 빨랐어. 알잖아? 버러지들 굼벵이 같은 거. 정말 느려터졌다니까.”

“그렇긴 하지. 확실히 인간들은 여러모로 열등해. 그 부분이 귀엽지만.”


세컨드는 질린 얼굴을 했다.


뭘 어떻게 하면 버러지들이 귀여울 수 있을까······.


조금도 공감되지 않지만, 평소처럼 트집잡진 않았다. 저리 창조한 리아에 대한 불경이기에.



“근데 부관이라면 바로 만들면 되잖아? 보고할 겸이라지만 굳이 업무로서 가기엔······ 아깝지 않나? 곧 있으면 저녁이기도 한데.”

“시끄러워, 빡빡이.”

“응? 웬 짜증? ······아!”


서드가 능글맞은 얼굴이 됐다.


정말 쓸데없이 눈치만 빠르다. 아니, 사도가 이 정도의 능력도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리 달갑진 않지만서도.



“하긴 리아 님아의 신력이 줄어드는 건 참을 수 없지······.”

“바보 빡빡이랑 놀 시간 없어.”

“그래. 잘 다녀오고. 안부 전해줘.”

“응? 너는 안 가? 은근슬쩍 따라올 줄 알았는데?”

“기왕이면 나 하나만을 상대해 줬으면 싶잖아? 미쳤다고 같이 갈 리가 없지. 사도라면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텐데?”


그건 그렇다. 비단 사도만이 아니다. 리아의 손에 태어난 존재, 혹은 영향을 크게 받은 자들이라면 모두 리아와 독대를 원할 거다. 그리고 잘했다며 칭찬을 받는 것이다.


오직 그것만을 바라고, 그것만이 삶의 전부다. 그 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집 보기 수고해.”

“응. 다녀오슈.”


배웅을 받으며 세컨드는 [전이문]을 발동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주인의 성지, 나트알.


[전이문]을 빠져나오자 그 성지의 광장이 반긴다.


무심코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만큼 감격하고 더 없을 만치 영광스러운 광경이었다. 이미 완벽함에도 재차 경건히 몸가짐을 체크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 만끽하기도 전에 방해가 들어왔다.



“공간이 일렁이는 느낌에 와봤는데, 웬 꼬맹이? 게다가 이 기운은······.”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는 남자. 바로 이전 리아의 동료였기도 한 호인족의 세스타스였다.


뒤이어 한 여성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응? 세컨드?”

“오랜만입니다, 델리안.”

“음. 오랜만이구나.”


묵례로 인사를 건네니 델리안도 마주 웃으며 인사한다.



“아는 사이?”

“그렇단다.”

“리아 님의 제2 사도, 세컨드입니다.”

“아아. 어쩐지. 아가씨의 기운이 느껴진다 싶더라니.”

“갑작스레 실례했습니다.”

“됐어. 그냥 호기심에 왔을 뿐이니까. 어차피 여기엔 마법이 왕창 걸려있어서 딱히 경계할 필요도 없잖아?”


마법이란 찬크에르가 걸어둔 것을 말한다.


나트알 전체에 깔린 마법은 거의 백여 종. 그것들은 모두 초월급에 해당하며, 유기적으로 연동되게 하여 틈 따윈 없다.


공간 이동을 제한하는 것도 당연하여, 허가받지 않은 자의 연결은 단박에 끊어버린다. 혹여 적의를 갖고 있는 상대라면 연계되어 있는 요격 마법이 발동되기까지 한다. 더불어 그 요격 마법 또한 초월급. 핀포인트로 꽂히는 일격에 어지간한 상대라면 바로 저승행이다.


그나마 시전자의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즉사 마법인지라, 주변에는 피해가 없다는 점이 상냥하달까······.


사도들은 리아와 마력의 파형이 같아 침입자로서 분류되지 않는다. 만약 침입자로 분류되더라도 이 정도라면 뚫는 것은 가능하다.


단지 무조건 들킨다. 제아무리 마법에 특화된 세컨드일지라도 들키지 않고 침입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만큼 용왕이 펼친 마법들은 철저하였다.



“리아를 만나러 왔다면 촌장의 집으로 가자꾸나. 현재 그곳에 있단다.”

“네. 감사합니다, 델리안.”


처음 보는 마을 주민들이 놀라지 않게 할 요량으로 델리안이 동행했다.


세스는 귀찮은지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떠났다. 건틀릿 낀 손으로 배를 벅벅 긁으면서.


‘순순히 물러나네요? 방금까지 이쪽의 역량을 가늠했으면서. 그나저나 안 아픈가요?’


세컨드는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며 델리안과 걸었다.


이따금 주민들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델리안이 소개해 줬다. 주민들은 사도라는 부분은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폴스의 누나 같은 게 아니냐며 무척 반겨주긴 했다.


역시 리아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가족. 버러지들과 배포가 다르다.


그렇게 한동안 정중히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불순물의 기척이 느껴졌다.



“루시아스의 성녀가 와 있나 보군요. 강하게 축복받은 자도 있는 것 같고.”

“음. 이제 열흘쯤 됐구나.”

“그렇습니까······.”


이 성지에 쓰레기 오물들이 감히 흙발을 내디딘 게 몹시 거슬린다. 그렇지만 주인의 허가가 떨어진 것. 구태여 마음에 두지 않았다.



“델리안이다. 잠시 실례하마.”


촌장의 집―― 정보 그대로의 광경에 몸을 떨고 있으니 문이 열렸다.


따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매끈한 금속 같은 재질의 검은 것이 반겨줬다. 문보다도 커다란 크기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전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타이튤라? 아니, 신성을 지녔으니 엘더 타이튤라인가요? 꽤 보기 드문 종인데······ 카르마 또한 진귀하네요. 보통 악인데. 게다가 리아 님의 기운이······.”


실로 보기 드문―― 아마 세상에 이 개체 말고는 없을 것 같은 거대 거미다.


신기하게 보고 있으니, 그 거미가 허겁지겁 자세를 낮췄다.



《아, 아가씨의 사도인 줄 아뢰옵니다.》

“당신은?”

《드에입니다! 황송하게도 아가씨의 무녀로서 신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정중한 소개 고마워요. 저는 리아 님의 제2 사도, 세컨드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드에.”


세컨드치고는 무척 드물게 진심으로 드에를 반겼다.


당연했다. 버러지들은 싫지만, 드에는 엄연히 리아의 신력을 받아들인 종속. 레비아와 마찬가지로 부하로서 환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제 주제를 잘 알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한눈에 상급자를 알아보는 통찰력도 있고.



“리아 님께선?”

《촌장님과 담화 중이십니다.》

“그렇습니까······.”


실내를 둘러본 세컨드는 몸을 돌렸다.



“델리안, 안내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여기까지면 괜찮은가?”

“네.”


조금 고민했으나 델리안은 더 이상의 오지랖은 부리지 않고 돌아갔다.


‘과연 리아 님께서 인정하신 자네요.’


모처럼 마음 써준 것도 있겠다, 세컨드는 그녀가 안 보일 때까지 배웅해줬다.



“자, 그러면 저는 기다리도록 할까요? 드에는 할 일을 하세요.”

《엣?! 저도 함께 기다리는 편이······.》

“아뇨. 볼 일이 있는 건 저입니다. 부여받은 사명을 우선하도록 하세요. 리아 님의 무녀라면.”

《앗. 예······.》


역시 단숨에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인다. 입장 차가 있다 보니. 그렇지만 드에는 순순히 인사를 건네고는 어렵사리 발걸음을 돌렸다.


‘착한 아이네요. 레비아와 마찬가지로 회의에 참석시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아니, 그것보다 폴스는 어째서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거죠?’


기본적으로 사도는 완벽하다. 리아가 그리 창조하였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제각각 부여된 성향으로 인해 개성이라는 게 생겨났다. 이것으로 어느 한 부분도 모나지 않은 완벽한 육각형이 틀어졌다. 각자 특화된 점은 바로 이것으로 생겨난 것이다. 능력의 총량 자체는 어느 사도이건 동일하다.


성격이나 가치관도 달라 각자의 우선순위도 조금씩 다르다. 1순위만큼은 리아로 고정이지만.


리아가 정한 것이니 당연히 불만 따윈 없다. 그렇지만 사도는 주인이 실망하게 않게 언제나 정진해야 하는 법. 리아를 위해서라도 만사 관심 없는 폴스의 근성을 뜯어고쳐야겠다.


다음에 만나거든 꼭 주의를 주겠다고 다짐하며, 세컨드는 거실을 둘러봤다.


정보 그대로인 거실은 역시나 성스럽다.


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장소에서는 제아무리 사도라 할지라도 경거망동할 수 없는 무게가 존재했다. 내심 이런 장소에서 지내는 건가 싶어 폴스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저 또한 리아 님의 사도입니다.’


마른침을 삼키고, 세컨드는 거실에 놓인 탁자 앞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이것이야말로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올바른 자세. 최대한으로 예를 담아 경의를 표한다.


만족은 영원히 할 수 없다. 스스로 합격점을 간신히 내리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 한 시간이 흘러 주인의 기척이 다가왔다.



“응?! 세컨드?!”

“리아 님께 인사드립니다.”


화들짝 놀란 리아는 허겁지겁 몸소 일으켜주었다. 그 넘치는 자비심에 세컨드는 무심코 눈물을 흘렸다.



“으에?! 괘, 괜찮니?!”

“예. 연락도 없이 찾아온 무례, 이 목숨으로 달게 받겠습니다.”

“아, 아니. 무, 무슨 무례라고. 괜찮으니까 지팡이는 내려놓자. 응?”

“옛!”


역시나 자비롭다. 제 욕심으로 찾아온 불손한 종을 전혀 나무라지도 않고.


비할 바 없는 최고의 주인을 모시는 자신은 이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재차 그 사실을 상기하며 세컨드는 충성심을 다졌다.



“리아야, 이 아이는?”

“아, 할아버지.”


리아의 조부, 에이브안이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본다.


세컨드는 리아의 손에 의해 그의 앞에 서게 됐다.



“세컨드라고 해요. 폴스의 누나 격인 아이에요.”

“아아. 그런 거구나. 잘은 모르겠다만 확실히 낯설지가 않아.”


과연 리아의 조부. 폴스의 말대로 마법의 지식이 빼어나다. 보아하니 신력도 슬슬 느끼는 수준인 것 같고.


세컨드는 예의를 갖춰 깊게 머리를 숙였다.



“리아 님의 제2 사도입니다. 조부님을 만나 뵙습니다.”

“그리 어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리아는 몰라도 난 평범한 할아버지 아니더냐.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히 있거라.”

“예!”

“후후. 차를 내오마. 쉬고 있으려무나.”

“돕겠습니다! 리아 님,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으응. 아니, 나도 같이 갈게.”


리아를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대역죄다. 그렇지만 여기서 가만히 있기에는 면목이 없다.


다행히 리아의 허가도 떨어졌다.


세컨드는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즉시 잔부터 시작하여 차를 내릴 준비를 하였다.



“조부님께선 히비스커스입니까?”

“어어. 그래. 그거면 되겠구나.”

“네!”


혹시 몰라 물었으나, 이번에도 에이브안은 평소 자주 마시던 히비스커스다.


망설임도 없이 세컨드는 위쪽 선반을 열었다. 안에는 수십 종의 찻잎이 있었는데, 거기서 히비스커스를 꺼냈다.



“리아 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괜찮으십니까?”

“으응.”


선반의 제일 앞을 차지한 커피 원두를 꺼냈다.


원두는 다른 찻잎들과 달리 엄청 소중히 보관되어 있는데, 산지 또한 아니마무스가 있는 환상향에서 자란 초특급 품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커피보다는 영약에 가깝달까.


그것들을 찬크에르가 슬쩍 따왔고, 손수 가공까지 마쳤다. 그 결과, 인간 세상에서는 구경도 못 할 품질의 원두가 탄생했다.


이만한 물건이니 담은 병 또한 그의 특제로, 풍미가 손상되지 않게 [영구 동결]과 [충격 무효], [보존]이 부여된 일급품이었다. 세컨드로서는 [영구 동결]이 걸려있는데 굳이 다른 두 마법이 더 필요한가 싶지만······.


어쨌거나 불만은 없고, 마법으로 차와 커피를 내렸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완벽하게······. 옆에서 보면 저절로 차와 커피가 나타난 것처럼 보였으리라.


물론 세컨드 자신의 것도 준비했다. 불경하게도 리아와 같은 커피로. 아이스는 아니었지만.


참고로 남은 찌꺼기는 한순간에 바짝 건조해 보관하는 통에 각각 넣었다. 보아하니 퇴비와 연구 등에 활용하는 듯했다.


세컨드는 그렇게 곁들일 다과도 착실히 담은 쟁반을 [염력]으로 띄었다.



“자. 가시죠.”

“허허. 좋은 걸 구경했구나. 그렇지, 리아야?”

“어, 네.”


너무 까불었나 싶지만 주인의 얼굴은 밝다. 안심하고 앞서 가는 둘의 뒤를 쫓았다.


거실 테이블에 준비를 마치고, 세컨드는 주인과 마주 앉았다.


리아는 자신의 사도가 내린 커피가 무척 궁금했는지 곧장 입을 가져갔다. 곁에 앉은 에이브안도 꽤 흥미가 동한 얼굴로 히비스커스 차를 기품 있게 마셨다.



“입에 맞으십니까?”

“응. 맛있어! 그렇죠, 할아버지?”

“음. 무척이나 잘 우려냈구나.”


제법 조마조마했지만, 합격점에는 간신히 든 모양이다.


살짝 긴장을 덜고 세컨드는 주인과 티타임을 가졌다. 그것은 무척이나 황홀하고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절대로 [기억 공유]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당분간 폴스를 닦달하는 건 참도록 하죠.’


반성과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세컨드는 잔을 내려놨다.



“오늘은 어쩐 일이니?”

“본론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감히 한 가지 건의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건의······?”

“예. 이곳에 관리자를 두심은 어떤가 해서······.”

“응?”


리아가 고개를 꼬았다. 당최 무슨 소리냐는 듯이.


‘저라는 사람이 이런 실수를?! 리아 님이 이딴 사실을 모를 턱이 없는데!’


지고의 주인에게 이 무슨 망발인가. 주제를 몰라도 유분수지.


세컨드는 벌떡 일어나고는 즉시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붙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으나 리아의 마법으로 인해 미처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강하게 제지당한 건 아니었다. 움직이려고만 하면 가능하였다. 그러나 주인의 의사를 어찌 무시하겠나. 가만히 선 채로 하명을 기다렸다.



“갑자기 왜 그러니? 자자. 괜찮으니까, 편히 앉아서 얘기하지 않을래?”


그리 말하면서 리아가 곁눈질로 에이브안을 보았다.


왠지······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아. 그런 것입니까······.’


세컨드는 순식간에 정황을 파악했다.


주인이 무얼 노리는지······.


사도로서 따르는 건 당연한 도리. 되려 계획을 망치려 한 못난 종을 야단치지 않은 것에 가슴이 벅찼다.


‘모든 것은 리아 님의 뜻대로.’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하지 못한다.


결연하게 마음을 다잡으며 세컨드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죄송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아까 하려던 말이 무엇이려나~? 관리자를 두라던가 그랬던 거 같은데······.”


힐끔······.


리아가 재차 에이브안의 눈치를 살폈다.


‘맡겨만 주십시오!’


여기서부터는 사도의 능력을 시험받는 것. 이미 한 번 실수를 저지른 이상 더는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


실망하는 리아를 그린 세컨드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무섭다······.


창조된 이래 처음으로 극한에 다다를 긴장이 엄습했다. 정신을 짓누르는 중압감마저 느낀다. 앞서 시험을 받은 퍼스트도 이러한 기분이었나 싶다.


그러나 이 앞이야말로 바라는 영광이 있다.


이 두려움조차도 리아가 내리는 시련. 그렇다면 망설일 것은 없다.


필사의 각오와 함께 세컨드는 과감하게 이 전장에 발을 디뎠다.



“우선, 관리자라 말씀드렸다만, 이 성지를 담당하는 수호자를 일컫는 의미였습니다.”

“수호자······?”

“이미 성지에는 수호를 위한 대비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건 주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소 미흡한 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아무 방해가 없다는 가정하지만, 저희 사도 클래스라면 능히 돌파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음······.”


순간 리아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턱에 손을 올리고는 몹시도 진지하게 고뇌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을에 상주하는 수호자―― 넘버즈가 있었으면 한다?”

“예. 방위 측면에서 보탬이 될 것은 자명. 평시에는 촌장님의 집사로서 활약이 가능할 겁니다.”

“방위는 그렇다고 치지만, 할아버지의 집사?”

“오늘이 좋은 예시입니다. 간혹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차를 내오는 잠시라지만 혼자 놔두는 것은 손님에게도, 촌장님에게도 부정적입니다. 그럴 때 집사가 있으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허튼짓할 틈도 없고 말이지?”

“혜안이십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기본적인 상식이다.


실제로도 직급이 높은 사람들은 이러한 연유 때문에 밑의 사람을 둔다. 더불어 얕잡아 보지 않게 되도록 좋은 집사를 구하려 한다.


베르다드에서 찬크에르가 절찬리 대쉬를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용왕답게 그의 능력은 일품. 기품조차도 넘쳐흘러 모자람도 없다. 학생 수준의 반쪽짜리 귀족에겐 재차 만나기 힘든 우량 매물인 것이다.


괜히 매일매일 여기저기 달려든 게 아니다. 암만 주인이 있다지만 탐이 날 수밖에 없다.


이런 것 따위 리아는 당연히 안다.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 문답을 주고받느냐? 당연히 에이브안 때문이다.


에이브안은 리아의 조부임과 동시에 촌장을 역임하고 있다. 멋대로 사도를 들일 순 없었고, 집의 주인인 그의 허락이 필요했다.


리아가 노린 계획은 바로 이것이었다. 에이브안의 설득 말이다.


보기보다 에이브안은 고집이 세다. 일조차도 철두철미하여, 믿을 만한 자가 아니고선 손도 못 대게 한다.


그러한 에이브안이다. 리아는 오래전부터 설득을 위해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망쳐버릴 뻔했다. 하지만 과연 지고의 주인. 이 정도의 돌발 상황쯤은 지장도 없나 보다. 당혹스러워하는 낌새도 없이 과감하게 진행한다.


세컨드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말을 맞춘 것뿐. 모든 건 리아의 계획대로였다.



“할아버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합리적인 의견 뒤에 이어지는 질문. 상대를 압박하는 것과 다름없다.


거기에 더해 본인 스스로가 선택했다는 책임감을 부여해 버렸다. 양심이 있다면 쉽게 뒤엎기란 힘들 것이다. 혹여 마음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럼 왜 당시에 그런 소릴 했느냐.’며 되받아칠 구실이 있다.


과연 리아. 고단수다. 빠져나갈 틈은 없다.



“확실히 마을의 방비가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지. 밭이 넓어지기도 했고······.”


노림수대로 늪에 빠진 에이브안은 깊은 침음을 흘렸다.


썩 내키지 않은 것이 보인다.


폴스처럼 손님으로 머무는 정도야 그러려니 싶었을 것이다. 외형도 어린아이이고.


하지만 계속 머문다고 하면 아무래도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수발까지 들어준다고 하면 거부감이 생길 만도 하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늙었다는 걸 인정하는 꼬락서니라서.


귀족이라면야 당연한 일이지만, 에이브안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 필시 저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싫다고 하기에는 제삼자인 세컨드의 지적이라는 게 걸린다. 누구든 자신이 기본 예절도 모르는 인간으로 비치긴 싫으니 말이다.



“그런데 손님 대접이라든가, 생활면에선 어떨지 염려가 되는구나. 내가 아는 바가 없다 보니.”

“어······ 능력면에서는 아마 부족함이 없을 거예요.”


당연하다. 사도의 제작 시 필요한 관련 지식을 주입해 줄 테니.


부족함 따위 있을 수 없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결국 퇴로가 막힌 에이브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나로서는 필요한가 싶지만, 이것 또한 시대의 흐름이겠지. 리아가 필요하다고 여기면 생각대로 하려무나.”

“정 불편하시면 다른 곳에 지내게 한다든가 해도 되는데요?”

“아니. 기왕 한다면 철저하게 해야 한단다. 어설프게 했다간 이도 저도 아니게 되지 않니?”

“그건 그렇죠.”


애당초 마을에 사도를 배치하려 한 리아다. 여간해선 꺼리지 않는 에이브안을 보고서도 철회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던 리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빛이 모여든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고, 이내 그 자리에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형의 베이스는 라프리트의 어머니, 마리아나였다. 물론 원본과는 상당 부분이 달랐다.


먼저 눈매.


마리아나의 날카로운 눈매가 상당히 완연하게 바뀌었다. 얼굴의 형태 또한 보다 부드럽게 다듬어졌다.


다음은 머리카락.


원본의 에메랄드 빛 대신 검은빛이다. 그 순도는 가히 찬크에르와도 비견될 정도로 짙었다.


전체적으로 귀엽고 상냥해 보이는 인상으로, 원본인 마리아나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이에 어울리도록 착용한 의복 또한, 마리아나는 어울리지 않을 하늘거리는 정갈한 느낌의 새하얀 드레스다. 당연히 모두 신기다.


그리고······ 순백의 날개 한 쌍이 돋아나 있다.


그렇다. 이번에 리아가 만든 사도는 천사였다. 심지어 머리에는 떡하니 은은하게 빛나는 천사의 고리가 떠올라있기까지 했다.


‘카르마 또한 선이네요. 당연하겠지만······.’


손발로써 활용되는 앞선 넘버즈와 달리 이 사도의 목적은 수호. 각자 위치와 환경, 쓰임이 다르기에 카르마―― 성향도 달리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앞선 사도들의 카르마는 중립과 악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세컨드와 폴스는 극악이다. 천사는 현재 사도 중 유일한 선이었다.


마침내 리아의 마력이 주입된 천사가 눈을 떴다. 그 눈의 색 또한 심연과 같은 검은색이었다.



“안녕?”


리아의 인사에 천사는 가슴에 손을 얹고는 조신하게 무릎을 꿇어 예를 취했다.



“리아 님께 인사드립니다.”

“응. 반가워. 피프스 다음이니까······ 식스네. 네 이름은 식스야.”

“멋진 이름을 내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리아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그리고는 천사―― 식스를 손수 일으켜 세웠다.


그 자비심 넘침에 식스는 벅차오른 얼굴이 됐다.



“일단 소개부터 할게. 여기는 같은 넘버즈의 세컨드야.”

“반갑습니다, 식스. 앞으로 함께 리아 님의 힘이 되도록 하죠.”

“네! 잘 부탁드릴게요, 세컨드.”


선의 성향답게 식스는 꽤 발랄한 성격이었다. 꺼리는 것도 없이 방긋 웃으며 세컨드의 손을 감싸듯 양손으로 잡았다.


신장 차가 있다 보니 올려다보는 모습이었는데, 익숙하진 않지만 별로 나쁜 기분은 안 든다. 오히려 내심 저 순진무구함을 맘껏 질척하게 더럽히고 싶다.


물론 그냥 단순한 욕구일 뿐, 같은 사도이자 동료에게 실행할 마음 따윈 아예 없다.



“이쪽은 우리 할아버지이셔. 우리 마을의 촌장님이기도 해.”

“아, 예!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촌장님!”

“어어······. 그래. 반갑구나.”


식스는 이번에도 손을 와락 잡았다.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그 모습이 에이브안은 영 어색한가 보다. 뭐라 말하기 힘든 얼굴로 리아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스, 네가 할 일은 알지?”

“네. 촌장님을 도와 이곳 나트알을 지키는 거죠?”

“응.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도와줬으면 한단다. 마을 주민들과도 잘 지내주고.”


척.


식스는 귀엽게 손을 올려 경계했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응. 부탁할게.”


그렇게 일단락되고, 리아는 모두 자리에 앉게 했다. 식스는 세컨드의 옆이었다.


다만, 빤히 차와 다과를 쳐다보는 게 신경 쓰인다.


이제 와 새로 준비하기에는 그러니 선배의 도리로서 차와 다과를 양보했다. 그랬더니 활짝 웃음꽃이 핀 식스는 고맙다며 냉큼 받아 갔다.


‘다람쥐 같은 게 제법 귀엽네요.’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굉장하구나. 내 손녀는 어느새 이리 자란 것인가······.”

“에헤헤. 학원에서 열심히 배웠어요.”

“후후. 그래. 노력 많이 했구나.”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텐데도 에이브안은 상냥히 웃으며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절대 학원에서 배워 사도를 창조한 게 아님은 뻔히 꿰뚫고 있었다.



“아. 그런데 세컨드의 볼일이 아직이네. 뭣 때문에 찾아왔다고 했더라······?”

“부관 문제로 찾아뵙게 됐습니다.”


세컨드는 고개를 꼬는 리아에게 추가 설명을 했다.



“아시다시피 공정 상인 조합은 순항 중입니다.”

“응. 조만간 인근 지역에 지부를 낸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우선 콜다리움 방면으로 나아가면서 길을 확장하고, 이후 북, 동, 남으로 진출할 계획입니다.”

“콜다리움이면 세인트리안 쪽인가······. 아아. 타국으로의 진출을 염두에 두는 거네. 그러고 보니······ 루비아 씨에게 연락이 왔었는데. 분명 황제 씨로부터 허가를 받았다나?”

“예. 이것이 허가증입니다.”


리아는 찬찬히 간결한 허가증을 읽어 내려갔다. 흥미가 동한 에이브안도 곁에서 읽었다.



“시원하게 허가해 줬네? 근데 너무 이르지 않니? 이제 지부를 내려 하는 시점인데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우선 확장이 급격히 빨라질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세컨드가 엄청 바빠질―― 아아. 그러니까 부관인 거구나?”

“예. 그들에게 제국과 차후 공국, 세인트리안 등을 맡길 생각입니다.”

“세인트리안까지? 허가해 주려나······?”

“당장은 어렵겠지만, 주변국의 주류 조합으로 자리매김하면 별수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하긴. 그래서 내게 바라는 건 부관을 만들어 달라는 거니?”

“아, 아닙니다. 겨우 이러한 일에 사도는 필요치 않습니다.”


까놓고 말해 필요치 않은 것을 넘어 방해다. 모처럼 리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졌는데 말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나눌 사도는 단언컨대 없다.


부관은 예외다. 리아가 만들지 않은 존재 따위 그저 쓰기 쉬운 장기 말에 불과하니.



“그럼?”

“직접 만들려고 합니다.”

“어? 할 수 있니?”

“상당히 열화판이 되겠지만 가능은 합니다. 그렇지만 마력의 소비가 있다 보니······.”

“아하. 보충이 필요하다는 거구나?”

“면목이 없지만.”

“아냐. 뭘 그런 걸로.”


주인의 상냥함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거 같다. 하지만 추태를 보일 순 없어 눈에 힘을 줬다.


‘자자. 집중해야 합니다.’


리아의 면전에서 실패하는 것만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안 그래도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실패한다면 자괴감에 바로 목숨을 내놓을 것이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작업이지만 세컨드는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지팡이를 살짝 내리찍었다.


앞선 리아 때처럼 빛이 모여든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건 쌍둥이 남매. 훤칠한 신장의 미남 미녀였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휴휴. 다행히 코로나가 금방 나았습니다

벌써 3번째다 보니 익숙해졌는지 별로 아프지도 않았고요

다만 머리만은 아픈지라 조금 쉬게 되었네요

여튼 무사히 복귀했고, 다음화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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