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9막 3장 - 늑대와 달 (5) | Isa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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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심문. 재밌겠다. 어떤 마법을 사용해볼까. 비밀 실토 같은 마법은 주문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더 재밌는 거다.
기대된다. 어떤 방법으로 비밀을 입에서 끄집어낼까. 입가에서 실소가 새어 나온다.
"저기 마법사님."
글린다가 나를 부른다. 뒷골이 서늘하다. 도대체 뭐 때문에 저런 음산한 목소리지?
침을 삼키고 뻣뻣한 목을 돌린다. 글린다가 웃고 있다. 무서워서 딸꾹질했다. 글린다의 옆에 서 있는 맥과 에스나도 몸이 굳어 있다.
"잠깐만 이리 와 보세요."
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인다. 공포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이건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이다. 안 가면 안 되겠지? 전력을 다해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지구에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 글린다를 바라본다.
좋아. 새로운 깨달음. 옛말은 다 거짓말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즐기라는 걸까.
"얼른 오세요."
"네."
작게, 글린다에게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쉰다. 글린다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 글린다가 너무 무섭다.
"고개 들고 저 좀 보세요."
정말 오기 싫었지만, 오고야 말았다. 고개를 숙인 내 앞에 글린다의 신발이 보인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린다.
글린다의 얼굴이 보인다.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웃고 있다. 입은 말이야.
눈을 바라본다. 차갑게 얼어버린 눈동자. 웃고 있는 입가 대비되어 더욱 무섭다.
"마법사님. 우리 대화 좀 하죠?"
"네. 그럽시다."
최대한 공포심을 숨긴다. 맹수는 사냥감의 공포를 본능적으로 느낀다. 내가 두려워한다는 걸 들키면 잡아먹힐 뿐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포로를 심문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낼 계획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심문하실 거죠?"
"어······. 고문?"
글린다의 표정이 굳어버린다. 맥도 표정이 좋지 않다. 에스나도 작게 한숨을 쉰다.
내 대답이 잘못된 건가? 고문은 흔한 심문 수단이잖아? 글린다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진다. 내가 잘못한 게 맞나 보다.
"마법사님. 제정신이세요?"
"제 생각일 뿐이지만, 저는 제정신이었던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기랄. 이것도 틀린 답변이다. 글린다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올라가 있던 입꼬리도 내려와 있다. 에스나는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쉰다.
"마법사님. 여기 앉아 보세요."
글린다가 바닥을 발로 두드린다. 엄청 화났다. 농담하면 안 되겠다.
얌전히 지정된 자리에 앉는다. 고개를 숙이면 안 된다. 떨리는 눈동자로 글린다를 바라본다.
"왜 무릎을 꿇고 계세요?"
"제가요?"
아래를 내려다본다. 정말 내가 무릎을 꿇고 있다. 나는 일부러 꿇은 적이 없는데? 설마. 글린다가 무서워서 본능적으로 꿇은 건가.
"편하게 앉으세요."
"알겠습니다."
자세를 고쳐 편하게 양다리를 교차해 앉는다. 흔히 말하는 양반다리. 그런데 이게 편한가? 장소가 편하지 않은데?
글린다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조금 화가 가라앉은 거 같다. 다행이다. 소리를 지를 거 같지는 않네.
"마법사님. 아까 무슨 말씀을 하셨었죠?"
"고문으로 정보를 뽑아낸다고 했습니다."
글린다가 한숨을 쉰다.
"지금 장난하세요?"
"아니. 장난은 아닌데."
"그런데 어떻게 고문이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요?"
"가장 효율적 일 거 같아서?"
더 깊은 한숨.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히익!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 정도로 글린다의 외침은 파괴적이다.
한 번 소리를 지른 글린다는 진정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다.
"고문은 옳지 않아요. 최후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까지는 몰라도 시작부터 고문은 안 돼요."
"죄송합니다."
"그럼 이제 어떤 방식을 사용하실 거죠?"
그러게. 나도 의문이다. 고문은 안 되고. 그렇다고 내가 심문 기술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지?
"협박을 하나?"
글린다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쉰다. 이것도 아닌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떠오르는 방법이 그런 거밖에 없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머리를 긁으며 웃어 보인다.
"에스나는? 뭔가 방법이 떠올라?"
에스나는 잠시 턱을 잡고 고민을 한다. 길지 않은 고민이 끝나고 에스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고문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멍청이.
"뭐라고 했어?"
글린다가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으며 고개를 돌린다. 에스나는 글린다의 눈빛을 받고 뒤로 물러선다.
"글린다?"
에스나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담겨 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감은 참 좋아요. 한참이나 에스나를 바라보던 글린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에스나도 별생각은 없어 보이네요. 좋아요. 마법사님이 알아서 해 보세요."
글린다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린다. 뭐야. 이럴 거면 난 왜 부른 거야?
약간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뭐라고 할 용기는 없지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도 같이 갑시다."
포로들을 향해 걸어가는데 뒤에서 에스나가 나를 부른다. 에스나는 글린다를 지나쳐서 나를 향해 빠르게 걸어온다. 저건 글린다를 피해서 도망치는 거다.
"그런 눈동자로 보시면 상처받습니다."
하지만 아까 그 말은 정말 한심했는걸. 한숨을 쉬고 포로들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잡혀있는 다섯 명은 아직도 기절해 있는 상태. 슬슬 깨워볼까.
"이보셔들. 이제 슬슬 일어나지?"
장갑을 낀 오른손 손가락을 튕긴다. 장갑에 박혀 있는 파란색 보석이 빛을 내면서 깨져버린다. 그리고 포로들의 머리 위에 거대한 물방울이 하나 생겨난다.
다시 손가락을 튕긴다. 거대한 물방울이 터지면서 밑에 있는 포로들의 얼굴로 쏟아져 내린다.
"크허억. 푸억."
매번 보아왔던 반응을 보이며 포로들이 하나씩 고개를 든다. 카마엘라를 제외하면 전부 처음 보는 얼굴이다.
"우리는 잡힌 건가?"
카마엘라는 침착한 목소리로 나를 바라본다. 일어날 줄 알았다는 목소리다. 다른 묶여 있는 사람들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잘 알고 있네. 그럼 질문에도 순순히 대답해줄래?"
모두 일제히 입을 다문다. 말해줄 생각이 없다 이거네.
에스나를 바라본다. 에스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협박해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화염구."
주문서가 자동으로 찢어진다. 역시 마법 장비는 최고야.
손에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생겨난다. 평범한 사람 정도라면 순식간에 재로 만들 화염구. 늑대인간들이라 한 번에 죽지는 않지만.
"이래도 말 안 할래?"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슬슬 열이 받을 거 같은데. 에스나를 바라본다. 에스나는 고개를 젓는다. 고문은 안 되는 건가.
귀찮은데. 어디 좋은 방법 없나?
"안돼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높은음의 외침이 들려온다. 무너진 건물 틈에서 작은 아이가 하나 달려온다.
"카밀!"
그 꼬맹이? 카밀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상당히 급하게. 피가 흐르는 무릎을 가진 채로.
꽤 먼 거리를 순식간에 달려온 카밀은 내 앞을 막아선다.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가 엿보인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카마엘라를 지키겠다는 얼굴이다.
"어르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카밀! 얼른 도망가거라!"
카마엘라 뿐만 아니라 다른 포로들도 카밀에게 도망가라 외친다. 그러나 카밀은 나를 가만히 노려본다.
손에 올려진 화염구를 없애버린다. 더 재미난 게 떠올랐다.
"이봐. 너희."
카밀 너머의 묶여 있는 포로들에게 말을 건다.
"내가 방금 새로운 협박 거리를 찾았거든?"
"네놈!"
나를 향한 고함과 욕설은 내 손이 카밀에게 다가가자 뚝 끊겼다. 히히. 재밌다.
"성격이 그렇게 나쁘셔서 친구도 없으셨겠습니다."
옆에서 에스나가 비꼬고 있다. 적당히 무시하자. 무서운 건 글린다지 에스나가 아니다.
"어떡할래?"
카밀과 카마엘라, 묶여 있는 다른 포로들, 에스나 심지어 뒤에 있는 맥과 글린다까지.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노려본다.
"나는 성격이 나빠서 오래 기다리지 못한다?"
포로들이 시선을 나눈다. 그리고 카마엘라가 카밀을 바라본다.
대충 시선의 의미는 눈치챘다. 오른손가락을 한 번 튕긴다.
꼿꼿이 서 있던 카밀의 몸이 무너져 내린다. 옆에 있던 에스나가 카밀을 잡아챈다.
"그냥 재웠을 뿐이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마."
시선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이제 이야기해 줄 거지?"
카마엘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포로들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뭘 물어보지? 질문할 거리는 생각해 둔 게 없는데. 옆에 서 있는 에스나를 슬쩍 바라본다.
에스나는 내 시선을 느끼고 짧게 한숨을 쉰다. 고개를 돌려 포로들을 바라본다.
"도대체 당신들은 정체가 뭡니까? 늑대인간이라는 게 흔한 존재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질문부터 하는구나. 이런 건 조금 배워둬야겠다.
"저희는 란타제국 시절부터 내려온 늑대인간의 혈통입니다."
확실히. 늑대인간이라는 게 혈통으로 내려오기도 하지. 저주나 마법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이 근처에 존재하는 마을들은 전부 늑대인간의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숫자가 몇이나 되는 겁니까?"
"최근 수가 급격히 줄어서 200이 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카마엘라는 말을 줄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을은 완전히 부서졌다. 사람들은 전부 죽어 있다. 살아있는 마을 사람들은 포로들과 카밀이 전부.
조금 심했다는 자각은 있다. 하지만 글린다를 죽이려고 했던 걸.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런 부분은 관심 없습니다."
에스나가 카마엘라의 말을 끊는다.
"우리는 왜 공격한 겁니까?"
"저희의 비밀이 밝혀질까 두려웠습니다. 원래는 그냥 보내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카마엘라는 눈을 들어서 에스나를 바라본다. 에스나가 조사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죽이려 들었다는 말이다. 이 인간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는 게 심하네.
"도대체 무슨 비밀이기에 그런 겁니까?"
그러고 보니 에스나는 이 상황에서도 존댓말을 쓰네. 습관이 돼 버린 걸까.
카마엘라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한참을 머뭇거리며 입술을 혀로 핥는다.
"사실은···."
슬슬 지루해지려던 찰나 카마엘라가 입을 열었다.
"카밀은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 쓰러져 있는 카밀을 바라본다. 카밀의 행동을 떠올려 본다. 평범한 거 같은데.
고개를 돌려 카마엘라를 바라본다. 말을 할 게 있으면 똑바로 해줬으면 한다.
"카밀은 인공생명체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이해 못 하겠다. 고개를 돌려 에스나를 바라본다.
"호문쿨루스라는 겁니다."
아. 그건 뭔지 안다. UMO에도 있거든. 연금술을 기반으로 한 마법 생명체. 나도 만들려면 만들 수 있다.
"진짜로?"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지 않겠습니까?"
카마엘라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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