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악연 끊어내기. (3)
늦은 밤.
현우에게 걸려온 전화는 유주였고, 현우는 한숨부터 쉬고 있다.
평소에 별로 좋은 말들이 오고 가지 않았기에, 또 좋지 않은 말이 나올까?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오빠야! 안 자고 있네?!"
생각보다 밝은 목소리의 유주. 그리고 현우에게, 아까 화내서 미안하고, 엄마는 일단 생각하지 말고, 잘 만나자는 말을 한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 현우도 기분 좋아하며, 평소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다. 문득, 민수 생각이 난 현우. 민수는 유주도 한번 만난 적이 있어, 아는 사이였다.
"유주야! 민수 알지?! 걔 이번에 결혼한다네~!"
"..."
그러자 말이 없어져 버린 유주. 현우는 핸드폰이 이상한가 싶어, 귀에서 떼어 확인하는데, 그때 유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빠! 그냥 헤어지는 게 맞겠다.."
"응?! 뭐?!"
유주는 오빠의 친구, 민수가 결혼한다는 소리를 듣자. 한숨을 쉬며, 헤어지자고 한다. 현우는 당황스러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유주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내가 계속 붙잡고 있으면, 오빠 나이도 있고, 좀 더 지나면, 좋은 사람 다 놓치고, 나만 나쁜 년 되니까. 그냥 헤어지자~"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유주는 자기 마음 편하자고, 현우를 버리고 있다.]
"진심이가?"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하자..."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배신감이, 현우에게로 밀려 오기 시작한다.
언젠가 부터 유주의 입에서 나오던 말이 있었다.
[결혼 할 사이인데 뭐...]
그 말은 엄마인 잔나비가 해준 말이었고, 현우도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히는...
[결혼 할 사이인데, 그 정도는 받아도 되지!]
순진하다 못해 바보 같은 현우는 이렇게 배신 당할지도 모르고, 자신의 것을 남김없이 다 유주에게, 유주 집안에게 퍼주었다.
[정말, 병신 같은 짓을 했다.]
현우가, 무슨 말을 해도, 헤어지자 하는 유주.
현우는 알겠다며 돌려줄 게 있으니, 주말에 만나자 하고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서 현우는, 온 몸에 떨림이 멈추질 않는데...
마치 전생에 용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잔나비를 따라가 버린 우우처럼, 현생에서도 우우의 환생인 유주는, 현우의 모든 것을 다 빼앗은 뒤, 엄마인 잔나비에게로 향한다.
...
시간이 지나고 주말.
몇 년을 만나온 시간이 무색하게, 오늘은 헤어지는 날이다.
감정이 뒤숭숭한 현우. 하지만 그도 마음 먹었던지, 현우의 차 뒷자리에는, 유주의 물건들이 실려 있다.
집에 유주의 물건이 몇 개 있어 가져다 주려고 가는 현우.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저 허탈하다...
[나의 귀한 시간을 모두 너에게 주었지만, 너는 배신했고, 이런 소리를 듣는 너는, 자신도 할 말 많다고 했지만, 결과를 봐라. 네가 잃은 것이 있는지, 나는 네가 버린 것이고, 너는 잃은 게 하나도 없다.]
담담한 표정의 현우는, 유주에게 물건을 돌려주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물건이 많다.
참... 짐 들고 끙끙거리고 있는 모습에, 어차피 이제 만날 일도 없을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집에 짐을 들어주기로 한다.
열린 현관문 앞에 짐들을 놓아주고, 유주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자주 왔던, 그 집에 안쪽을, 쳐다본다.
현우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고개만 돌리면, 하나씩은 현우가 선물해 준 것들... 저기 저 보이는 제습기도, 빨래에서 냄새가 많이 난다 하던 유주 때문에 샀던 것. 인형이며, 노트북, 아이패드까지...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참 한심하다...
내 옷이나, 신발이나, 사고 다니지... 무슨 내가 아빠도 아니고...
티격태격, 몇달 간 싸우다 보니 지칠 대로 지친 현우. 이제 유주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이제 내가 없으니까, 엄마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 이제 서로 앞에, 나타나지 말자. 간다~"
"..."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현우. 알고 지낸 세월이 길어 정이 깊었지만, 그 만큼 배신감도 크다.
곧 바로 차로 돌아온 현우는, 집으로 향한다. 운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몸이 떨리는 현우.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
나이는 많아졌고, 모아둔 돈은 유주에게 다 써버려, 앞날이 막막하다.
그때 갑자기, 예전에 유주가 장난스럽게 했던 말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나니까 오빠 만나주는 거야! 오빠 또래는 만나기 버거울 걸?]
생각해 보면, 이 말도 엄마인 잔나비에게 배웠을까? 완벽한 가스라이팅을, 내게 하고 있었다.
슬픔보단 치욕스러움이 더욱 끓어 오르는, 그런 마지막 날이다...
...
이번 일을 겪으며, 세상에 가족 같은 관계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가족만이 있을 뿐. 가족 같은 관계는 없다.
유주와 헤어지고 난 다음. 유진이와 상훈이 또한, 소식을 단 칼에 끊어 버린 걸 보며, 현우는 자신이 쓸데없는 시간을 보냈구나 하고 자책하고 있다.
일은 손에 잘 잡히지 않고, 힘들어 하고 있을 그때.
마침 같이 일하던, 형이 빠르게 눈치채고 현우에게 말을 건다.
[이름: 김문무, 현우보다 4살 형이고, 잘~생겼다!]
"현우야! 헤어졌나?"
"네..."
"일은 형이 좀 더 할 테니까, 단순한 것 들만 해줘~!"
[현우의 일은 건축이기에, 힘든 일이 많은데...]
"아니에요 형! 제가!"
그러자 웃으며 고개를 흔드는 문무형.
"내가 오래 사귀다가 헤어져 봐서 잘 알아! 그거 오래가,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그러니까 맘 잘 추슬러~"
"네... 감사합니다.."
큰일이 있을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현우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현우의 이별 소식은 동네 방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져나간다.
멍하게 일하는 현우. 그때 울리는 핸드폰.
"여보세요~"
"현우야! 우초 아저씨다 헤어졌다면서?!"
[대체 어디까지 소문 난 것이야?!!!!!]
오랜만에 연락 온, 감우초 아저씨는 일이 끝난 뒤 신당으로 오라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감우초, 남자 무당이며, 현우와 어릴 때 부터 알던 사이다.]
...
일이 끝난 뒤.
감우초의 신당 앞.
일단 오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혼자 있고 싶다. 우울하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 찰나!
-끼이익!-
신당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열리고, 그곳으로 웬 하얀 호랑이 한 마리의, 뒷모습이 언뜻 보인 듯 했다.
현우는 자신의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자 호랑이는 없었고, 돌아가려던 마음은, 열린 문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걸어들어 간다.
신당에 들어서자. 어마어마한 부적들이, 현우 눈앞에 펼쳐 진다. 그리고, 원숭이 모양의 목각 인형과 용 모양 인형, 호랑이 까지 전에는 보지 못한 것들도 잔뜩 있는데...
"현우, 왔냐?!"
감우초가 현우를 맞이해주고, 현우가 이것들은 다 뭐냐고 물어보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이건... 뭐... 일종의, 용을 위한 의식 같은 거랄까? 하하하."
"용이요?!!!"
[현우는 알지 못했지만, 잔나비가 현우에게 저주의 살을 날리면, 천호 보살이 모조리 막아 주었다.]
현우가 우초의 말에, 당황하고 있을 때.
신당의 다른 곳에서 문이 열리며, 천호 보살이 등장한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랜만에 뵙네요!"
"그래 오랜만이구나~ 일단 앉아 보거라~ 오랜만에 사주 좀 봐줄 테니..."
갑자기 사주를 봐주겠다는 천호 보살.
종이에 뭔가를 슥슥 쓰더니, 현우를 바라보며 말하길...
"잘 헤어 졌어!"
"네?!"
"사실 걔는 너의 진짜 짝이 아니야! 진짜 짝이 나타나려는 걸, 그 애가 막고 있었구먼..."
천호 보살은 곧 진짜 짝이 나타날 것이라며, 어깨 딱 펴고 다니라고 하지만,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의 마음은 씁쓸하다.
현우는 그런 게 어디 있냐며, 그게 진실이라면, 할머니의 그 엄청난 기운으로 제발 찾아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끼! 이 녀석아! 그건 하늘이 점지해 주는 거야! 찾는다고 막 찾아지면, 세상에 노총각, 노처녀는 왜 있겠느냐?!"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이다...
...
사주를 보고 나오는 길.
밤은 더 새까만 것 같고, 현우의 마음도, 새까만 것 같다.
천호 보살 할머니에게, 좋은 소리를 들어, 희망이란 것이 생기긴 했지만, 도대체 나의 짝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어휴... 34살에, 탈탈 다 털리고, 차여서, 혼자라니... 이러다 노총각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현우가 한숨을 푹 쉬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슬그머니, 어깨 동무를 한다.
깜짝 놀라, 누구냐고 소리치는 현우.
그런데!!
"그렇게 한숨 쉬고 다니면, 땅 꺼지겠다..."
"대신이 아저씨! 여긴 어쩐 일로?!"
"아! 좋은 소식이 있어서 왔지! 하하하. 잠깐 아저씨랑, 이야기 좀 하자 현우야~"
[대신이 아저씨는, 모든 세상을 창조한 절대신! 그런 그는, 지금 현우를 위해 인간계에 와있다. 신이 현우에게 들려줄 좋은 소식이란 무엇일까?!]
-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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