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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2,449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작성
21.06.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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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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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잔치

DUMMY

“아니··· 왜 그러십니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촌장을 일별한 사도칠의 눈빛이 다시 쟁반 위에 닿았다.


죽이었다.


고기죽은 당연히 아니었고 야채죽도 아닌 부재료가 일절 들어가지 않은 희멀건 죽.


“이것도 대접이라고. 에라이!”


그날 저녁 식사는 아주 늦은 시각에 이루어졌다.


턱!


조금은 여윈 듯 하지만 다 큰 멧돼지였다.


한바탕 성질을 부리고서 기어이 사냥을 갔던 사도칠이 잡아온 것이다.


비록 많이 크진 않지만 멧돼지를 혼자 둘러메고 온 그는 땀에 절은 옷을 벗어 말렸다.


덕분에 그의 상체를 휘감고 있는 문신이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쐬며 번들거렸다. 청자색과 자색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만다라 문신은 그를 목격한 촌장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게 만들었다.


“이걸로 먹을 만한 것 좀 만들어 보거라.”


방려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칠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자신의 문신을 두려운 눈으로 훔쳐보고 있는 촌장에게 투덜거렸다.


“거, 먹을 걸 봤으면 동네 사람들도 좀 부르고 그러시오. 사람이 왜 그래. 다들 쫄쫄 굶었을 거 아냐. 뭘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있어.”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사도칠은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촌장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방금 하라고 하지 않았소. 뭘 또 물어. 어짜피 우리끼리 다 먹지도 못 할 거 아직 안자고 깨있는 것들은··· 아니다. 다 데리고 오시오. 배고픈데 잠이 빨리 오겄나.”


“예. 예! 알겠습니다.”


뒤이어 힘이 많이 드는 돼지 손질은 사도칠이 도왔고 방려는 기가 막힌 솜씨로 음식을 만들어 나갔다.


마침내 음식이 완성됐을 때, 사람들이 모였다.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 위에 음식이 가득 차 모락모락 김을 피웠다.


흡사 시체처럼 걸어들어 온 그들은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에 침을 질질 흘렸지만 누구 하나 음식에 다가서지 못했다.


두려웠던 것이다.


촌장의 말을 듣고 오긴 했지만 처음 본 외지인의 속셈이 무엇일지 어찌 알겠는가.


저 외지인이 수틀려서 모두를 죽인다고 마음먹는다 해도 저항할 힘조차 없으니 당연했다.


그때, 한 소년이 허기를 참지 못하고 음식으로 다가서려하자 그 아비가 단단히 붙들었다.


“뭐냐? 왜 안먹어?”


“어르신 눈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젠장할. 차려줘도 지랄이구나.”


평상으로 다가가 털썩 주저 앉은 사도칠이 고기 하나를 주워 들어 한입 크게 베어 먹었다.


“크하아. 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이거 고기가 미쳤는데. 너무 맛있는데? 무슨 양념이냐? 이건 뭐 양념을 안했나 싶을 정도로 오지게 부드러운 맛이고. 와. 이거 기름기 봐라. 껍질 표면에 기름기가 막 미친듯이 서리를 내려서, 식감이나 맛이나 흠잡을 데가 없구나. 키햐아. 소주, 뭐하시오? 이것 좀 드시구려.”


우악스럽게 고기를 씹어대는 사도칠을 보며 빙그레 웃은 적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고기를 들었다.


“와. 도칠. 너무 맛있는데?”


“으하하. 내가 거짓부렁한 적이 있소? 많이 드시구랴.”


“거짓부렁한 적은 많지.”


“뭐요! 노복이 언제 거짓부렁을 했단 말이오!”


“근데 아니 진짜야. 역시 려가 최고야. 너무 맛있어. 이거 돼지 맞아? 살살 녹는다. 녹아.”


“크크큭. 컥.”


평소보다 훨씬 과장되게 행동을 취하는 적휘의 모습에 사도칠이 웃다 사레가 들렸다.


그때 적휘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일전에 보았던 소녀를 본 그는 고기를 입 안 가득 욱여넣은 채로 입을 열었다.


“어? 아까 육보. 너그나. 이거 머거.”


말이 뭉개져 나왔지만 그 뜻을 못 알아 들은 사람은 없었다.


마침내 육포를 훔쳐 달아났던 소녀가 부모의 손을 뿌리치고 평상으로 뛰어왔다.


소녀가 집은 것은 그릇이었다.


뚱뚱한 고기를 만지면 후두둑 부러질 정도로 삶아, 그것을 삼삼하게 끓인 죽 위에 얹어 쭉쭉 찢어 놓은 것이 들어있었다.


고소한 기름냄새와 진한 육향이 배인 그것은 소녀의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적휘와 사도칠이 먹던 구운 고기는 많지 않았다. 방려는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그들을 위해 고기죽을 끓였던 것이다.


후루룩. 으적으적.


다다다닥.


우당탕탕.


소녀가 그릇을 잡고 죽을 마시듯 먹기 시작하자, 그것이 신호가 되어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향해 날았다.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적휘와 사도칠이 과장되게 표현을 했지만 방려의 음식 솜씨에 대한 얘기에는 결코 과장이 없었다.


정신없이 먹던 사람들 사이에서 죽을 한 숟갈 뜬 촌장의 입술이 갑자기 떨렸다.


결국 그의 주름진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촌장이 입을 열자 죽을 먹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감사를 표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코끝이 찡해진 적휘가 사도칠과 방려를 바라보았다.


방려는 냄비를 들고 다니며 죽을 나누어 주며 수많은 마을사람들의 감사인사를 받고 있었고, 어느새 식사를 마친 사도칠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자신의 도를 닦으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다른 놈이 받는다더니··· 사냥은 내가 해왔거늘. 쳇.”


적휘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








“어허. 소주, 요령피우지 말고 다리를 더 굽히시오.”


“칫. 오늘 같은 날에도 꼭 이래야겠어?”


“어허. 오늘이고 무시기고! 노복이 누누이 말하지 않았소. 기운을 빠르고 확실하게 잡아주는 데에는 그만한 것이 없다고. 골반과 무릅, 발목 그러니까 모든 근골을 강하게 잡아주고 정신까지 맑게 해주는 것이오. 자자, 발바닥으로 지기(地氣)를 들어 올린다는 생각으로··· 더! 더 굽히라니까!”


적휘는 엉덩이와 허벅지를 땅과 수평이 되도록 다리를 굽힌 마보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사도칠은 자신의 도(刀)를 위에서 아래로 아주 천천히 휘두르고 있었다.


이미 밤이 늦었건만 그들은 작은 촛불 하나를 의지해 수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휘가 한쪽 눈을 잃은 후, 사도칠은 적휘의 몸 상태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 건강한 신체를 위해 저강도의 수련을 제안했다.


이동시간이 하루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들이기에 언젠가부터 꾸준히 밤 시간을 활용해왔다.


수련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사도칠이 주관하는 저강도 수련은 적휘에겐 전혀 저강도가 아닌 것이 문제였다.


허공에다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가장 힘든 것은 이 마보 자세였다.


고작 일각(15분) 동안 유지하면 되었지만 마보 자세는 일각으로도 적휘를 충분히 괴롭히고도 남았다.


“그만.”


벌러덩.


사도칠의 신호와 함께 적휘는 그자리에 그대로 몸을 뉘였다.


그들이 있는 헛간은 쿰쿰한 냄새가 잔뜩 배어 있었지만 그리 고약하진 않았고 산중에서 노숙을 하는 것도 잦았던 그들에겐 실제로 제법 아늑하기까지 했다.


촌장의 집이 너무 좁아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헛간을 제공받은 것이다.


헛간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 적휘가 입을 열었다.


“도칠. 이번에는 진짜지? 진짜 아버지를 볼 수 있는거야?”


“노복의 말을 못믿으시오?


“어떻게 믿어? 몇 년 간 맞은 적이 없는데.”


얼굴을 팍 구긴 사도칠이 욕설을 뱉었다.


“이런 젠장할. 지금까지 헛걸음한 것이 이 노복의 탓인 줄 아시오? 탓하려면 한군데 진득하니 붙어있지 않고 허구한 날 전쟁터만 쏘다니는 그 작자를 탓하시오.”


사도칠이 강하게 쏘아붙이자 적휘가 뾰로통하게 입을 비쭉 내밀었다.


그 얼굴을 애써 외면하던 사도칠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번엔 진짜요. 노복이 그리 못 미더우면 방려에게 확인을 해보시던가.”


“려. 믿어도 되겠어? 이번에는 만날 수 있을까?”


“네. 도련님. 그리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전쟁터가 아니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꼭 만나게 되실 겁니다.”


방려는 잔뜩 기대를 품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적휘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적휘 또한 웃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노라면 언제나 포근함과 안도감을 느꼈으니까.


사실 적휘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다. 그 존재를 한번도 가저본 적이 없었으니까.


타의에 의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일정한 거처 하나 없이 쫓기는 인생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찾는 것보다 사도칠, 방려와 함께 한 곳에 정착해서 평온하게, 그리고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을 꿈꿨다.


사실 그의 아버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도칠 말에 의하면 패국의 수도 진천에서 그의 집을 묻는다면 모르는 사람이 드물 것이라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리 향할 수 없었다. 무슨 연유에선지 사도칠은 다른 누구를 거치지 않고 반드시 아버지와 먼저 대면해야 한다고 했다.


청양을 떠난 후 지금까지의 여정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아버지는 수도에 오래 머무는 적이 없었고 끊임없이 전쟁터를 돌아다녔고 그가 누볐던 대부분의 전쟁터는 국경이었기에 패국의 크기에 비례하듯 그들의 여정은 길고 험난했다.


더구나 그들을 잡기 위한 무뢰배들은 끊임없이 등장했다. 현상금 수배서를 들고 나타난 도적들, 관아의 병사들, 비영사까지.


어느날 적휘는 사도칠에게 물었다. 도대체 우리가 왜 쫓겨야만 하냐고.


그에 사도칠은 별 것 아니라는 말투로 세상이 그리 변했다는 말만 되풀이 했을 뿐이다.


사도칠에게 들은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백양이 아닌 패국에서도 유명한 장군이라고.


적휘는 언젠가부터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에 대한 모습을 그려왔다.


길고 긴 시간동안 상상의 바다를 거친 그 모습은 태산(太山)처럼 거대하고 한없이 자애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헛간 한켠에 조그맣게 자리한 창을 통해 밤하늘을 바라보며 적휘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헛걸음이면 ‘백건도’의 사도칠에게 실망할거야.”


“쳇. 실망할테면 실망하라지. 우라질.”


적휘는 배시시 웃었다.


사도칠의 투덜거림 또한 언제나 그에게 묘한 안도감을 줬던 것이다.


편히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그의 눈망울에는 별들의 반짝임이 가득 물들어 있었다.


“다시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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