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2,443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작성
21.05.12 10:39
조회
761
추천
23
글자
6쪽

서(序)

DUMMY

하얗게 뜬 얼굴에 피칠갑을 한 사내가 이를 악물고 질주했다.


어딜 보아도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척박한 대협곡 사이에는 몸을 숨길 만한 곳도 도주에 적합한 갈림길도 없었다.


사내는 오직 달빛에 의지하여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으아아아악!”


흩어졌던 동료의 비명소리에 입술까지 덜덜 떨기 시작한 사내는 자신이 본 것이 제발 현실이 아니길 바랬다.


‘멈추면 끝이다··· 제발··· 제발······’


언뜻 스친 것에 불과하나, 사내는 똑똑히 보았다. 잿빛 털에 검은 줄무늬··· 그것은 분명 호랑이였다.


흑호(黑虎).


검은 호랑이는 들어본 적도 없다.


저리 큰 호랑이 또한 들어본 적이 없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송곳니는 턱 아래까지 길게 튀어나와 그 흉악함을 더했고 웬만한 가옥보다 더 커 보이는 덩치는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마치 끔찍한 설화를 다룬 그림에서나 볼 법한 괴물이 아닌가.


통천(通川)이라는 대협곡과 그 속의 아홉산이라는 영산(靈山)에는 본디 영물이 많았지만,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내도 이런 괴물은 처음이었다.


“흐으어······ 흐으으······”


사내의 몸상태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귀가 아닌 머리를 울리는 듯한 거대한 짐승의 발소리는 그가 멈추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몸집에 비해 믿을 수 없는 민첩성을 가진 놈이었다.


그놈에게 잡힌다면 목숨은 커녕 영혼마저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그의 몸은 더이상 무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그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괴물의 존재를 아홉산에··· 아니, 세상에 알려야만 하니까.


허나······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일까?


점차 시야가 흐려진 사내는 자신의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조차 어려워졌다.


필사의 뜀박질은 점점 걸음으로 바뀌었고 종내엔 그저 무의식에 맡겨 터덜터덜 간신히 다리를 옮기는 것이 다 였다.


철퍼덕.


마침내 사내가 쓰러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꼴사납게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땅바닥과 마주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체력이 바닥 나 버렸다.


그때, 그의 귓가에 유난히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무게로 보아 검은 괴물은 아니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바라본 발소리의 진원지는 유난히도 어둠이 짙었다.


곧이어 달빛을 가린 구름이 지나고 나서야 발소리의 주인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 자그마한 체구의 소년이었다.


‘빨리 도망쳐. 네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야···’


하지만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입을 열기조차 힘들었으니까.


반대로 소년은 그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하는 것이냐?’


그때, 거친 숨소리와 무거운 발소리가 접근했다.


크르르르르


위험을 알리는 경종에 사내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소리를 질렀다.


“도망쳐!”


소년의 바로 뒤에서 검은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괴물의 입 속에는 사람의 머리로 보이는 것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혀 위에 오른 당과처럼······


콰득!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에 사내는 기어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소년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뒤! 뒤를 보라고! 위험하단 말이다!”


하지만 소년은 제자리에 서서 무던하게 사내를 바라볼 뿐이었다.


긴 혀로 거대한 송곳니에 묻은 피를 핥던 괴물이 소년의 뒤로 바싹 붙었다.


그리고······


사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했다.


소년의 지척에 닿은 괴물이 바닥에 닿을 듯 머리를 낮춘 것이다.


그제서야 괴물을 인지한 소년은 괴물의 검은 털을 부드럽게 쓸었고 괴물은 주인에게 아양떠는 강아지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게 무슨······’


서늘하면서도 나른한 소년의 시선을 마주한 사내는 당장 어찌 대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윽고 달빛이 소년을 완전히 비추는 순간, 멍하니 지켜보던 사내는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소년의 이마에 엄지손가락 만한 뿔 두 개가 솟아있는 것이 아닌가.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돌려 제대로 뛰는 선택도 할 수 없었다.


만약 뒤를 돌아본다면, 그 즉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자신을 덮칠 것 같았으니까.


턱!


순간, 얼음장처럼 서늘하고 딱딱한 무언가가 그의 등에 닿았다.


뒤를 돌아본 사내는 생전 처음으로 여자아이나 낼 법한 가늘고 긴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끼야아아아악!”


시체와도 같은 청색 피부.


썩어 문드러진 코.


여기저기 피부의 부재로 인해 드러난 몸 속의 끔찍한 단면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한 모습을 한 노인이 서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어찌해야······’


옥죄어 오는 공포에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사내와 달리 노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다.


썩어 문드러진 손목에 박힌 시커먼 낫이 쾌속하게 날았다.


사내는 자신의 시선이 점차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목이 잘린 것일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연거푸 손을 들어 확인하려 했지만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호기심이 깃든 흉측한 눈이 사내를 내려다 봤고, 사내는 아이처럼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점점 까맣게 변해가는 생소한 시야와 마주했다.


사내는 그렇게 숨이 다했다.


크르르르르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크게 짖어대며 대협곡 사이를 날아다녔고 시리도록 아름다운 달빛이 소년을 향해 옅은 푸른빛을 아낌없이 보냈다.


익숙한 어둠 속에서 편안하게 뒷짐을 진 소년은 빛나는 달과 별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잔물결 하나 없는 아이의 고요한 눈동자에는 달과 별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 칠흑처럼 새까만 눈동자에는 단 하나, 외로움만이 아련하게 묻어있었다.


작가의말

서장(序章)이 길었네요.

본편과 분리된 내용이라 짧게 가고 싶었지만

동양판타지라는 장르 특성상 이미지를 그리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화부터 본편이 시작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공지 +2 21.06.28 55 0 -
공지 수정사항 공지. 연재 주기 변경. +1 21.05.28 78 0 -
공지 연재시간은 오전 10시입니다. 21.05.19 141 0 -
42 신평현(新平縣) +1 21.06.25 55 2 13쪽
41 여경록(呂瓊綠) 21.06.24 49 2 14쪽
40 거인(巨人) 21.06.23 56 2 14쪽
39 백청귀(白靑鬼) 21.06.22 64 2 12쪽
38 개유주(開幽州) -2 21.06.21 74 2 11쪽
37 개유주(開幽州) -1 +1 21.06.18 117 4 11쪽
36 거절할 수 없는 제안. 21.06.17 120 4 14쪽
35 가장 무서운 것. +1 21.06.16 138 5 10쪽
34 습격(襲擊) +1 21.06.15 143 5 14쪽
33 잔치 +1 21.06.14 165 4 11쪽
32 대기근(大飢饉) +2 21.06.11 179 4 13쪽
31 낚시 +3 21.06.10 189 6 13쪽
30 음모(陰謨) +1 21.06.09 174 7 12쪽
29 버림받은 자들의 왕 +1 21.06.08 179 8 14쪽
28 첫걸음 +1 21.06.07 189 9 13쪽
27 출발(出發) +3 21.06.04 216 11 14쪽
26 약속(約束) +1 21.06.03 234 11 11쪽
25 모방(摹倣) +1 21.06.02 227 10 14쪽
24 망량신의(魍魎神醫) +1 21.06.01 254 8 17쪽
23 비금곡(秘琴谷) +2 21.05.31 248 9 15쪽
22 탈출(脫出) +3 21.05.28 274 9 17쪽
21 노장(老將) +1 21.05.27 283 9 11쪽
20 재회(再會) +1 21.05.26 295 9 12쪽
19 폭발(爆發) +2 21.05.25 311 10 18쪽
18 감옥(監獄) +2 21.05.24 333 9 13쪽
17 원한(怨恨) +2 21.05.23 337 9 13쪽
16 사라지다 - 2 +1 21.05.22 336 9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