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2,451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작성
21.06.10 10:00
조회
189
추천
6
글자
13쪽

낚시

DUMMY

김상헌이 걸어가는 것을 본 조신량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핫. 시간이 딱딱 맞는군. 천초원 천초원하길래 기대는 했지만 이리도 잘 짜여진 각본대로 흘러가는 연극을 보게 될 줄이야. 과연, 과연 대단합니다.”


조신량은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손을 만지작 거렸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네.”


“아, 그렇지요. 전하. 소신은 그저 입 꾹 닫고 지켜보겠습니다.”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예부시랑 김상헌이 난간 옆으로 난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기대인. 오랜만에 뵙습니다.”


기필선은 김상헌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은 서로 노선이 달랐기 때문이다.


김상헌은 진왕, 기필선은 영왕의 사람이었고 그들의 관계는 결코 곱지 못했다.


“자네도 있었군. 벽안의 황자를 보필하느라 바쁜 줄로 아는데 청라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내 지금은 자네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으니 신경 끄시게.”


벽안이란 푸른 눈을 의미하는 것. 기필선은 김상헌이 보필하는 진왕을 교묘히 깎아내린 것이다.


조신량은 생글거리며 연정백을 살폈다. 하지만 연정백의 얼굴은 조금의 파문도 없이 잔잔했다.


“듣자하니 자식 걱정이 너무도 애달프던데··· 자식의 행방엔 벌써 관심을 끄셨나 보오?”


“내 아들을 봤나? 지금 어디있는가?”


“귀댁의 아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소?


기필선은 잠시 입을 닫았다.


웬 거지가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기철이 살인을 하여 짐승처럼 포박되어 잡혀갔다는 얘기를 전했다.


사실유무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는 기철이 유흥가를 제집처럼 드나듬과 그 거친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확인도 못했는데 아들이 살인을 했다는 말을 어찌 제 입으로 꺼내겠는가.


“살인을 저질렀다오.”


“살인이고 나발이고 내 아들은 지금 어디있는가?”


“쯧쯧쯧. 안타깝구려. 자식 교육에 너무 신경을 안 쓰셨소. 황제폐하가 계신 수도에서 어찌 그리 방자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쓸모없는 천한 것 하나 죽인 것이 뭐그리 대수라고!”


“하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구려. 댁의 귀한 아드님이 죽인 사람은 결코 천한 사람이 아니외다. 평민을 죽였으면 몰라도, 광록대부 주시운 대인의 손자라니··· 허허. 이제 어찌할 것이오?”


기필선의 낯빛이 바뀌었다.


그로서도 광록대부 주시운이라는 이름은 쉬이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 아들이 주시운의 손자를 죽였단 말인가?”


“주대인이 누구요? 실권이 없는 명예직이라고는 하나 정 이 품의 고관이지 않소. 그리고 함께 영왕을 모셨으니 기대인도 잘 아실 것이외다. 그의 인맥이 얼마나 방대한지 말이오.”


기필선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못난 아들에 대한 분노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사리 분별을 못한다 해도 이리 큰 일을 저지르다니.


하지만 지금은 분노하기 보단 없어진 아들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내 아들은 어디 잡혀간 것인가?”


“아마 힘들 것이외다. 대인께서 비빌 언덕은 영왕 전하시지요. 영왕 전하께서 기대인을 아끼신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허나, 상대가 주대인이라면 무게추는 그쪽으로 기울지 않겠소? 대인. 제가 조언을 드리자면 영왕 전하께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 허허. 이거 왜이러시오.”


기필선은 기어코 분을 참지 못하고 김상헌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하지만 풍채가 좋은 김상헌은 그저 웃을 뿐.


기필선은 자신이 거구에게 매달린 것 같은 우스운 모양새라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 채 김상헌에게 엄포를 놓았다.


“네놈이 뭘 믿고 이리 시건방을 떠는지 모르겠다만, 당장 내 아들의 행방을 말하지 않는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하하. 아주 위풍당당하십니다그려. 허나 기대인이라 해도 데려오긴 힘든 곳에 끌려 가더이다.”


“이노오옴! 어디냐고 묻고있지 않느냐!”


“황제 직속 감찰기관.”


김상헌은 또박또박 간결하게 말했고 그의 멱살을 잡았던 손이 스르르 풀어졌으며 기필선의 얼굴이 파래졌다.


“맞소. 한번 끌려가면 몸 성히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 그 비영사에 끌려 갔다오.”


입까지 벌린 기필선은 김상헌의 말에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김상헌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멀쩡하던 사람도 비영사에 반나절 잡혀 갔다 오면 반병신이 되어 나온다는 소문은 이제 소문도 아니었으니까.


그때, 이 층에 있던 조신량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본을 본 것은 아니지만 대충 상황을 보니 저는 이쯤에서 빠져드리는 것이 순서일 듯 하군요. 진왕 전하.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던 연정백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극을 보는 것은 좋아했지만 제가 무대에 직접 서게 되다니. 하하. 굉장히 설레이는군요.”


조신량의 뒤에 비영사 두 명이 따라 붙었고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 일 층 중앙을 가로질렀다.


너무도 당당하게 곁을 지나가는 그들을 기필선이 놓칠 리가 없었다.


“엇! 이보게. 암찰원주. 자네가 여기있었나?”


자신을 붙잡는 소리를 들었지만 조신량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 기대인. 저는 공무가 바빠서 이만.”


“이··· 이보게. 내 아들을 잡아간 것이 암찰원 쪽인가?”


기필선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비영사 중에서도 악명 높은 암찰원이 개입된 것만은 아니길 바랬다.


“거기 좀 서보시게. 내 말이 안들리는가. 어허! 이사람이 정말······”


조신량이 천초원 입구에 다달았을 때, 그를 졸졸 따라가던 기필선은 기어코 호통을 쳤다.


“거기 서지 못할까! 이런 방자한 놈을 보았나! 기껏해야 종 이 품에 불과한 놈이 꼴에 감찰기관 소속이라고 감히 날 무시해!”


무시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아들이 잡힌 상황조차 잊게 만든 것일까.


하지만 일말의 소득은 있었다. 마침내 조신량의 발걸음이 멈췄으니까.


허나, 뒤돌아선 조신량의 얼굴엔 예의 생글거리던 미소 대신 시리도록 차가운 심판자의 눈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소리없는 기세에 기필선은 묘하게 위축되어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섰다.


“정 이 품이든 정 일 품이든 그 어떤 고관대작의 말도 듣지 않는 것이 저희 비영사의 원칙입니다. 저희는 오직 영명하신 군주의 명 만을 따릅니다. 육부의 상서씩이나 되시는 분이 그것을 모르셨나봅니다.”


“그걸··· 내가 그걸 모르겠는가. 내가 실언했네. 내 아들이 삼대독자라네. 그런 아들의 안위가 위태롭다면 어느 누가 실수하지 않겠는가. 하나만 묻겠네. 내 아들을 암찰원에서 데려갔는가?”


“그랬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살인을 목격했으니까요.”


기필선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고 그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조원주. 내 하나만 부탁하겠네. 수사가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아들을 건드리지 말아주시게.”


“그러지요. 그렇게 지시를 해두겠습니다. 허나 아드님의 안위를 절대적으로 보장하긴 어려울 것 같군요.”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가 암찰원 수장이 아닌가.”


“저희 암찰원에서는 가령 수사 도중 용의자가 죽더라도 면책을 받습니다. 저희 아이들 중 누가 실수를 한다면······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야겠지요.”


“그런······”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공무가 바빠서 이만.”


이제는 얼굴이 사색이 된 기필선을 내버려둔 채 조신량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초원을 나서기 직전, 의미심장한 소리를 남겼다.


“진왕 전하! 호부상서 댁 귀한 아드님은 제가 잘 모시고 있겠습니다! 하하하핫.”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던 기필선은 그제야 이 층에서 오연하게 아래를 내려다 보는 연정백을 발견했다.


그리고 연정백은 역할을 훌륭하게, 아니 그보다 더 완벽할 수 없게 완수하고 떠나는 조신량의 등을 매섭게 바라보고 있었다.


탐이 났다.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모든걸 꿰뚫어 보고 상황을 정리한다. 결코 아무나 보일 수 없는 재능이었다.


그리고 한켠에는 두려움도 공존했다. 아군이 아니라면 언젠가 적으로 마주해야 할테니까.


어느새 이 층으로 올라온 기필선이 그에게 공손히 절을 올렸다.


“진왕 전하를 뵙습니다.”


기필선은 바보가 아니었다.


호부상서라는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것은 결코 운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연정백의 등장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모든 것이 자신을 낚기 위한 잘 짜여진 계략이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기필선은 자신이 취해야 할 자세를 이미 알고 있었다. 분노로 인해 얼굴까지 붉어졌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으니까.


“전하! 전하!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놈이 버릇이 없긴 하나 저희 집안의 삼대독자입니다. 아들이라고는 그 아이밖에 없습니다.”


연정백은 이미 요리를 거의 마친 기필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 아들을 왜 본왕에게 부탁하는가?”


“소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이 지금껏 전하께 불공불손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지금 이 시간부로 소신, 전하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소신은 이미 나이가 많아 아들이라고는 그놈 하나밖에 없습니다. 노모께서 그 아이를 목숨처럼 애지중지하시는데,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노모께서 결코 견디지 못하실 겁니다. 전하.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이 못난 놈이 간청드리옵니다.”


기필선은 거의 고개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이고 또 숙였다.


“자네는 영왕을 모시지 않나? 어찌 그를 두고 날 섬긴다는거지?”


“가문의 대가 끊길 지경인데 어떤 것을 못끊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기필선도 이리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 비영사에 넘어간 이상, 영왕 연정주도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 자명했다.


“으음. 허나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그대의 아들이 귀한 아들이듯, 남의 아들도 귀한 아들이지. 죽은 자의 집안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광록대부 주시운은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지. 그가 스스로 상소문을 올릴 것이고, 부황께서 아시기라도 하면 본왕에게도 화가 미칠 수도 있지. 어렵구나. 어려워.”


아직도 뜸을 들이는 연정백의 말에 기필선을 이를 악물고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전하께서도 난처하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소신이 한마디만 더 올리겠습니다. 소신 미욱하기 그지없으나 호부에 몸을 담은 지 오래요, 지금은 그곳의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세납과 공출을 총괄하는 소신이 전하께 가세한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한마디로 나는 쓸모있는 놈이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연정백으로부터 돌아온 반응은 기필선의 예상과는 달랐다.


“나의 장인이 건영회 회주되시네. 그 사실을 잊은겐가? 내가 돈이 부족하다고 보는가? 이거 실망이군.”


심드렁한 연정백의 표정에 기필선은 두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겠습니다! 제가 아는 영왕 쪽의 정보가 진왕 전하께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삼 년!”


“예?”


“삼 년만 나를 위해 진심으로 일해라. 그 뒤엔 떠나도 좋다. 언짢고 꺼림칙하고 하기 싫은 일이라도 가리는 것은 불가하다. 그리만 해준다면 자네는 몸 성한 아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자네 집안의 대가 끊기지 않을 것이야.”


꼭두각시가 되라 한다. 기한까지 주어졌다. 지금 아들을 내어 주지도 않겠단다.


그렇지만···


겉으로만 그런 것일지는 모르나 기필선의 입에서는 너무도 감개무량하여 흥분된 어조가 튀어나왔다.


그 역시 정치밥을 수십 년 먹은 노련한 작자였으니까.


“전하. 너무도 큰 은혜에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변치 않는 충심으로 전하를 도울 것입니다.”


이로써 진왕 연정백의 아래에 호부와 예부, 육부 중 두 기관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정백의 눈에선 일말의 기꺼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 부족하다. 그놈들을 찍어 누를만큼 세를 불려야만 한다. 곧 여문기 그자가 손을 보탤 것이나 그에게 의존해서는 안된다. 더! 더 커지고야 말 것이다! 그 누구도 감히 덤비지 못할만큼···’


어느새 자현이 준비한 따뜻한 술잔이 그의 손아귀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술잔에 든 술은 기이할 정도로 달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공지 +2 21.06.28 55 0 -
공지 수정사항 공지. 연재 주기 변경. +1 21.05.28 78 0 -
공지 연재시간은 오전 10시입니다. 21.05.19 141 0 -
42 신평현(新平縣) +1 21.06.25 56 2 13쪽
41 여경록(呂瓊綠) 21.06.24 49 2 14쪽
40 거인(巨人) 21.06.23 56 2 14쪽
39 백청귀(白靑鬼) 21.06.22 64 2 12쪽
38 개유주(開幽州) -2 21.06.21 74 2 11쪽
37 개유주(開幽州) -1 +1 21.06.18 117 4 11쪽
36 거절할 수 없는 제안. 21.06.17 120 4 14쪽
35 가장 무서운 것. +1 21.06.16 138 5 10쪽
34 습격(襲擊) +1 21.06.15 143 5 14쪽
33 잔치 +1 21.06.14 166 4 11쪽
32 대기근(大飢饉) +2 21.06.11 179 4 13쪽
» 낚시 +3 21.06.10 190 6 13쪽
30 음모(陰謨) +1 21.06.09 174 7 12쪽
29 버림받은 자들의 왕 +1 21.06.08 179 8 14쪽
28 첫걸음 +1 21.06.07 189 9 13쪽
27 출발(出發) +3 21.06.04 217 11 14쪽
26 약속(約束) +1 21.06.03 234 11 11쪽
25 모방(摹倣) +1 21.06.02 228 10 14쪽
24 망량신의(魍魎神醫) +1 21.06.01 254 8 17쪽
23 비금곡(秘琴谷) +2 21.05.31 248 9 15쪽
22 탈출(脫出) +3 21.05.28 275 9 17쪽
21 노장(老將) +1 21.05.27 284 9 11쪽
20 재회(再會) +1 21.05.26 295 9 12쪽
19 폭발(爆發) +2 21.05.25 311 10 18쪽
18 감옥(監獄) +2 21.05.24 333 9 13쪽
17 원한(怨恨) +2 21.05.23 337 9 13쪽
16 사라지다 - 2 +1 21.05.22 337 9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