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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2,445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작성
21.05.27 10:03
조회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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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1쪽

노장(老將)

DUMMY

임충은 말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상대해본 결과 추팽은 혼자서 상대할 만한 자가 아니었다.


지금 추팽에게 맞서는 자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 자신과 합공을 해야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도칠은 말릴 틈을 주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죽어라!”


추팽의 몸처럼 육중한 검이 세차게 날아들었다.


그 크기만큼 커다란 기세를 실은 공격이었지만 사도칠의 눈엔 흔들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부우우웅


무거운 바람소리에 임충은 사도칠 또한 그 검을 맞대자마자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느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채앵!


경험 많은 노장의 몸은 그 눈빛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사도칠의 도는 검과 부딪치는 순간 충격을 흡수하듯 살짝 뒤로 빠졌다.


카가가각! 카각!


도가 검면을 타고 내려가 추팽의 팔목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윽!”


추팽은 가벼운 신음과 함께 다급히 팔을 뺐다.


“흥. 어쭙잖은 잔기술을···”


“얼어죽을. 곧 뒈질 놈이 입만 살았누.”


저 노인네는 생긴 것만큼 말버릇도 거칠었다.


평소였다면 임충은 자신과 대척적인 그의 성격이 반갑지 않았을테지만 지금은 그 모습에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


또다시 검과 도가 허공을 갈랐고, 몸뚱이를 맞대었고, 도가 검을 기묘하게 흘려버린다.


뒤이어 그어진 도는 어김없이 추팽의 몸뚱이에 가볍지 않은 상처를 만들었다.


그리고 또, 또, 또 한 번······


“어이. 점박이 애송아. 검은 무식하게 힘으로 휘두르는게 아니야. 경험과 결단으로 휘두르는 거지.”


사도칠이 가볍게 뱉은 말은 임충의 평소 지론과도 같았다.


허나 자신의 검은 추팽의 황소같은 힘을 간신히 막아내는데 그쳤고, 사도칠은 아예 거대한 물소에게 뛰어드는 사자처럼 날뛰고 있지 않은가.


지금 사도칠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자신이 감히 흉내를 낼 수도 없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 큰 차이가 난단 말인가?’


그의 두 눈에 시샘이 떠올랐다.


그는 몰랐던 것이다. 사도칠이 그보다 몇 배는 전장을 누볐으며 몇 배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왔다는 것을.


"아윽!"


추팽은 미칠 지경이었다. 이미 팔, 다리, 몸통 곳곳에 피가 배어 나왔다.


깊은 상처는 없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부아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것이냐!”


그 우레와 같은 호통이 거슬렸을까.


미간을 찌푸린 사도칠은 그 와중에 귀를 후벼 팠다.


“돼먹지 못한 놈이 목청 좋은거 보게. 오냐. 간다. 싸가지 없는 놈들에겐 매가 약이지.”


그때부터였다.


사도칠의 손과 발이 바쁘게 움직였고 그때마다 추팽의 몸이 들썩거렸다.


그것을 보는 임충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할 정도였다.


“허허. 어찌······”


‘검을 쓰며 팬다?’


사도칠의 도는 어김없이 추팽의 검을 무력화시켰고 그 짧은 틈에 주먹과 발차기가 날았다. 말그대로 사도칠은 추팽을 패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임충은 그저 입을 벌리는 데 그쳤지만, 당사자의 눈빛은 죽어가고 있었다.


추팽은 너무 아파 아이처럼 비명을 지를 뻔했다.


왜 이리 아픈가 고민한 그는 잠시 후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급소.


사도칠은 조금만 다쳐도 생명에 지장을 주는 몸의 중요한 부분들을 구석구석 꼼꼼하게 노리고 있었다.


몸이 아무리 크고 단단하다 한들 급소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쾅!


주먹질 한방에 눈 아래 뼈가 내려 앉았다. 눈이 부어 올랐고 코에선 피가 흘러 점차 시야가 흐려진 그는 얼굴에 감각을 잃었다.


빠직!


“으흐억!”


사도칠의 발 뒤꿈치가 그의 오른쪽 무릎뼈를 아작 내버렸다. 추팽은 비명을 참지 못했다. 무릎이 돌아가선 안될 방향으로 꺾여버린 것이다.


툭!


검을 피해 가까이 접근한 사도칠의 팔꿈치가 그의 갈비뼈와 부딛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기회였다.


가까이 다가온 노인네를 붙잡아 허리를 분질러줄 절호의 기회.


하지만 추팽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숨조차 쉽사리 쉬지 못했던 것이다.


“으그으으으······ 아학···”


추팽은 자신도 모르게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는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 늙은이··· 그놈들과 같은 냄새가 난다.’


지하 무투장에서 보았던 그 미친놈들.


아니다. 이 늙은이는 그놈들보다 더 과격하고 집요하며 난폭했다.


“수···숭무련이냐?”


간신히 토해낸 말에 사도칠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다잡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맹수의 눈빛. 그 얼음장 같은 눈빛에 추팽은 온몸이 꿰뚫리는 듯했다.


‘이··· 이자는 진짜다.’


난생처음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오줌을 찔끔 쌀 정도로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제 검을 세차게 휘두를 힘도 없었고 온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추팽은 속으로 결심했다. 만약 이곳에서 살아 돌아간다면 다시는 이 미친 제백 땅을 밟지 않겠다고.


“썩을놈, 이제 좀 조용해졌구나. 자, 이제 그 가련한 목숨에 종지부를 찍어야겠지?”


사냥을 마친 늑대의 목소리가 이러할까.


추팽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도칠이 추팽에게 한발짝 다가갔고 추팽이 한발짝 뒷걸음 했다.


“어허. 이리 오라. 이제 맞을 만큼 맞았으니 끝을 내야지.”


추팽의 머릿속은 온통 한가지 생각으로 가득찼다.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


혹시나 하는 의심따위가 아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온몸이 진땀으로 범벅이 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 그가 소리쳤다.


“뭐··· 뭣들 하느냐! 이놈을 막아라!”


추팽의 목소리엔 전과 같은 힘이 없었지만 금사군은 그를 돕기 위해 하나둘 모여들었다.


수비대 정예들은 이미 모든 힘을 소진해 움직이는 금사군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합류에도 추팽의 얼굴은 펴지지가 않았다. 갑자기 들려온 발자국소리 때문이었다.


호정의 명을 받은 주환이 무사들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었다.


사도칠에게 가던 금사군들은 새로 온 서른 명의 무사들과 전투를 시작했고 주환은 곧장 사도칠에게 다가왔다.


“뭐냐?”


“호정님의 명을 받···”


“에잉. 쯧쯧. 그리 굼떠서 밥값을 어이할꼬.”


사도칠의 비아냥에 주환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사도칠을 따라서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혜안을 가진 호정의 귀띔이 없었더라면 동쪽으로 왔는지도 모르고 헤맬 뻔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정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도칠은 서서히 추팽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추팽은 절망에 휩싸여 체념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돌려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이미 제구실을 못하게 된지 오래였고 몸을 돌리는 순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 뻔했다.


그때, 갑자기 들려온 함성소리가 추팽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주었다.


내성 안쪽에서 백여 명에 가까운 금사군이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본 사도칠은 걸음을 멈추고 적휘에게 급히 다가갔다.


털썩.


거친 숨을 내쉬는 추팽이 육중한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그리고 엉망이된 얼굴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소주. 빨리 가야하오!”


“잠깐만!”


서둘리 떠나려는 사도칠을 잡은 것은 임충이었다. 그냥 무시하려던 사도칠을 적휘가 잡았다.


“날 구해준 사람이야.”


마음이 급한 사도칠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고 임충에게 되물었다.


“뭐요?”


임충을 향한 그의 눈빛과 말투는 결코 곱지 않았다.


적휘의 꼴을 본 순간 그의 속은 뒤틀리고 구겨져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이에게 적개심을 격발했으니까.


적휘를 구했다고는 하나, 그에게 임충은 적휘가 이꼴을 당할 때까지 손을 놓고 있던 작자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임충이라 하오. 내성 수비대장이오.”


“아, 빨리빨리 말하시오. 자기 소개하려고 불렀소?”


“아··· 아니오. 가장 안전한 길을 알고 있소.”


안전이라는 말에 사도칠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답을 듣는 순간 즉시 몸을 돌렸다.


임충은 감사는 커녕 대꾸도 않고 떠나는 사도칠을 다시 한번 붙잡았다.


“어찌하면 그 나이에 그리 싸울 수 있소?”


임충은 염치를 불고하고 물었다.


그도 오랫동안 군부에 몸을 담아온 무인이다. 젊은 시절, 피나는 노력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수비대장이라는 요직에 오르진 못했을 것이다.


부끄러움이 컸지만 보다 강해지고 싶은 열망은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았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그의 기대와는 많이 어긋나 있었다.


“헛살았구만.”


“뭐···뭐요?”


“당연한거 아냐? 수련밖에 없잖아. 이 양반아.”


사도칠은 그말을 끝으로 몸을 완전히 돌려버렸다.


“허. 허허···”


맞는 말이었다. 당연한 얘기였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노력이라는 숭고한 행위를 저버리고 편한 길을 찾으려는 소인배가 되고만 것 같은 기분에 임충은 고개를 숙였다.


“잡아라! 한놈도 놓쳐지 마라!”


사도칠이 몸을 돌린 것을 확인한 추팽은 그제야 가까운 금사군들을 향해 고래고래 악을 썼다.


공포에 몸서리치던 순간이 가시자 끔찍한 모멸감과 참을 수 없는 굴욕감에 분노가 솟구친 것이다.


그는 멀리서 달려오는 금사군들을 독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쓸모없는 것들이! 빨리 오지 못해! 다들 죽고 싶은게냐!”


장내에 추팽의 고함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환도 멀지 않은 곳에서 금사군이 대거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악착같이 자신과 부하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눈 앞의 적들을 무시할 순 없었다.


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날 때가 바로 퇴각할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환은 자신의 곁을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도칠이 눈에 띄자 참지 못하고 일갈했다.


“이보시오!”


사도칠은 대답이 없었다. 달리는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은 채 그저 고개만 슬쩍 돌렸을 뿐이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소!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오!”


그도 저 노인의 무력을 보았다. 무려 두 번이나.


화가 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같은 위기엔 그의 믿기지 않는 실력을 빌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쉬지 않고 움직이던 사도칠의 대답은 멀리서 천천히 날아왔다.


“욕 봐 라.”


남의 일 보듯 무심한 말투. 그에 검을 휘두르던 주환의 얼굴에 노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그에겐 분노할 여유도 없었다.


백여 명의 적이 도달하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으나 금사군도 악착같이 그들을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주환은 홀로 자리를 떠날 능력이 있었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나를 보고 제재위에 든 자들이다. 나를 믿고 적진까지 들어온 자들이다.’


그는 한명의 부하라도 더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의 검이 점점 더 흉악하게 움직여 대부분의 적을 베어갔다.


하지만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기병 몇 기가 지척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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