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2,452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작성
21.06.01 10:00
조회
254
추천
8
글자
17쪽

망량신의(魍魎神醫)

DUMMY

사백안(四白眼).


눈동자 밖으로 여백이 많아 냉혹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눈 모양을 일컫는 말이다.


관상으로는 보통 극악무도한 성격이라 사람 죽이는 일을 파리 잡는 일보다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하는 보기 드문 인상이었다.


그마저도 눈동자가 작고 안구가 돌출되어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눈빛이 영복을 지나 적휘에게 닿았다.


“뭐냐. 이 어린 꼬맹이는.”


진월영과 눈이 마주치자 적휘는 냉큼 시선을 내렸다.


칼이나 피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그정도는 이미 질릴 정도로 경험한 후 였으니까.


노인에겐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위험한 기운이 잔뜩 배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도칠의 안위가 이 노인에게 달린 것이다.


적휘는 그 음험한 기운을 무시하고 그를 직시했다.


“호오. 이놈 보게나.”


“신의 어른.”


“야. 이놈아. 내가 이 방에 있을 때는 방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정녕 혼쭐이 나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진월영이 칼을 든 채 위협했지만 그마저도 익숙했던 영복은 능글맞게 웃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예예. 잘못했습니다요. 허나 혼쭐은 나중에 내시고 어서 제 일행을 좀 살려주십시오. 정신을 잃은지 오랩니다.”


영복이 사도칠을 가리켰지만 진월영은 그쪽은 쳐다 보지도 않았다. 대신 아직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영복에게 다가갔다.


그가 별안간 영복의 앞섶을 거칠게 풀어 헤치자, 그 가슴팍에는 온통 붉은 발진이 가득했다.


“어디 멀리 다녀왔느냐?”


“멀리 다녀오긴 했소.”


“거기서 병이 옮아 왔구나. 쯧쯧. 아직 어린 놈이 안됐어. 킥킥.”


아직은 몸 상태가 견딜만 했던 영복은 그의 말에 급격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병이오? 혹시 큰병입니까?”


“크큭. 무슨 병인지 알면? 치료는 할 수 있고? 큰병이지. 큰병이고 말고.”


“에헤이. 장난치지 마시고. 신의 어른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냥 고쳐달라고? 아아, 안될 말이지. 그럼 재미가 없지 않느냐? 나와 내기를 하지 않겠느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내기를 권하는 진월영의 모습에 영복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 영감탱이의 내기병이 자신을 향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저 병이 도지면 내기없이 치료받긴 이미 글렀다.


그는 크게 한숨을 뱉은 후 입을 열었다.


“꼭 그딴 내기를 해야겠소? 나하고도?”


“응? 해야지. 그럼. 내기란 흥이 돋았을 때가 아니면 재미가 없질 않느냐.”


“쳇. 뭐요. 말해보시오.”


진월영은 징글맞게 웃더니 자신의 턱을 천천히 매만졌다.


“자, 네놈이 다녀온 곳을 내가 맞추면 치료를 해줄 것이고, 내가 틀리면 치료는 네놈이 알아서 하는거다. 만약 거짓으로 둘러댄다면 네놈 명줄은 오늘로 끝인 줄 알고.”


“어디 해보시오. 말린다고 되지도 않을테고. 어찌하면 되오?”


“손목이나 줘 보거라.”


진월영은 영복이 손을 내밀기도 전에 그의 손목을 채 갔다. 진맥을 하던 그는 곧 기괴한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바다를 건넜지?”


“그렇소.”


“서방에 다녀온게로구나. 크큭.”


표정을 숨긴 영복은 슬쩍 진월영의 눈치를 살피며 갈등했다.


그가 다녀온 곳은 서방이 아니었으니까.


맞다고 하면 거짓말했다고 죽을 것이고, 틀렸다 해도 죽음을 면치 못 할 빌어먹을 상황이었다.


“맞혔소. 이제 끝난거요?”


마음을 다잡고 나직히 나온 그의 대답에 진월영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래. 끝났다. 남방으로 다녀온 놈이 거짓을 고하였으니 네 명줄은 이제 그 병에 달렸느니라.”


그러나 아직 영복의 얼굴에서는 낭패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짓이 아니오. 내가 다녀온 곳은 정확히 임열(林熱)이니.”


“헛소리 하지 말거라. 임열은 남방이 아니더냐?”


“남방인 것도 맞으나 정확히는 서남방이오. 내가 있던 완재에서도 서쪽으로 천 리는 가야 임열로 가는 배를 띄우는 곳이 있으니 말이오.”


영복의 말에 진월영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영복은 초조함으로 인해 핏기가 가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진월영의 말에 목숨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던 것이다.


태연함을 가장하던 그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했고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때.


“하하하하핫. 운이 좋은 놈이로구나. 그것도 말이 되니 결국 내가 맞힌 셈이로군. 내 덕이 크니 값을 잘 치러야 할게다. 크크큭.”


오로지 자신의 입장으로만 생각하여 기적의 논리를 펼치는 진월영의 모습에 영복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내 명색이 상인이니 셈은 제대로 치를 것이오. 그래, 이 병이 뭡니까?”


“갑자기 열이 나고 여기저기 근육통, 관절통이 왔을테고 식욕부진이 왔을게야.”


“식욕부진은 모르겠지만 근육과 관절의 통증은 확실히 큽니다.”


“곧 그 좁쌀만한 발진이 점점 몸통, 팔다리, 얼굴로 퍼지게 될게다. 코피가 나거나 잇몸에서도 출혈이 거듭될테고. 만약 병이 예상치 못한 자극을 받으면 가슴에 물이 차고 배에도 물이 차 볼록 튀어나올게야. 그리되면 뱃속에도 출혈이 생길테고 피똥을 싸게 된단 말이지. 크큭. 그정도까지 가게되면 죽을 확률이 오 할은 거뜬히 되고도 남지. 풍토병이라는게다. 이놈아. 이건 별다른 치료법도 없느니라. 하하하.”


진월영이 손짓, 발짓을 해가며 여유롭게 병의 증상을 읊자, 영복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점점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설명이 모두 끝이 났을 때, 영복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치료법이 없다니. 죽을 병이란 말이오? 살려주기로 했잖소! 사람 목숨가지고 지금 장난하시오!”


웃으며 농을 치던 유쾌한 상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기세였다.


“하하하. 이놈아. 겁이 나서 눈을 못 마주치겠구나.”


진월영의 요사스런 입꼬리가 괴이하게 오르내렸다.


웃고는 있었지만 그의 눈빛 속에서 베일 듯한 차가움을 느낀 영복은 그대로 주저 앉아 무릅을 꿇었다.


타인의 손에 목숨이 놓인 자의 마땅한 선택이었다.


“신의 어른. 다시한번 자세히 봐주시오. 내 그곳에서 병 걸릴 만한 짓을 한 기억이 없소.”


“키킥. 풍토병이 원래 그런 것이야. 쥐도 새도 모르게 걸리는 거지. 그쪽 놈들은 벌써 오랜 시간 적응이 되어 심한 증세를 일으키지 않아. 쉽게 말해 그쪽은 빌어먹을 균과 숙주가 공생관계를 터득한거라 이 말이야. 허나 네놈은 그곳에 몇 번이나 가봤느냐? 면역력은 무(無)에 가깝고 잘못하면 네놈이 이곳에 전염병을 일으킬 수도 있음이야.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주둥이 막아.”


사형선고라 느낀 영복은 신의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어르신. 살려주시오. 이렇게 죽을 순 없소. 집에···”


“남강에 가도 처자식도 없는 놈이 집에 뭐?”


“에이씨. 진짜 이럴 것이오?”


“죽는다고는 안했다 이놈아. 크크큭. 내가 주는 약 먹고 물똥이나 싸면서 독소를 빼내면 되는 것이야.”


“물똥?”


영복의 얼굴에는 예의 황망함이 사라지고 찌푸림으로 가득찼다.


그에 반해 방려와 적휘의 얼굴엔 밝은 빛이 돌았다.


얼굴만 보고도 영복의 병세를 알아챈 진월영의 안목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던 것이다.


“행여나 탈수가 온다면 손 봐주마.”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어찌하긴 뭘 어찌해. 저쪽에 가서 누워 있어. 천쪼가리 하나 주워서 주둥이 잘 막고. 이 화상은 뭐냐?”


그제서야 진월영의 시선이 사도칠에게 닿자, 방려가 급히 답했다.


“독에 당했습니다.”


“무슨 독? 하긴 알 리가 없겠지. 증상은?”


방려는 말문이 막혔다.


사도칠은 고통 속에서도 괜찮다는 말만 했지 증상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아직 모릅니다.”


“중독된 시간은?”


“두 시진(4시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빠듯하구만. 저쪽으로 옮겨라.”


진월영이 머무는 본채에 불이 밝혀졌다.


혼수상태의 사도칠은 그가 지정한 침상 위에 얹어졌고, 약방을 다녀온 진월영이 방려에게 뭔가를 건넸다.


“최토제다. 빨리 먹여. 시간 없다.”


“예.”


방려가 사도칠의 입을 열어 억지로 최토제를 흘려 넣자 잠시 후 사도칠이 고통 속에 깨어나 구토를 했다.


그의 몸을 받치던 방려는 깜짝 놀랐다.


구토를 마친 사도칠이 다시 쓰러지는가 싶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호흡곤란을 일으키는게 아닌가.


급속도로 올라갔던 진월영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곤두박칠친 것은 당연지사.


방려가 눈에 불꽃을 튀기며 소리 치려는 찰나, 진월영이 한발 앞서 기만하게 움직였다.


그는 다짜고짜 사도칠의 상의를 찢어버리더니 얇고 날카로운 대나무 조각을 들어 그의 목 아래부분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푸슈슈슉


대나무 구멍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대경실색한 방려가 진월영을 노려봤지만 그는 태연자약할 뿐이었다.


“호들갑 떨지 마라. 독성에 의해 목이 부어올라 숨구멍이 막힌 것이고 이몸이 그걸 뚫은 것이니.”


다시 사도칠을 바라본 방려는 곧 안도했다.


그는 다시 정신을 잃긴 했지만 파닥파닥 몸부림을 치던 호흡은 어느새 안정적으로 변해있었다.


그에 반해 진월영은 화가 잔뜩 난 기색으로 홱 뒤돌아보더니 아직 자리에 남았던 영복을 탓했다.


“왜 말하지 않은 것이냐?”


“무얼 말입니까?”


“내가 제백 놈들은 치료하지 않는 것을 모르더냐?”


화가 난 그는 얼굴을 붉히며 사도칠 몸에 그려진 문신을 가리켰다.


그가 이처럼 진노하는 것은 처음 봤기에 영복도 당황하며 쩔쩔맸다.


“알고 있지요. 허나 저 호걸분이 너무 딱해서.”


“호걸?”


“이곳에 오기 전에 청양을 들렀지요. 그러다 저 어르신이 단신으로 비영사 대여섯 놈들을 도륙하더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삼 년 묵은 체가 뚝 떨어지고, 십 년 묵은 티눈이 뽑혀나온 것처럼 시원하고 시원하더이다. 으하하. 어르신도 그걸 봤어야 하는건데.”


“그 씹어먹을 비영사 놈들을 도륙했다? 하핫. 그거 참 고소하구나.”


호통치던 얼굴에 분노 대신 웃음이 떠오르자 영복은 성치 않은 몸을 굽신거리며 부탁을 거듭했다.


“그렇지요? 흐흐흐. 신의 어른. 그러니 저 호걸분 잘 좀···”


“한번만 더 입을 놀리면 치료는 불구하고 네놈도 쫓겨날 줄 알아라. 그 풍토병도 치료 받지 않으면 황천길이 그리 멀지 않았어. 그러니 그만 닥치고 저쪽에 가서 처 누워 있거라.”


진월영이 으름장을 놓자, 영복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적휘에게 다가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적휘야.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더 설득하다간 내가 죽겠다.”


“응. 알아. 충분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고맙긴 무슨. 좀 더 얘기 해 보거라. 혹시 모르지 않느냐. 신의 어른도 영 나쁜 사람은 아니니. 행운을 비마.”


뻔히 들리는 그들의 얘기에 진월영은 콧방귀를 뀌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가오는 방려를 향해 거칠게 손사래 쳤다.


“나설 것 없다. 눈두덩이와 광대, 하관과 피부색으로 보아 같은 족속이겠지. 나는 제백 인간은 절대 치료 안하기로 다짐했고 이 진월영은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거든.”


“망량신의.”


“엥?”


“도칠 좀 치료해줘. 부탁할께.”


“이 꼬맹이가 혀가 반토막이 됐나. 말 짧은 것 보게. 크크큭. 그리고 이놈아. 귀구멍이 막힌게냐? 제백 놈들은 치료 안한다니까.”


“왜 제백 사람은 치료를 안해주나?”


진월영의 매서운 눈빛에도 적휘는 굽히지 않고 말을 이었다.


명의로 불리우는 사람이 왜 사람을 가려 받는지 진심으로 궁금했고, 이유를 알아야 해결책도 찾는 법.


허나 진월영은 그저 코웃음 칠 뿐이었다.


“내가 왜 그걸 너에게 설명해야 하느냐?”


“지금 제백령에 있지 않나. 제백 사람을 치료 안한다면 왜 여기 있는거냐? 의원이잖아.”


“그 콩알만한 눈엔 내가 여기 의방을 차린 것 같으냐? 의원 노릇하러 온게 아니다. 뭘 좀 찾으러 온게지.”


“무엇을 찾는가? 내가 돕겠다.”


적휘의 당찬 말에 진월영은 크게 웃었다.


“맹랑한 놈이로고. 허나 그것이 무언지 아는 사람은 이 넓은 세상 천지에 오직 나 하나 뿐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했다.”


“허튼 소리. 허허. 그놈 앞에선 그깟 백지장 젖어서 녹아버리던지 불에 타 사라지고 말게다.”


진월영을 바라본 채 적휘는 잠시 입술을 꾹 물었다.


수확이 있었다.


그놈.


진월영이 찾고 있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도칠을 살려주면 그 사람 꼭 찾아주겠다. 도칠보다 사람을 잘 찾는 사람은 없으니까.”


“내가 언제 사람이라고 했더냐. 흥!”


남이 숨기려고 하는 것은 실수로도 들추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자존심이 강하고 남들에게 존경받는 자라면 더더욱 민감한 법.


적휘의 똘똘함에 흥미를 보이던 진월영의 눈빛은 즉시 얼음송곳처럼 날카롭게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적휘는 냉큼 뛰어가 그의 앞을 막아섰지만 진월영은 그를 밀어내고 다시 움직였다.


넘어졌던 적휘가 다시 일어나 그를 붙들었다.


그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제백 사람이 아니다.”


“니가 제백놈이든 아니든 중요한게 아니다. 저기 누워있는 놈이 제백놈이라는 것이 문제지. 비켜라. 거슬린다. 이제는 제백놈이고 뭐고 상관도 없느니라.”


“살려만 준다면 이 연적휘 평생 은혜를 갚겠다.”


적휘는 사도칠에게 들은 부친의 성을 붙였다.


몰랐으면 모르되 이젠 알게되었으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것이 진월영의 발길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달가움이 아닌 거리낌에 가까웠다.


“큭큭큭. 연가(家)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성씨가 바로 연씨니라. 꼬마야, 어디서 왔느냐?”


“나는 가족을 만난 적이 없다. 여기 있는 도칠과 방려가 내 가족이지. 하지만 아직 살아계신 부친께서는 백양이라는 곳에 계신다고 들었다.”


진월영의 얼굴이 한층 더 모호하게 찌푸려졌다.


“백양이라··· 저 검은 놈이 알려주더냐? 내가 백양 출신이라고?”


“백양 사람이었나? 아니. 몰랐다.”


“백양에서도 연가는 드물지. 설마 연권의 핏줄이더냐?”


갑작스런 호통에 적휘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망설였다.


백양이라는 나라도 그곳의 연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그저 알고 있는 사실을 얘기할 수 밖에.


“연권이라는 사람은 모른다. 내 부친의 함자는 연정천이다.”


“연정천? 연정천이 맞느냐? 네 부친이 그 연정천이란 말이냐?”


진월영은 다시금 흥분하여 적휘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고 적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부친은 백양의 장군이었다고 들었다.”


진월영은 갑자기 적휘의 고개를 잡고 오른쪽으로 돌려버렸다.


그는 적휘의 귀를 관찰하더니 무언가를 찾아냈다.


귓바퀴 앞쪽에는 손톱만한 구멍이 존재했고 진월영은 곧 탄성을 질렀다.


“이루공(耳瘻孔)! 허. 맞을 수도 있겠군. 그 빌어먹을 핏줄일 가능성이 있다? 허허. 그자에게 이런 어린 자식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권을 모른다고? 허허허.”


적휘는 진월영이 횡설수설하는 것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가 부친을 알고 있다는 것 쯤은 헤아릴 수 있었다.


“내 부친을 아는가?”


“네 부친을 아냐고? 이 패국에서 그자를 모르는 작자도 있더냐? 내 일전에 그에게 신세진 적도 있었지.”


적휘는 상황의 흐름을 읽기 어려웠다.


평생을 숨어 지냈다.


백양이란 나라의 존재도 몰랐지만 패국의 역사와 유명인사 또한 알지 못했다.


허나 진월영이 부친에 대한 적개심이 없는 것을 보아 상황은 긍정적으로 보였다.


“그럼, 도와주는···”


“불가(不可)! 그자에게 진 빚은 이미 다 갚았다. 썩 물러가거라.”


진월영은 축객령을 내린 후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그가 도착한 방에는 이제 얼굴까지 발진이 오르기 시작한 영복이 누워 있었다.


“자, 이제 물똥 쌀 시간이다. 크큭. 아주 쭉쭉 빼주마. 밑구멍이 불에 덴 것처럼 아프겠지만, 다 빼고 나면 시원할 것이야. 하하핫.”


영복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도와준 진월영은 그의 입 앞으로 약을 들이밀었다.


그순간 영복이 진월영의 손을 잡고 더없이 진중한 얼굴로 호소했다.


“저들을 도와주십시오. 이 영복이 간곡히 부탁드리오.”


“다 끝난 얘기다. 네놈도 죽고 싶은게냐?”


“저 아이는 그분의 자식이오.”


“엥? 그분? 낄낄. 네가 연가놈을 그분이라 칭한 것이냐? 오래살고 볼 일이구나. 허허헛.”


진월영의 비아냥거리는 소리에도 영복의 진중함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고심 끝에 내놓은 말은 진월영도 놀랄 만한 이야기였다.


“연씨가 아니라··· 환씨요.”


“······ 허. 뭐라? 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핫.”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비금곡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공지 +2 21.06.28 55 0 -
공지 수정사항 공지. 연재 주기 변경. +1 21.05.28 78 0 -
공지 연재시간은 오전 10시입니다. 21.05.19 141 0 -
42 신평현(新平縣) +1 21.06.25 56 2 13쪽
41 여경록(呂瓊綠) 21.06.24 49 2 14쪽
40 거인(巨人) 21.06.23 56 2 14쪽
39 백청귀(白靑鬼) 21.06.22 64 2 12쪽
38 개유주(開幽州) -2 21.06.21 74 2 11쪽
37 개유주(開幽州) -1 +1 21.06.18 117 4 11쪽
36 거절할 수 없는 제안. 21.06.17 120 4 14쪽
35 가장 무서운 것. +1 21.06.16 138 5 10쪽
34 습격(襲擊) +1 21.06.15 143 5 14쪽
33 잔치 +1 21.06.14 166 4 11쪽
32 대기근(大飢饉) +2 21.06.11 179 4 13쪽
31 낚시 +3 21.06.10 190 6 13쪽
30 음모(陰謨) +1 21.06.09 174 7 12쪽
29 버림받은 자들의 왕 +1 21.06.08 179 8 14쪽
28 첫걸음 +1 21.06.07 189 9 13쪽
27 출발(出發) +3 21.06.04 217 11 14쪽
26 약속(約束) +1 21.06.03 234 11 11쪽
25 모방(摹倣) +1 21.06.02 228 10 14쪽
» 망량신의(魍魎神醫) +1 21.06.01 255 8 17쪽
23 비금곡(秘琴谷) +2 21.05.31 248 9 15쪽
22 탈출(脫出) +3 21.05.28 275 9 17쪽
21 노장(老將) +1 21.05.27 284 9 11쪽
20 재회(再會) +1 21.05.26 295 9 12쪽
19 폭발(爆發) +2 21.05.25 311 10 18쪽
18 감옥(監獄) +2 21.05.24 333 9 13쪽
17 원한(怨恨) +2 21.05.23 337 9 13쪽
16 사라지다 - 2 +1 21.05.22 337 9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