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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2,442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작성
21.05.25 10:00
조회
310
추천
10
글자
18쪽

폭발(爆發)

DUMMY

창요단(昌曜團).


문자 그대로 커다란 기세로 뻗어나가는 빛처럼 과거 숭무련의 기세를 세상에 떨친 특별무력단체.


호정이 속했던 보천단이 놀라운 정보수집능력과 계략, 공작에 능했다면 창요단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섬멸하는 전천후 무인집단이었다.


호정은 그 유명한 창요단에서도 정점에 있던 창요단주 사도칠의 무력을 여지없이 느끼고 있었다.


그가 무기를 휘두르는 속도에 놀랐고 악독하리만큼 잔인한 손속에 놀랐으며 그의 나이를 되새기며 또 한 번 놀랐다.


싸움이 시작된지 일다경 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여섯 명의 정예들 중 셋이 부상을 입었다.


물론 그의 싸움 실력을 처음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 전보다 실력이 나아진 것 같은 것인가. 저놈도 분명 나이라는 것을 먹었을 터인데.


‘멈춰야 하는가.’


수하들의 부상이 얕지 않다.


검을 쥔 손가락이 잘린 자, 움직임의 밑바탕인 발목과 다리를 베인 자들.


아직도 검을 들고 있는 그들의 의지는 높이 사야겠지만 그들을 칭찬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직 죽은 사람이 없는 것도 사도칠의 손에 일말의 자비가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호정을 지배했다.


멈춰야 한다.


처음부터 사도칠을 제지하기 위한 싸움이지 피를 흘리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호정은 쓴 웃음을 지으며 싸움을 멈추려 했다.


그 순간, 임시 거처의 문을 발칵 열어 젖히며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군사(軍師)! 일이 터졌습니다.”


난데없는 외침으로 인해 어느새 사도칠과 정예무사들의 싸움도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호정은 내심 다행이라 여기며 그를 다그쳤다.


“무슨 일인가?”


“누가 청양성 내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뭐라? 누가?”


미리 언급했다시피 내성을 공격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인원수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접근조차 힘들었습니다.”


“숫자는?”


“정확하진 않으나 이백 명이 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번뿐이긴 하지만 폭약이···”


“뭐라? 지금 폭약이라 했느냐?”


“예. 폭약으로 인해 내성 서쪽 외벽이 무너졌습니다.”


호정이 사도칠을 보았고 사도칠이 호정을 보았다.


폭약은 커녕 그것을 구성하는 화약도 나라에서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에 결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검을 거두어라.”


무사들이 검을 거두자 사도칠은 즉시 움직일 낌새를 보였고 호정은 급히 그를 불렀다.


“홀로 갈 것인가?”


“바보가 아니라면 지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조금 전의 일은 자네를 적대하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게. 아무 대책도 없이 자네를 사지에 보낼 수는 없었다네.”


“쓸데없는 소리.”


“내 서른 명을 붙여주겠네. 지금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


“얼어죽을 놈. 스무 명도 어렵다더니. 난 먼저 간다. 보낼 놈이 있으면 서두르고. 부디 저놈들 보단 나은 놈들이길 빈다.”


사도칠은 그 말을 남기고 쏜살같이 뛰어나갔고, 그와 검을 맞댄 무인들의 얼굴은 처참하게 구겨졌다.


호정은 재빨리 뒤에 시립해 있던 흑의 무인을 불렀다.


사내의 이름은 주환.


이곳에 남아있는 자들 중 호정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내였다.


“날랜 자들로 서른. 지금 즉시 따라가도록. 저놈은 필시 동쪽으로 갈 것이니 놓쳐선 안된다. 설사 정보가 잘못되었더라도 상관없다. 그 아이가 용모파기와 비슷하게 생기기만 해도 그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사도칠이나 정체 모를 그 놈들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 반드시 우리가 확보해야 할 것이야.”


주환은 호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으로 뛰어나갔고 호정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신경질적으로 두들겼다. 그가 가진 버릇이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정보에 휘둘리는 것에 몸서리를 쳤다.


“누구인가··· 누가··· 혹시 그자가?···”


호정은 자신에게 서찰을 보내 수도의 움직임을 알린 자를 떠올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


호정은 온통 수수께기에 둘러싸인 그자를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이내 포기했다.


이름도 용모도 모르는 자를 알아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호정은 다시 사람을 불렀다. 내성을 공격하는 자들의 정체를 알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앞날을 바꾸게 될 행동이라는 것은 그도 알지 못했다.






*






“진왕 전하를 뵙습니다.”


연정백이 옥사 안으로 들어섰고 그의 뒤로 십수 명의 병사들이 뒤를 이었다.


청색 갑주를 입은 수비대와 흑색 갑주를 입은 금사군은 모두 정예로 이뤄져 눈빛이 범상치 않았다.


이낙현은 거동조차 불편한 몸을 최대한 숙여 예를 갖췄다.


싸늘한 연정백의 시선에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수비대장. 어찌된 일인가? 어째서 이수사가 본왕보다 먼저 와 있는거지?”


연정백의 물음에 청색 갑주를 입은 내성 수비대장 임충이 즉시 한걸음 나왔다.


이미 오십이 넘었건만 절도 있는 몸짓은 평소 그의 마음가짐이 물씬 풍겼다.


“소인은 비영사에게 인계받은 즉시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수사는 그놈들에게 직접 들은 모양이군. 어찌된 영문인지 이수사는 비영사 놈들과 연이 깊은 것 같아.”


“그게···”


이낙현이 대꾸를 하려 했지만 연정백의 차가운 목소리가 허락하지 않았다.


“함충식의 장례에 환소백의 자식을 올린다? 흥미로운 생각이야. 누구의 생각인가? 자넨가? 누가 그것을 허락한다 했지?”


연정백의 다그침이 이어지자 이낙현은 말을 아꼈다.


얼굴에 뜬 난처함이야 어쩔 수 없지만 꾸짖음에 변명을 보태는 어리석음은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다시 본왕 모르게 허튼 짓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야. 장인의 사람이라 해도 본왕을 기만한 죄는 피할 수 없음이고.”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이낙현은 깊게 숙이며 몸을 벌벌 떨었다.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에 긴장이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연정백은 이낙현을 싸늘하게 노려본 후, 그가 앉았던 의자에 착석했다.


그리고 보았다.


자신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제백의 마지막 왕손의 얼굴을.


시리도록 차가운 그의 눈빛은 맹수의 발톱처럼 위협적이었지만 작은 소년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닮았다.’


너무도 닮았다.


연정백은 지난 날 환소백의 얼굴을 더듬었다.


위국과의 마지막 전쟁. 그 끔찍하고 처절했던 천중대전에서도 그의 얼굴은 유난히 빛났다.


그의 신속한 판단과 용맹한 기상은 아군에게 마르지 않는 사기를 심었다.


또 천중대전이 끝나고 패국의 건국을 기념하던 날은 어땠는가.


환소백은 깊은 통찰과 날카로운 재지를 보여 모든 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무사의 얼굴과 문사의 얼굴을 동시에 지닌 그야말로 일세지웅(一世之雄)이오,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 불릴 만한 인물이 바로 환소백이었다.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던 부황의 시선이 그놈에게 꽂혔을 땐, 당장이라도 달려가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다.


팔 년 전, 제백왕 환중길은 제 손으로 죽였지만 환소백의 죽음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을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하지만 그의 아들이 여기에 있다. 그와 너무도 닮은 그의 아들이.


“굳이 많은 말을 나눌 필요는 없겠지. 이악.”


많은 말이 필요없다.


이악은 즉시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검을 꺼내어 그에게 전했다.


연정백은 훗날의 화근을 직접 제거하기 위해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근이란 빠르게 제거해야 하는 것이지, 시간을 끌면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가 검을 들어 올리기 직전, 적휘의 입이 열렸다.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당돌한 적휘의 말에 호기심이 동했을까.


연정백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해 주었다.


“무엇이냐? 아직도 존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느냐? 너무 어려서? 그도 아니면 너무 천해서?”


“존대할 대상을 가리라고 배웠다.”


“하하.”


재밌다.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오연한 모습을 보이는 어린 소년의 모습에 연정백은 크게 기꺼웠다.


환소백의 기상을 그대로 가진 모습이 그랬고 그것이 제 손 안에 들어온 것은 더욱 그랬다.


“그래. 맞다. 패국의 모든 백성은 본왕을 존대해야하지만 너는 날 존대할 이유가 없지. 세상 어느 누가 제 가족의 원수에게 존대를 하겠는가.”


“······ 다들 내 성이 환씨라 생각하는 모양이네. 그게 맞아?”


“성씨도 몰랐던가? 허. 안타깝구나. 누구도 너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비록 보잘 것 없는 명일지라도 제명에 죽었을 것을. 쯧쯧.”


“맞나보네. 좋아. 내가 환씨라면, 당신이 내 원수인 이유는 뭐지?”


“흐음··· 하하. 원수에게 원한을 묻는다? 이런 것은 들어본 적도 없군. 허나 나쁘진 않겠지. 참신함이야말로 기억을 오래도록 유지시켜 주니까. 간단하다. 네 조부인 환중길의 몸에 검을 쑤셔박은 사람이 본왕이다. 네 부친은 끔찍한 화마(火魔)에 휩쓸려 단명했지. 그것을 지시한 것도 본왕이니라. 어떠냐? 이정도면 네 원수가 될만 하더냐?”


“왜그랬어?”


“왜냐고? 총명한 줄 알았더니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군. 세상 물정도 모르는 젖먹이였어. 제왕의 길에 오를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이유따윈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한가지 규칙만 존재하지. 사냥을 하든지. 사냥을 당하든지. 네 부친은 그 규칙을 간과했고 그래서 사냥을 당한 것 뿐이다. 국사무쌍이라 추앙받던 놈이 알고보니 강자가 아니라 약자였던게지.”


연정백은 적휘에게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기대했으나 시선을 내린 적휘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조그맣고 때가 탄 손이 작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더이상의 유희는 의미가 없다.


연정백은 검을 들어 적휘의 가느다란 목에 갖다대었다.


그 순간, 적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는 누구냐?”


연정백과 시선을 맞춘 적휘의 눈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속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억울함, 분노가 뒤범벅되어 결코 소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깊이가 존재했다.


연정백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본왕은 대 패국의 이황자 진왕 연정백이다.”


“연정백. 그 빌어먹을 이름. 기억하겠다.”


연정백은 웃었다.


그리고 놀랐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을까. 분명 열 살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놈이다.


아랫도리가 축축히 젖은 것으로 보아 두려움이 뼛속까지 두들긴 것이 분명한데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을 부릅뜨며 욕지거리를 뱉는다?


기가 찰 일이었다.


용기란 두려움을 모르는 자의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것은 만용에 불과한 것.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을 알고도 그를 이겨내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눈 앞의 아이는 용(龍)이다. 지금은 새끼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창천을 누비고 세상을 휘저을 만한 잠룡(潛龍).


연정백은 문득 진천에 있는 자신의 자식을 떠올렸다. 비교적 늦게 낳아 적휘와 비슷한 또래의 아들은···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이상 시간 끌 생각이 사라져버렸다.


그는 천천히 검을 높이 들었다.


다시는 제백의 왕손에 대한 말이 떠돌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 누구도 자신에게서 흠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순간, 무언가가 그에게 빠르게 날아들었다.


터억!


연정백의 가슴을 강타한 것은 지푸라기가 섞인 주먹밥이었다.


“야이 개같은 놈아! 문성공(文成公)이 강자가 아니면 세상 누가 강자라더냐!”


놀랍게도 창살 사이로 머리를 빼내어 소리를 지른 것은 적휘를 손찌검했던 장무였다.


문성공은 환소백의 봉호(封號)였다.


“뭐? 진왕? 아, 네놈이 진왕이로구나! 내 알지. 아주 잘 알지. 오랑캐 황자로 이름난 그 잡놈이로구나! 그 퍼런 눈깔을 보니 못 알아볼 수가 있을까. 야이 호랑말코같은 오랑캐놈아! 당장 검을 거두지 못할까! 우리 제백의 마마님을 어디 오랑캐따위가 위협 하는 것이냐! 당장 물러서지 못할까! 네 이노오오옴!”


연정백의 이성을 붙들고 있던 끈이 잘라졌다.


오랑캐 황자.


뒤에서 수근거릴지 몰라도 지금은 누구도 그의 앞에서 꺼낼 수 없는 말.


어릴때 무수히 들었던 가장 치욕적인 단어가 한낱 죄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장무의 말처럼 파란색은 아니었지만 그의 옅은 잿빛 눈동자에 불이 튀었다.


연정백의 검이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졌다.


하지만 장무는 너무도 쉽게 피해버렸고 그의 분노를 가득 실은 검은 두터운 나무 창살에 박혀버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검술 실력은 좋게 봐줘도 이류도 안되는 수준이었으니까.


“끌어내라! 어서!”


연정백의 불호령에 간수가 장무를 끌고 나왔다.


장무는 반항을 해보았지만 간수의 몽둥이는 자비가 없었다.


질질 끌려 나온 장무는 꿇어 앉혀진 채로 연정백을 올려보며 피로 범벅이된 입을 열었다.


“이 잡놈아. 네놈이 뭔 짓을 해도 이 주둥이는 막지 못할 것이다. 오랑캐 잡노무 새끼야. 카악 퉷!”


피가 섞인 침이 연정백의 새하얀 옷을 더럽혔다.


연정백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움직였다.


푸욱.


“자, 그 잘난 주둥이를 또 놀려보아라.”


연정백은 장무를 곱게 죽일 생각이 없었다.


복부를 꿰뚫린 장무가 뒤로 벌러덩 쓰러졌고 뒤에 있던 적휘와 눈이 마주쳤다.


장무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돌리더니 기어이 엎드린 채로 절을 했다.


“마마··· 소인이 눈 뜬 장님이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감히 문성공의 아드님을 욕보인 죄··· 죽어 갚겠습니다. 부디··· 부디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마마···”


적휘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피를 토하고 눈물을 흘리며 간신히 말을 잇는 장무의 모습에 제 눈에도 물기를 머금었다.


환소백이라고. 문성공이라고 불렸던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던 것일까.


어떤 이에겐 치를 떨게 만들고, 어떤 이에겐 한없이 숭상을 받는 자.


그리고··· 그가 정말 아버지일까.


스걱


적휘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어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연정백의 검이 장무의 몸을 길게 베었고 장무가 절명한 것이다.


그 순간 남은 죄수들의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이노옴! 나도 죽여라! 나도 죽이거라 이 잡놈아!”


“야이 오랑캐놈아!”


“마마를 건들지 마라! 이노오오옴!”


“이 개같은 놈아! 나도 죽여라! 나도!”


연정백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인해 몸을 떨었다.


“오냐. 소원이라면 모조리 죽여주마. 백명이든 천명이든 베어주마. 내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느니라. 옥을 열어라!”


이글거리는 그의 눈엔 죄수들이 나오는 족족 베어죽일 의지가 충분했다.


하지만 옥의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열쇠를 가지고 있던 간수가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뭣들하는 것이냐! 어서 열지 않고.”


“불가하오.”


임충이었다.


그는 그대로 적휘에게 다가갔고 청색 갑주를 입은 수비대 병사들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뭐라? 불가?”


“군신유의(君臣有義)라 했거늘. 이 임충이 죄수에게 그것을 다시 배우게 될 줄은 몰랐소. 청양 내성 수비대장 임충! 지금부터 외인이 제백을 욕보이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임충의 말이 끝나자 수비대 병사 전원의 검이 뽑혔고 흑색 갑주를 입은 금사군 또한 검을 뽑았다.


그 기묘한 대치 속에서 임충이 몸을 돌려 깊게 허리를 숙였다.


“마마. 소신, 항상 문성공의 재능에 경탄하고 그분의 높은 지조를 흠모했습니다. 지금에 와서라도 그분의 자제분을 모실 수 있게되어 영광입니다. 부족하지만 지금부터 소신이 모시겠습니다. 이 임충! 목숨걸고 저 간악한 악적들로부터 마마를 지키겠나이다!”


적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서 일어서 고개를 한번 끄덕였을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임충은 눈을 지그시 감더니 몸을 돌려 검을 뽑았다.


“수비대는 듣거라. 지금부터 이곳을 빠져나간다. 우릴 막아서는 자는 누구든 벤다. 그게 금사군이든 비영사든 가릴 것 없다. 그자가 오주관을 쓴 패국의 황자라 할지라도!”


“충!”


수비대는 한명도 빠짐없이 그의 명에 따랐다.


그들 모두가 평생을 제백의 땅에서 자라온 몸이다.


제백의 백성들이라면 제백의 왕과 문성공을 흠모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조금 전 죄수들의 외침에 피가 끓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때 뒤로 물러서 있던 이낙현이 외쳤다.


“임충! 정녕 후환이 두렵지도 않소? 그대의 가족들은 물론 병사들의 가족까지 모조리 죽을 것이오. 아직 늦지 않았소. 지금이라도 검을 내려 놓는다면 진왕 전하께서 선처하실 것이오.”


“닥쳐라! 어디서 상인 나부랭이가 입을 여는 것인가!”


임충의 호통에 이낙현의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다시 나서려던 그는 연정백의 손짓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이악. 추팽을 부르도록.”


연정백은 작게 이악에게 명을 내린 후 임충을 직시했다.


“고작 그 숫자로는 내성은 커녕 이곳을 빠져나가기도 힘들 것이다. 그 아이만 내놓는다면 본왕이 한번은 눈감아 주겠다.”


“진왕! 아니 연정백! 귀가 막혔더냐! 이몸은 이미 목숨을 걸었다.”


연정백은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한발 물러서 금사군에게 명을 내렸다.


“쳐라.”


금사군 여덟이 전진했고 수비대 다섯이 그들을 맞이했다.


숫적으로도 실력으로도 자신있던 금사군 병사들은 기합성을 내며 검을 휘둘렀다.


쿠쾅콰콰콰쾅


그때 거대한 충격이 그들의 발 밑을 울렸다.


발 밑 뿐 아니라 그들이 서 있는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거대한 떨림이 싸움을 멈췄다.


연정백의 얼굴이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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