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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2,431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작성
21.06.16 10:09
조회
137
추천
5
글자
10쪽

가장 무서운 것.

DUMMY

사도칠은 주저 앉아있는 촌장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고 그를 이끌고 헛간 밖으로 향했다.


“자, 주둥이가 뚫렸으면 말해봐라. 이것이 이 빌어 처먹을 동네가 은혜를 갚는 방식이더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촌장은 바들바들 떨며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그를 일별한 사도칠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의 초옥들을 바라보며 목청을 키웠다.


“다들 숨어서 보고 있겠지? 은혜를 잊지 않겠다더니 하루도 지나지 않아 웬수로 갚아? 이런 니미럴. 다들 하나하나 찾아서 지근지근 밟아 터트려주랴?”


서릿발 같은 그의 호통에 그나마 고개를 내밀고 있던 인영들도 사라졌다.


그 순간, 적휘를 바라봤던 방려는 깜짝 놀랐다.


상황을 지켜보던 적휘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띄어 있었던 것이다.


방려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면목이 없습니다만 무사님······ 저희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면목? 면목! 면상을 그냥 확··· 엥? 뭐냐?”


사도칠에게 다가간 방려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며 그를 만류했다.


사도칠은 그녀가 왜 고개를 가로젓는지 몰랐지만 곧 촌장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녀의 움직임은 항상 적휘와 관련이 있음을 아는 까닭이었다.


그의 뿌리침에 털썩 주저앉은 촌장은 연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부디 저희를 가엽게 여겨주시고··· 보잘것 없는 삶이라도 이어갈 수 있도록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빕니다···”


방려는 곡을 하기 시작한 촌장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저희는 지금 떠날 것이니 더이상 심려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인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은혜라는 말은 전날에도 들었지요. 마음에 없는 말은 더이상 받지 않겠습니다. 허나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운과 복은 행하는 대로 돌아오기 마련이니까요. 그럼.”


방려는 가볍게 말을 마치고 일행들을 이끌었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사도칠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마을을 노려보자 적휘가 슬쩍 다가가 그를 잡아 끌었다.


그리고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도칠. 잘된 거잖아. 다친 사람도 없고, 돈도 넉넉히 생겼고. 이렇게 도적 몇 번만 더 만나면 동경까지 노잣돈 걱정은 없겠어. 그렇지?”


마을을 향해 부라리던 사도칠은 눈을 내리깔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같은 말을 들은 방려의 반응은 그와 확연하게 달랐다.


그녀는 적휘의 말을 듣자마자 두 눈을 땡그랗게 뜨며 가슴을 철렁였다.


그리고 적휘에게 다가가 크게 나무랐다.


“도련님! 다시는 그런 말 꺼내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응? 어어. 알았어.”


난데없는 호통에 깜짝 놀란 적휘는 반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선 자신에게 이렇게 크게 소리치는 방려를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일이든, 남들이 그렇게 산다고 따라 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십시오. 절대 그렇게 살아선 아니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응. 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안그럴께.”


적휘의 수긍에도 방려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이윽고 그녀는 사도칠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뭐냐?”


“주십시오.”


“뭘?”


“도적에게서 받은 것을 주십시오.”


사도칠의 얼굴이 구겨졌다.


방려의 눈에는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굳센 의지가 서려있었던 것이다.


마치 적휘의 안전을 염려하던 때와 같은···


결국 그에게서 이충배에게 받은 것들을 넘겨받은 방려는 발길을 돌려 마을을 향하는 촌장을 거칠게 붙잡았다.


그것은 사도칠도 적휘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어찌 그러십···”


“근방에 부자가 있습니까?”


“예?”


“창고에 양곡을 쌓아 둘 만한 부자가 근방에 있냐는 말입니다.”


“아, 예. 있기야 있습니다. 이곳에서 몇 리를 가면··· 그런데 귀인께서 어찌···”


방려가 촌장의 손을 잡아챘다. 그리고 촌장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을 어찌···”


“그것으로 아까 말했던 부자에게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양곡을 사십시오. 그리한다면 올해는 어찌 견딜 수 있지 않겠습니까?”


촌장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리고 결국 눈에 그득히 눈물을 머금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 어······ 아이고···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한단 말입니까······”


은혜를 원수로, 다시 원수가 은혜로 돌아왔다.


촌장이 흘리는 눈물에는 진심어린 감사와 부끄러움, 후회가 담겨있었다. 차마 모두 열거하지 못할 수많은 마음들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방려는 그런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같이 살아야지요. 오늘 일은 잊으시고 힘을 내십시오. 꿋꿋이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적휘의 눈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는 어떤 것을 느낀 것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들이 그의 마음 깊이 자리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촌장은 방려와 일행이 떠나고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한참동안 통곡을 했다.


다시금 동경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중, 사도칠이 방려에게 다가왔다.


“왜 그랬느냐?”


“무엇을 말하십니까?”


“저치들이 우리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졌어야 됐단 말이 아니다. 힘이 없느니 그런 것들은 변명에 불과한 것. 어찌됐든 우리를 팔아먹은 종자들 아니더냐. 꼭 그렇게까지 해야했느냐?”


나지막한 그의 말에는 가시가 돋혀 있었다.


그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방려의 행동이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르신. 그들이 우리에게 그런 짓을 했다고 해도 저희가 똑같이 할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이냐? 우릴 할퀴는 놈이 있으면 뼈라도 부러뜨려줘야 마땅하거늘.”


“저는 도련님이 무섭습니다.”


방려의 말에 사도칠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라? 소주가 왜?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부모에겐 자식의 눈이 가장 무섭기 때문입니다.”


사도칠이 이맛살을 들어올리자 방려는 얕은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저라고 어찌 저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허나 우릴 보고 자라고 있는 도련님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답습하신다면······ 저는 도련님이 저들과는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저와도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찌른다고 남을 찌르는 자가 아닌. 더 높고 더 넓은 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도칠은 또한번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 충격을 받았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식의 눈이 가장 무섭다.


그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말이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적휘의 보호자는 그들이었다. 그 중에 부모로서의 자각을 한 것은 방려만이었던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를 괴롭혔다.


한바탕 마른 세수를 하고 멍하게 고뇌하는 사도칠을 지켜본 방려가 미소지었다.


“어르신은 누구보다 훌륭하게 도련님을 돌보고 계십니다.”


“그건 또 뭔 소리냐?”


“어르신은 누구보다 강하시지 않습니까. 결코 휘어지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그 강함을 도련님은 눈에 담고 또 담으실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내에겐 꼭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사도칠이 눈을 감았다.


길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는 방려의 말을 점차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부모가 없었다. 그래서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부모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은 그의 마음 속에도 한 명 있었다.


자신보다 어렸음에도 그분을 부모처럼 공경했고 흠모하지 않았던가.


자신도 적휘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따뜻한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부모와 같은 존재.


그가 방려를 따라할 수는 없다.


그 누군가를 따라할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의 개성과 성품은 천차만별이고 모든 부모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저 어르신께서 옳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사도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다.


그는 방려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눈 한번을 맞춘 뒤 그들보다 약간 앞서있는 적휘에게 다가갔다.


“도칠.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적휘의 말에 사도칠의 이마에 잔주름이 물결쳤다.


“내가 강해진게 아니라 그놈들이 오지게 형편없는 것이오. 아직도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서야. 쯧쯧.”


“그사람들 덩치도 크고 꽤 강해 보이던데 뭘.”


“소주. 잘 들으시오. 그놈들은 그냥 일반인이라 봐야하오.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놈들이지. 그런 놈들은 자기가 들고 있는 병기의 거리나 이점이 무엇인지 장단점조차 모르고 다른 무기와의 상성과 같은 기본 상식이 무(無)에 가깝소. 그냥 어줍잖은 힘으로 하찮게 흔들어 댈 뿐이란 말이오. 그에 반해서 군에 있는 병사들은 훈련도 받고 몰랐던 정보와 상식을 채워 일반인들과 그 궤를 달리하오. 허나 그 병사들도 정예병들에겐 코흘리개일 뿐이오. 정예병은 기본적으로 짐승같은 놈들로 구성되어서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체계적인 훈련과 전투를 밥 먹듯이 하는 놈들이오. 같은 무기를 들었다 해도 그 차이는 태산과 자갈만큼 크단 말이지. 그리고 나는 그 정예병들을 훈련 시킨 몸이라오. 아시겠소?”


사도칠의 지칠 줄 모르는 설명에 적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 그러니까 도칠이 잘났다?”


“잘났지 그럼. 칼 잡는 걸로는 이 노복을 따라갈 놈이 몇 놈 되는 줄 아시오? 다시는 저따위 도적 나부랭이 놈들과 비교하지 마시오.”


한걸음 한걸음에 웃음꽃이 핀다. 주인과 종복이 웃음을 나누고 핀잔을 나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여인의 입가에도 꽃처럼 고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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