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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2,450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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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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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탈출(脫出)

DUMMY

사도칠과 적휘가 도착한 곳은 월후옥이라는 허름한 현판을 걸어 놓은 포목점이었다.


포목점 좌측 외벽에 월계화가 새겨진 목패를 가지런히 걸어둔 사도칠은 적휘와 함께 포목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한순간도 앉아 있지 못한 방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리저리 서성거리던 그녀는 적휘를 보는 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아픔을 절절히 담고 있는 그녀의 눈빛에 적휘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려······”


방려는 덜덜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적휘의 몰골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솟고 생살을 도려 내듯이 쓰리고 아파왔다. 그녀는 절로 덜덜 떨어대는 손으로 적휘의 양 어깨를 감쌌다.


“······괜찮으신 것입니까?”


적휘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하던 그녀는 결국 고개를 숙여버렸다.


어찌 눈을 맞추겠는가.


자신의 잘못이다. 자신이 주의를 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울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 혼자 안전한 곳에 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칫 사도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으니 적휘의 구출을 위해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무사할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살아 돌아온 적휘의 모습은 전처럼 곱지 못했다.


그 보드랍던 피부가 찢어지고 딱지가 앉아있다. 미처 닦지 못한 핏자국을 발견했을 땐 절로 튀어나오려는 통곡에 입을 막았다.


언제까지 이 아이가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것인가.


“이년이······ 죽을 죄를···”


그 순간 적휘의 따뜻한 손이 방려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네 덕분이야.”


“······”


“려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무섭지 않았어. 려가 계속 내 옆에 있어줘서. 그래서 괜찮았어.”


방려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눈을 질끈 감았다.


왜 이런 상황에서도 남을 생각하는가? 어른 탓을 해야 마땅할 나이에 왜 어른을 위로하려 하는가. 가장 고통 받은 이는 누가 뭐래도 그가 아닌가.


그녀는 새삼 막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이분은 이런 곳에 있어선 안된다. 반드시···’


“한가하게 노닥거릴 때가 아니다. 안내하는 놈이 오면 즉시 청양을 떠나야 할 것이야. 지금이 아니면 더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말을 툭툭 뱉은 후 고개를 돌린 사도칠을 보며 방려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당사자도 모르게 보인 예의였지만 존경과 감사가 섞인 진심어린 인사였다.


사지에서 적휘를 구출해온 사도칠은 그녀에게 영웅이요, 구세주나 마찬가지였으니 말해 무엇하랴.


“어르신.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더냐. 우리에게 제백령은 위험하다고. 오늘 청양을 벗어나면 제백령을 뜰 것이다.”


“지금 청양을 나갈 수 있단 말입니까?”


“내키지는 않지만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다. 호정 그놈 꿍꿍이속을 알 수가 없지만 믿을 만한 놈이다. 우린 그저 기다리면 된다.”


방려는 그를 믿었기에 더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적휘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을 토해 내었다.


“청양 밖 어디로?”


“오태산이오.”


“오태산이 어딘데?”


“서남쪽. 남강(南羌)에서도 서쪽이라오.”


“거길 왜 가?”


“소주의 부친이 그곳에 있소.”


적휘는 눈을 번뜩였다. 사실 지금까지 호기심을 누른 것만 해도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었다.


“내 성이 환씨인거야?”


주고받던 대화가 끊어졌다.


사도칠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문 위로 보이는 산허리에 도막난 구름이 낮게 걸린 것이 그의 눈에 띄었다.


바람이 불자 그 구름 자투리가 오랜 시간 길을 잃고 헤매는 그의 과거처럼 산줄기를 흐물흐물 떠돌았다.


사도칠은 눈을 질끈 감고 주군이 건넸던 마지막 서신을 떠올렸다.


그의 눈이 뜨였을땐 굳어있던 그의 입도 함께 열렸다.


“패국이 건국되기 전, 대 위국을 제외한 오소국이 존재했소. 소주의 부친은 그중 가장 작았던 나라 백양(白陽)의 장군이었소.”


“장군? 우리 아버지가 장군이셨다고?”


“그렇소.”


적휘가 신기하다는 듯 거듭 질문을 던졌다.


일순간도 의혹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 완전한 신뢰에 사도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적휘의 안위와도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모든 것을 알려줄 수는 없었다. 그로 인한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적휘는 이제야 듣게 되는 부친의 이야기에 한껏 들떠 있었다.


“아버지를 본 적 있어?”


“전장에서 두어 번 본 적 있소.”


“아버지는 어떤 장군이셨어?”


“많이 보진 못했지만 내가 본 어떤 자보다 훌륭한 장수였소. 전장에선 장수의 차이에 따라 군의 사기가 결정되는 법인데, 소주의 부친이 나타나면 아군의 사기는 승천하고 적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후퇴를 거듭 하더이다.”


“와. 대단한걸. 아버지의 함자는?”


“······연정천.”


“연정천··· 연정천··· 연정천···”


적휘는 미소를 끊이지 않고 부친의 이름을 되뇌었다.


반면 사도칠에 의해 그 이름을 듣게 된 방려는 매우 놀란 모양새였다.


그녀는 적휘와 달리 세상 이야기에 어둡지 않았고, 그 백양의 장수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서편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거리의 행인들도 드문드문 사라질 즈음이 되자 사도칠은 걸쭉한 욕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행들을 데리고 월후옥을 나서려던 찰나, 남색 장삼을 말끔히 차려입은 자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제재위에서 나오셨소?”


“그렇다.”


“따라오시오.”


다부진 체격을 가진 사내가 앞장섰고 사도칠과 일행들은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사내는 걸을 때 왼팔만 크게 흔들며 오른팔은 거의 흔들지 않는 독특한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었다.


사내를 예의주시하던 사도칠은 그것을 확인한 후 곁에서 걷던 일행들을 자신의 뒤로 보냈다.


사내는 건물 모퉁이를 돌고 또 돌았다.


월후옥에서 가까웠던 남문이 다시금 가까워지는 걸로 보아 근방을 한참 동안 빙빙 돌았던 것이다.


큰길과 가까웠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 다다르자 사도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염병할. 그만해라. 이 정도면 적당한 장소에 든 것 같으니.”


사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무슨 말씀인지···”


“얼어죽을. 무련의 암살조, 천살단(擅殺團)놈이 낯짝도 두껍구나.”


눈을 크게 뜨고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내가 빙그레 웃더니 사도칠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잘 되었습니다. 위명이 자자하신 창요단주께 암습 따위를 하는 것은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했습죠.”


사도칠은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사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사내의 독특한 걸음걸이는 오른손을 가슴에 넣어 빠르게 단도를 빼낼 수 있도록 훈련받는 숭무련 무인들의 특징과도 같았으니까.


어떤 위기에도 대처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은 사내의 몸 깊숙이 배어 떨어지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사도칠은 기억의 모퉁이에 새겨진 사내의 어린시절을 기어코 생각해냈다.


“위명은 얼어죽을. 오랜만이로구나. 송악준이라 했었나? 세월이 흘러 많이도 변했군. 어린 애송이였는데 말이야. 못 알아볼 뻔했어.”


“저같은 놈을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저도 단주께서 무탈하신 것을 보니 감격스럽군요.”


“호정의 지시더냐?”


“······”


송악준의 침묵은 그것이 사실임을 반증했다.


사도칠은 오랜 벗의 결정에 섭섭함이 들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암중에 있는 제재위의 존속을 위함이니 어쩔 수 없었을 테지.


송악준은 다시 한번 깊게 읍했다.


“단주님. 죄송하지만 더이상은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잡소리 집어치우고 어서 나오라 이르거라.”


뜻 모를 소리였지만 마주 선 송악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검을 든 무인 다섯이 각각의 방향에서 장내로 난입했다.


“여인과 아이는 물리시지요. 혹시 다칠까 염려됩니다.”


“흥.”


사도칠은 방려와 적휘를 멀리 두지 않고 자신의 뒤편으로 보냈다.


항마도를 꺼내 든 그가 그들을 보며 오연한 자세로 손을 까딱거리자 싸움이 시작되었다.


다섯 무인은 기세등등하게 검을 휘둘렀지만 결코 사도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이 얼마 버지티 못하고 쓰러지자 송악준은 웃었다.


예상은 했지만 저 인간의 도는 아직도 무섭다.


‘저들의 숨이 붙어있는 것은 호정 님에 대한 배려겠지···’


송악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사도칠의 앞에 섰다.


“무련 놈은 너 뿐이더냐?”


“예. 살아남은 동지가 많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요. 단주, 외람되지만 저 하나로 만족해 주셔야 겠습니다.”


“흥. 오거라.”


사도칠은 태산같은 기세로 항마도를 앞으로 뻗었고 송악준 또한 영롱하고 날씬한 검을 곧추 세웠다.


먼저 달려든 것은 사도칠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지금까지 청양에서 벌어졌던 싸움과는 천양지차였다. 숭무련 무인들 간의 대결은 보통 칼부림과 그 격이 달랐던 것이다.


송악준의 검은 쾌검의 정수를 선보이며 사도칠을 점차 압박해갔다.


‘내가 이긴다!’


여러차례 밀리기를 반복하던 사도칠이 이를 악물자, 송악준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어깨를 내주고 그의 허벅지를 베었다.


여전히 무서운 실력이지만 그도 사람이 아닌가. 노인의 체력에 뒤질 만큼 허송세월을 한 적은 없다.


그때, 사도칠의 신형이 한바탕 휘청거렸다.


‘지금!’


섬전과도 같은 그의 검이 사도칠의 몸통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은 것처럼 보였다.


‘빌어먹을!’


휘청거린 것이 아니었다. 일부러 틈을 만들고 그를 유인한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피냄새를 맡아본 검귀만이 쓸 수 있는 한 수였다.


그걸 증명하듯 적휘와 방려의 비명소리에도 사도칠은 웃고 있었다.


검을 붙잡힌 송악준을 향해 도가 날아들었고 여지없이 옆구리에서 피를 뿜었다.


“으라아앗!”


옆구리가 불에 덴 것처럼 뜨겁고 아렸지만 송악준은 멈출 수 없었다. 사도칠의 가슴을 강하게 걷어찬 그는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젠장···’


이럴 수는 없다.


그는 몇 안 남은 진정한 숭무련 무인이다. 저자가 아무리 과거에 명성을 날렸다고 해도 이미 머리가 하얗게 세지 않았나.


한창 전성기인 그가 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갑니다!”


이를 악문 송악준이 검을 뒤로 당겼다가 온 힘을 다해 휘두르기를 반복했다.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로 강렬한 파찰음을 수없이 만들던 도와 검이 허공에서 서로 맞부딪쳤다.


명백한 힘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먼저 우위를 가진 것은 상대적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송악준이었다.


카각! 카가각!


검과 도가 맞붙은 지점은 사도칠의 몸뚱이를 향해 점차 다가갔고 버티고 있는 사도칠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송악준은 필사적인 힘으로 사도칠을 내리 눌렀다. 적어도 힘으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번 기회에 승부를 가려야만 한다. 반드시!


그렇게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던 송악준은 순간 두려움으로 인해 멈칫했다.


사도칠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결코 패자의 미소가 아니었다.


퍼어억!


“끄윽!”


송악준은 발등에서 전해오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하마터면 크게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사도칠이 얼마나 세차게 찍어 밟았는지 발등의 뼈가 모조리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 것이다.


그가 고통에 의해 몸을 꿈틀거린 순간, 사도칠의 도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아왔다.


검에 모든 힘을 쏟았던 그의 몸은 앞으로 기울었고, 더욱이 발이 어떻게 됐는지 몸을 제어할 수 없었다.


“컥!”


그의 입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우측 가슴에 도가 박힌 것이다.


그때였다.


휙!


사도칠이 몸을 회전시키며 발차기를 날렸다. 가슴을 얻어맞은 송악준의 몸은 허공을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고개도 들지 못할 고통에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사실 예상은 했습니다. 한때 가르침을 받았던 자가 어찌 그 수를 읽겠습니까. 허나 세월이 흘렀으니 한번쯤은···”


쓰러진 송악준을 바라보는 사도칠의 얼굴은 승자의 것이 아니었다.


숨이 끊어지기 전까진 포기를 모르는 숭무련 무인이기에 죽일 수 밖에 없었지만 내심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죽을 것을 알고 왔단 말이렸다?”


“들키지 않고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몰라도 그 전에 단주께 들킨다면 실패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단주. 고이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명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지. 이해한다. 윽!”


후두두둑


사도칠이 한웅큼의 피를 토했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이 정상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머리가 몹시 어지럼고 명치 부근에서부터 느껴지는 타오를 것 같은 고통은 그의 심장을 마구 뛰게 만들었다.


“독이냐?”


“어망독이라는 맹독입니다. 독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으나 무조건 임무를 완수하라는 명령이었으니 불가피했지요. 하지만 발작이 이리도 늦게 나타날 줄은··· 이것도 하늘의 뜻이겠지요.”


“네놈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명대로 움직였을 뿐일진데. 묻어주진 못한다. 남길 말이 있느냐?”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끊임없이 떨렸지만 송악준은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단주. 시간이 없습니다. 마마를 어서 안전한 곳으로 옮기십시오.”


사도칠의 미간이 다시 한번 세차게 구겨졌다. 이놈들도 자신이 아니라 적휘를 노리고 왔던 것이다.


“지금 당장 동문(東門)의 취향원(取香院)을 찾아가십시오. 그곳에 호정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당치도 않는 소리!”


“독이 퍼지고 있는 지금, 단주께서도 지금은··· 지금은 마마를 제대로 보필할 수가 없을테지요. 세상 무엇보다도 마마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어서 취향원으···”


송악준은 입을 달싹이다 끝내 숨을 거뒀다. 사도칠은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거센 통증을 참으며 눈을 감고 그의 명복을 빌었다.


그가 다시금 피를 토하자 참지 못하고 달려온 적휘와 방려가 마구 흔들리는 그의 몸을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이게 무슨···”


“도칠. 괜찮은거야? 피가···”


“나는 괜찮소. 어서 이곳을 피해 움직여야 하오. 어서.”


“어디로 가야합니까?”


사도칠의 대답은 빨리 나오지 못했다.


다급한 상황과는 달리 지지부진했던 그의 결정은 어지러움으로 몸을 한바탕 휘청거린 후에야 튀어나왔다.


“동문으로 가자. 그곳에 취향원이라는 곳으로···”


후두두두둑


사도칠은 한바탕 더 피를 쏟아낸 뒤 일행들을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술에 찌든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사도칠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숭무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숭무련 무인의 독에 당했다.


무정한 세월은 그 어떤 고고한 집단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세월이 야속하기도 했다.


걸음을 더해 갈수록 몸 상태로 인해 점점 추위를 느꼈고 주위는 더 적막해졌다.


‘추위라······’


대륙 최북단의 섬에서 태어난 그는 섬을 떠난 후 추위에 떨어본 적이 없었다. 그 또한 재미가 있었는지 그는 또 한 번 피식거렸다.


자신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느낀 그는 적휘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야 한다 생각했다. 허나 마음과는 달리 어지러운 머리는 그의 바람을 계속해서 끊어내었다.


그들이 청양성 남문을 향하는 어느 대로변에 다달았을 때, 마침내 사도칠은 더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대(大)자로 누워버린 그는 눈꺼풀을 들 기력도 없이 고통의 바다를 떠돌았다.


적휘의 눈이 붉어졌고 방려는 계속해서 그의 몸을 흔들었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이미 사도칠은 실신한 상태였다.


그때, 화려하게 장식된 녹색 마차가 대로를 달리다 그들을 지나치기 직전 급히 멈추어 섰다.


마차에서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 구불구불한 턱수염, 남색과 백색으로 잘 재단된 비단 옷을 입은 뚱뚱한 사내가 여유롭게 내려와 사도칠 일행에게 다가왔다.


정체 모를 괴한의 등장에 방려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도칠이 쓰러진 지금 일행들을 지켜야 할 사람은 그녀뿐이었으니까.


뚱보 사내는 사도칠을 한동안 살피더니 이내 길다란 입으로 호쾌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행운이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그가 점점 가까워지자 방려는 품 속의 무기를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두려움에 손이 떨려왔지만 망설일 수는 없다. 기회는 단 한번뿐.


긴장을 풀기 위해 손가락을 한바탕 푼 방려는 아랫입술을 강하게 물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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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비금곡(秘琴谷) +2 21.05.31 248 9 15쪽
» 탈출(脫出) +3 21.05.28 275 9 17쪽
21 노장(老將) +1 21.05.27 284 9 11쪽
20 재회(再會) +1 21.05.26 295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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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원한(怨恨) +2 21.05.23 337 9 13쪽
16 사라지다 - 2 +1 21.05.22 337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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