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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2,432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작성
21.06.22 10:23
조회
63
추천
2
글자
12쪽

백청귀(白靑鬼)

DUMMY

비명소리를 듣자마자 적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문으로 달렸다.


“소주! 소주! 이런 젠장할!”


적휘가 문 밖으로 나왔을 때, 옆방의 방려도 문을 열고 나왔고 그들은 아래층으로 빠르게 달렸다.


아래층엔 아무도 없었다.


소녀의 목소리는 객잔 밖에서 구슬피 울리고 있었다.


“아빠아아아! 아빠아아! 아빠···아아아······”


적휘가 객잔 밖으로 움직였다.


“무슨 일이냐?”


“아빠가··· 아빠가 없어졌어요······”


세차게 뛰어다니던 소녀가 멈춰섰고 곧 망연자실한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객잔에서 묵는 사람 중 나온 사람은 그들이 전부였다.


그토록 흉흉한 소문이 팽배한데 누가 나오겠는가. 호기심에 목숨을 걸 사람은 없다.


“언제 없어졌는데?”


“조금 전이요··· 헛간을 정리하러 가셨거든요. 그런데··· 없어져 버렸어요. 헛간에도 없고··· 저 혼자서는 도저히··· 도와주세요······”


말과 울음을 함께 토해낸 소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걱정하지마. 내가 도와줄께. 그리고 여기 도칠도 도와줄꺼야.”


적휘의 말에 안그래도 구겨져 있던 사도칠의 얼굴이 더 사납게 변했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사도칠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적휘를 무시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으니까.


그가 소녀에게 다가갔다.


“네 부친 인상착의를 말해봐라.”


“아빠는 커요. 크고······”


아직도 놀람과 당혹에 지배되어 있던 소녀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때 방려가 다가와 소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천천히 말해도 되요. 대신 똑똑히 자세하게 말하면 어르신께서 꼭 구해주실 겁니다.”


사도칠은 또다시 눈을 찌푸렸다.


떡 줄 사람은 아직 생각도 않는데 주변이 설치는 격이었으니.


반면, 소녀는 따스하면서도 무게있는 방려의 목소리에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내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아빠는 커요. 아까 진구아저씨나 황아저씨 보셨죠? 그분들보다 더 커요. 그리고 까뭇까뭇한 수염이 턱을 완전히 덮고 있고, 또 눈빛이 매서운 편이세요. 원래 사냥꾼이셨거든요. 이렇게··· 이렇게 말도 없이 없어지실 분이 아닌데··· 설마··· 그···”


말을 이어갈수록 소녀는 다시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사도칠은 소녀를 무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소녀에게 들은 대로 헛간부터 살폈다.


문짝이 없이 한 면이 터져 있는 헛간에는 잡동사니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곳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사도칠은 급히 자리로 돌아왔다.


“없다.”


“네?”


“흔적이 없다고. 네 아비가 헛간을 간 것이 맞느냐?”


소녀는 대답 대신 울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도칠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에게 여인의 눈물이란 언제나 불편하고 거북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어르신!”


다급한 방려의 목소리에 사도칠은 냅다 자리를 옮겼다.


객잔 밖에 위치한 난간.


방려가 가리킨 곳에는 그 난간이 한 움큼 부서져 있었다.


“잘했다.”


고개를 숙인 사도칠이 부서진 곳을 자세히 살폈다.


문득 저녁 무렵 노인에게 들은 여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짐승이 할퀸 것 같은 흔적이 울타리에 남아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울타리는 몰라도 지금 눈 앞의 난간에 있는 것은 사람의 손아귀에 의한 것이 분명했다.


소녀의 말은 확실했다.


소녀의 아비는 난간이 부러뜨릴 정도의 악력을 소유한 사람인 것이다.


“이 흔적이 원래 있었더냐?”


“아니요···”


답을 하는 소녀는 어느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쪽으론 고개도 돌리지 않았던 사도칠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작고 작은 나무가시.


난간이 부서지면서 떨어진 잔여물이 분명했다. 사도칠은 그것에 묻은 아주 미세한 핏자국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을 즉시 코로 가져간 사도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되지 않은 일이 확실하다. 피냄새는 언제나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소녀의 아비는 난간을 한 움큼 잡아 뜯을 정도의 악력의 소유자이고, 그를 데려간 것은 사람같지도 않은 괴물이다.


힘이 센 사내가 죽을 힘을 다해 버텼지만 난간을 함께 뽑아갈 정도의 괴력.


괴물이 아니고서야 설명되지 않는다.


불안보다는 흥미가 사도칠을 자극했다.


그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방향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놈은 온 고을에 퍼진 소문에도 눈에 띄지 않았으니 사람의 눈을 피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난간이 뽑혀나간 방향과 가옥들이 밀집한 곳의 정반대 방향은 놀랍도록 일치했다.


사도칠은 눈에 훤히 보이는 경로를 향해 홀로 튀어나갔다.


이미 밤의 어스름에 짙게 젖은 시야.


사도칠은 오직 달빛과 별빛만이 비추는 텅빈 들판을 쾌속하게 질주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어둠을 품은 나무를 지나 스산한 소리를 내는 갈빛 풀들을 헤치던 사도칠이 멈춰섰다.


그가 달린 방향이 맞았다. 드디어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외로이 떨어져 있는 그것은 분명 뜯겨 버린 사람의 팔이었다.


사도칠은 잡초에 흥건한 피를 뿌려댄 그것을 주저없이 들었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알아내야 한다.


상대를 알아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를 알면 이길 확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이 떨어진 이유를 알게 된 사도칠은 적잖게 놀랐다.


날카로운 도구나 짐승의 이빨같은 것에 당한 것이 아니다.


찢어진 것이다.


적어도 사도칠은 그렇게 판단했다.


찢어진 곳은 팔꿈치에서 한 치(3cm) 위. 그리고 그 가운데 자리한 하얗고 긴 것은 분명 어깨까지 닿아 있어야 할 위팔뼈였다.


얼마나 강한 힘이면 단단히 고정된 뼈가 뽑히고, 그것을 감싼 피부가 찢어질 수 있을까.


이런 것은 사도칠조차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상대는 괴물이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결코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


사도칠의 손이 잘게 떨렸다.


겁을 먹어?


어림없는 소리.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베어버리면 그 뿐이다. 목이 베인 생명체는 숨을 쉬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는 충분히 자신의 실력을 믿었다.


허나 아직도 손을 떨며 뱃속이 아려옴을 느끼는 것은 불안과 긴장보다는 기대와 흥분 때문이다.


미지의 강자와 자웅을 겨루는 것만큼 심장을 뛰게 해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소녀의 아비를 구하는 것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만큼 중요한 일인가.


자신이 위험해진다면 소주도 위험해진다. 어떻게 해야···


“어! 그거!”


사도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에 사도칠은 치솟는 분노를 토해냈다.


“이런 얼어죽을! 여기가 어디라고 따라 온 것이오!”


다가온 적휘는 대답 대신 인상을 찌푸린 채 팔의 잔재를 살폈다.


피가 뚝뚝 떨어진 팔을 살피는 소년의 모습에 사도칠은 혀를 찼다.


뒤이어 어금니를 꽉 문 사도칠은 방려를 노려보았다.


“넌 뭘 하는 것이냐! 소주가 가자 하더라도 말렸어야지!”


“그곳은 안전한 것입니까? 어르신께서 방향을 잘못 잡으셨고 그것이 저희 쪽으로 왔다면요.”


숨을 고르던 방려는 적휘를 향해 고개짓 했다.


“말린다고 말려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어르신 곁에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여겼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어어, 야! 소주! 이런 젠장할!”


수련을 괜히 시킨 것일까. 적휘의 속도는 예전과 달랐다.


간신히 따라잡은 사도칠이 그의 옷깃을 잡아채 멈춰 세웠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적휘의 불같은 호통이었다.


“뭐하는 거야! 팔이 뽑혔어! 피를 쏟아 낸 것 봤잖아. 시간이 없어!”


틀린 말은 아니다.


적휘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본인도 싸움에 동참하고, 소녀의 아비에게 수술이라도 할 기세였다.


비금곡에서 사도칠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스운 꼴이로구나···’


사도칠은 자신의 손을 팽개치고 앞으로 뛰어가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곧 자신의 얼굴을 짝 소리나게 친 다음 달렸다.


더 빠르고 더 긴박하게.


옳은 일을 행하는데 고민을 하다 어린 소년에게 핀잔을 들었다.


본을 보여줘야 할 대상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를 악물었고 턱에 힘줄이 돋았다.


만회해야 한다.


이 모든 원흉을 찾아 분을 풀어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이제는 방향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초록 풀들을 적신 핏자국만 따라가면 되니까.


개울이 보이기 시작했다.


졸졸 흐르는 물에 비친 달빛은 세상을 더욱 시원하게 밝혔다.


‘뭔가?’


앞서 가던 적휘가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욱!”


적휘는 양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그 즉시 불길한 느낌이 사도칠의 머리를 강하게 압박했다.


도대체 무엇이길래 단단한 소주의 속을 뒤집게 하는 것인가.


개울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 피를 거슬러 올라가니 쓰러진 사람이 보였다.


팔 한쪽을 잃은 건장한 사내. 소녀의 아비일 것이다.


그는 이미 움직임이 없었다.


사도칠의 눈이 가늘어지고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뚝 솟았다.


쓰러진 사내 위에 있는 놈은 익숙한 제복을 입고 있었다.


시커먼 흑의와 ‘비영(秘影)’이라 적힌 은빛 각인. 그들 특유의 관모.


그 제복은 사도칠의 적개심을 격발시켰다.


하지만 놈이 고개를 들었을 땐 즉각 움직이려던 사도칠의 몸이 멈추고 말았다.


도저히 사람같지 않은 하얀 피부.


달빛에 반사되어 비치는 푸른 낯빛.


시커멓고 붉은 빛이 감도는 눈언저리.


어느 것 하나도 정상적이지 않다.


새빨간 입술, 날카로운 이빨. 피범벅이 된 그놈의 입 속엔 사람의 살덩이가 씹히고 있었다.


그놈도 시선을 느낀 것일까.


괴기하고 음산한 파란 눈동자가 사도칠을 향했다.


그 눈을 마주친 순간, 호승심 따위는 사라져 버렸다.


처음보는 괴물에 의해 이제는 정말 불안과 긴장이 그를 엄습했다.


항마도를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사도칠은 서서히 숨을 내쉬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흉물스런 적의 껍데기에 두려워 물러서기엔 죽음을 곁에 두고 싸워 온 날들이 너무나 많았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한 그는 어느새 평정심을 회복했다.


전장에 들어선 무인에겐 필수적인 고요의 심장이 그의 몸을 완벽히 준비시켰다.


그 순간, 그놈이 움직였다.


빠르다.


비척비척 발을 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달려온다.


놈에겐 새로운 적에 대한 두려움도 머뭇거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카악! 크카아악!”


피에 젖은 입속에서 짐승 소리와는 다른 괴성이 튀어나왔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놈이 쓴 비영사 관모 아래 시커먼 무언가가 눈에 걸렸다.


‘부적?’


일반적인 부적이 아니다. 마치 부적에 써질 법한 글귀가 괴물의 이마에 낙인처럼 찍혀있었다.


통천부(通川符)


불에 지져진 것 같은 그 검붉은 낙인에 적힌 글귀였다.


정말로 부적이라면 저놈을 만든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


어느덧 놈이 지척까지 다가왔으니까.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가.


빈틈이 너무나 많으니 오히려 결정이 쉽지 않다.


사도칠은 곧 마음을 먹었다.


무기도 없이 덤비는 저 가련한 몸뚱이를 반으로 갈라버리겠다고.


온다. 지금이다. 단칼에······


터어억!


단칼에 승리를 확신했던 사도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 항마도가 그놈의 허리에 닿았는데 예상치 못한 소리가 난 것이다.


이윽고 그놈의 허리를 바라본 사도칠이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놈을 반으로 갈라 버렸어야 할 도(刀)가···


놈의 허리에 닿은 도(刀)가 들어가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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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비금곡(秘琴谷) +2 21.05.31 247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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