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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322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28 00:02
조회
1,142
추천
88
글자
10쪽

부당한 거래

DUMMY

“그대라면 이런 거래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레이븐의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선술집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선술집의 카운터를 맡은 말끔한 턱수염을 가진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잘 알겠지? 알아들었으면···”


이마에 손을 얹은 그는 이내 카운터의 위에 놓인 새끼 노루의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거 가지고 당장 여기서 꺼지게!”


그런 그의 앞에는 덥수룩한 머리의 사냥꾼이 서 있었다. 에드는 무엇이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술집 주인에게 말했다.


“노루는 별로인가? 그렇다면 참외밭의 폭군이었던 붉은 여우는 어떤가?”


“집어치우게나 에드.”


술집 주인은 한 숨을 쉬며 그의 손가락을 세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바닥에 놓인 카펫은 곰 가죽이고, 잔을 닦는 수건은 토끼 가죽에, 장부를 적을 때 쓰는 깃펜의 깃털은 그대가 가져온 꿩의 것이로군. 그것도 모자라서···.”


말끔한 턱수염을 가진 남자는 술집의 벽에 걸린 숫사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흉물스러운 박제까지, 전부 술로 바꿔주지 않았나! 나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네!”


“아니, 지금껏 잘 바꿔주다가 왜 갑자기 성화인가?”


술집 주인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밑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그러네. 술이 필요하면 자네도 내게 필요한 것을 가져오게나.”


말을 마친 말끔한 수염의 남자는 검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그려보였다. 그 모습을 본 사냥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금은 돈이 없는걸.”


“그렇다면 술도 없을 것이네.”


술집 주인은 이내 사냥꾼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토끼 가죽으로 투명한 유리잔을 닦기 시작한 그의 앞에서, 에드는 한 숨을 쉬며 말했다.


“할 수 없군. 내 이런 것까진 말하지 않으려 했네만···”


음흉한 미소를 지은 사냥꾼은 술집 주인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이 노루 말일세. 사향노루의 수컷이네.”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단 건데?”


“이게··· 사향이··· 남자한테 그렇게 좋다지 뭔가?”


분주히 움직이던 술집 주인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유리잔을 카운터에 내려놓은 술집 주인은 천천히 눈동자를 굴리며 에드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아니 글쎄, 이것만 있으면 말이지. 그 뭐시기···”


눈이 휘둥그레진 술집 주인의 옆에서, 에드는 무엇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한참동안이나 그의 말을 듣던 술집 주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새끼 노루의 시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위스키?”


“늘 마시던 걸로. 안주는 따로 필요 없네.”


말을 마친 사냥꾼과 술집 주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카운터의 위에 놓여진 때 묻은 술병을 낚아챈 에드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술집의 구석에 위치한 작은 원형 탁자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검은 후드를 목에 두른 빨간 머리의 모험가가 앉아 있었다. 눈을 끔뻑이며 사냥꾼을 바라보던 론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에드에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셨길래 저렇게 흔쾌히 술을 내주시는 건가요?”


“알 것 없소. 자세한 설명을 해 주기에는 그대가 많이 어려보이는구려.”


그 말을 들은 론멕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저도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거든요.”


“나이가 어떻게 되길래 그러시오?”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손가락 두 개를 당당하게 펼쳐보였다. 그 모습을 본 사냥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스물?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에드는 때 묻은 술병의 코르크 마개를 부여잡으며 말을 이었다.


“뭐 본인이 그렇다 하면 그런 거겠지. 그래서, 같이 마실 생각이오?”


론멕은 손사래를 치며 사냥꾼에게 말했다.


“아뇨. 술은 입에도 대 본적이 없어서요. 규칙을 정해놓기도 했고···”


“규칙? 무슨 규칙?”


에드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에, 론멕은 탁자 위에 머리를 박았다. 기절하듯 쓰러진 론멕을 본 사냥꾼은 술병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론멕?”


그러나 론멕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던 에드는 이내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론멕? 괜찮소? 이것 참. 뒷정리를 하느라 무리를 하셨나 보구만. 그러게 왜 폭발 마법 같은걸 써서 이 모양이오?”


론멕의 상태를 살피던 에드는 이내 말을 멈추었다. 그런 그의 앞에서,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서서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왜? 그게 어때서? 폭발한게 네 머리통이 아닌 나무인 것에 감사하라고.”


술병을 노려보며 입맛을 다시는 검은 후드의 모험가는 그녀의 텅 빈 하늘빛 눈동자를 번득이며 말했다.



“아가야. 그 술, 마실 거니?”




= = = = =




어둠이 깔린 레이븐의 마을에는 그 어떤 인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테플로의 외곽지대에 위치한 이 조용한 마을에는 잔잔한 풀벌레 소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부어라! 마셔라!”


딱 한 곳, 레이븐의 명물인 선술집만은 예외였다. 마름모꼴 태피스트리로 장식된 창문에서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노란 불빛과 함께 새어나오고 있었다.


“쭉! 쭉! 쭉! 쭉!”


선술집에 모인 레이븐의 주민들은 얼굴이 벌게진 채 연신 환호성을 내뱉었다. 옹기종기 모인 취객들은 하나같이 술잔을 손에 쥔 채 무엇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인파에 둘러싸인 원형 테이블 위에는 빨간 머리의 모험가가 그녀의 몸집만한 나무통을 손에 쥔 채 연신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통을 말끔히 비운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채 텅 빈 나무통을 머리 위로 치켜올렸다.


“우와아아앗!”


실성한 사람들은 그들의 벌게진 뺨을 손으로 감싸며 환호성을 내뱉었다.


“맙소사! 저게 대체 몇 통 째야!”


“영웅이다! 레이븐의 영웅이야! 우리 마을에 술의 정령이 납시었다!”


선술집의 취객들과 마찬가지로, 위니의 뺨은 그녀의 머리칼만큼이나 붉어져 있었다. 하늘빛 눈동자의 모험가는 그녀를 향해 환호하는 취객들에게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으며 화답했다.


“이 정도 가지고 놀라기는. 애송이들아! 이몸이 바로 역사를 뒤흔든 영웅, 위···”


술에 한껏 취한 위니는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이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론멕이시다! 론멕 데이드림! 내가 누구라고?”


레이븐의 주민들은 머리 위로 주먹을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론멕! 론멕! 론멕!”


“아하하핫!”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탁자 위에서 내려온 그녀는 술집의 구석을 향해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덥수룩한 머리의 사냥꾼이 연신 위스키를 홀짝이고 있었다. 넋을 놓은 채 위니를 쳐다보던 에드는 술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정말 완벽하게 미쳤군.”


그 말에 위니는 피식 웃으며 거칠게 의자를 당겼다. 쓰러지다시피 나무 의자에 몸을 맡긴 그녀는 이내 술집의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미쳐야 사는 거지 뭐."


빨간 머리의 모험는 탁자 위에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이 애송아. 네가 산다는 게 뭔진 알아?”


그 말을 들은 에드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위니에게 말했다.


“론멕. 많이 취하셨소. 오늘은 이쯤 하고 샬롯의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난 안 취했는데.”


말을 마친 검은 후드의 모험가는 에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번득이는 텅 빈 하늘빛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사냥꾼은 이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맙소사. 부상을 입었을 때도 그렇고, 당신 뭐 이중인격이나 그런 거 아니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한 순간에 돌변할 수 있는 건지···”


술잔을 기울이던 사냥꾼은 퍼뜩 무엇인가를 떠올리고는 위니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마법사는 비밀이 많다고 들었소. 용병 시절의 내가 보아온 마법사들도 그러했고 말이오.”


“잘 알고 있네. 그래서?”


에드는 고개를 들어 위스키를 들이키고는 말했다.



“그대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 나는 죽소?”


위니는 사냥꾼의 푸른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싸늘한 미소를 지은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그녀의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 전쟁을 겪어봤구나.”


사냥꾼은 그의 수염에 방울방울 달라붙은 술방울을 소매로 닦아내며 말했다.


“물론이오. 나는 용병이었으니까.”


그 말을 들은 위니는 고개를 젖혀 술집의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치가 빠른 건 참 좋은 거야. 살아남기 딱 좋다는 거니까. 그리고 살아남는 다는 것은···”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때 묻은 술병을 낚아채며 말을 이었다.


“강하단 거고. 강하단 건 누군가의 강함을 알아본다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너는 눈치가 정말 빠르구나?”


“그렇소.”


그 말을 들은 위니는 미소지으며 술병을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사냥꾼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위니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말씀드렸듯, 나는 용병이었소. 아주 어렸을 적부터 엑시온 용병단에 몸담았지. 이 내가 원하는 것은 평화로운 일상과···”


에드는 그의 허리춤에 꽂힌 석궁에 손을 가져다대며 말을 이었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오.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위니는 가소롭다는 듯 석궁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마찬가지야. 살아 남는 거. 네가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리고···”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때 묻은 술병을 치켜올려 병나발을 불었다. 위스키를 한껏 들이킨 위니는 그녀의 입가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


“현명한 판단을 하는 자와 빠른 이야기를 나누는 것.”


눈을 질끈 감은 에드는 천천히 석궁에서 손을 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사냥꾼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무엇이 필요하시오?”


“너무 긴장하지 마. 너는 내게 이야기만 해주면 돼. 엑시온 용병단에 관한 정보와···”


위니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에르딘의 내전에 관한 정보들. 다 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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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조련사는 무엇을 조련하는가 +15 20.05.27 1,244 8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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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페트나 베리미온 +17 20.05.24 1,266 107 11쪽
21 환자의 협박 +8 20.05.24 1,213 90 10쪽
20 모험의 왕국 +15 20.05.23 1,536 105 11쪽
19 떠나다 +27 20.05.22 1,803 9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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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성국의 흉악범 +15 20.05.20 1,377 10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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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광대와 여관 +13 20.05.17 1,556 111 14쪽
12 등불과 불운의 도시 +16 20.05.16 1,811 119 11쪽
11 항해의 끝 +19 20.05.16 1,876 1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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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다 위에서 +28 20.05.15 1,962 129 12쪽
8 지평선호 +12 20.05.14 2,125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8 122 7쪽
6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6 145 9쪽
5 탈출 +16 20.05.11 2,612 150 8쪽
4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60 161 9쪽
3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21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3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5 29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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