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249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16 00:01
조회
1,874
추천
122
글자
11쪽

항해의 끝

DUMMY

론멕의 눈 앞에 한 줄기의 빛무리가 차올랐다.


흔들리는 그물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 수녀는, 머지않아 눈을 비비고는 입을 열었다.


“안경...”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그녀는, 순간 마음속에 울려퍼진 목소리에 얼어붙었다.


[안경 찾는 거야? 그거 주머니에 넣어놨는데.]

"우와앗!"


기겁을 한 그녀를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는 위니의 앞에서, 텅 빈 눈동자를 바라보던 론멕은 그제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자수정 목걸이. 마법사 엘프. 단두대형. 구름처럼 솟아나는 기억들을 되새기던 수녀는 한 숨을 쉬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쪽 알이 깨진 안경을 펼쳐든 그녀는 다급히 고개를 돌려 위니에게 말했다.


‘당신 나 없는 사이에 이상한 짓 한건 아니죠?‘


눈을 지긋이 감은 엘프가 볼을 감싼 채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정말 화끈한 밤이었어. 해적들의 쌓이고 쌓인 열정...!]

‘시덥잖은 농담 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말해줘요.’

[···재미없기는. 입아프게 설명하기 귀찮으니, 그냥 네 옆을 봐봐.]


어느새 금이 간 안경을 쓴 론멕이 해적선의 갑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한 무리의 해적이 한 군데 옹기종기 모여 서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상냥한 미소를 짓기 위해 얼굴을 구기던 그들이 론멕에게 말했다.


“헤헤··· 일어나셨습니까 마법사님?”

“으허억!”


깜짝 놀라 자빠진 론멕이 그물침대 위에 쓰러졌다. 그런 수녀의 모습을 보던 위니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속삭이기 시작했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 쟤내들 생각보다 더 마법을 겁내더라고.]


식은 땀을 흘리며 위니와 해적들을 향해 번갈아 눈을 돌리던 론멕은 이내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안경을 고쳐쓰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 버러지들아.”


상상조차 하지 못한 론멕의 반응에, 당황한 위니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그렇게 오버할 필요까진 없는데··· 아무튼 이곳은 해적선이야. 우린 이 배를 타고 세드나로 향하던 중이었어.]


그 말을 들은 론멕은 해적들을 바라보며 입밖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어디까지 온 거죠? 아니, 온 거냐?”


다크서클이 입가까지 내려온, 검은 수염의 해적 선장이 앞으로 나서며 론멕에게 대답했다.


“예에. 마법사님.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인중을 신경질적으로 문지르던 그가 말을 이었다.


“깃발을 내린 채 항해중이긴 합니다만 항구에 직접 닻을 내릴 순 없는 노릇이니, 주변에서 정박해 작은 보트를 내려 드리겠습니다요.”


그 말을 들은 론멕과 위니는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린 엘프가 하품을 하며 수녀에게 말했다.


[봤지? 나만 믿으라고. 그럼 난 이만···]


말을 마친 하늘색 엘프의 형상은 목걸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에 당황한 론멕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위니? 이만 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색이 바랜 자수정 목걸이에서 가물가물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 이런 불완전한 상태에서 네 몸을 쓰는 건 엄청 지치는 일이란 말이야··· 게다가 어젯밤부터 저녀석들이 혹시나 딴 마음 먹을까봐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고...]


힘없이 쳐진 목걸이가 말을 이었다.


[난 좀 잘 테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목걸이를 두 번 두드리도록 해. 그럼···]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위니의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바닷바람에 조용히 흔들리는 목걸이를 보던 론멕은 이 위니라는 존재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켜 주셔서 고마워요 위니. 푹 주무세요.’


낯선 바다 위에서, 론멕은 목걸이를 감싸쥔 채 눈을 감았다.


차가운 아침의 바닷바람을 맞던 그녀는 자수정에서 알 수 없는 온기를 느낀 듯 했다.


침략자와 보호자 사이의 애매한 경계선에 위치한, 위니에 대한 고민에서 이어진 것은 꽤나 생뚱맞은 생각들이었다.


항구 도시와 수평선을 보았을 때의 두근거림, 해적들을 마주쳤을때의 떨림과 그들을 마법으로 제압했을 때의 짜릿함이 론멕의 마음 속에서 빙빙 돌며 그녀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깨달은 론멕이 목걸이를 향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런 동행도··· 썩 나쁘진 않은 것 같네요.”

“예?”


해적들 중 하나가 친절하게 웃기 위해 광대뼈를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것을 들은 론멕은, 이내 허둥지둥 손사래를 치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다. 뭣들 하고 있는 거야? 빨랑빨랑 움직이지 못해?”



= = = = =



“허억··· 허억···”


세드나 반도의 항구 도시에서, 숨 넘어가는 수녀의 신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흐억··· 허억···”


작은 보트가 마침내 나룻터에 입을 맞추자, 노 위에 푹 쓰러진 론멕이 한탄했다.


“젠장할··· 노 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


연약한 팔을 쉴 새 없이 주무르던 수녀는, 이내 벌떡 몸을 일으켜 나루터에 발을 딛었다.


-짤그랑

“아, 맞다.”


동전 소리에 등돌린 론멕이 보트를 향해 바들거리는 팔을 뻗었다.


그렇게 수녀의 손에 잡힌 것은, 금화로 가득 찬 묵직한 주머니였다.


해적들에게서 받아낸 금화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론멕은, 순간 밀려드는 고통에 그것을 놓치고야 말았다.


“으윽···”


반복되는 노질에 혹사당한 팔근육은 몸을 뒤틀며 필사적으로 주인에게 항의했다.


쥐가 오른 팔뚝을 움켜쥔 론멕은, 이윽고 못 참겠다는 듯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르르 떨린 자수정이 하늘색의 구름을 내뿜기 시작했다.


[뭐야! 뭔 일 났어? 해적들이지?!]


부리나케 목걸이 밖으로 나온 위니는 허둥지둥 주변을 살폈다. 그런 그녀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론멕은, 이내 손가락으로 금화 주머니를 가리키며 위니에게 말했다.


‘뭔 일 있는건 아니고, 그냥 저게 너무 무거워서요.’


반 쯤 감긴 눈으로 금화 주머니를 바라보던 위니가 론멕에게 말했다.


[··· 장난해?]

‘노를 한참동안 저어서 팔이 터질 것 같다구요. 좀 도와주세요.’


땅이 꺼져라 한 숨을 쉰 위니가 론멕의 곁에 날아들었다.


[아휴··· 팔에 힘 좀 빼봐.]


말을 마친 위니는, 이내 론멕의 어깻죽지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론멕은 한 쪽 팔이 마비되는 듯 한 이상야릇한 느낌이 그녀의 전신에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디크리즈 웨이트>]


위니는 힘없이 중얼거리며 론멕의 손가락을 튕겼다. 옅은 하늘 빛을 내는 입자들이 수녀의 손가락 주변에서 조금씩 뿜어져 나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들만 할거야. 흐아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 위니는 론멕의 어께에서 빠져나와 목걸이 앞으로 미끄러지듯 날아들었다.


자수정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던 엘는는, 이윽고 무엇인가 알아차렸다는 듯 깜짝 놀라 날아오르며 말을 이었다.


[뭐야, 도착했네?]


놀랍도록 가벼워진 금화 주머니의 무게에, 휘둥그레 눈을 뜬 론멕이 말했다.


‘신기해라··· 맞아요. 도착했어요.’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가 넘치는 미소를 띤 위니가 론멕의 앞에 날아오르며 말했다.


[신난다! 이제 돈도 생겼겠다, 펑펑 쓰면서 한번 놀아 보자고!]


론멕은 깃털같이 가벼워진 금화 뭉치를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입을 열었다.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한시라도 바삐 나에게서 떨어져 나와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그렇지, 오랜만의 나들이인데 그렇게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 게다가, 나보다는 네가 훨씬 더 놀고싶지 않겠어?]


옆구리를 찌르는 듯 한 위니의 움직임에, 배시시 웃은 론멕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 렇긴 해요. 그러면 오후쯤에 여기서 출발···’


고개를 세차게 저은 엘프의 형상이 수녀의 말을 끊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왕 놀기로 한 거, 밤 새도록 놀아야지. 그리고···]


론멕의 모습을 흝어보던 위니는, 이내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할 게 많아. 옷도 새로 사야겠고··· 네가 지금 신이 나서 그렇지, 생각보다 많이 지쳐 있을 거야. 그래 보이기도 하고.]


그 말을 들은 론멕은 부리나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수녀복은 흙먼지와 때로 물든 채, 이곳 저곳이 헐어 있었다. 참담한 몰골의 복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론멕은 머쓱하다는 듯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좀 씻으면 좋긴 하겠네요. 그러면 일단 숙소부터 잡아 볼까요?’


그런 그녀의 말에, 위니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성당에서 평생 살았다더니, 모험의 기본은 잡혀 있구만?]

‘다 책에서 본 거죠 뭐.’

[···세상에.]



= = = = =



그 시각, 유베르논의 항구에서는 전대미문의 인파가 한 데 모여 무엇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저건 대체···”


“악마다··· 악마의 나무다···!”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가 자라난 지평선호가 힘없이 기울어진 채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웅성이는 사람들의 말 소리 사이에서, 군중의 한 가운데에 선 누군가의 고함이 울려퍼졌다.


“정말입니다!”


지평선호의 선장인 마르폴은 가슴팍에 벗어든 모자를 움켜쥔 채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하늘 빛의 오망성··· 그건 필시 마법이 분명할 겁니다! 마법이었어요!”


하얀 옷을 입은 대여섯의 사제들 앞에서, 선장은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정말 순식간에 자라나더군요. 그렇게 끔찍한 건 난생 처음 봤지 뭡니까!”

“혹시 그 마법을 쓴 마법사가 빨간 머리에 안경을 쓴 수녀 아니었소?”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 마르폴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정확해요! 심지어 수녀였습니다! 교단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성스러운 유베르논의 해역에 해적도 모자라, 마법을 쓰는 수녀...."


마르폴은 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어깨 위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놓였기 때문이다.


“진정하시오 선장.”


두꺼운 갑옷으로 무장한 노란 수염의 성기사단장이 마르폴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말을 이었다.


“나는 성 제이드 성당의 수호기사단장, 퍼밋 호프송이라 합니다. 그대가 목격한 마법사는 우리 성당 소속의 론멕 수녀라고 하오.”


마르폴은 지체없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퍼밋은 그런 그의 눈동자를 직시한 채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의 이름으로, 그녀를 꼭 잡아들일 테니.”


말을 마친 퍼밋이 그의 뒤에 서 있던 성기사 하나에게 말했다.


“들었나? 론멕은 지금 세드나 반도로 향하고 있다.”


노란 수염의 기사단장은 바득바득 이를 갈며 성기사에게 말했다.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세드나의 전역으로 기사단을 집결시키도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앞점멸 소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조련사는 무엇을 조련하는가 +15 20.05.27 1,243 88 11쪽
26 석궁 시범 +17 20.05.27 1,140 93 11쪽
25 석궁과 사냥꾼 +16 20.05.26 1,331 102 10쪽
24 의사의 집에서 +12 20.05.25 1,244 96 12쪽
23 낮의 그림자 +19 20.05.25 1,236 102 11쪽
22 페트나 베리미온 +17 20.05.24 1,266 107 11쪽
21 환자의 협박 +8 20.05.24 1,212 90 10쪽
20 모험의 왕국 +15 20.05.23 1,535 105 11쪽
19 떠나다 +27 20.05.22 1,802 98 14쪽
18 무역상인 +18 20.05.21 1,321 102 11쪽
17 성국의 흉악범 +15 20.05.20 1,376 101 12쪽
16 두 번의 살인 +26 20.05.19 1,449 101 14쪽
15 13일의 금요일 +14 20.05.18 1,465 102 14쪽
14 세드나의 정오 +11 20.05.17 1,458 103 11쪽
13 광대와 여관 +13 20.05.17 1,555 111 14쪽
12 등불과 불운의 도시 +16 20.05.16 1,810 119 11쪽
» 항해의 끝 +19 20.05.16 1,875 122 11쪽
10 미소짓다 +22 20.05.15 1,876 137 11쪽
9 바다 위에서 +28 20.05.15 1,960 129 12쪽
8 지평선호 +12 20.05.14 2,123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6 122 7쪽
6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5 145 9쪽
5 탈출 +16 20.05.11 2,610 150 8쪽
4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57 161 9쪽
3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19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0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1 29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